1807년 7월의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유럽 대륙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틸지트(Tilsit, 프로이센과 러시아 국경 도시)에서 체결된 역사적인 조약으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프랑스의 황제이자 전략가)는
제국의 영광을 절정에 올려놓았다.
파리로 돌아온 개선 행렬은 화려했지만,
황제의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완벽한 승리'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승리를 기념할 만한 '완벽한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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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1세, 프랑수아 제라르의 공식 초상 | Napoleon I in Coronation Robes by François Gérard"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베르티에(Berthier, 나폴레옹의 참모총장), 이번 축하 행사는 제국의 위엄에 걸맞아야 하오.
특히 사냥 대회는 말이오."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Louis-Alexandre Berthier) 원수는
황제의 집무실에서 그의 불꽃같은 눈을 마주했다.
"물론이옵니다, 폐하. 팡텐블로(Fontainebleau, 파리 근교의 유명한 숲과 성) 숲을 준비했습니다. 꿩과 사슴을 충분히 풀어놓을 예정이옵니다."
나폴레옹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뻔하지 않소. 사슴은 겁에 질려 도망칠 테고, 꿩은 금방 지쳐버리겠지.
나는 즉각적인 쾌감, 예측 불가능한 도전을 원하오."
베르티에는 마른침을 삼켰다.
황제는 '새로운 것'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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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 나폴레옹의 참모총장 | Louis-Alexandre Berthier, Marshal of the Empire"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그날 밤, 베르티에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묘안을 짜냈다.
그는 파리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떠돌던 기묘한 소문,
즉 "토끼를 이용한 몰이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통적인 귀족 사냥 방식은 아니었지만,
대규모로 진행한다면 황제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장관을 연출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즉시 부하들을 시켜 프랑스 전역의 시장과 농가를 샅샅이 뒤졌다.
목표는 오직 하나, 토끼.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토끼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야생 개체가 부족해 파리·근교 장터에서 ‘집토끼’를 대량 매입했다는 말이 전한다.)
베르티에는 숫자가 많을수록 황제가 더 기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오판의 시작이었다.
그가 사들인 토끼 대부분은 야생성이 거세된 집토끼(Domesticated rabbits)였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토끼면 다 같은 토끼인 줄 알았던 것이다.
사냥 대회가 열릴 팡텐블로 외곽의 드넓은 초원.
행사 당일 아침, 현장은 전례 없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베르티에가 공들여 모은 토끼 약 3,000마리가 거대한 철망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숫자는 전승마다 ‘수백~수천’으로 크게 갈린다.)
군인들은 토끼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바리케이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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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텐블로 궁전의 말발굽 계단(중정 전경) | Horseshoe Stairway, Courtyard of Château de Fontainebleau" CC BY-SA 4.0(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멀리서 황제의 마차가 도착했다.
나폴레옹과 그의 최측근 장군들이 내렸다.
(장소는 대체로 ‘폰텐블로 숲’으로 전하지만, 일부 회고는 뱅센·콩피에뉴 같은 다른 왕실 사냥터를 지목하기도 한다.)
"폐하, 전례 없는 장관이 될 것입니다."
베르티에가 허리를 굽혀 아뢰었다.
나폴레옹은 말에서 내려 초원을 둘러보았다.
"토끼라... 시시해 보이지만, 수가 많으니 볼만하겠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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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텐블로 숲의 아침 풍경(바르비죵파) | An Early Summer Morning in the Forest of Fontainebleau (Théodore Rousseau)" Public Domain(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팡파르가 울리고, 군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토끼 우리를 열어젖혔다.
나폴레옹은 의기양양하게 엽총을 고쳐 잡았다.
이제 막 역사에 기록될 '황제의 위대한 사냥'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초반에는 베르티에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수백 마리의 토끼가 풀려나와 우왕좌왕하며 초원을 가로질렀다.
나폴레옹과 일행은 신이 나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라?"
총소리가 잠잠해지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도망가야 할 토끼들이 도리어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무리를 지어 황제 일행을 향해 돌진했다.
이것이 바로 '집토끼'의 반전이었다.
야생 토끼와 달리, 인간의 손에 길러진 이 동물들에게 군복을 입은 인간 무리는 '먹이를 주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던 탓이다.
(행동학적으로 ‘인간=먹이’ 각인설이 자주 거론된다.)
또 어떤 전언은 폭염 속 바람 방향과 그늘·물통 배치가 귀빈석 쪽에 있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몰렸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공포 대신 기대감을 안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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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퐁텐 우화(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패러디 브리티시 뮤지엄 |
"아니, 이놈들이!"
호위병들이 당황하며 채찍을 휘둘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토끼들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전략적으로 조직된 부대처럼, 그들은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토끼들은 장군들의 군화와 바짓가랑이를 물어뜯기 시작했고, 심지어 황제의 망토 자락까지 물고 늘어졌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큭큭, 캬악!" 하는 토끼들의 울음소리와 장군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나폴레옹조차 당황하여 몇 걸음 뒷걸음질 쳤다.
몇몇 토끼는 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이게 무슨 추태요, 베르티에! 당장 이 벌레 같은 놈들을 치우지 못할까!"
황제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베르티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병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토끼를 쫓아냈지만, 풀려난 토끼의 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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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가 나폴레옹을 작게 묘사하는 전형적 폄하 브리티시 뮤지엄 |
결국,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토끼 떼의 집요한 ‘돌진’을 견디지 못하고 마차로 피신해야 했다.
(일설에는 몇 마리가 마차 발판을 타고 안쪽까지 파고들었다고도 전한다.)
나폴레옹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마차가 황급히 사냥터를 벗어나면서, 그 뒤로는 승리감에 도취된 듯한 토끼 무리만이 남았다.
(소동 뒤 도망치지 못한 일부 개체가 궁정 주방으로 이송돼 ‘연회 재활용’ 됐다는 농담도 따라붙는다.)
이 사건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공식적으로는 '황제의 유쾌한 사냥 소동'으로 처리되었지만,
유럽의 외교가와 언론은 이 사건을 놓치지 않았다.
풍자화가들은 나폴레옹이 거대한 토끼에게 쫓기는 그림을 그려댔다.
(토끼가 비코른을 쓰고 ‘당근 총검’을 겨눈 만평이 돌았다는 전언이 있으나, 원판 확인은 쉽지 않다.)
사건 이후, 베르티에는 한동안 나폴레옹의 눈 밖에 났다.
(총괄은 베르티에로 굳어졌지만, 현장 게임키퍼 라인의 준비 미스가 원인이었다는 ‘책임 분산설’도 있다.)
나폴레옹은 토끼에게도 물러섰다는 식의 자조를 했다고 전한다(정확한 출전은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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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과 희화의 대표작. ‘허세 vs 현실’ 브리티시 뮤지엄 |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은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어떤 병사들은 "사실 그 토끼들은 영국 스파이들이 조련한 암살 토끼였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신이 교만한 황제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보낸 사자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나폴레옹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남겼다.
아무리 위대한 황제라도, 계획되지 않은 변수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807년 여름의 그날, 팡텐블로의 초원은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에게 가장 뜻밖의, 그리고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전장이었다.
나폴레옹은 이후에도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토끼 떼에게 쫓겼던 그날의 기억은 그의 생애 가장 기묘한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이 글은 나폴레옹 관련 전기·회고·야담을 교차해 정리했습니다.
‘토끼 사냥 소동’의 수치·장소·인용 등은 전승 요소가 포함되어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한 사료 제보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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