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반데라의 실체-인종청소와 국가가 설계한 살인 (Stepan Bandera)

 

한 남자의 이름이 전쟁보다 먼저 피를 불렀다.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 1909–1959, OUN-B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지도자).

그의 정치는 ‘국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실은 배제와 제거를 상수로 놓은 계산법이었다.

그에게 사람은 “우리”와 “없애야 할 대상” 둘뿐이었다.

나는 이 이름 앞에서, 분노를 감춘 문장을 쓰지 않겠다.


스테판 반데라의 정면 흑백 초상 / Black-and-white portrait of Stepan Bander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PD-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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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반데라는 이미 테러 전술로 이름을 올렸다.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폭력의 효율로 증명된다고 믿는 사람, 그가 반데라였다.

그의 조직은 초기부터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장 큰 범죄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훈육처럼 주입했다.

적을 증오와 속임수로 맞으라, 필요하면 잔혹함도 미덕이라 가르쳤다.

폭력은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양분된 OUN-B 깃발 / Red-and-black flag associated with OUN-B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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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여름, 동부유럽의 균열이 활화산처럼 터질 때 반데라 진영은 “독립”이라는 깃발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 깃발의 그늘에서 벌어진 것은 ‘정의의 열기’가 아니라 분풀이의 시나리오였다.

도시는 불안했고, 사람들은 분류표처럼 나뉘었다.

누구는 “우리 편”, 누구는 “숙청 대상”.

민병대와 군중, 지방 조직은 유대인과 ‘적’으로 찍힌 이웃을 향해 집단 폭력을 실행했다.


1941년 6월 30일 르비우에서 발표된 국가수립 선언 문서 / 30 June 1941 Act of Ukrainian Statehood (document scan)
Wikimedia Commons, CC BY-SA(원문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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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볼히니아(Volhynia 현재 우크라이나의 볼린주 일대)와 동갈리치아의 농촌과 소읍에선, 폴란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인종청소가 일상처럼 반복됐다.

아이와 노인, 임산부가 섞인 행렬이 들판으로 끌려갔다.

“이웃”이던 사람들이 밤이면 서로의 문을 두드렸다.

다음 날 아침, 거기엔 집이 아니라 목록이 남았다. 남자의 수, 여자의 수, 아이의 수.

그 목록을 지금도 우리는 끝까지 읽지 못한다.


반데라에게 국가는 사람을 지키는 장치가 아니었다.

땅과 피로만 계산되는 전리품이었다.

그가 말한 ‘자유’는 남을 지워야 움직였다.

그는 ‘우릴 막는 자’를 표적으로 삼았다. 지식인·공무원·교사·성직자 같은 이름을 붙였고, 그 표식은 곧 살해 신호가 됐다.

이건 우발이 아니라, 조직의 문서와 지침(훈령)으로 남은 계획이었다.


이제 당신이 들은 잔혹한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라.

남편에게 몽둥이를 쥐여 주고 유대인 아내와 아이를 때려 죽이라 강요했다는 이야기,

교회 전각에 사람을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

개울가에서 줄지어 도끼와 낫이 내리꽂혔다는 이야기.

이들 중 일부는 특정 마을의 증언집과 부역자 재판 기록으로 확인되고, 일부는 지역 전승으로만 남은 것도 있다.

확실한 것 하나. 반데라가 주도한 노선은 이런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직적으로 설계했다는 사실이다.

‘악의 구조’를 만든 자에게, 개별 칼날의 흔들림을 변명으로 돌릴 수는 없다.


바르샤바 볼린 학살 희생자 기념비 / Volhynia Massacre Memorial in Warsaw
Wikimedia Commons, CC BY 3.0 (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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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분명히 말한다.

반데라는 역사상 최악의 인물중 하나다.

그가 썼던 단어, 해방, 국가, 명예는 사람을 고르는 체에 불과했다.

그 체 위에서 수많은 이웃이 불순물로 떨어졌다.

언어가 사람을 분류하고, 분류가 곧 폭력의 회계가 되는 순간, 정치라는 이름은 사라진다.

남는 건 범죄뿐이다.


그는 결국 1959년, 뮌헨의 계단참에서 죽었다.

처음엔 심장마비로 기록됐지만, 두 해 뒤 독가스 분사 권총에 의한 정치살인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이 장면에 연민을 보태지 않는다.

국가가 설계한 암살은 또 다른 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살자의 과거가 세례받듯 정화되는 일은 없다.

폭력으로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이 폭력이라 해서, 그의 피의 책임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반데라를 둘러싼 영웅화에 특히 분노한다.

거리명, 동상, 기념일.

그 앞에서 누군가는 가해자의 초상을 보지만, 누군가는 구원의 표상을 본다.

기억 전쟁의 프레임은 단순하다. 우리의 영웅 vs. 너희의 악.

그러나 기억이 선전으로 바뀌는 순간, 피해자의 이름이 가장 먼저 지워진다.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대형 반데라 동상과 아치 / Monument to Stepan Bandera in Lviv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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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 보자.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으로.

아버지, 어머니, 아이.

그들이 살던 집의 좌표, 마을의 우물, 부엌의 그을음, 아이의 필기장.

이것을 ‘부수적 결과’로 쓸어버리는 정치에게 용서란 없다.

국가가 사람을 지우면, 그 국가는 허구다.


냉전기의 서방 정보기관조차 반데라와 거리를 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소련의 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통제 불능의 과격함은 언제나 조직을 망치고, 동맹을 무너뜨린다.

폭력의 습관은 외교의 언어가 되지 못한다.


나는 반복해서 말한다.

폭력은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폭력은 단지 피해자의 이름을 늘릴 뿐이다.

반데라가 상징한 것은 해방이 아니라 배제의 문법,

연대가 아니라 정체성의 독,

정치가 아니라 사냥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동이 아니다.

사실의 문장으로 책임의 지형을 그리는 일이다.

어떤 전승은 걸러야 하고, 어떤 증언은 교차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검증의 도중에도 지워지지 않는 핵심은 남는다.

반데라의 노선이 광범위한 민간인 폭력을 낳았고, 그 폭력이 지역 전체를 인종·신앙·언어라는 선으로 잘라냈다는 사실.

이 사실 앞에서 미화는 2차 가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읽는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 하나.

피해자들의 이름을 먼저 적고, 분노는 그 다음에 올 것.

그러나 그 분노는 꺼뜨리지 말 것.

분노를 잃은 사실은 차가운 기술이 되고, 사실을 잃은 분노는 선동이 된다.

우리는 둘 다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반데라라는 이름 앞에선,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붙들어야 한다.


그의 죽음이 보여주는 건 단순하다.

평생 폭력을 택한 사람은 결국 폭력으로 심판받는다.

그 폭력이 국가의 손에서 나왔다면, 국가는 그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하지만 어떤 처벌도 그가 남긴 희생과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우리는 그 흔적을 보며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Stepan Bandera (1909–1959), leader of OUN-B, treated the nation as plunder and “freedom” as the removal of others. 
His line enabled organized violence—pogroms and the Volhynia/Eastern Galicia massacres—by tagging civilians as enemies. 
In Munich in 1959 he was killed with a KGB cyanide spray gun—state murder that still cannot cleanse his record. 
The piece condemns both the extremist who normalized terror and the state that used assassination, urging memory of victims so it never rep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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