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의 생존 전략: 완성 기습·조조 귀순·태위의 길 (Jia Xu)

 

사막 바람이 거칠던 무위군(서량·오늘날 간쑤성 우웨이)에서 자란 가후(賈詡·자 문화)는 젊을 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다 관직에서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 그는 변경에서 난을 일으킨 저족 무리에게 붙잡힌다.

“나는 태위 단경(段熲)의 외손이다. 살려만 주면 집안에서 후히 갚겠다.”

허풍이었다.

그러나 단경의 이름이 서방에 널리 알려졌던 탓에, 반란군은 겁을 먹고 그를 풀어 주었다(전승). 

가후 초상(청대) / “Qing-era portrait of Jia Xu”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PD-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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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년, 동탁(董卓)이 낙양 정권을 장악하고 장안으로 천도하자, 가후는 평진도위·도로교위 같은 실무 보직을 거쳐 동탁 진영에서 일했다.

192년 동탁이 여포에게 피살된 뒤, 전권을 움켜쥔 왕윤이 숙청을 준비하자, 동탁계 장수 이각·곽사·장제 등이 흩어져 도주하려 했다.

가후는 “지금 장안의 새 정권은 서량 계통을 모조리 주살하려 한다”며 오히려 장안을 선제 습격해 황제를 장악하라고 조언했다.

그날 장안은 유린됐고, 이각·곽사는 황제 헌제를 붙잡아 권력을 틀어쥐었다.

가후는 이때부터 ‘살 길을 먼저 읽는 책사’로 두려움과 존경을 함께 받는다. 


그는 공을 세웠지만, 이각이 책봉을 논하자 “그건 당신들 살리려 한 방책이었지, 제 공이 아닙니다”라며 작위를 사양했다.

스스로를 한 단계 낮추고 상서로 들어가 인재 선발을 맡으면서도, 구정권 인사들을 다시 기용해 행정의 연속성을 챙겼다.

권력 핵심에 붙으면서도 표면적 치적을 부풀리지 않는 태도였다.

이 낮은 자세는 이후 그의 ‘생존 전략’의 일부가 된다. 


이각·곽사의 장안 공격(청대 삽화) / “Li Jue & Guo Si sack Chang’an (Qing illustratio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PD-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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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곽사 정권이 내분으로 흔들리자, 가후는 진영을 옮긴다.

남양의 장수 장수(張繡·완성 주둔)에게 가서 지키며 버티는 법을 가르쳤고, 197년 완성 전투에서 조조를 상대로 기습을 성사시켰다.

이때 조조의 장수 전위(호위장)와 장남 조앙이 전사했다.

승부를 뒤집은 건 화려한 책략 명구가 아니라, ‘무리하지 않고 한 칸 먼저 움직이는’ 운영이었다.

이 사건은 연의(소설)에서도 큰 장면으로 그려지지만, 정사(『삼국지』)의 핵심은 가후의 냉정한 위험관리다. 


한 헌제 초상(청대) / “Emperor Xian of Han (Qing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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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래 버틸 판은 아니었다.

가후는 199~200년 사이 장수에게 “원소는 세가 크지만 그만큼 사람을 가볍게 본다. 조조는 황제를 받들었으니 사면이 안정된다”며 조조에게 귀순하라 권한다.

장수는 결국 다시 조조에게 항복했고, 조조는 과거의 원한을 접고 혼인으로 화해를 굳혔다.

가후가 이동할 때마다 피를 보지 않게 하는 ‘탈출로 패키지’가 따라붙는 이유였다.

연의의 ‘독사형 책사’ 이미지와 달리, 정사 속 가후는 충돌을 줄이는 선택지를 일관되게 제시한다.


관도 대치 국면에서 조조가 “탈출구가 없구나”라며 묘책을 묻자, 

가후는 “용병·결단·인재 등 네 가지에서 공이 원소를 앞섭니다. 너무 안전만 보니 오래 끌립니다. 기회를 잡아 한 번에 부숴야합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조조가 과감히 원소 진영을 연속 타격하며 국면을 뒤집자, 하북이 평정됐다(정사 주석·사평).

가후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언제 결단할지’의 타이밍을 짚어 주는 타입이었다. 


원소(빨간색)·조조(파란색) 세력 분포(195–200) / “Yuan Shao vs. Cao Cao territories (195–200)”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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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년 동관 전역에서 그의 성향은 더 또렷해진다.

관서 연합(마초·한수 등)이 조조를 압박하자, 가후는 “땅을 조금 떼어주자는 연합의 요구를 겉으론 수락하는 척하라”고 제안했다.

조조는 연합의 맏형 격인 한수를 따로 불러 예우하며 옛정을 강조했다.

그 한 장면으로 마초 등 동맹이 ‘한수가 변심했다’고 의심했고, 내부 숙청과 불신이 번지면서 전선이 스스로 무너졌다(정사).

연의는 여기서 ‘편지 이간계’를 더해 장면을 극적으로 키운다.

의혹이 균열로, 균열이 내부분열로 번졌다.

가후가 노린 것은 일격이 아니라 관계선의 이완이었다. 


동관에서 맞붙는 허저와 마초(장랑) / “Xu Chu vs. Ma Chao at Tong Pass (Long Corridor)”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P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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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생활은 기록이 많지 않다.

부모·형제 이야기가 드문 대신, 자식들에게 권문세가와의 혼인을 피하게 하고, 문밖 사교를 줄였다는 대목이 남아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옅게 만든 사람.

“내 계책을 과시하면 시기를 부른다”는 온도감이 집안 관리까지 이어진다.

이 내향적 생활술은 소설이 강조하는 ‘흑막’의 맛과는 결이 다르다. 


후대의 독자는 묻는다.

“주군을 자주 바꾼 건 변절 아닌가?”

정사는 그를 도덕 영웅으로도, 배신자로도 확정하지 않는다(논쟁).

가후가 스스로를 변호한 기록도 없다.

다만 ‘난세에 조직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신속한 편승이 아니라, 무리한 확전을 막는 선택을 더 자주 꺼내 들었다는 사실이 눈에 남는다. 


연의의 가후는 ‘독이 흐르는 미소’의 인물로 그려진다.

완성에서 조조를 농락하고, 동관에서는 ‘편지 분열책’으로 마초·한수를 찢는 연출이 클라이맥스다.

정사는 연출을 낮추고 결과를 남긴다.

완성 전투의 피해, 동관의 연합 붕괴는 사실이지만, 칼끝 같은 ‘한 장의 편지’보다 복합적 의심의 증폭을 기록한다.

연의가 감정의 장면을, 정사가 구조의 흐름을 보여준 셈이다. 


220년,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 황제로 즉위한다.

가후는 태위(최고 위계 무관직)까지 오른다.

조비가 후계 경쟁에서 가후에게 직접 ‘자기관리 비법’을 물었을 때, 가후는 “겸허와 효, 일상의 공무” 같은 단정한 답만 돌려줬다.

조조가 “누굴 세울까?”라고 묻자, 가후는 “원소·유표 부자의 전례가 있습니다”라고만 힌트를 줬다.

노골적 줄서기가 아니라, 선례의 리스크를 짚어 주는 형식이었다. 


“조비(위 문제) 초상—청대 『삼국지연의』 판본” / “Portrait of Cao Pi (Emperor Wen of Wei), Qing-era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edition”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PD-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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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년, 가후는 77세(당시 계산법)로 세상을 떠난다.

진급과 이동이 많았지만, 그에게 남은 명성은 의외로 단출하다.

“큰 실책이 없었다.”

진영과 주군이 바뀌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오판을 줄이는 기술’로 이름을 남겼다.

연의의 날카로운 독설가와, 정사의 무미건조한 관리자 사이 어딘가에서 그는 오늘까지 읽힌다. 


개인적인 장면을 한 컷 더 붙이자.

젊은 시절 반란군에게 잡혔을 때, 가후는 허명을 빌려 목숨을 건졌다(전승).

노년에는 아들들의 혼처를 조심스럽게 낮추고, 문밖 왕래를 줄였다.

난세의 영웅들은 강단에서 빛나지만, 그는 집 안의 문지방을 낮추는 방식으로 가족을 지켰다.

가후의 서사는 거대한 승리의 포효가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피하는 침묵의 기술로 완성된다.

그게 그의 미학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의와 정사를 비교하는 독자 가이드를 덧붙인다.

완성 전투에서의 조조 조앙·전위 전사는 사실이며, ‘무도회의 만찬 뒤 급습’ 같은 연출은 소설이 부각한 장면이다.

동관 전역의 내부 이간책 역시 사실이지만, ‘한 장의 편지로 한수 팔을 자르게 했다’는 과격한 묘사는 소설적 각색에 가깝다.

장안 습격의 권력 역전은 정사 핵심이고, ‘동탁 최후의 잔혹함’은 소설에서 감정이 증폭된다.

연의로 입구를 잡고, 정사로 핵심을 확인하는 읽기법이 이 인물에겐 잘 맞는다. 


전위 초상(청대) / “Dian Wei (Qing illustratio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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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를 평가한 진수(『삼국지』 편찬자)는 “계책에 빈틈이 없고 권도(형세 판단과 응용)에 능하니, 장량·진평에 버금간다”고 썼다.

배치와 위치가 바뀌는 전장, 서열과 감정이 얽히는 조정에서, 그는 ‘언제 멈추고, 언제 한 걸음 나갈지’를 아는 기술자였다.

그 기술이 윤리적으로 완벽했는가는 독자의 몫이다(논쟁).

다만 ‘승자의 곁’이 아니라, 무너지는 구조를 덜 무너지게 만드는 선택에 일관되게 머물렀다는 점은 정사가 남긴 분명한 초상이다.

그 초상은 소설의 악역 미소와 겹치면서도, 다른 빛을 낸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Jia Xu (d. 223) survived chaos by reading power and timing. 
He urged Li Jue and Guo Si to seize the emperor at Chang’an; guided Zhang Xiu in the Wancheng ambush (Dian Wei and Cao Ang fell); then advised Zhang Xiu to submit to Cao Cao. 
At Guandu he argued for a decisive strike; at Tong Pass he helped split Ma Chao and Han Sui. 
Romance casts him as a venomous schemer, but histories show a calm risk-manager who kept family out of politics and rose to Grand Comma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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