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마샬 이야기: 토너먼트의 왕에서 왕국의 수호자까지 (William Marshal)



 이 글은 『The History of William Marshal』(13세기 서사시), 

영국 왕실 연대기, 현대 역사 연구서를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서사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소설체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152년, 영국의 황혼기.

윌리엄 마샬은 미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마샬은 반란에 가담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다.

어린 윌리엄은 볼모로 끌려가 왕 앞에 섰다.

그때 그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저 아이를 죽여라.”

분노한 왕 스티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어린 윌리엄은 겁먹지 않았다.

그는 손에 장난감 창을 쥐고 웃음을 지었다.

왕은 그 웃음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아이는 살려 두어라. 그의 운명이 우리와 다르다.”

그리하여 윌리엄은 목숨을 건졌다.

그는 살아남은 자였다.

하늘이 그를 위해 남겨둔 기사였다.


소년은 무술과 기사도를 배웠다.

칼을 휘두르고 말을 타며, 기사로서의 의무와 명예를 익혔다.

그는 평범한 귀족 자제가 아니었다.

가난과 멸시를 이겨내야 했고, 스스로의 검으로 길을 열어야 했다.




청년 윌리엄은 토너먼트에 몸을 던졌다.

중세의 토너먼트는 축제가 아니었다.

수백 명의 기사가 목숨을 걸고 부딪히는, 전쟁 같은 경기였다.

창끝이 부딪치고, 말발굽이 땅을 울렸다.

윌리엄은 그 한가운데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창은 언제나 적을 꿰뚫었고, 그의 검은 상대의 방패를 부러뜨렸다.

그는 수많은 말을 전리품으로 얻었고, 상금을 챙겼다.

패배를 모르는 사내.

사람들은 그를 “토너먼트의 왕”이라 불렀다.

그 명성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윌리엄은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었다.

그는 충성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앙리 2세의 장남, 젊은 왕 헨리를 섬겼을 때에도 그랬다.

헨리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락했다.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지만, 윌리엄만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헨리가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 때, 윌리엄은 그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헨리의 검을 무덤 위에 놓으며 맹세했다.

“당신의 영광은 내가 이어가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리처드 1세, 사자심왕이 왕위에 올랐다.

십자군 전쟁의 영웅.

리처드가 전장에 있을 때, 윌리엄은 본국에서 왕권을 지켰다.

배신과 음모가 난무했으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충성을 선택했다.


리처드가 죽고, 존 왕이 즉위했다.

존은 무능하고 잔혹한 군주였다.

많은 귀족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여전히 왕의 곁을 지켰다.

“저는 기사의 맹세를 어길 수 없습니다. 왕이 잘못한다 해도, 저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고집을 어리석다 했지만, 그 고집이야말로 기사도의 본질이었다.


1215년, 존 왕은 귀족들의 압박 속에 

마그나 카르타(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법을 존중하도록 만든 대헌장)에 서명했다.

왕권과 귀족 권력의 균형을 찾는 순간.

윌리엄은 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피를 흘리는 대신, 문서로써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존 왕이 죽자, 잉글랜드는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 왕자 루이가 영국 땅을 침략했고, 나라 전체가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때, 나이 일흔이 넘은 노기사 윌리엄 마샬이 다시 말을 탔다.

그의 몸은 쇠약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1217년, 링컨 전투.

적의 군대는 수만 명이었고, 영국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검을 높이 들고 말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을 위해 싸운다. 나를 따르라!”

노기의 외침에 젊은 기사들이 따랐다.

전투가 시작되자, 윌리엄은 맨 앞에서 말을 몰아 돌격했다.

70세의 노인이 창을 들고 적진을 가르는 장면.

그것은 기사도의 절정이었다.


그날의 승리는 잉글랜드를 지켰다.

프랑스군은 물러갔고, 어린 헨리 3세의 왕좌는 안전해졌다.

윌리엄 마샬은 단지 기사 한 명이 아니었다.

그는 나라의 수호자였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그는 기사단의 흰 망토를 입었다.

동료 기사들이 그의 곁에 모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기사의 길을 걸어왔다. 명예와 충성으로 살았다. 이제 주님께 가노라.”

1219년, 윌리엄 마샬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런던의 템플 기사단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의 무덤 앞에서 후대 기사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대야말로 기사 중의 기사였소.”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었다.

윌리엄 마샬.

그는 끝내 기사도의 화신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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