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은 한겨울의 아침이었다.
센트럴리아(Centralia, 펜실베니아주 앤트러사이트 탄전 마을)의 골목은 텅 비었고, 균열 난 아스팔트 틈에서 김이 뿜어 올랐다.
도로 표지에는 펜실베니아 61번 도로(PA Route 61)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길 옆 나무는 오래된 상처처럼 그을려 있었다.
노점 문을 열던 엘라(가상·구멍가게 주인)는 장갑을 벗고 입김을 보았다.
눈발은 희미했고, 냄새는 유황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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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트럴리아 폐도에서 지표 균열로 솟는 증기” / “Steam venting through fissures on the closed road in Centralia”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위키미디어 공용 |
엘라는 오늘도 “지하의 불”을 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건 욕한다 해서 꺼질 불이 아니었고, 어제와 다르지 않게 오늘을 사는 방법을 물었을 뿐이다.
길 모퉁이에서 프랭크(가상·자원 소방관)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라디오를 껐다.
라디오 뉴스는 늘 그렇듯 바람과 온도와 지하 가스 얘기만 했다.
불길의 시작을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기억한다.
1962년 5월 말, 시에서 하던 매립장 소각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묵은 탄층으로 스며들었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어떤 이는 1930년대부터 이어진 또 다른 갱도 불씨가 있었다고도 말한다(논쟁).
밤에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려고 트럭이 몰려왔다거나,
폐타이어가 장작처럼 타올랐다는 이야기 또한 남는다(전승).
도시 밖 오드 펠로스 묘지(Odd Fellows Cemetery) 아래로 뻗은 옛 갱도와 균열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의 길.
불은 그 길을 기억하는 듯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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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착 작업 중 드러난 지하 화염(1969)” / “Exposed underground fire during excavation (1969)” U.S. Dept. of the Interior v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처음엔 아무도 “지하 화재”를 믿지 않았다.
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처음 체감한 건 온도였다.
주유소 탱크 속 휘발유가 여름도 아닌데 미지근해졌다.
마을 공동 우물 뚜껑을 열면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그리고 1981년의 어느 날, 소년 토드 돔보스키(현지 소년)가 뒤마당에서 땅에 꺼졌다.
흙이 동그랗게 입을 벌린 구멍 속으로 소년은 허리까지 빨려 들어갔다.
위에서 보니 구덩이는 스모그로 가득했고, 바닥은 더 보이지 않았다.
사촌이 손을 뻗어 그를 끌어올렸고, 구덩이는 곧바로 더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날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불”의 모양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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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트럴리아 항공사진(1971, 화재 확산 초기)” / “Aerial photo of Centralia (1971, early spread)” 과거엔 평범한 탄광마을 USDA via PennPilot,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이후 이주가 시작되었다.
집마다 오렌지색 표식이 그려졌고, 이사 트럭이 계절처럼 드나들었다.
엘라는 그 무렵 남기로 했다.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장난감도, 우유도 산다.”
그녀의 가게는 곧 우편함이자 안내소이자 하루치 이야기의 집결지가 되었다.
프랭크는 오늘도 하수구 틈새에 가스 측정기를 넣는다.
수치가 높다면 그는 한 시간 동안 골목을 막고, 아래로 내려가는 도로는 한 차선으로 줄인다.
누가 그를 욕해도 상관없다.
그는 구멍을 본 적이 있고, 겨울에도 김이 오르는 균열을 맨손으로 만져 본 사람이다.
“이 마을의 소방은 물로 불을 끄는 일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믿게 하는 일이다.”
엽서처럼 흔해진 이야기도 있다.
언덕 위의 작은 우크라이나 가톨릭 교회는 예배가 멈추지 않았고,
지하의 불이 거기만은 피해 갔다고들 믿는다(전승).
일요일 아침, 종소리는 여느 도시처럼 울렸고, 공기는 김이 아닌 향내로 가득했다.
사제는 설교에서 불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신도들은 엘라의 가게에서 판 커피를 들고 내려오며 서로의 안부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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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위에 남은 마지막 성당 외관” /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Ukrainian Catholic Church on the hill” Wikimedia Commons, CC BY-SA (파일 페이지 표기) 위키미디어 공용 |
관광객도 왔다.
버려진 구간을 사람들은 그래피티 하이웨이(Graffiti Highway, 폐도에 방문객들이 남긴 그래피티)라고 불렀다.
젊은 이들은 연기에 손을 휘저어 사진을 찍었다.
어떤 이는 폐도에 이름을 쓰고, 어떤 이는 사랑을 쓰고, 어떤 이는 아무 말이나 썼다.
프랭크는 가끔 분필로 주의라고 적었다.
주의라는 낱말은 바람에 지워졌고, 낮은 열은 여전히 발목을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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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피티로 뒤덮인 폐쇄된 61번 도로 구간” / “Aerial view of Centralia’s ‘Graffiti Highway’”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마을의 늙은 광부 루이스(가상)는 술집 대신 엘라의 가게 카운터를 찾았다.
그는 몇 겹의 광맥 이름을 읊조리며 지도 없는 지도를 그렸다.
“불은 석탄을 먹고, 석탄은 공기와 친구야.”
그의 말은 단순했고, 정확했다.
프랭크가 불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뉴스를 떠올렸지만, 루이스가 말하면 손의 기억이 따라왔다.
마리안나(가상·초등교사)는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종이로 동굴을 접었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그녀는 종이 동굴을 바닥에 붙이고 손전등으로 빛을 비출 생각이었다.
“불은 이렇게 공기를 따라가.”
그리고 종이 동굴 한쪽에 파란 선을 그어 바람 길을 표시할 것이다.
그녀는 배운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살아본 것을 가르쳤다.
마을에는 썰도 많다.
지하 화재가 묘지 아래 뼈를 태웠다는 소문이 있었고(전승),
밤마다 김 사이로 푸른 불꽃이 떠다닌다고도 했다(전승).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겁이 만든 환상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두 번째 문장부터 조용해졌다.
두려움은 대개 목소리를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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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된 PA 61 폐도 상단 전경(2016)” / “Abandoned section of PA 61 (2016 overview)” Wikimedia Commons, Free Art License (FAL) 위키미디어 공용 |
이주가 정리된 뒤에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들이 있었다.
평생 살 수 있도록 남은 가구들이 허가를 받았고, 그들의 생은 일생권이라는 낱말로 보호되었다.
그 말은 법률 같았고, 동시에 기도 같았다.
엘라는 그 낱말이 마음에 들었다.
“평생.”
무언가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 쉬워지는 법이다.
마을 밖 세상은 언제나 이야기를 가져다 붙였다.
어떤 영화와 게임은 이곳의 이미지를 영감의 뼈대로 삼았고(전승),
기자들은 매서운 계절마다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늘 같은 질문을 했다.
“왜 떠나지 않으세요.”
엘라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사람은 떠날 수 있지만, 삶의 기억은 떠나질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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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TER 위성에서 본 센트럴리아와 주변 노천광” / “ASTER satellite view of Centralia and open-pit mines” NASA/JPL v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프랭크가 젊었을 때, 그는 한번 지하 갱도에 내려간 적이 있다.
당국의 허가를 받았고, 가스 마스크를 썼고, 줄에 몸을 묶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벽은 따뜻했다.
그는 그 벽에 손바닥을 대고, 부정맥처럼 두근거리는 열을 느꼈다.
그때 그는 알았다.
이 불은 우리가 끝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름의 비는 불을 끄지 못했고, 겨울의 눈도 꺼뜨리지 못했다.
불은 도시 아래 느리게 이사했고, 집들은 위에서 빨리 이사했다.
어느 날 도로가 휘어졌다.
어느 날 굴뚝이 사라졌다.
어느 날 지도에서 이름이 흐릿해졌다.
그러나 아침마다 엘라는 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우유를 사고, 누군가는 라이터를 샀다.
불은 아래에서 타고, 삶은 위에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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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반 손상으로 우회된 PA 61과 PA 42 교차부” / “PA 61 rerouted at PA 42 due to subsidence”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GFDL 위키미디어 공용 |
루이스는 손으로 석판을 누르듯 가게 카운터를 어루만졌다.
“사람들은 말하지. 불이 모든 걸 먹는다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불은 남기는 것도 있어.”
“뭘요.”
“우리가 서로한테 하는 말.”
그 말은 엘라의 가게에 오래 남았다.
마리안나는 마지막 학기 공책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이주의 반대말은 귀환이 아니다.”
“이주의 반대말은 지속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이들도 읽을 수 있는 글은 남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공책을 사물함에 넣고, 창문을 닫았다.
가끔 지진 같은 소리가 났다.
땅 아래 무언가가 꺼지고, 또 메워지고, 다시 길을 찾는 소리.
프랭크는 그 소리를 변명이라고 불렀다.
“불도 자기 변명이 있겠지.”
엘라는 웃었다.
“그 변명이 우리한테 유리한 날이 오면 좋겠네요.”
외부에서 온 기자가 프랭크에게 물었다.
“이 불은 언제 꺼지나요.”
프랭크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더 이상 묻지 않을 때.”
기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대답은 기사 제목에 쓰기 어려웠다.
밤이 오면 엘라는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린다.
김은 여전히 오르고, 별은 평소처럼 떠오른다.
불이 도시를 바꾸기 전에도 밤은 이렇게 왔다.
불이 도시를 바꾼 뒤에도 밤은 이렇게 온다.
그녀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내일 보자.”
그 인사에는 끝나지 않는 도시가 들어 있었다.
| “주민이 세운 메시지 보드(2013)” / “Locals’ handwritten sign (2013)”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
이 도시의 역사를 요약하라 하면 이렇게 적을 수 있다.
1962년의 불씨.
보이지 않는 온도.
아이를 삼키려던 구덩이.
오래 걸린 이주.
남은 집들의 일생권.
언덕 위의 종소리.
그리고 그래피티가 지워진 폐도.
하지만 요약은 언제나 살아본 사람의 하루를 놓친다.
센트럴리아의 하루는 지금도 계속되고, 지하의 불은 지금도 누군가의 대화를 데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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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화재·지반침하·유독가스 경고 표지판” / “Warning sign for underground mine fire, subsidence, toxic gase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마지막으로, 원인에 대해 덧붙인다.
이 도시 사람들은 자기들이 불을 불렀다고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대신 굴뚝의 두께와 갱도의 위치, 지반의 숨구멍과 바람의 방향을 기억한다.
기억은 처방이기도 하다.
그 처방의 이름은 주의와 서로의 안부다.
그게 이 도시가 남긴 제도보다 오래가는 장치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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