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Ada Blackjack Diary(다트머스 컬렉션)』, 미국 국립공원공단(NPS) 해설,
다트머스·앵커리지 뮤지엄 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설명합니다.
배는 노름 항구를 떠났다.
초가을의 바람이 갑판 밑으로 스며들었고, 상자 하나가 야옹 하고 울었다.
“빅토리아.”
선장이 건넨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줄여서 “빅(Vic)”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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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다 블랙잭, 1920년대 흑백 사진 (Ada Blackjack portrait, c.1920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US). 위키미디어 공용 |
에이다 블랙잭(이눕이어 여성·재봉사, Ada Blackjack)은 가방을 움켜쥐었다.
“한 달에 오십 달러.”
그 돈이면 아들 베넷(결핵 치료가 필요한 아이)을 다시 데려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베넷을 고아원에 맡긴 채 재봉과 가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영국계 탐험가 빌햘무르 스테판손(Vilhjalmur Stefansson)이
노름에 와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망설였지만 결국 계약서에 서명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요리와 바느질.
영어를 조금 하고 글을 읽을 수 있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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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랭겔 섬 원정대와 고양이 빅 (Wrangel Island Expedition team with cat ‘Vic’, 1921)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1921년 9월, 배는 랭겔 섬(Wrangel Island)으로 북상했다.
동료는 네 명의 젊은 남자였다.
앨런 크로퍼드(캐나다 출신, Allan Crawford).
프레드 마우러(북극 경험자, Fred Maurer).
밀턴 갤(미국인, Milton Galle).
로른 나이트(미국인, Lorne Knight).
그리고 행운의 상징처럼 끼어든 고양이 빅.
그들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여길 영국 땅으로 만들 거야.”
스테판손이 구상한 ‘정착해서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계획의 현장 요원이었다.
배가 떠난 뒤, 섬에는 다섯 사람과 한 마리만 남았다.
처음 한 해는 어찌저찌 굴러갔다.
에이다는 겨울옷을 수선했고, 남자들은 사냥과 관측을 했다.
천막은 바람이 새었고, 등유는 적었다.
그들은 다음 해 여름에 올 구호선(보급선)을 믿었다.
해빙이 열리면, 식량과 탄약과 새 천이 도착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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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작 켜기-모우러와 아마도 나이트 (Sawing firewood—Maurer and probably Knight) |
하지만 1922년 여름, 섬 바깥의 얼음이 길을 닫았다.
배는 오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눈을 덮었다.
사냥은 점점 실패했고, 통조림은 바닥을 보였다.
로른 나이트의 다리 근육이 이유 없이 아파 왔다.
잇몸이 부어올랐다.
비타민C가 사라진 몸이 보내는 신호, 괴혈병(스커비 scurvy)이다.
방 안에서 말다툼이 잦아졌다.
“사냥을 더 나가야 해.”
“바느질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나이트는 신경이 곤두섰고, 에이다는 그가 무서웠다.
그럼에도 에이다는 바늘을 놓지 않았다.
파열된 장화를 기워야 했고, 털옷의 솔기를 다시 박아야 했다.
한겨울엔 바느질이 곧 생존이었으니까.
1923년 1월 28일, 세 남자가 건너가기로 했다.
크로퍼드, 마우러, 갤.
결빙된 축치 해(Chukchi Sea)를 건너 시베리아까지 90마일을 가 도움을 청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에이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지 마세요.”
그녀의 말은 바람에 섞여 흩어졌다.
세 남자는 출발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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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른 나이트, 랭겔 섬 매머드 엄니 (Knight with a mammoth tusk found on Wrangel Island)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1925 발췌). 위키미디어 공용 |
남은 건 나이트와 에이다, 그리고 고양이 빅.
나이트는 더 이상 사냥을 나갈 수 없었다.
에이다는 사격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장총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첫날은 하얀 들쥐를 놓쳤고, 둘째 날엔 바닷가에서 물개 그림자만 바라보다 돌아왔다.
셋째 날, 그녀는 숨을 길게 들이켰다.
방아쇠가 떨림을 밀어냈다.
탕!
고기는 생명을 붙들어 주었다.
그녀는 여우 덫을 놓는 법을 익혔고, 살점과 지방을 나누어 말렸다.
바람막이 구조물을 더 높게 쌓고, 경계용 발판을 만들었다(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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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다 블랙잭, 물개 가죽 손질 (Ada Blackjack removing blubber from a sealski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1925 『The Adventure of Wrangel Island』 발췌). 위키미디어 공용 |
밤에는 기도를 했다.
낮에는 간호를 했다.
나이트의 피부는 누렇게 변했고, 관절은 굳어 갔다.
“물 좀 더.”
“불을 좀..”
에이다는 온기를 모아 그에게 덮었다.
때로 그는 화를 냈고, 때로 그는 울었다.
에이다는 그때마다 조용히 성냥을 켰다.
1923년 6월 23일, 나이트의 숨이 멎었다.
에이다는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침인지 밤인지 모르겠어.”
그녀는 일기에 날짜를 적었다.
“Mr. Knight died.”
손등에 번진 기름 냄새와 성냥 냄새가 섞여 방 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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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겔 섬 지형도 (Topographic map of Wrangel Island, SV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이제 섬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
에이다.
그리고 고양이 빅.
그녀는 잠을 줄였다.
덫을 확인하고, 장화를 말리고, 눈더미를 파서 냉장고를 만들었다.
뜯겨 나간 천막 솔기를 다시 꿰매고, 모피 조각을 이어 방풍 가리개를 만들었다.
거대한 고요 속에서, 작은 규칙이 그녀를 지켰다.
해가 뜨면 덫.
해가 지면 바느질.
바람이 세면 건물 주변에 눈벽을 쌓는다.
총은 항상 머리맡에 둔다.
고양이는 발치에 누웠다가 따라다녔다.
빅은 먹이를 먼저 찾지 않는 날이면, 그녀의 장화를 핥았다.
에이다는 웃었다.
“행운이 올거야.”
여름도, 행운도, 어쩌면 다시 올 수 있다고 믿었다.
8월의 바람이 달라졌다.
멀리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엔진 소리가 얼음을 긁었다.
구조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롤드 노이스(Harold Noice)가 지휘한 배 ‘도널드슨(Donaldson)’이었다.
두 해 가까운 시간이 지나, 섬엔 두 존재가 서 있었다.
에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고양이 빅.
사람들은 이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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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직후 ‘도널드슨’ 호 갑판의 에이다 블랙잭과 빅 (Ada Blackjack and Vic on the Donaldso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노름으로 돌아간 에이다에게는 기자들이 몰렸다.
“여성 로빈슨 크루소.”
“북극의 여왕.”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원한 건 명성이 아니라 베넷의 치료비였다.
그녀는 돈을 모아 아들을 시애틀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약속했던 월급 전액은 끝내 다 받지 못했고,
책과 기사로 돈을 번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논쟁).
시간이 더 흘렀다.
사람들은 랭겔 섬의 실패와 외교 소동, 스테판손의 과욕을 이야기했다.
에이다의 이야기는 종종 누락되었다.
하지만 기록은 분명히 말한다.
1921년 가을 상륙.
1923년 1월 결빙해 도보 원조 시도.
같은 해 6월 23일 나이트 사망.
8월 20일 구조.
그리고 고양이 빅의 이름.
계절과 날짜가 그녀의 의지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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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럴드 노이스, 북극 들것형 썰매와 함께 (Harold Noice with a sled, Arctic)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에이다는 영웅담을 싫어했다.
그녀는 키가 작고, 개썰매를 무서워했고, 총을 처음엔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하루 분량의 규칙을 지키면, 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무기는 모피 바늘, 미끼끈, 작은 화로, 그리고 “오늘도 한다”는 문장이었다.
역사가 붙인 이름이 있다.
“여성 로빈슨 크루소.”
에이다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 이름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엄마.”
베넷을 데려오기 위해 떠났고, 베넷을 위해 겨울을 건넜고, 베넷을 위해 육지로 돌아왔다.
그녀의 북극은 누군가의 아이 곁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이었다.
1930년대와 40년대, 그녀는 이름 없이 지냈다.
언론의 관심은 사라졌고, 그녀는 다시 재봉과 가사로 살아갔다.
1983년, 85세로 알래스카 팔머에서 생을 마쳤다.
묘비에는 이렇게 적혔다.
“Heroine - Wrangel Island Expedition.”
그 짧은 문장이, 길고 혹독했던 시간을 대신했다.
에이다 블랙잭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거대한 탐험의 실패 속에서도, 한 사람의 단호한 규칙과 배려가 기적 같은 생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생존이 가만히 말해 주는 것.
위업은 소리보다 조용한 습관에서 자란다는 것.
Ada Blackjack, an Iñupiat seamstress, joined a 1921 Wrangel Island expedition for $50 a month to reunite with her sick son.
When resupply failed, three men crossed the ice and vanished; the fourth, Lorne Knight, died of scurvy on June 23, 1923. Alone with the cat Vic, Ada learned to shoot, set traps, mend gear, and keep a strict routine until Harold Noice’s ship rescued her that August.
She gained little pay or credit, yet her quiet resolve for Bennett made her a “female Robinson Crusoe”—a title she never s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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