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12월 5일 새벽, 아소르스(Azores·포르투갈령 대서양 제도) 북동쪽 해상에 돛 하나가 머뭇거렸다.
브리간틴(범선의 한종류) 데이 그래샤(Dei Gratia·대서양 무역선)의 선장 데이비드 무어하우스(영국 상선 선장)는 망원경을 내렸다.
배 이름은 메리 셀레스트(Mary Celeste·미국 등록 브리간틴)였다.
돛은 일부만 걸려 있었고, 배는 바람에 밀려 옆구리로 기울 뿐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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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셀레스트, 표류 상태로 발견된 브리건틴(Brigantine)” / “Mary Celeste adrift, 19th-century engraving”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접현을 명령하자 파도 사이로 선체가 드러났다.
충돌 흔적은 없었다.
갑판엔 밧줄이 흐트러져 있었고, 선미에서 길게 끌린 로프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보트 거치대는 비어 있었다.
선원들이 승선했다.
창고에서 곡식 냄새가 났고, 선실 찬장엔 비상식량이 멀쩡했다.
난장판은 아니었고, 누군가 급히 떠났다는 정도의 흔적만이 남았다.
두어 개의 펌프는 분해되어 있었고, 선창에는 바닷물이 허벅지 남짓 차 있었다.
항해 일지(Logbook)는 마지막 장에서 멈춰 있었다.
날짜는 1872년 11월 25일.
기록 지점은 산타 마리아(Santa Maria·아소르스 동단 섬) 인근.
그 이후의 줄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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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조레스 제도 1821년 지도 — 산타 마리아 섬 포함” / “Map of the Azores (1821), incl. Santa Mar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화물창엔 술통들이 반듯이 묶여 있었다.
적재 목록에는 ‘공업용 알코올 1,701통’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통은 가볍게 흔들렸다.
목재의 종류가 다른 통 일부는 냄새가 더 강했다(논쟁·누설 가설).
눈에 띄게 사라진 것은 돛배 한 척과 바다 도구 몇 가지였다.
섹스탠트(내비게이션도구), 휴대용 항해시계, 소형 해도 몇 장.
선장의 침대에는 젖은 옷이 널려 있었고, 식탁 위의 그릇은 말라붙어 있었다.
칼로 위협하거나 싸운 흔적은 없었다.
무어하우스는 결정을 내렸다.
“선박을 분승해 지브롤터(Gibraltar·영국령)로 예인한다.”
자기 배의 인원을 나눠 메리 셀레스트의 키를 잡게 했다.
바람은 북서에서 불었다.
이 배의 원래 이름은 아마존(Amazon·1861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건조)이었다.
사고와 수리를 거쳐 미국 국적을 달고 개명한 것이 메리 셀레스트였다.
이 항차의 선장은 벤저민 스푸너 브릭스(Benjamin Spooner Briggs·미국 상선 선장)였다.
그는 아내 사라(Sarah)와 두 살배기 딸 소피아(Sophia Matilda)까지 배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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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저민 브릭스 선장” / “Captain Benjamin Brigg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뉴욕(New York·미국)에서 제노바(Genova·이탈리아)로 향하는 항차였다.
화물은 공업용 알코올, 선원은 7명, 가족 2명, 선장 1명.
총 10명이 출항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배 위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브롤터에 도착하자 해사 법정이 열렸다.
영국 측 검사 프레데릭 설리-플러드(식민지 법무관)는 미심쩍은 눈으로 선원들을 보았다.
“살인과 보험 사기 가능성.”
그는 가능성의 목록을 길게 적었고, 증거의 칸을 비워 두었다.
살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화물은 거의 온전했고, 돈과 귀품이 손대지 않은 채 있었다.
총포와 탄약의 기록도 일치했다.
배는 낡았으나 항해 불능은 아니었다.
법정은 결국 예인 공로를 인정했으나, 상금액은 인색했다.
비밀이 남은 사건에 후한 보상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분위기였다.
데이 그래샤 선원들은 불만을 삼켰다.
메리 셀레스트는 다시 시장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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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롤터 대법원 외관(구 법원)” / “Gibraltar Law Courts / Supreme Court exterior”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사람들은 왜, 라고 물었다.
대답은 여러 갈래였다.
‘폭풍에 휩쓸린 구명정이 밧줄이 끊어져 표류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가설.
‘알코올 증기가 폭발 조짐을 보이자 임시 대피했다’는 실무형 가설.
알코올의 냄새는 흔적이 되었다.
다공성 통에서 증기가 새면, 배 안은 불 붙기 쉬운 가스가 된다.
번개나 불똥이 두려웠을 것이다.
배를 짧은 밧줄로 끌며 거리 두기 대피를 했다면, 한번의 돌풍이면 밧줄은 끊어진다(논쟁).
‘바다 우물(waterspout·해상 소용돌이)’을 본 누군가가 공포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파도(rogue wave)’는 숫자로 남기 어려운 손실을 만들어 낸다.
‘지진해일(seaquake)’을 증명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가설은 바람과 물, 그리고 시간의 편을 든다(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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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리 섬 앞바다 물기둥(워터스파우트)” / “Waterspout off Capri, 1855”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범죄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왜 가져갔는가에 대한 답이 없다.
배 위에 남은 가치 있는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피는 없었다.
파괴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돛대는 서 있었고, 돛은 찢기지 않았다.
배는 누수와 낡음을 안은 채로도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예인 과정에서 따로 수리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 사이, 제노바의 부두는 조용했다.
사라와 소피아를 기다리던 편지는 돌아왔다.
선장 브릭스의 아들 아서(Arthur)는 집에 남아 있었다.
그는 오래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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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피아 브릭스, 메리 셀레스트의 어린 승객” / “Sophia Mary Briggs, child passenger”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 후, 이야기는 종이 위에서 커졌다.
1884년, 아서 코난 도일(영국 작가)이 이 사건을 모델로 한 소설을 썼다.
허구의 범죄, 허구의 구원, 허구의 고백.
그 이야기의 박진감은 사실보다 넓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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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난 도일의 메리 셀레스트 각색 삽화(1884)” / “Illustration to Conan Doyle’s tale (188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사람들은 “식탁에 따뜻한 음식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놓여 있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식 기록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그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았다.
메리 셀레스트는 배 자체로도 파란이 많았다.
처음 이름이 아마존이던 시절, 선장의 죽음과 충돌, 좌초가 있었다.
수리와 매각, 국적 변경, 개명.
바다는 오래된 나쁜 징조들을 잘 기억한다.
사건의 기술적 핵을 한 번 더 짚어 보자.
첫째, 선창의 물은 치명적 수준이 아니었다.
둘째, 펌프 분해는 수리 도중 중단의 흔적일 수 있다.
셋째, 구명정 결핍과 선미 로프는 ‘임시 이탈’ 가능성을 높인다.
가족의 흔적은 얇다.
사라의 수첩 몇 장, 소피아의 옷 조각, 선장의 성경.
연필로 눌러 쓴 숫자.
마지막으로 남은 선장의 필체는 아소르스의 바람을 기록했다.
배는 다시 팔려 새 항차를 올렸다.
이름은 그대로였고, 꼬리표는 ‘유령선(어원·ghost ship)’이었다.
해사 법정 기록은 먼지에 묻혔다.
사람들의 상상은 먼지를 털어내지 않았다.
사건의 여파는 바다를 떠나 문화로 스며들었다.
신문은 사건의 빈칸에 소설을 적었다.
잡지는 결말이 없는 이야기의 수요를 알았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정답 없음’을 쾌감으로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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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T 1873.3.16 후속 기사” / “NYT follow-up, March 16, 187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렇다면 오늘의 독자에게 무엇이 남는가.
배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남긴 배열은 있다.
자리에서 빠져나간 보트, 마지막 항해일지의 좌표, 해사 법정의 낮은 포상금, 빈 의자 하나.
이 배의 교훈은 낭만이 아니다.
바다는 작은 의심과 작은 실무가 생사를 갈라놓는다는 것.
증기에 불이 붙을까, 밧줄이 끊어질까, 파도가 한 번 더 올까.
모든 판단은 몇 분과 몇 미터의 단위로 내려진다.
브릭스와 가족, 선원들의 이름은 사라졌다.
누구도 그들이 바다에서 본 마지막 장면을 적지 못했다.
우리는 결과를 본다.
그리고 가능성의 목록을 늘어놓는다.
가설 중 하나를 장면으로 그려보자.
화물창의 알코올 증기가 쌓였다.
선장은 가족과 선원에게 구명정에 오르라 지시한다.
밧줄로 본선을 끌며 가스가 빠지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돌풍으로 바뀐다.
밧줄이 장력에 비명을 지른다.
한 번의 파도.
노끈이 끊어진다.
수평선이 멀어진다.
돛배는 방향을 잃는다.
본선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다른 바람을 탄다.
어둠이 내린다.
이 가설은 증명이 불가능하다(논쟁).
그러나 바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합은 비극의 문턱을 넘기에 충분하다.
바다는 재구성의 적이다.
메리 셀레스트의 난제는 결국 사람의 시간과 바람의 시간의 엇갈림에 있다.
사람은 회의와 진술로 하루를 보내고, 바람은 돛과 밧줄로 분을 바꾼다.
한쪽의 기록은 서랍에 남고, 한쪽의 흔적은 수평선에 산란한다.
이 사건은 그 둘의 속도 차를 증언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름을 부른다.
벤저민 브릭스.
사라.
소피아.
데이비드 무어하우스.
데이 그래샤의 승조원들.
그리고 기록 속 이름 없는 선원들.
그들의 하루가 이 배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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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건틴 데이 그라샤의 회화” / “Painting of brigantine Dei Gratia” Sippican Historical Society 소장 사진. sippican.pastperfectonline.com |
정리하면, 메리 셀레스트 사건의 뼈대는 이렇다.
1872년 11월 25일 마지막 항해일지.
12월 초 아소르스 북동 해상에서의 발견.
지브롤터 예인과 미결의 해사 심리.
해석은 나뉜다.
폭풍과 우연, 증기와 공포, 밧줄과 거리.
범죄와 음모를 끼워 넣을 수도 있지만, 물증은 없다.
가능성은 가능한 이유로만 남는다.
그리고 여파는 길다.
소설·영화·기사들이 사건을 덧칠했다.
몇몇 디테일은 사실로 오인되었다.
유령선이라는 말은 매력적이지만, 그 말은 답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조용하다.
무어하우스의 배가 떠난 뒤, 먼바다에 두 척의 키가 다른 길을 택한다.
하나는 항구를 향해 숫자와 서류로 귀환하고,
하나는 시간의 바깥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항해일지의 마지막 좌표를 본다.
그리고 빈칸을 본다.
이야기는 그 빈칸 위에 선다.
메리 셀레스트는 그 빈칸의 이름이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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