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고학 발굴 기록, 인류학 연구, 고양이 길들이기 관련 학술 자료 등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서사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소설체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고대의 어둠 속, 인간은 아직 작은 부족으로 흩어져 살았다.
사냥으로 하루를 버티고, 불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비추며 긴 밤을 견디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들판을 갈아 곡식을 거두는 법을 알게 되었다.
씨앗은 땅에 뿌려지고, 곡식은 수확되어 저장되었다.
창고라는 개념이 생기자, 새로운 적도 따라왔다.
쥐였다.
곡식은 사람에게 생명이었고, 쥐들에게는 잔치였다.
사람들은 쥐떼가 몰려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불을 피워도, 덫을 놓아도, 쥐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인간의 눈앞에 또 다른 사냥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렵한 발걸음, 번쩍이는 눈빛, 조용한 그림자처럼 다가온 존재.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야생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인간의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곡식 창고 주변에서 스스로 머물기를 택했다.
쥐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경계했다.
그들이 농작물을 해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쥐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 동물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곡식은 다 사라졌을 것이다.”
농부는 중얼거렸고, 옆에 있던 아이는 고양이에게 곡식 한 줌을 던졌다.
고양이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대신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쥐를 잡았다.
이것이 인간과 고양이 사이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강제로 묶은 계약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동맹.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7,500년 전 키프로스 섬에서 한 무덤을 발견했다.
사람의 유골 옆에는 조용히 누워 있는 작은 고양이의 뼈가 함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동반이 아니었다.
고양이가 이미 인간의 삶 속에서 가족이자 친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고양이의 성격은 독특했다.
개와 달리, 그들은 무리를 이루지 않았다.
홀로 사냥하고, 홀로 먹이를 차지하며, 홀로 살아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겁이 적고 인간 곁을 허락한 고양이들이 살아남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며, 점점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 선택되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집고양이로 이어졌다.
이집트는 고양이를 신의 반열에 올린 최초의 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바스테트(가정과 풍요의 여신)는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이 되었다.
고양이를 죽이는 것은 큰 죄였고, 심지어 인간보다 더 존중되기도 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고양이가 불 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온 가족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고양이는 단순한 쥐잡이꾼이 아니라 신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신성함은 곧 집착으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에 처해졌고, 고양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밀수되어 지중해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배 위에서 고양이는 최고의 동료였다.
쥐를 잡아 항해 중 식량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상인들은 고양이를 몰래 싣고 나갔고, 고양이는 배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은 고양이를 환영했다.
아테네의 상인도, 로마의 병사도, 고양이의 유용함을 알아차렸다.
쥐가 사라지고, 곡식이 지켜졌다.
고양이는 신에서 동반자로, 동반자에서 필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먼 북쪽, 바다를 누비던 바이킹들도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다.
거친 파도 위의 배에서 고양이는 보물과 식량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바이킹들은 고양이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고, 신들의 전설에도 고양이가 등장했다.
프레이야(사랑과 전쟁의 여신)는 두 마리 거대한 고양이가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닌다고 믿어졌다.
바다 위의 사나운 전사들이지만, 그들의 무릎 위에는 작은 고양이가 웅크려 있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고양이가 오해받았다.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동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박해했고, 불길에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양이의 부재는 더 큰 재앙을 불러왔다.
흑사병이었다.
쥐와 벼룩이 퍼뜨린 병은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양이가 없어진 마을일수록 피해는 더 컸다.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고양이가 인간을 구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고양이는 환영받았다.
농부들은 곡식을 지켜주는 동반자로,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을 막아주는 수호자로 고양이를 받아들였다.
중세의 그림과 문학 속에는 다시금 고양이가 등장했다.
그들은 마녀의 그림자가 아니라, 집과 가족의 수호자였다.
동양으로 전해진 고양이는 또 다른 상징을 얻었다.
중국에서는 고양이가 부와 안녕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밤에 눈이 빛나는 고양이는 사악한 영혼을 쫓는다고 믿었다.
일본에서는 마네키네코가 탄생했다.
한 발을 들어 손짓하는 고양이는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졌고, 상점마다 고양이 인형을 두게 되었다.
고양이는 신성에서 행운으로,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변신하며 문화를 넘어갔다.
근대 유럽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17세기와 18세기, 귀족과 부유층은 고양이를 단순한 쥐잡이가 아니라 애완동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살롱의 여성들은 무릎 위에 고양이를 올려두고 대화를 나눴고,
예술가들은 고양이를 그들의 그림에 담았다.
고양이는 점점 인간의 삶 속에서 감정적인 동반자의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단순한 기능의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애정을 나누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고양이의 이미지를 다시 바꿔놓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과 어두운 도시의 골목길, 그곳에도 고양이가 있었다.
신문과 잡지는 고양이를 가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동물로 묘사했고,
빅토리아 시대의 초상화에는 고양이와 아이가 함께 등장했다.
고양이는 도시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존재가 되었고, 인간의 곁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 시기부터 고양이는 본격적으로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오늘날 고양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 중 하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개와 다르다.
개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충성심을 드러낸다.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인간 곁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고양이는 인간이 길들인 것이 아니라, 고양이 스스로 길들이기를 택한 것이다.
창가에서 햇살을 즐기며 졸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속에는
수천 년 전 곡식 창고 옆에서 쥐를 잡던 고양이의 그림자가 겹친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날렵하고, 여전히 고집스럽고, 여전히 신비롭다.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지배가 아닌 공존이다.
그 선택이야말로, 고양이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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