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Principia』, 『Opticks』, 왕립학회 서간, 웨스트폴 전기 등 주요 기록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서사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드라마와 긴장감을 살린 소설체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겨울 바람이 볏짚 지붕을 스쳤다.
린컨셔의 작은 마을, 울스트롭.
너무 일찍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걱정했다.
“하룻밤도 못 넘길지 몰라.”
아이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
그는 살아남았다.
작고 약했지만, 오래 버텼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어린 뉴턴은 외가에서 자랐다.
고독은 그에게 오래 붙어 있었다.
외롭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관찰했고, 만들었고, 적었다.
그는 작은 풍차를 만들었다.
빛과 그림자의 길이를 재서 해시계를 깎았다.
아이들은 뛰었고, 그는 멈춰 섰다.
“왜 저건 저렇게 움직일까.”
그의 질문은 짧았고, 집요했다.
케임브리지로 갔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돌바닥은 차가웠다.
데카르트와 케플러, 갈릴레오의 문장을 훑었다.
스승 아이작 배로우의 강의실 뒤쪽에서 조용히 필기했다.
배운 것을 흉내 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이 많은 사실을 하나의 법칙으로 묶을 수는 없을까.”
그의 야망은 과묵했고, 끈질겼다.
흑사병이 퍼졌다.
대학은 문을 닫았다.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움직였다.
그는 창가에 프리즘을 들었다.
하얀 빛이 유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색으로 갈라졌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그는 중얼거렸다.
“흰빛은 단순한 게 아니었구나.”
빛의 본성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빛은 원래 여러 색의 합이었다.
유리가 그 사실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빛을 모았다.
여러 색을 합치면 흰빛이 되었다.
분해와 합성.
그는 반복했다.
실험은 번복할수록 진짜가 드러난다.
정원에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사과가 떨어졌다.
그의 머릿속에도 질문이 떨어졌다.
“왜 사과는 떨어질까.”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땅의 낙하와 하늘의 공전은 전혀 다른가.
아니면 같은 원리인가.
그는 종이를 펼쳤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먼저 원의 운동을 생각했다.
원이려면 중심을 향한 당김이 있어야 한다.
그 당김이 없으면 물체는 곧게 나아간다.
원은 직선과 다르다.
원을 유지하려면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우리는 오늘 ‘구심력’이라 부른다.
원운동에는 간단한 관계가 숨어 있다.
속도를 제곱하고, 반지름으로 나누면, 중심을 향한 가속이 나온다.
a = v² / r.
그는 이 짧은 문장에서 큰 확신을 얻었다.
이제 달을 보자.
달이 지구 둘레를 돌려면, 달도 중심을 향해 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은 직선으로 멀어진다.
달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사실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옆으로도 충분히 빨리 움직여서, 지구가 휘어지는 만큼 계속 빗겨간다.
그 결과, 떨어지면서 영원히 돈다.
이것이 공전의 비밀이다.
그는 ‘달 시험’을 했다.
지구 표면의 물체는 중력 때문에 g만큼 떨어진다.
달은 얼마나 떨어지는가.
달의 거리와 주기를 숫자로 넣었다.
달은 약 27.3일마다 한 바퀴 돈다.
달까지의 거리는 지구 반지름의 약 60배다.
그는 계산했다.
달의 중심가속은 지상 중력의 약 1/3600쯤 된다.
왜 1/3600일까.
거리의 제곱이 60²이기 때문이다.
이 비율은 중요한 힌트였다.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지상에서의 중력과 달의 중심가속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달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지상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와 같은 법칙으로 설명된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처음엔 수치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멈췄다.
지구 반지름 값이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측정이 나왔다.
보다 정확한 지구 크기를 넣자, 계산은 들어맞았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맞아. 같은 법칙이 지상과 천상을 함께 지배한다.”
그는 더 일반적인 그림을 그렸다.
만약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행성의 궤도는 어떤 모양이 될까.
케플러는 관측으로 타원을 말했다.
뉴턴은 원리로 타원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기하학으로 접근했다.
면적법칙을 먼저 보였다.
태양을 향한 힘이 작용하면,
행성은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쓸어 나간다.
이것이 케플러의 제2법칙이다.
그는 이어서 inverse-square, 즉 1/r² 법칙이 타원 궤도를 낳는다는 사실을 엄격하게 보였다.
반대로, 타원과 면적법칙이 성립하면 중심력은 1/r²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관측의 문장들이 원리의 문장으로 변했다.
과학은 그 순간 성숙한다.
1684년 여름, 에드먼드 핼리가 케임브리지로 찾아왔다.
그는 물었다.
“만약 힘이 1/r²이라면, 궤도는 무엇이 되나.”
뉴턴은 조용히 대답했다.
“타원.”
핼리는 놀랐다.
“어떻게 아는가.”
“오래전에 증명했네. 노트를 찾아보지.”
그 노트는 금방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뉴턴은 다시 썼다.
더 정확하게, 더 완전하게.
짧은 논문이 나왔다.
〈De motu〉.
핼리는 계속 밀었다.
“책으로 내시게.”
뉴턴은 더 큰 작업에 들어갔다.
정의와 공리.
운동의 법칙.
기하학의 도구.
행성의 궤도.
혜성의 길.
조수의 원인.
세계의 체계.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순수한 운동의 수학.
둘째, 저항이 있는 매질에서의 운동.
셋째, 천체와 세계의 체계.
사람들은 그 책으로 하늘을 읽었다.
지상의 포탄 궤도도, 하늘의 행성 궤도도, 같은 문법으로 읽었다.
간단한 세 법칙이 등뼈였다.
관성.
가속과 힘의 비례.
작용과 반작용.
세 문장으로 세계가 정리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
만유인력.
“모든 질량은 서로를 당긴다.
그 힘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간결했고, 단단했다.
그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Hypotheses non fingo.”
나는 가설을 꾸며내지 않는다.
힘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힘이 실제로 작용한다는 증거만 내놓았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었다.
증거가 없는 분쟁을 피하려는 절제였다.
그 침묵은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였다.
나중에 맥스웰과 아인슈타인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제 미적분을 말하자.
뉴턴은 ‘유율’이라는 이름을 썼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양을 ‘유체(流體)’처럼 보았다.
변하는 양 그 자체를 ‘유체(Fluent)’,
그 변화의 빠르기를 ‘유율(Fluxion)’이라 불렀다.
오늘의 말로 하면,
함수와 도함수다.
움직임을 수로 잡는 기술이다.
그는 곡선의 접선을 구하는 문제에 유율을 썼다.
곡선은 점마다 기울기가 다르다.
그 기울기를 순간의 변화율로 본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량을 비교한다.
그렇게 미분이 나온다.
면적을 구하는 문제도 다뤘다.
곡선 아래의 넓이는 작은 직사각형을 무수히 더하는 일이다.
그 더하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기법이 적분이다.
미분과 적분은 서로 반대편 문이다.
한쪽을 열면 다른 쪽이 닫히고,
다른 쪽을 열면 이쪽이 닫힌다.
이 관계가 계산을 강력하게 만든다.
뉴턴은 급수도 다루었다.
복잡한 함수를 간단한 항들의 무한합으로 바꿨다.
그는 이항정리를 분수 지수로까지 확장했다.
(1 + x)^n을 n이 정수가 아닐 때도 전개했다.
이 덕분에 많은 함수가 “다항식의 무한합”처럼 취급되었다.
계산이 쉬워졌다.
곡선의 길이, 면적, 부피.
모두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변하는 양의 법칙을 물리 문제에 적용했다.
속도가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하는지.
힘이 작용하면 위치가 어떻게 바뀌는지.
행성의 가속이 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유율의 언어로 적고 풀었다.
그래서 행성의 길이 방정식이 나왔고,
그래서 달의 가속이 지상의 중력과 이어졌다.
라이프니츠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산에 올랐다.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작은 양 ‘dx, dy’를 쓰는 기호 체계.
미분을 분수처럼 다루기 쉬웠다.
둘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기호는 달랐고, 문제는 같았다.
유럽의 과학은 결국 라이프니츠 표기를 더 편하게 썼다.
뉴턴의 업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같은 혁명을 다른 문장으로 기록했다.
광학으로 돌아가자.
그는 빛을 분해하고, 다시 합쳤다.
색은 빛 안에 있었다.
유리는 그 사실을 드러냈다.
굴절망원경에는 색수차가 생겼다.
그는 반사망원경을 만들었다.
거울은 색을 찢지 않는다.
작지만 힘센 도구가 나왔다.
왕립학회가 환호했다.
로버트 후크와의 논쟁은 거칠었다.
후크는 물결을, 뉴턴은 입자를 믿었다.
누가 옳았는가.
둘 다 부분적으로 옳았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후대의 과학이 두 관점을 화해시켰다.
그는 현실 업무도 맡았다.
조폐국에서 위조를 막았다.
정확함과 단호함.
그의 성격은 숫자처럼 명확했다.
왕립학회 회장이 되었고, 기사 작위를 받았다.
명예는 그의 집중을 흐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계산했고, 의심했고, 증명했다.
금속과 성서의 비밀에 매혹된 시간도 있었다.
연금술과 연대기.
오늘의 눈으로 보면 비과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 세계는 하나였다.
물질의 변환과 하늘의 법칙은 모두 “질서”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는 모든 얼굴에 같은 잣대를 대고 싶었다.
관측. 추론. 검증.
1727년, 그는 눈을 감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그를 품었다.
사람들은 그의 자를 들고 계속 쟀다.
하늘을 쟀고, 철을 쟀고, 돈을 쟀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쟀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이제 만유인력을 조금 더 깊게 보자.
핵심은 아주 단순하다.
두 질량 사이에는 항상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질량이 클수록 힘이 크다.
거리가 멀수록 힘이 빠르게 약해진다.
정확히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이 규칙 하나로, 수많은 현상이 한꺼번에 설명된다.
행성의 타원 궤도.
혜성의 쏜살 같은 경로.
달의 위상과 지구의 조석.
지구가 완벽한 구가 아니라 약간 납작한 이유.
시계추의 진동 변수.
산 정상의 약한 무게.
모두 같은 법칙의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 점에 질량이 모여 있다고 치자.
그 질량과 거리 r만큼 떨어진 곳의 물체를 생각한다.
두 물체는 서로를 잡아당긴다.
그 힘은 서로 반대 방향.
크기는 같다.
작용과 반작용이 여기에도 선다.
힘이 있으면 가속이 생긴다.
가속은 속도의 변화를 낳는다.
속도의 변화는 궤도의 변화를 낳는다.
이 사슬이 우주를 움직인다.
그 사슬의 첫 고리가 만유인력이다.
그는 구대칭인 물체(예: 태양, 지구)는
마치 질량이 중심에 모여 있는 것처럼 작용한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덕분에 복잡한 별의 질량 분포가 간단해졌다.
계산은 고되고, 결론은 단순해졌다.
단순함은 우연이 아니다.
좋은 이론은 간결하다.
미적분을 더 보자.
그는 변화를 시간의 관점에서 보았다.
위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속도는 위치의 시간에 대한 변화율이다.
가속은 속도의 변화율이다.
힘은 질량에 가속을 곱한 것이다.
이 네 문장은 하나의 사다리다.
한 계단씩 올라가면 문제의 핵이 보인다.
한 계단씩 내려오면 계산의 손잡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y = x³의 접선을 구한다고 하자.
미적분을 배우는 우리에게는 쉬운 문제다.
뉴턴에게는 새로운 언어의 실험장이었다.
x가 조금 변할 때 y는 얼마나 변하는가.
변화량의 비를 극한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순간의 기울기가 남는다.
그 결과가 3x²이다.
이 단순한 계산이 거대한 운동 방정식의 알파벳이 된다.
복잡한 궤도도 이 알파벳으로 쓴다.
힘을 넣고, 조건을 주고, 적분한다.
그러면 경로가 나온다.
또 하나.
곡선 아래의 면적을 구하자.
작은 가로막대를 촘촘히 놓고 더한다.
막대의 폭을 0으로 보내면 남는 값이 있다.
그 값이 적분이다.
미분과 적분은 서로의 거울이다.
한쪽으로 풀리지 않던 문제가
거울을 통해 다른 쪽에서 풀린다.
이 대칭이 미적분을 강력하게 한다.
그는 수를 무한히 더하는 법에도 능숙했다.
이항정리의 확장은 작은 x에서 큰 힘을 냈다.
복잡한 함수도 작은 항들의 합으로 바꾸면
미분과 적분을 쉽게 한다.
그 덕분에 원주율, 삼각함수, 로그의 관계가 풀렸다.
우리는 지금도 그 길을 걷는다.
공학과 금융, 물리와 생물, AI와 통계.
모두 미적분의 길 위에 있다.
그의 증명 방식은 현대의 벡터와 미분방정식과 다르다.
그는 기하학을 선호했다.
선을 그리고, 넓이를 비교하고, 극한을 쓰되 이름 붙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변함이 없다.
표현은 바뀌어도 진실은 같다.
좋은 과학은 표기법을 넘어선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힘은 어떻게 전달되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말할 수 없다.”
그 대답은 정직했다.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그 용기가 과학을 지킨다.
나중에 전기와 자기의 장이 나왔고,
그 다음에 시공간의 곡률이 나왔다.
뉴턴의 틀은 더 넓은 틀에 포개졌다.
그러나 옛 틀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
항상성의 길이가 다를 뿐이다.
뉴턴은 여전히 지구 궤도에서 정확하다.
로켓의 초기 설계에서도, GPS의 보정 전 단계에서도.
현실은 여러 이론이 이어 붙인 지도 위에 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대신 실험했고, 계산했고, 다시 실험했다.
명예가 찾아왔고, 논쟁도 따라왔다.
후크와의 다툼.
라이프니츠와의 분쟁.
왕립학회의 소란.
그는 종종 지쳤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실험대의 유리와, 계산지의 잉크가 마르지 않게 했다.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다.
그러나 유산은 조용하지 않았다.
그의 법칙은 산업혁명의 기계에 생명을 주었고,
항해의 별자리와 금속의 무게를 안정시켰다.
현대의 위성은 그의 방정식 위를 돈다.
현대의 공장은 그의 미적분으로 흐른다.
현대의 렌즈는 그의 광학으로 갈린다.
그의 자는 아직도 세계를 잰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낮췄다.
“나는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 말은 겸손이었고, 선언이었다.
모르는 바다가 크다는 고백.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약속.
우리는 오늘도 창가에 작은 프리즘을 놓는다.
빛이 갈라진다.
색은 나타난다.
사과는 떨어지고, 달은 떨어지지 않는다.
숫자는 문장이 되고, 문장은 세계가 된다.
그가 남긴 세 문장과 한 줄의 법칙이
아직도 우리를 움직인다.
조용히. 그러나 멀리.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인물이라, 이번에는 분량이 다소 긴 글을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 전체를 다루기에는 부족하지만, 간략하게나마 업적을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작 뉴턴의 자세한 일대기나 업적은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처럼 깊은 존경심을 느끼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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