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Photo] 고립이 주는 예술, 청라를 덮은 화이트아웃의 기록

 



요 며칠 전. 자고 일어났더니 집 근처 앞마당(이라고 쓰고 청라 오피스텔 단지)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해상도가 갑자기 480p 정도로 떡락(?)했습니다.


이 사진, 보정 아닙니다. 리얼 생존 사진입니다. 

창밖을 봤는데 제가 사는 오피스텔 외벽이 갑자기 거대한 테트리스 블록처럼 보이더군요. 

평소엔 "와, 현대적이다" 싶던 건물 디자인이 눈발이랑 섞이니까 무슨 고대 유적 같기도 하고, 그래픽 깨진 게임 화면 같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눈송이가 아니라, 어쩌면 신선한 데이터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공상과학적인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물론 뒤엔 '차 밀리겠다'는 생각이 지배했습니다.)


사진 속 하얀 점들 보이시죠? 

이게 바로 카메라 좀 만진다는 사람들만 안다는 '보케(Bokeh: 빛망울)' 현상입니다. 

사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초점이 어디 잡힌 건지도 모르겠는데, 결과물은 무슨 영화 인터스텔라의 5차원 공간처럼 나왔네요.

역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폭설'입니다. 

렌즈로 보면 세상 낭만적인데, 막상 저 안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 하니 벌써 무릎이 시려오는 건 기분 탓이겠죠?


눈이 이 정도로 오면 청라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과 다름없습니다. 

평소엔 그토록 바쁘게 돌아가던 신도시가 갑자기 '에라 모르겠다' 모드로 들어가는 거죠.

배달 오토바이 소리도 안 들리고, 층간 소음도 이 눈의 장막이 다 먹어치운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강제 평화주의자가 되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며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집에서 일하는 것이 최고다!'라는 위험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현실은 제설 삽을 들어야 할 판이지만, 일단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큼은 저도 청라의 예술가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날은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그냥 제 블로그에서 이 사진 보면서 대리 만족하세요. 

그게 여러분의 신발과 멘탈을 지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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