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부인과 고구려 건국 신화: 주몽의 어머니가 지닌 역사적 의미 (Lady Yuhwa)



유화부인: 고구려 건국 서사의 설계자이자 신성한 지모신의 역사적·상징적 재조명


1. 신격의 세속화와 왕권 신성화를 매개하는 역사화의 주체

유화부인(柳花夫人)은 한국 고대 건국 신화에서 단순한 ‘국모’ 혹은 ‘조력자’의 범주를 넘어서는 독보적인 위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천신(天神)인 해모수와 수신(水神)인 하백을 잇는 신성한 결합의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신의 세계에 머물던 혈통을 지상의 인간 역사로 끌어내린 ‘역사화의 주체’입니다.

그녀의 서사는 ‘신격의 세속화’와 ‘왕권의 신성화’라는 이중적 과정을 통해 고구려 왕실에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하백의 딸이자 해모수의 연인, 그리고 주몽의 어머니라는 삼중적 정체성은 천손(天孫)의 권위와 수신(水神)의 생명력이 그녀를 통해 지상의 권력으로 치환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본 포스팅은 사료에 근거하여 유화부인을 고구려 건국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실질적 설계자로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동명왕릉에 그려진 유화부인 벽화.


2. 신화적 기원: 천손과 수신 세력의 결합과 시련의 서사

하백(수신)과 해모수(천제자)의 만남은 고구려 지배 세력이 북방의 천신 신앙과 압록강 유역의 토착 수신 숭배 집단을 통합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알레고리입니다.


2.1 웅심연의 조우와 둔갑술 대결의 정치학

유화는 동생 훤화, 위화와 함께 압록강 가 웅심연(熊心淵)에서 해모수와 만납니다. 

해모수는 구리로 만든 집과 화려한 술상으로 그녀들을 유혹하였고, 유화는 이 결합을 능동적으로 수용합니다. 

이에 분노한 하백은 해모수의 신성을 시험하기 위해 변신 대결을 제안합니다.


• 잉어 대 수달: 수중의 강자인 잉어(하백)를 포식자인 수달(해모수)이 제압함.

• 꿩 대 매: 하늘을 나는 꿩(하백)을 맹금류인 매(해모수)가 가로챔.

• 사슴 대 늑대: 지상의 사슴(하백)을 추격자인 늑대(해모수)가 굴복시킴.


이 대결은 고구려 부계 혈통이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영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학술적으로 정당화하는 장치입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2.2 가죽 자루(革囊) 탈출과 비극적 숭고미

하백은 해모수를 사위로 인정하면서도 딸을 버릴까 염려하여, 두 사람을 가죽 자루에 넣어 승천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해모수는 유화의 금비녀(金釵)로 자루를 찢고 홀로 도망칩니다. 

이 결별 장면은 유화가 ‘버림받은 여인’이라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몽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비극적 숭고미를 형성하는 결정적 대목입니다.


2.3 형벌과 유배, 그리고 강력부추(强力扶鄒)와의 만남

하백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유화의 입술을 석 자(약 90.9cm)나 늘리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 뒤 우발수로 유배 보냅니다. 

이는 신성한 신격에서 추방되어 인간계로 편입되는 ‘신격의 변모’이자 침묵을 강요받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이후 금와왕의 어부인 강력부추(强力扶鄒)가 쇠그물로 그녀를 건져내었고, 늘어진 입술을 세 번 가위로 자른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며 금와왕과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3. 기이한 탄생과 양육: 전략적 자산 선점과 건국의 설계

유화부인이 부여 궁궐에서 겪는 주몽의 탄생과 양육 과정은 치밀한 생존 전략과 미래 권력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3.1 난생(卵生)과 감생(感生)의 결합

유화가 방에 갇혔을 때 햇빛이 그녀를 따라다니며 비추었고, 그 결과 그녀는 왼쪽 겨드랑이로 5되(닷되) 크기의 알을 낳았습니다. 

금와왕이 알을 폐기하려 했으나 돼지, 소, 말, 새들이 이를 보호한 것은 주몽의 신성함이 온 우주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입체적으로 증명합니다.


3.2 미래 자산 선점: 준마 전략의 재해석

주몽의 탈출 과정에서 보여준 유화의 지혜는 단순한 책략이 아닙니다. 

그녀는 주몽에게 명마를 식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혀뿌리에 바늘을 꽂아 말을 여위게 만듦으로써 금와왕이 그 말을 주몽에게 하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는 부여 왕실 내에서 정보 우위를 점하고, 장차 건국에 필요한 ‘핵심 전략 자산’을 미리 선점하는 고도의 정치적 감각입니다. 

유화부인은 아들에게 단순히 도망을 권유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실질적 설계자(Architect)로서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4. 고구려의 시조모: 곡물의 신이자 호국의 수신(隧神)

유화부인은 사후 고구려에서 농경의 풍요와 국가의 안녕을 보장하는 최상위 신격으로 숭배되었습니다.


4.1 농경 정착의 종교적 정당성

주몽이 이별의 슬픔으로 보리 씨앗을 잃어버리자, 유화부인은 비둘기 한 쌍을 보내 이를 전달합니다.

이는 유화부인이 고구려 사회에 부여계의 선진 농경 기술을 이식한 ‘곡물의 신’임을 상징합니다. 

보리 종자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고구려라는 새로운 국가가 정착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4.2 수신(隧神)과 동맹(東盟) 제례

유화부인은 고구려에서 수신(隧神), 즉 ‘동굴의 신’으로 불리며 숭배받았습니다. 

고구려의 국가 제천 행사인 동맹(東盟) 때, 국왕은 직접 고구려 동쪽의 수혈(隧穴, 동굴)에 가서 유화부인을 상징하는 목상을 모셔와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는 그녀가 국가의 생산성(농경)뿐만 아니라, 국가의 영속성과 국방을 수호하는 토착 지모신(Earth Mother)으로 완벽히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민속학적 증거입니다.


5. 사료 비교 분석: 기록 속의 유화와 상징적 이름 분석

유화부인에 대한 사료적 기록은 고구려가 지배 세력의 계보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한 정교한 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5.1 사료별 비교 분석 테이블

항목
『삼국사기』 /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 (구삼국사 인용)
「광개토태왕비」
명칭 및 혈통
유화(柳花), 하백의 딸
하백의 장녀, 훤화·위화의 언니
하백녀(河伯女) 혹은 하백손(河伯孫)
주요 사건
햇빛 감응, 주몽 탄생과 양육
둔갑 대결, 가죽 자루, 보리 전달
천제의 아들이자 하백의 외손(주몽)
신통력의 성격
감생(感生)의 주체
주술적 조력 및 농경 전파
정통성 부여의 근거(하백의 손)


5.2 ‘유화(柳花)’의 어원과 상징적 함의

‘버들꽃’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학계에서는 유화의 ‘화(花)’가 고대어에서 아내나 여자를 뜻하는 ‘갓(gat/wife)’의 음차일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즉, 유화는 특정 집단의 상징적 여성 혹은 ‘버들 가시나(여인)’를 의미하며, 이는 그녀가 압록강 유역에서 버드나무를 토템으로 삼던 수신 숭배 집단의 대표자였음을 시사합니다. 

광개토태왕비에서 주몽이 스스로를 "하백의 외손"이라 칭한 것은 이 수신 세력의 지지가 고구려 왕권의 정당성 확보에 필수적이었음을 방증합니다.


6. 길을 여는 선구자, 여성적 리더십의 원형

유화부인은 고구려라는 거대한 제국의 뿌리이자,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지혜롭고 강인한 여성상의 원형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그녀는 단순히 아들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희생적 어머니’에 머물지 않습니다. 

드라마 <주몽>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그녀를 냉철한 정치적 조력자로 묘사하는 것은, 유화부인이 지닌 ‘길을 여는 선구자’로서의 리더십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역사를 설계했으며, 시련 속에서도 미래의 자산을 준비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화부인은 천상과 지상, 물과 대륙을 잇는 신성한 연결고리이며, 한국 신화가 보유한 가장 능동적이고 지적인 ‘국모의 초상’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과 전략적 지혜는 고구려 700년 역사의 정신적 지주로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글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광개토태왕비문 등 주요 사료를 바탕으로 유화부인의 서사를 분석하고, 고구려 건국 신화 속에서 그녀가 수행한 역사적·상징적 역할을 재조명한 글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일부 해석과 상징 분석은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해석이며, 단일한 정설이라기보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어 온 관점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신화적 표현과 정치적 의미 해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사적으로 재구성된 부분이 있으며, 향후 새로운 사료나 연구에 따라 보완·수정될 수 있습니다.

내용 중 사실 관계의 오류, 해석의 보완점, 추가 자료 제안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화부인의 역할과 고구려 건국 신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토론 역시 환영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는 고대사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여가 됩니다.


Yuhwa, the mother of Jumong, occupies a central position in the founding narrative of Goguryeo. 

More than a passive maternal figure, she serves as the symbolic mediator between heaven and earth, uniting the celestial lineage of Hae Mosu with the river deity Habaek.

Through exile, suffering, and perseverance, Yuhwa transforms divine ancestry into human history, enabling royal legitimacy.

Her story explains Jumong’s miraculous birth, survival, and escape, emphasizing strategic foresight and resilience. 

After death, Yuhwa was worshipped as a goddess of water, fertility, and protection, integrated into state rituals such as the Dongmaeng ceremony. 

Across historical records, she embodies both mythic origin and political symbolism, representing the foundational role of female leadership in Goguryeo’s sacred kingship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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