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을 폭군으로 만든 설계자 임사홍, 무오사화에서 갑자사화까지 피의 연대기 (Im Sa-hong)


조선을 피로 연출한 악마적 천재: 임사홍과 연산군의 20년 복수극


[제1부] 몰락한 천재의 분노

1장. 명문가의 수치: 성종의 총애와 소인(小人)의 낙인

1. 벚꽃 떨어지는 대궐의 봄, 그리고 몰락

1478년(성종 9년) 봄, 한양의 공기는 달콤했다. 

하지만 임사홍(任士洪)에게 그 봄바람은 살을 에는 칼날보다 차가웠다. 

그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임원준이었고, 자신은 임금의 왕실 인척이자 사돈이었다.


성종은 그를 아꼈다. 

임사홍은 문장에 능했고, 예술적 식견이 높았으며, 왕의 마음을 읽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왕의 곁에서 화답시를 읊고 정사를 논할 때, 그는 조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독(毒)이 되어 돌아왔다.


성종은 어느 날 도성에 가뭄이 들자 신하들에게 물었다. 

"하늘이 노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젊고 서슬 퍼런 사림(士林: 학자 관료)들이 일제히 한 남자를 가리켰다. 

"임사홍, 바로 저 소인배 때문입니다!"


성종이 가뭄의 해결책을 묻자, 임사홍은 왕을 안심시키려 '우연한 천재(天災)'라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림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에게 임사홍의 위로는 아첨이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가뭄보다 더 큰 재앙이었다. 

대간들은 일제히 붓을 들어 그를 '소인'이라 낙인찍으며 몰아세웠다.


2. "소인(小人)이라니, 내가 소인이라니"

사림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임사홍이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어지럽히며, 아첨으로 군주의 눈을 가린다고 비난했다.

조선은 바야흐로 도덕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림의 시대였다. 

그들에게 임사홍처럼 실리적이고 수완 좋은 인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정치적 불순물'이었다.


"임사홍은 간사한 꾀로 왕을 현혹하고 권력을 탐하는 소인 중의 소인입니다!" 

대간(臺諫: 언론 담당 관청)의 탄핵이 빗발쳤다. 

성종은 처음엔 그를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신하가 대궐 뜰에 엎드려 통곡하며 사직을 담보로 압박하자, 왕조차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어명이 떨어졌다. 

"임사홍을 외직으로 내치고, 도성 출입을 금한다." 

그것은 단순한 좌천이 아니었다. 

'소인'이라는 낙인은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대부 사회에서 사회적 사형 선고와 같았다.


3. 부러진 붓, 꺾이지 않은 증오

도성을 떠나던 날, 임사홍은 멀리 보이는 근정전의 지붕을 돌아보았다. 

어제까지 그에게 고개를 숙이던 동료들이 이제는 그가 지나가는 길에 침을 뱉었다. 

가문의 영광은 순식간에 수치가 되었고, 아들들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임사홍은 나직이 읊조렸다. 

"명분? 도덕? 그 가식적인 주둥이들이 나를 괴물로 만들었구나." 

그의 손에서 힘없이 쥐고 있던 붓이 툭, 하고 부러졌다.


그는 깨달았다. 

조선에서 살아남는 법은 고결한 선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짓밟은 저 '고결한 척하는 자'들의 목줄을 쥐는 강력한 힘, 오직 그것만이 정답이었다. 

그는 짐을 꾸려 유배지로 향하며 가슴 깊은 곳에 씨앗 하나를 심었다. 

훗날 온 조선을 피비린내로 진동하게 할 '복수'라는 이름의 씨앗이었다.


4. 20년의 어둠, 뱀은 허물을 벗는다

유배지의 밤은 길었다. 

임사홍은 책을 읽는 대신 세상을 관찰했다. 

성종의 정치가 깊어갈수록 사림의 목소리는 커졌고, 왕권은 묘하게 위축되고 있었다. 

그는 안다. 

권력은 반드시 갈등을 낳고, 억눌린 자는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는 스스로 뱀이 되기로 했다. 

안개 속에서 몸을 숨긴 채, 먹이가 방심할 때까지 숨을 죽이는 뱀. 

그는 매일 도성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누구와 다투는지, 왕의 기분은 어떠한지, 그리고... 왕실의 깊은 곳에 어떤 상처가 숨겨져 있는지.


그러던 1494년, 성종이 서거했다. 

새로운 왕, 혈기 왕성하고 불안한 영혼을 가진 연산군이 즉위했다. 

임사홍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드디어, 연극을 시작할 때가 되었구나." 

20여년 동안 갈아온 칼날이 달빛 아래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2장. 20년의 칼갈이: 유배지에서 설계한 복수의 시나리오

1. 잊혀진 남자의 지독한 인내

유배지의 시간은 멈춘 것과 같았다. 

한때 궁궐의 화려한 조명을 받던 임사홍(任士洪)에게 지방의 흙먼지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일을 하는 대신, 한양의 소식을 전해줄 정보원들을 매수하고 관리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다림'뿐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자신을 탄핵했던 사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조렸다. 

김종직(金宗直), 정여창(鄭汝昌), 김일손(金馹孫)... 그 이름들은 임사홍에게 증오의 연료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다.


2. 성종의 시대, 그 틈새를 읽다

성종은 성군이었다. 

하지만 임사홍의 눈에는 그 성군 정치가 낳은 '독'이 보였다. 

사림들은 도덕이라는 잣대로 왕의 사생활까지 간섭했고,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신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왕은 점차 피로해 보였고, 조정은 깐깐한 선비들의 잔소리로 가득 찼다.


임사홍은 미소 지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지." 

그는 사림들이 쌓아 올린 이 견고한 도덕의 성벽이 언젠가 거대한 분노의 파도에 휩쓸릴 것임을 예견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조선의 권력 구조를 다시 그렸다. 

왕과 신하, 훈구와 사림. 

그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단 하나의 바늘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3. 연산(燕山),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왕세자 융(隆)이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燕山君)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임사홍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산군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소년은 성종의 온화함과는 결이 달랐다. 

눈빛에는 억눌린 슬픔과 다듬어지지 않은 공격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새 왕은 사림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임사홍은 확신했다. 

연산군은 도덕적 잣대로 왕을 가르치려 드는 선비들을 증오하게 될 터였다. 

이제 임사홍에게 필요한 것은 왕의 곁으로 돌아갈 '명분'과 왕의 손에 쥐여줄 '채찍'이었다. 

그는 그 채찍의 재료를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12년 전, 모두가 입을 닫았던 비극. '폐비 윤씨' 사건이었다.


4. 거미줄을 치는 자의 침묵

임사홍은 한양에 있는 자신의 심복들에게 은밀한 서신을 보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왕이 사림의 오만함에 진저리를 칠 때까지 기다려라."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20년을 기다렸는데, 1~2년이 더 걸린들 무엇이 대수겠는가.


그는 유배지의 방 한구석에 조선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붉은 점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그 점들을 하나씩 선으로 연결했다. 

그것은 복수의 지도이자, 장차 조선을 뒤덮을 피의 그물망이었다.


어둠 속에서 임사홍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이제 뱀의 허물을 완전히 벗어던질 준비를 마쳤다. 

"김종직, 그대의 제자들이 왕의 붓을 쥐고 흔들 때, 나는 왕의 칼을 쥐고 그대들의 목을 겨누리라." 

복수의 연출가, 임사홍의 시나리오는 그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3장. 기회를 포착한 뱀: 연산군과 사림의 충돌, 그리고 귀환

1. 어린 사자의 뒤틀린 포효

연산군(조선 제10대 왕)은 아버지 성종과는 달랐다. 

그는 왕권이 하늘 아래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조정의 사림들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유교적 잣대로 감시했다. 

"전하, 그것은 옳지 않사옵니다.", "전하, 공부하셔야 하옵니다." 

연산군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충언이 아니라 왕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었다.


왕의 스트레스는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연산군은 자신의 분노를 이해해 줄 '내 편'이 필요했다. 

명분을 내세워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선비들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손발이 되어줄 자. 

그때, 20년 동안 잊혔던 이름 하나가 왕의 귀에 들려왔다. 

"임사홍(任士洪), 그가 문장에 능하고 왕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옵니다."


2. 거미줄이 도성에 닿다

유배지에서 숨죽이던 임사홍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연산군의 주변 인물들에게 뇌물을 뿌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단순히 돈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이 무엇을 목말라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보내는 상소문에 화려한 수사학을 동원했다. 

"왕은 하늘이 낸 존재이며, 신하는 그 빛을 받드는 거울일 뿐입니다." 

명분에 짓눌려 있던 연산군에게 이 말은 가뭄 끝의 단비였다. 

'소인'이라 비난받던 임사홍의 수완은, 왕에게는 '유능한 충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3. "그를 불러들여라"

1498년, 마침내 어명이 떨어졌다. 

"임사홍의 죄를 사하고 도성으로 불러들여라." 

사림들은 경악했다. 

"전하, 소인배를 다시 불러들이시면 안 되옵니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하는 신하들을 보며 비웃었다. 

"그대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보니, 그가 진정 쓸모 있는 자인 모양이구나."


임사홍이 한양 도성으로 들어오던 날, 하늘에는 먹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20년 만에 밟는 도성의 흙은 차가웠지만, 그의 심장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그는 자신을 탄핵했던 자들의 집 앞을 일부러 지나갔다. 

담장 너머로 들리는 선비들의 헛기침 소리를 들으며 그는 나직이 속삭였다. 

"이제, 너희의 그 고결한 목소리를 비명으로 바꿔주마."


4. 사냥의 시작, 무오사화(戊午士禍)의 그림자

궁궐에 입성한 임사홍은 왕의 비서실장 격인 승지들과 결탁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왕의 신뢰를 완전히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먹잇감은 바로 사림의 거두,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들이었다.


때마침 사초(史草: 왕의 일기이자 역사 기록) 검열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김일손(金馹孫)이 스승 김종직의 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의도가 담긴 이 글은 연산군이라는 화약고에 던져진 성냥불이었다.


임사홍은 왕의 귓가에 독을 뱉었다. 

"전하, 이것은 전하의 뿌리를 부정하는 대역죄입니다. 사림들은 붓으로 전하의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임사홍은 그 광기 어린 눈을 보며 전율했다. 

드디어 20여년의 칼갈이가 빛을 발할 순간, 조선의 선비들이 피를 흘릴 '무오사화'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제2부] 광기의 불씨를 지피다

4장. 첫 번째 간보기: 무오사화의 광기와 피의 맛

1. 붓 끝에 서린 칼날, 사초(史草)의 함정

1498년(연산 4년) 여름, 궁궐의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왕의 신뢰를 회복한 임사홍은 훈구파 영수들과 밀실에서 잔을 부딪쳤다. 

그들의 공통된 적은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을 몰아붙이던 신진 사림들이었다. 

먹잇감은 이미 정해졌다. 

김종직의 제자이자 사관인 김일손이었다.

사실 사림의 거두 김종직(金宗直)은 이미 6년 전 세상을 떠난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 성종의 신임을 받으며 사림의 시대를 열었지만, 죽어서까지 제자들과 왕 사이의 거대한 폭탄이 될 줄은 몰랐다.


"전하, 사초를 보셨사옵니까? 그곳에 실린 '조의제문'은 전하의 증조부이신 세조 대왕을 능멸하는 글이옵니다." 

임사홍의 목소리는 낮고 집요했다. 

연산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왕에게 사초는 금기였다. 

하지만 그 금기를 깨고 들여다본 글귀들은 왕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선비들이 붓으로 지키려던 '역사의 정의'가 왕에게는 '왕실의 반역'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2. "붓을 꺾고, 목을 쳐라"

연산군은 폭발했다. 

국문을 열라는 왕의 포효가 궁궐을 뒤흔들었다. 

임사홍은 직접 국문장에 나섰다. 

피비린내 나는 고문 현장에서 그는 자신을 '소인'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선비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김일손, 네 놈이 쓴 붓 끝에 왕의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했느냐?" 

압슬(膝: 무릎을 무거운 돌로 누르는 고문)을 당하는 김일손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임사홍의 표정에는 미세한 미소조차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심문이 아니었다. 

20여년간 가슴에 쌓아둔 굴욕을 한 방울씩 돌려주는 의식이었다. 

김일손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미 죽은 그의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 무덤을 파헤쳐 시신의 목을 베는 형벌)를 당했다.

이것이 조선 역사상 최초의 부관참시였다. 

임사홍은 잘려 나간 김종직의 머리를 보며 전율했다. 

한때 자신을 '소인'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사림의 거두가 흙먼지 속에서 난도질당하는 광경은 그에게 지독한 쾌감을 선사했다.


3. 피의 맛을 본 사자

무오사화(戊午士禍: 조선 최초의 사화)는 사림의 참패로 끝났다. 

도성 밖은 잘려 나간 선비들의 목으로 가득했고, 서원에서는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사홍은 만족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연산군의 눈에서 이전에 없던 기묘한 광기를 읽어냈다.


연산군은 피의 맛을 본 뒤 변했다. 

명분을 앞세워 자신을 가르치려던 자들이 단칼에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는 절대권력의 쾌락을 깨달았다. 

"임사홍, 네 말이 맞았다. 선비란 놈들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가볍구나." 

왕의 칭찬에 임사홍은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는 왕의 '충직한 신하'를 넘어, 왕의 '어두운 욕망을 설계하는 자'가 되었다.


4. 다음 시나리오: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려라

임사홍은 사화(士禍)가 휩쓸고 간 정원을 거닐며 다음 수를 계산했다. 

무오사화로 사림의 일부를 도려냈지만, 아직 조정에는 구질구질한 명분을 따지는 훈구 대신들과 남은 사림들이 많았다. 

그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더 거대한 폭풍이 필요했다.


그는 가슴 품속에 소중히 간직해온 정보 하나를 떠올렸다. 

성종 시대의 금기이자, 연산군이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하는 비극. 폐비 윤씨(廢妃 尹氏)의 죽음이었다.

임사홍은 알고 있었다. 

연산군에게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을 보여주는 순간, 조선은 무오사화와는 비교도 안 될 거대한 피의 바다에 잠길 것임을.


"전하, 아직 전하께서는 진정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사옵니다." 

어둠 속에서 임사홍의 혼잣말이 뱀의 쉿소리처럼 퍼져나갔다. 

이제 복수의 두 번째 막, 갑자사화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5장. 피 묻은 금삼(錦衫)의 재등장: 복수의 도화선이 타오르다

1. 금기를 꺼내 든 연출가

1504년(연산 10년), 무오사화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궁궐. 

임사홍(任士洪)은 이제 왕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는 불안했다. 

조정의 대신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뒤로는 임사홍을 '간사한 쥐새끼'라 비웃고 있었다. 

그들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릴 거대한 해일이 필요했다.


그는 결심했다. 

성종이 내린 "향후 100년 동안 폐비의 일을 입에 담지 마라"는 유명을 깨기로. 

그는 폐비 윤씨의 친어머니인 신씨를 은밀히 만났다. (각색)

그리고 그곳에서, 22년 동안 원한의 세월을 견뎌온 낡은 보따리 하나를 건네받았다. 

보따리 안에는 붉은 얼룩이 굳어 검게 변한 비단 적삼, 금삼(錦衫)이 들어 있었다. (전승/각색)


2. 왕의 침전, 안개 속의 속삭임

깊은 밤, 임사홍은 금삼을 품에 안고 연산군의 침전으로 향했다. 

당시 연산군은 사림들과의 계속된 마찰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져 술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임사홍은 촛불 그림자 뒤에서 나직이 엎드렸다.


"전하, 소신 목숨을 걸고 전하께 보여드릴 유물이 있사옵니다." 

연산군이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사홍은 천천히 보따리를 풀었다. 

한때 선명한 붉은색이었을, 그러나 이제는 눈물과 피로 절여져 빛바랜 적삼이 왕의 발치에 놓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전하의 생모, 폐비 윤씨께서 사약을 받으시던 날 피를 토하며 남기신 마지막 흔적이옵니다."


3. 무너진 이성, 피의 각성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연산군은 떨리는 손으로 그 낡은 천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 한 번도 따뜻하게 불러보지 못한 그 이름이 금삼의 핏자국 위로 겹쳐졌다. 

임사홍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왕의 가슴에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그날, 성종 대왕께 폐비를 죽여야 한다고 앞장섰던 자들이 지금도 전하의 곁에서 충신인 척 붓을 굴리고 있사옵니다. 전하의 어머니가 피를 흘릴 때, 그들은 축배를 들었사옵니다." 

연산군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지옥에서 올라온 거대한 분노였다. 

"누구냐. 내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자들이 대체 누구냐!" 

왕의 포효가 밤의 정적을 찢었다. 

임사홍은 고개를 숙인 채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겼다. 

드디어, 복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4.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서막

그날 밤 이후, 연산군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왕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성종의 후궁이었던 귀인 엄씨와 정씨,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했던 훈구파와 사림파 대신들. 

누구도 이 피의 명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임사홍은 이제 왕의 칼날을 쥐고 휘두르는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명단에 자신이 평소 증오하던 정적들의 이름을 교묘히 섞어 넣었다. 

복수는 사적이었으나, 결과는 국가적 비극이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잔혹한 숙청, 갑자사화의 피바람이 한양 도성을 향해 거세게 불어오고 있었다.


6장. 연산군의 폭주: 임사홍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조선

1. 밤의 궁궐, 핏빛으로 물든 효(孝)

1504년 3월의 어느 깊은 밤. 

창경궁 명정전 앞뜰에 횃불이 숲을 이뤘다. 

연산군은 임사홍이 건넨 '복수의 명단'을 손에 쥐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 첫 번째 타깃은 성종의 후궁이자, 어머니 폐비 윤씨를 모함했던 귀인 엄씨와 정씨였다.


"내 어머니가 흘린 피를 너희의 몸으로 갚으라!" 

연산군은 두 후궁을 묶어두고 그들의 아들들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명령했다. 

"어미를 매질하라." 

어둠 속에서 자식이 어미를 때리는 참혹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연산군은 그 광경을 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임사홍은 왕의 뒤편에서 그 풍경을 지켜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이것이 진정한 왕의 권위입니다, 전하."


2. 시체조차 용서하지 않는 집념

임사홍의 시나리오는 산 자들만 겨냥하지 않았다. 

그는 연산군의 증오를 부추겨 이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성종 시대의 훈신들까지 끌어올렸다. 

한때 조선을 호령했던 한명회(韓明澮), 정창손(鄭昌孫) 등 일등 공신들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죽어서도 편히 쉬게 두지 마소서. 그들의 뼈를 갈아 바람에 날려야 전하의 원한이 풀릴 것이옵니다."

임사홍의 조언에 따라 부관참시(剖棺斬屍)가 행해졌다. 

죽은 자의 목이 다시 베이고 뼈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광경은 도성 사람들에게 극도의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제 조정에서 왕의 앞길을 막거나 '아니옵니다'를 외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임사홍은 공포라는 이름의 그물을 조선 전체에 촘촘히 쳐놓았다.


3. 정치는 사라지고 연극만 남다

이제 조정의 회의는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연산군의 유흥과 임사홍의 아첨이었다. 

임사홍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사적인 복수를 국가의 정의로 포장했다. 

그는 왕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 바쳤다. 

그것이 선비의 목이든, 종묘의 질서든 상관없었다.


사림들은 이제 붓을 꺾고 숨어들었다. 

명분을 따지던 훈구 대신들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임사홍의 집 앞에 줄을 섰다. 

20년 전, 그를 '소인배'라 부르며 침을 뱉던 자들이 이제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비를 구했다.

임사홍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술을 들이켰다. 

"명분이 밥을 먹여주더냐? 도덕이 너희의 목숨을 지켜주더냐?"


4. 설계자의 미소, 그리고 다가오는 어둠

궁궐은 매일 밤 연회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연산군은 폭정을 일삼으며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었지만, 임사홍은 개의치 않았다. 

왕이 망가질수록 임사홍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왕을 위한 새로운 즐거움을 기획했다. 

전국의 미녀들을 징집하는 '채홍사'의 조직과 왕의 귀를 막을 화려한 잔치들.


조선은 서서히 침몰하는 배와 같았다. 

하지만 그 배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임사홍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광기가 정점에 달할 때, 그 광기를 잠재울 또 다른 칼날이 어둠 속에서 갈리고 있음을.


[제3부] 피의 축제, 갑자사화

7장. 공포 정치의 정점

1. 공포라는 이름의 통치술

이제 도성 안에서 '비판'이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임사홍은 왕에게 제안하여 신하들의 목에 신언패(愼言牌)를 걸게 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나무패였다. 

신하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땅만 보고 걸었다.


임사홍은 왕의 눈과 귀가 되어 모든 정보를 독점했다. 

누가 집에서 한숨을 쉬었는지, 누가 술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는지까지 임사홍의 귀로 들어갔다. 

그는 왕을 광기의 정점으로 밀어 넣는 동시에, 자신은 그 광기 뒤에 숨어 조선의 실질적인 주인 행세를 했다. 

성종 시대의 질서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 폐허 위에 임사홍의 뒤틀린 욕망이 성을 쌓았다.


2. 설계자의 치밀한 고립

임사홍은 알고 있었다. 

왕이 외로워질수록 자신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것을. 

그는 연산군이 형제나 종친들과 교류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왕의 곁에는 오직 자신과 장녹수, 그리고 쾌락을 좇는 무리만 남겨두었다.


"전하, 오직 소신만이 전하의 진정한 슬픔을 아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가면을 쓴 역적들일 뿐입니다." 

연산군은 이제 임사홍의 입 없이는 말하지 않았고, 임사홍의 눈 없이는 세상을 보지 못했다. 

피의 축제는 절정에 달했고, 임사홍은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무덤을 파헤치며 뿌렸던 그 뼈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 반격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8장. 권력의 정점: 신권(臣權)의 몰락과 임사홍의 천하

1. 굴복하는 거인들, 침묵하는 도성

1505년, 한양의 공기는 비굴함으로 가득 찼다. 

과거 성종의 총애를 받으며 기개 있게 왕의 잘못을 꾸짖던 대신들은 이제 없었다. 

대신들의 목에는 여전히 '말조심하라'는 신언패(愼言牌)가 걸려 있었고, 그들은 임사홍의 그림자만 보아도 길을 비켰다.


조정의 회의는 더 이상 국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의 변덕을 찬양하고, 임사홍이 짜놓은 시나리오에 박수를 치는 연극 무대였다. 

"전하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옵니다"라는 기계적인 합창만이 대궐을 울렸다. 

임사홍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20년 전, 자신을 '소인'이라 부르며 대궐 뜰에 엎드려 통곡하던 그들의 기개는 죽음의 공포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2. "내가 곧 법이다"

임사홍의 권력은 이제 왕의 비호를 넘어 법 위에 군림했다. 

그는 왕명을 출납하는 승지들을 손아귀에 넣었고, 사헌부와 사간원 같은 언론 기관을 자신의 사냥개로 만들었다. 

이제 누구를 죽이고 살릴지는 연산군의 기분이 아니라 임사홍의 붓 끝에서 결정되었다.


그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아들들을 왕실과 겹겹이 사돈을 맺게 하여 견고한 성을 쌓았다. 

아들 임숭재는 왕의 유흥을 전담하며 연산군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채워주었고, 임사홍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권력을 통제했다. 

훈구파의 원로들조차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임사홍에게 뇌물을 바쳤다. 

조선의 모든 돈과 정보, 그리고 생사여탈권이 임사홍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의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3. 신권(臣權)의 파괴, 그리고 왕의 고립

조선은 본래 왕과 신하가 정치를 나누어 맡는 '신권'의 나라였다. 

하지만 임사홍은 그 균형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는 연산군에게 "신하는 오직 왕의 노비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세뇌했다.


이는 임사홍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신하들이 무력해질수록 왕은 오직 임사홍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왕을 견제할 그 어떤 장치도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임사홍은 왕을 거대한 감옥 속에 가두고, 그 열쇠를 자신이 쥐었다. 

그는 자신이 조선이라는 배의 키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왕은 술과 여자에 취해 있었고, 대신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으니 그에게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4. 뒤틀린 평화, 균열의 시작

도성은 고요했다. 

비판도, 탄핵도, 반대도 없는 임사홍이 꿈꾸던 '완벽한 평화'였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죽음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임사홍은 승리에 취해 보지 못했다. 

자신의 발밑에서 썩어가는 민심과, 공포 뒤에서 증오를 갈고 있는 무장들의 눈빛을.


그는 궁궐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광대들의 풍자 섞인 노랫소리조차 엄금하며 철저한 통제를 이어나갔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가 누린 것은 천하를 호령하는 쾌락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언젠가 이 그물이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복수의 연출가 임사홍. 그의 연극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지나 파멸을 향한 마지막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9장. 채홍사와 장녹수: 연산군의 쾌락을 기획하다

1. 설계된 탐닉, 왕의 눈을 가리다

복수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피의 대가로 얻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임사홍은 영리했다. 

분노가 식으면 왕의 이성이 돌아올 것이고, 이성이 돌아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임을 알았다.

그는 연산군이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릴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축제였다.


그는 아들 임숭재와 함께 왕의 욕망을 대리 집행하는 채홍사(採紅使)가 되었다. 

팔도 전역에서 미모가 뛰어난 여인들을 강제로 징집해 궁으로 들였다. 

"전하의 즐거움이 곧 국력입니다." 

임사홍의 이 해괴한 논리 아래, 양가댁 규수부터 기생까지 수많은 여인이 '운평(運平)'이라는 이름으로 궁궐에 갇혔다. 

궁으로 끌려온 수천 명의 여인들, 즉 운평(運平)들은 연산군의 눈길 한 번을 받기 위해 알몸에 가까운 얇은 비단만을 걸친 채 밤마다 기괴한 춤을 춰야 했다. 

임사홍은 왕의 시야가 오직 여인들의 하얀 살결과 붉은 입술에만 머물도록 치밀하게 동선을 짰다. 

술잔은 마를 날이 없었고, 연회는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진 채 이어졌다. 

왕이 쾌락에 취해 흐느적거릴수록, 그가 쥔 칼자루는 임사홍의 손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왕의 시야는 향기로운 술과 여인들의 치맛자락 속에 갇혔고, 그 너머 조선의 현실은 철저히 차단되었다.


2. 장녹수(張綠水), 또 하나의 연출가

이 탐욕의 무대 위에서 임사홍은 강력한 파트너를 만났다. 

노비 출신으로 왕의 마음을 훔친 요부, 장녹수였다. 

장녹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아이 같은 미소와 신들린 춤사위로 연산군을 홀렸다.


임사홍은 장녹수를 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이용했다. 

장녹수가 왕의 침소에서 교태를 부리며 인사를 좌지우지할 때, 임사홍은 밖에서 그 결정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두 사람은 연산군이라는 거대한 사자를 조종하는 조련사들이었다. 

장녹수가 왕의 감성을 자극했다면, 임사홍은 왕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3. 금표(禁標) 너머의 곡소리

왕의 유흥은 궁궐 담장을 넘었다. 

연산군은 사냥을 즐기기 위해 도성 주변 수십 리의 민가를 철거하고 금표(禁標)를 세웠다. 

수만 명의 백성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았지만, 임사홍은 그들을 돌보는 대신 왕의 사냥터에 배치할 몰이꾼들을 조직했다.


"백성의 원성이 높사옵니다"라고 말해야 할 신하들은 임사홍이 세운 신언패에 묶여 입을 닫았다. 

임사홍은 왕과 함께 연회를 즐기며 생각했다. 

20년 전 자신을 버렸던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제 없다. 

오직 자신이 기획한 화려하고 잔혹한 연극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는 연산군이 던져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며, 이 피의 파티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4. 뒤틀린 낙원, 그리고 균열

궁궐은 매일 밤 가무와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임사홍은 그 소리가 커질수록 자신의 권력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연산군의 유흥은 단순히 여색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임사홍은 왕이 더 자극적인 쾌락을 원할 때마다 '금기(Taboo)'를 깨는 법을 제안했다. 

왕실의 친인척인 종친의 부인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욕보이게 하거나,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광란의 파티를 기획했다.

궁궐은 이제 정사를 논하는 전당이 아니라, 억눌린 광기가 배출되는 지옥의 정원이었다. 

여인들의 흐느낌은 가무 소리에 묻혔고, 임사홍은 그 비릿한 욕망의 냄새 속에서 희열을 느꼈다. 

왕이 도덕의 선을 넘으면 넘을수록 돌아갈 길은 사라졌고, 그 막다른 길의 끝에는 항상 임사홍이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전하, 이 땅의 모든 것이 전하의 것이옵니다. 마음껏 취하고 소유하소서."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왕을 영원한 쾌락의 감옥에 가두는 주술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등불 아래 그림자는 짙어지고 있었다. 

왕의 금표 너머에서 백성들의 곡소리가 분노로 변하고 있었고, 궁궐 구석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무장들이 비밀리에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임사홍은 여전히 왕의 귓가에 달콤한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그의 예민한 직감은 무언가 어긋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몸이었다. 

내리는 순간 잡아먹힐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는 더 자극적인 쾌락과 더 잔혹한 공포를 기획하며 파멸의 벼랑 끝으로 왕을 밀어붙였다.


[제4부] 연출가의 비참한 엔딩

10장. 중종반정의 폭풍: 영원할 것 같던 파티의 끝

1. 새벽을 가르는 불길한 말발굽 소리

1506년(연산 12년) 9월 2일, 깊은 밤. 

한양 도성은 여느 때처럼 고요했다. 

궁궐 안에서는 연산군과 임사홍이 기획한 연회의 잔향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술에 취한 왕이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도성 밖 홍제원에서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 분노한 무장들과 대신들이 칼날을 세우고 있었다.


"폭정을 멈추고 새로운 하늘을 열자!" 

새벽 공기를 찢는 함성과 함께 반정군의 말발굽 소리가 도성을 뒤흔들었다. 

공포로 다스려온 12년의 세월은 단 하룻밤의 조직적인 움직임 앞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임사홍은 잠결에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동에 눈을 떴다. 

그것은 그가 수만 번 상상하며 두려워했던, 바로 그 파멸의 서곡이었다.


2. 무너진 거미줄, 흩어지는 사냥개들

임사홍은 급히 의복을 갖춰 입고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어제까지 그의 발치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던 궁궐 수비대와 내관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거나 반정군에게 투항한 뒤였다. 

"전하를 깨워라! 어서 병력을 소집하라!" 

임사홍의 고함은 공허하게 대궐 복도를 울렸다.


그가 정교하게 쳐놓았던 정보망은 단숨에 마비되었다. 

반정군은 거침없이 대궐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연산군은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임사홍은 깨달았다. 

공포로 묶어둔 충성은 칼날 앞에서 가장 먼저 배신한다는 것을. 

그는 왕을 버리고 도망칠 궁리를 했으나, 궁궐의 모든 문은 이미 '복수의 군대'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3. 연출가의 고립된 무대

반정군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했다. 

임사홍은 자신의 집으로 몸을 숨기려 했으나, 분노한 반정군 병사들이 이미 그의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희대의 간신 임사홍을 끌어내라!" 

그는 방 한구석에서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비단 도포를 움켜쥐었다. 

20여년 전 유배지로 떠날 때 품었던 그 지독한 증오가 떠올랐다. 

그는 성공했으나, 그 성공의 끝은 자신이 파헤쳤던 무덤들보다 더 처참한 구덩이였다.


병사들에게 끌려 나가는 임사홍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을 찬양하던 무리들이 던지는 돌팔매였다. 

장녹수는 이미 처형장으로 끌려갔고, 아들 임숭재는 병사한 뒤였다. 

홀로 남겨진 이 노회한 연출가는 자신이 만든 비극의 마지막 장에 '주연 배우'가 아닌 '제물'로 서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4. 폭풍이 지나간 자리

해는 밝아왔지만, 조선은 다른 나라가 되어 있었다.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떠났고, 임사홍은 반정군의 손에 붙잡혀 압송되었다. 

도성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했다. 

그들의 환호성은 임사홍에게는 조종(弔鐘) 소리와 같았다.


임사홍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이 꿇린 채 생각했다. 

명분과 도덕을 비웃으며 오직 힘으로만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자신의 시나리오에 무엇이 빠졌던 것일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다만, 더 잔혹하게 적들을 뿌리 뽑지 못한 자신의 '불철저함'을 한탄할 뿐이었다. 

폭풍은 이제 그를 집어삼키고 역사라는 거대한 심판대로 끌고 가고 있었다.


11장. 버려진 충복: 반정군의 칼날 아래 남긴 마지막 비웃음

1. 차가운 아침, 형장의 이슬로

1506년 9월 초이렛날. 한양 도성 밖 처형장. 

새로 즉위한 중종의 어명은 단호했다. 

연산군의 눈과 귀가 되어 조선을 피로 물들인 '희대의 간신' 임사홍에게 극형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포박된 채 수레에 실려 온 임사홍의 몰골은 처참했다. 

화려했던 비단 도포는 찢겨 흙먼지에 뒤덮였고, 권세로 번들거렸던 눈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군중들을 향해 핏발 선 눈을 부라렸다. 

그 기세만큼은 여전히 조선을 호령하던 권력자의 그것이었다.


2. "너희의 손도 깨끗하지 않다"

형장에 도착한 반정측 위관이 죄목을 낭독했다. 

폐비 윤씨의 비극을 이용해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채홍사가 되어 왕의 눈을 가린 죄. 

임사홍은 낭독이 끝나기도 전에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처형장을 가득 채운 긴장감을 비웃듯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내가 간신이라? 나를 죽이려는 너희는 무엇이 다르냐!" 

임사홍은 자신을 압송한 반정 공신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일갈했다. 

"어제까지 전하(연산군)의 곁에서 아첨하며 내게 뇌물을 바치던 놈들이, 이제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내 목을 치려 하는구나. 조선의 신하들아, 너희의 그 가증스러운 명분이 내 목을 치는 칼날보다 더 역겹다!" 

그의 일침에 반정군 장수들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임사홍은 알고 있었다. 

이 반정 역시 또 다른 권력의 이동일 뿐, 그들의 손에도 이미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3. 마지막 연출, 피로 쓴 마침표

망나니가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임사홍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설계했던 20년의 복수극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되짚었다. 

비록 결말은 비극적인 자신의 죽음이었으나, 그는 자신을 멸시하던 사림의 자부심을 완전히 짓밟았고 조선의 질서를 제 손으로 뒤흔들었다는 사실에 기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내 목은 잘려도, 내가 뿌린 광기의 씨앗은 이 땅에 남으리라."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칼날이 허공을 갈랐고, 한때 왕의 귓가에 독을 심었던 노회한 정치가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죽는 순간에도 입가는 묘하게 뒤틀린 조소(嘲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4. 시체조차 허락되지 않은 죽음

처형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반정군은 그의 시신을 거두는 것을 금했다. (실록에 참형후 부관참시로 기록)

그의 목은 장대에 걸려 저잣거리에 효수(梟首)되었고, 백성들은 그가 남긴 피의 흔적에 돌을 던졌다.

임사홍이 과거 한명회와 정창손의 무덤을 파헤치며 즐거워했듯, 이제는 그 자신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가장 추악한 이름으로 박제되는 순간이었다.


한양 도성에 불어오던 피바람은 이로써 멎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임사홍이 죽음 직전 남긴 비웃음처럼, 그가 무너뜨린 신뢰와 도덕의 가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복수의 연출가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뼈저린 흉터로 남게 되었다.


12장. 역사에 새겨진 악명: 간신(奸臣)이라는 주홍글씨 뒤의 진실

1. 효수된 머리, 그리고 멈춘 시간

저잣거리 장대에 걸린 임사홍의 머리는 며칠 동안 거센 비바람을 맞았다. 

한때 왕의 귓가에 조선의 운명을 속삭이던 그 입은 이제 굳게 다물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며 침을 뱉고 손가락질했다. 

조선 역사상 이토록 완벽하게 '절대 악'으로 규정된 인물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가 남긴 상처가 곧바로 아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설계했던 갑자사화와 공포 정치는 조선의 지식인 사회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했다. 

명분과 도덕을 말하던 선비들은 이제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권력의 단맛을 본 무장들은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2. 간신(奸臣)이라는 이름의 주홍글씨

훗날 편찬된 『연산군일기』는 임사홍을 이렇게 기록했다. 

"성품이 음험하고 간사하며, 권세를 탐하여 나라를 망친 우두머리." 

그는 유자광(柳子光)과 더불어 조선 최대의 간신으로 박제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행간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임사홍은 단순히 왕의 비위를 맞춘 아첨꾼이 아니었다. 

그는 성종 시대 사림들이 구축한 '도덕적 독재'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실무형 관료이자, 명분론에 갇힌 조선 정치를 '욕망과 실리'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이단아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이 '복수'와 '광기'였다는 점이 비극이었을 뿐, 그는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허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3. 연출가가 떠난 무대, 남겨진 배우들

임사홍이 사라진 자리에 중종과 반정 공신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반정 공신들 역시 임사홍이 휘둘렀던 '공포'와 '권력 독점'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조선은 이후 수백 년간 당파 싸움과 숙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임사홍은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사화(士禍)'라는 이름의 반복되는 비극으로 피어났다. 

그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증오와 질투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견고해 보이는 시스템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그가 쓴 화답시는 아름다웠고, 그가 읊은 노래는 감미로웠다. 

하지만 그는 그 아름다운 붓 끝을 칼보다 더 날카롭게 갈아 사람의 심장을 찔렀다. 

조선의 선비들이 명분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을 때, 그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망을 문장으로 엮어 피의 연극을 상영한 것이다.


4. 뱀의 눈을 가진 사나이

오늘날 임사홍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왕을 타락시키는 악마적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20여년의 유배 생활 동안 그가 홀로 씹어 삼켰을 고독과, 자신을 매장한 세상을 향해 휘둘렀던 그 치밀한 붓 끝을 생각하면 그는 단순한 악인 그 이상이다.


그는 조선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피로 물들인 연출가였고, 동시에 그 연극의 끝에 자신의 목숨마저 바친 지독한 탐닉자였다. 

임사홍. 그의 이름은 이제 역사의 경고장으로 남았다. 

군주의 귀에 독을 심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명분 뒤에 숨은 인간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으로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그가 남긴 '복수의 서사'는 지금도 권력의 주변을 뱀처럼 배회하고 있다.


이 글은 임사홍(任士洪)·연산군(燕山君) 시기의 주요 사건(무오사화·갑자사화, 폐비 윤씨 관련 기억의 정치화, 공포 통치, 채홍사와 궁중 향락, 중종반정)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 등 공개 기록에 알려진 큰 흐름을 토대로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다만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 전환, 대사, 심리 묘사, 인물 간 대립의 체감(“속삭였다/전율했다” 같은 표현)은 소설적 각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같은 사건이라도 사료 해석과 강조점은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은 “권력 구조와 인간 심리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구성이라, 정치·제도사의 세부 논쟁은 의도적으로 단순화된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신 독자께서는 실록 원문, 관련 인물 전기 자료, 사화 연구서 등을 교차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Branded a “petty man” under King Seongjong, courtier Im Sahong retreats, studies court factions, and waits for a ruler who will resent the scholar-officials’ moral policing. 

When Yeonsangun takes the throne, Im returns and redirects the king’s anger toward the literati, helping spark the Mu-o purge as Kim Jong-jik’s writings in the annals are recast as treason. 

He then exploits Yeonsangun’s wound over his mother, Deposed Queen Yun, to fuel the far bloodier Gapja purge, widening revenge to rivals and even the dead through grave profanations. 

To keep the king dependent, Im sustains rule by fear and indulgence—tight speech control, informant networks, forced recruitment of women, and Jang Nok-su’s sway—until government becomes a spectacle. 

The Jungjong coup ends the regime; Im is seized and executed, leaving Joseon scarred by purges and dis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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