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삼에 스민 눈물: 폐비 윤씨의 비망록
마지막 숨결에 실어 보내는 이야기
싸늘한 약사발이 내 손에 들려있다.
이 안에 담긴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안다.
허나 두렵지 않다.
길고 긴 고통의 강을 건너 이제야 닿게 될 피안이리라.
다만 한 가지, 사무치는 것은 내 아들 융의 얼굴이다.
어미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어린 아들.
그 아이가 훗날 역사 속에서 나를 어떤 어미로 기억하게 될까.
사람들은 나를 투기가 심하여 국모의 자리에서 쫓겨난 악녀라 기록할 것이다.
임금의 용안에 손톱 자국을 낸 패악한 아내라 수군거릴 것이다.
독약을 품고 저주를 일삼은 비정한 여인이라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나의 전부였을까.
그 기록의 행간에 스며 있는 나의 눈물과 절망, 그리고 처절했던 몸부림은 누가 알아줄 것인가.
나는 이제 마지막 숨을 모아 이 글을 남긴다.
먼 훗날 내 아들 융이 장성하여, 어미의 흔적을 찾게 될 그날을 위함이다.
세상이 기록한 '폐비 윤씨'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여인의 진짜 삶을 전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과 오해의 먼지를 털어내고, 내 삶의 진실을, 내 영혼의 절규를 오롯이 내 아들에게만은 들려주고 싶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다만 고백일 뿐이다.
한 여인이 꾸었던 꿈과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부서져 내렸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시작해야겠지.
희망에 부풀었던, 함안의 가난한 여식이었던 그 시절로부터.
제1부: 함안의 가난한 여식, 꿈을 꾸다 (1455년 ~ 1473년)
나는 고려의 명장 윤관 할아버님의 피를 이어받은 함안 윤씨 가문의 딸이다.
아버님께서는 집현전의 학자셨으니, 우리 가문이 본디 미천했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가장을 잃은 여염집에 조정의 권세가 미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법.
내가 태어난 1455년은 단종 임금께서 상왕으로 물러나 앉으신 해였고, 아버님인 윤기견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시어 가세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우리 모녀는 단 한 순간도 가문의 긍지를 잊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이신 고령 신씨께서는 명망 높은 신숙주 대감을 사촌관계로 둔 분이셨으나, 그늘진 친척의 명성이 우리 모녀의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우리 모녀는 한양 익선동의 허름한 사가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기억 속 나의 유년은 늘 배고픔과 남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낡고 해진 옷을 기워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를 도와 길쌈을 했다.
가녀린 손으로 베틀에 앉아 날실과 씨실을 엮으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꼬박 짜낸 반포(頒布)를 장에 내다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아낙들은 수군거렸다.
"저 아이 팔자도 참 기구하지. 저 어린 것이 벌써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구나."
그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때로는 바늘처럼 나를 찔렀지만, 나는 꿋꿋했다.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였고, 내 손으로 우리 모녀의 생계를 꾸려간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선량하고 예의 바르며 검소한 성품을 지녔다고 칭송받았다.
매사에 정성을 다했고, 늘 허름한 옷을 입으며 검소함을 몸에 익혔다.
어른들을 뵈면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작은 일에도 조심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나를 어른들께서는 기특하게 여기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과부의 집에서 자랐으나 보고 들은 것이 깊고, 행실이 참으로 현숙하구나."
그 칭찬은 고된 삶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 홀로 누우면,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도 남들처럼 고운 비단옷을 입고, 배불리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막연하게나마 궁궐을 동경했다.
그곳은 어떤 세상일까.
금으로 지은 전각과 옥으로 만든 다리가 있고,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곳.
그 화려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겠지.
그것은 한낱 소녀의 헛된 꿈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궁궐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것이 내 운명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길쌈을 하던 손을 멈추었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온 소식은 가난에 찌든 우리 모녀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주상 전하의 후궁을 뽑는 간택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마당에 널린 해진 옷가지를 보시더니 한참을 우셨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나긴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마지막 기회를 마주한 자의 떨림이었다.
"윤씨 가문의 명예를 네가 짊어질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거친 손마디를 보았다.
베틀에 앉아 굳은살이 박인 이 손으로 궁궐의 비단을 만질 수 있을까.
집현전 학사였던 아버님의 성함에 누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는 머리를 빗었다.
외당숙인 신숙주 대감의 가문에서도 힘을 보태주었다.
미천한 처지였으나, 우리 가문의 뿌리가 깊고 내 행실이 반듯하다는 소문이 대궐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간택 날, 나는 남의 집에서 빌려온 듯한 옷을 입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수많은 명문가 규수들이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하고 나섰지만, 나의 무기는 오직 하나, 가난 속에서 길러진 인내와 단아함이었다.
세 분의 대비마마(정희·소혜·안순왕후)께서는 나의 검소한 차림과 차분한 말투를 유심히 살피셨다.
"과부의 슬하에서 자랐으나, 법도가 엄격하고 기품이 있구나."
그 한마디에 내 운명의 추가 기울었다.
함안의 가난한 여식 윤씨가 아니라, 장차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왕의 여인으로 선택받은 것이다.
궐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익선동의 허름한 초가집이 아지랑이 속에 흐릿해졌다.
이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아니, 반드시 성공하여 어머니를 비단방석에 앉혀드리리라 맹세하며 나는 궁으로 향하는 가마에 올랐다.
그것이 내 영혼을 태울 불꽃 속으로 들어가는 길인 줄은 미처 알지 못한 채.
제2부: 왕의 여인, 숙의가 되다 (1473년 ~ 1476년)
처음 궁궐에 발을 디뎠을 때의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전각들의 위용에 숨이 멎는 듯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궁인들의 모습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곳은 내가 동경하던 바로 그곳이었지만, 동시에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아찔한 벼랑과도 같았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나는 1473년, 열아홉의 나이로 종2품 숙의(淑儀)에 봉해져 입궁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리신 주상 전하, 이혈(성종).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소년의 앳됨과 군왕의 위엄이 공존하는 그분의 신비로운 눈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미천한 가문의 여식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전하께서는 나를 총애하셨고, 나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했다.
궁궐 생활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나의 위에는 세 분의 대비마마가 계셨다.
세조 대왕의 비이신 정희왕후 대왕대비마마, 전하의 생부이신 덕종의 비 소혜왕후 왕대비마마(훗날의 인수대비), 그리고 예종 대왕의 비이신 안순왕후 왕대비마마.
나는 세 분 어른께 효성을 다하고 공손함을 잃지 않으려 노심초사했다.
나의 검소한 몸가짐과 조심스러운 태도를 대비마마들께서는 어여삐 여기셨고, 나는 점차 깊은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하의 첫 번째 왕비이셨던 공혜왕후 한씨께서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시고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로 승하하셨다.
궁궐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 슬픔의 이면에서는 새로운 국모를 맞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왕실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주청이 빗발쳤고, 여러 후궁들 가운데 내가 새로운 중전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나의 미천한 가문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에 원경왕후 민씨의 친정처럼 외척이 발호할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평생 나를 옭아매던 가난과 미천함이,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로 나를 이끌어 줄 디딤돌이 될 줄이야.
나는 기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드디어 내게 국모의 자리가 주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빛나는 자리가 실은 가장 위태로운 벼랑 끝이었음을.
제3부: 아들을 낳고, 중전이 되다 (1476년 ~ 1477년)
중전의 자리가 내 손안에 들어오기 직전, 대궐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세 분의 대비마마 중에서도 특히 전하의 생모이신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 마마의 눈빛이 서늘했다.
그분은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는 《내훈(內訓: 부녀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인수대비가 지은 책)》을 집필하실 만큼 엄격한 분이셨다.
어느 날, 대비마마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윤 숙의, 자네는 가문이 미천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좁을까 걱정되네. 중전의 자리는 전하의 총애만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야. 스스로를 억누르고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곳이지."
나는 고개를 깊이 숙였으나,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가문이 미천하다는 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낙인이었다.
"마마, 소첩은 가난 속에서 인내를 배웠사옵니다. 결코 전하의 앞길에 누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비마마께서는 대답 대신 찻잔을 내려놓으셨다.
찻잔이 옥탁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마치 내 운명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인내라... 그것이 독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자네의 눈 속에는 너무 많은 갈망이 담겨 있어."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갈망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세상이었다.
길쌈하던 가난한 여식이 중전의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 어찌 독기란 말인가.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반드시 보란 듯이 완벽한 국모가 되어, 나를 멸시하던 그 서늘한 눈빛들을 무릎 꿇리겠노라고.
하지만 그 다짐은 서서히 집착으로 변해갔다.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안의 괴물을 깨우고 있었다.
1476년 8월, 나는 마침내 이 나라의 국모가 되었다.
왕비로 책봉되던 날, 인정전 뜰에 울려 퍼지던 우렁찬 하례의 목소리와 나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던 수많은 신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전하께서는 교지를 통해 나를 이리 칭찬하셨다.
"그대 윤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마음가짐이 깊고 고요하여, 효성은 세 대비를 움직이고 공손하고 검소한 몸가짐은 왕을 보필하는 자리에 진실로 으뜸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다.
전하의 사랑, 대비들의 신임, 그리고 만백성의 어미라는 지위까지.
이제 내게는 두려울 것이 없으리라 믿었다.
그해 11월, 하늘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을 내려주셨다.
나는 드디어 원자(元子)를 낳았다.
훗날 이 나라의 왕이 될 내 아들, 융.
핏덩이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벅찬 기쁨을 나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단순히 왕의 아내가 아니라, 왕실의 후계자를 낳은 중전이었다.
내 손안에 들어온 권력의 무게와 단맛을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나의 말 한마디에 내명부의 모든 것이 움직였고, 나의 아들은 이 나라의 미래였다.
허나 원자를 낳은 기쁨도 잠시, 내 안에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린 듯했다.
사소한 소리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전하의 다정한 눈빛 속에서도 의심의 그림자를 찾으려 애썼다.
예전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낯선 감정의 파도는 대체 어디서부터 밀려오는 것인가?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 수군거렸다.
예전의 부드럽고 겸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예민해졌다고 했다.
그들은 모른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이 불안감을.
전하를 기다리는 밤이면, 애틋함은 어느새 차가운 분노로 변해 내 심장을 태웠다.
다른 후궁의 처소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비수가 되어 날아와 박혔다.
전하를 향한 나의 사랑은 병적인 집착이 되어갔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위협으로 느껴졌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발톱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내 안에서 무엇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곧이어 불어닥친 피바람은 내 모든 것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제4부: 가시 돋친 궁궐, 파국이 시작되다 (1477년 ~ 1479년)
궁궐은 화려한 비단으로 감싼 거대한 감옥이었다.
나를 향한 웃음 뒤에는 칼이 숨겨져 있었고, 공손한 인사 속에는 독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아들, 이 나라의 원자를 지켜내야만 했다.
세상은 나의 모든 행동을 패악이라 손가락질하지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누가 알아줄까.
1477년, 모든 비극의 시작은 한 장의 투서에서 비롯되었다.
엄 숙의와 정 숙용이 나와 원자를 해하려 한다는 내용의 언문 투서.
훗날 사람들은 그것이 나의 자작극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 인정한다.
그 투서는 내가 쓴 것이다.
내 손으로 붓을 들어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내가 어찌 그런 얕은 수로 다른 후궁들을 모함하려 했겠는가 물었나?
아니, 나는 다만 내 주위를 맴도는 독사의 그림자를 전하께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이 내뱉는 소리, 그들의 눈빛에 담긴 독을 형체로 만들어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절박함이었다.
뒤이어 내 처소에서 비상(하얀가루 독약)이 묻은 곶감과 저주를 담은 방양서(方禳書: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적는 글이나 부적)가 나왔다며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전하께서는 격노하셨다.
"중전의 방에서 어찌 이런 흉물이 나온단 말이냐!"
전하의 포효가 대들보를 울렸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그것은 임금을 해하려 함이 아니라, 나를 멀리하는 지아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지녔던 덧없는 방책이었다.
비상은 내가 자결하기 위함이었고, 부적은 전하의 총애를 되찾고 싶어 품었던 여인의 어리석은 욕심이었다.
전하께서 나를 멀리하고 다른 후궁의 처소를 찾으실 때마다, 나는 심장이 도려내지는 듯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의 절망은 이내 분노가 되어 터져 나왔다.
나는 궁인들이 보는 앞에서 전하의 발자국을 닦아내며 울부짖었고, 전하께 바칠 서신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적어 넣기도 했다.
실록은 내가 전하를 향해 이리 말했다고 기록했다지.
"그 눈을 빼고 발자취까지도 없애버리며 그 팔을 끊어버리고 싶다."
그래, 나는 그런 끔찍한 말들을 절망 속에서 내뱉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상처 입은 여인의 비명이었다.
사랑했기에 증오했고, 되찾고 싶었기에 저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1479년의 그날, 전하의 생신날이었다.
전하께서는 나의 처소를 찾으시는 대신 후궁들과 흥겨운 연회를 즐기고 계셨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나는 전하의 침소로 들이닥쳤다.
나를 만류하는 상궁들을 밀쳐내고 전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어찌 내게 이러십니까! 원자의 어미인 나를 어찌 이리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허공을 가르던 나의 손이 전하의 얼굴에 닿았을 때, 공기는 얼어붙었다.
전하의 용안에 선명하게 새겨진 손톱 자국.
그것은 국모로서 해서는 안 될 불충(不忠)이었고, 아내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다.
전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아, 이제 나의 국모 생활은 여기서 끝이로구나.
결국 전하께서는 나를 내치기로 하셨다.
원자의 어미를 사가로 내쫓는 그날, 궁궐의 하늘은 유난히도 시렸다.
나는 아직 젖도 떼지 못한 둘째 아들을 궁에 남겨둔 채, 눈물로 궐문을 나서야만 했다.
제5부: 폐비, 눈물로 지새운 3년 (1479년 ~ 1482년)
궁궐에서 쫓겨나 친정 사가에 머물던 3년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국모라 불리던 몸이 죄인이 되어 담장 안에 갇혔으니, 그 참담함이야 오죽했으랴.
버려졌다는 슬픔과 모멸감이 매일 밤 나를 짓눌렀다.
무엇보다 나를 미치게 한 것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특히 궁에 두고 온 젖먹이 둘째 아들.
그 아이가 내가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잃은 듯 통곡했다.
내 죄가 그 어린 것에게까지 미친 것만 같아 가슴을 쥐어뜯었다.
하지만 나는 무너질 수 없었다.
내게는 원자, 융이 있지 않은가.
내 아들이 이 나라의 세자이고, 훗날 보위에 오를 것이다.
어미가 폐서인으로 남아있는 것을 아들이 어찌 용납하겠는가.
나는 언젠가 반드시 복위되어 내 아들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조정의 일부 신하들이 원자의 생모인 나를 가엾게 여겨 처우를 개선해달라 주청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 소식은 내게 희망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신하들의 동정이 전하의 노여움을 더욱 부채질할까 봐, 그래서 나의 복위가 영영 멀어질까 봐 나는 밤낮으로 가슴을 졸였다.
시어머니이셨던 인수대비마마께서는 내관을 보내 나의 동태를 살피게 하셨다.
야사에 따르면 그 내관이 돌아가 "폐비가 뉘우치는 기색 없이 곱게 단장하고 있더라"고 고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곱게 단장한 것은 폐인처럼 무너지지 않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거늘, 그들은 그것마저도 '뉘우침이 없다'고 고하지 않았을까.
그분은 처음부터 나를 며느리로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나의 미천한 출신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으리라.
이제 나는 그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었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허나 그것은 나를 구원할 동아줄이 아니라, 내 목을 죌 올가미가 될 줄이야.
나의 존재 자체가 전하와 조정에 큰 부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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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묘 전경 |
결어: 피 묻은 적삼에 남긴 유언
1482년 8월 16일,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잿빛이었다.
좌승지 이세좌가 사약을 들고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올 것이 왔구나.
나의 길고 긴 고통도 이제 끝이로구나.
죽음 앞에서 내 눈앞에 어른거린 것은 오직 내 아들 융의 얼굴이었다.
어미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내 가엾은 아들.
내가 없으면 누가 그 아이를 지켜줄까.
새어머니와 이복형제들 틈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자라날까.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어머니 신씨의 손을 붙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나는 독약을 마시기 전, 내 어머니께서 보는 앞에서 피를 토해내어 내가 입고 있던 하얀 명주 적삼을 적셨다.
"어머니... 내가 죽으며 토해낸 이 피가 묻은 적삼을 부디 우리 아들에게 전해주시오. 어미의 이 원한을, 이 억울함을 훗날 아들이라도 알아주어야 하지 않겠소. 내 아들이 장성하여 임금이 되거든, 그때 이 적삼을 보여주며 어미가 어찌 죽어갔는지 똑똑히 일러주시오..."
어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시고 통곡하셨다.
나는 담담하게 약사발을 받아들었다.
쓴 약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나의 짧았던 영광과 길었던 고통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정말 권력에 눈이 먼 악녀였을까.
아니면, 지아비의 사랑을 갈구하고 아들을 지키려 발버둥 치다 끝내 파멸해버린 나약한 한 여인이었을까.
혹은, 내 아들이 보위에 오른 후를 염려한 전하의 가장 냉정한 정치적 계산에 희생된 제물이었을까.
나의 존재 자체가, 내 아들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전하께서는 그리 판단하셨던 게다.
사랑이 아니라, 사직의 안위가 내 목숨을 거두어갔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허나 나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나는 안다.
나의 피 묻은 적삼은 내 아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불꽃을 심을 것이다.
아들아, 융아... 부디 이 어미를 잊지 말아다오. 부디...
이 글은 폐비 윤씨를 ‘본인의 목소리’로 재구성한 1인칭 각색 서사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연산군일기 등 정사 기록에서 전해지는 사건의 뼈대를 참고하되, 그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대사·장면·시간의 흐름은 독자의 몰입을 위해 야사·후대 전승에서 전해지는 이미지와 필자의 상상력을 섞어 소설처럼 엮었습니다.
따라서 본문 속 “말 그대로의 대화”, “심리 묘사”, “단정적인 속내”는 역사적 사실의 확정이 아니라 이야기 장치로 봐주세요.
역사 공부나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기보다는, 한 시대의 권력·질서·사랑이 한 개인을 어떻게 몰아붙였는지를 느끼는 재미용 이야기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료 기준의 사실관계가 궁금하신 분은 실록 원문과 연구서를 함께 확인해 주시길 권합니다.
A first-person tale traces Queen Yun from hardship to ruin. Born in 1455, she loses her father and grows up poor, weaving cloth with her mother while dreaming of the palace.
In 1473 she is selected and enters court as Sukui, winning King Seongjong’s favor through modest, careful conduct.
After Queen Gonghye dies, Yun becomes queen in 1476 and soon bears the heir, Prince Yung.
Then anxiety and jealousy tighten the net: anonymous notes, rumors of poison and curses, and her desperate outbursts are treated as proof.
As the king turns to other consorts, she panics, is blamed, and is expelled in 1479, separated from her children.
For three years she lives in confinement, clinging to the hope that her son will restore her.
In 1482 officials bring the fatal cup.
She drinks, leaving a blood-stained undershirt and a plea that Yung one day know her tears, not only the hostile verdict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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