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 조미수호통상조약과 1895 시모노세키 조약 비교 분석: 조선 주권이 흔들린 국제법의 언어와 함정 (two key treaties in late Joseon Korea)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미친 영향 비교


1. 서론 (Introduction)

19세기 말 조선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거대한 전환기 한복판에 서 있었다. 

수백 년간 동아시아의 보편적 규범으로 작동했던 중국 중심의 조공 책봉 체제(朝貢冊封體制)는 서구 열강이 주도하는 근대적 국제법 체제의 도전에 직면했다. 

두 개의 상이한 세계관과 질서가 충돌하는 격랑 속에서, 조선은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교적 선택을 강요받으며 새로운 국제 관계의 장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체결된 두 개의 조약은 조선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은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전통적 중화 질서의 틀을 넘어 근대적 국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편,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 결과로 청나라가 일본과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下関条約)은 조선의 '독립'을 국제법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를 공식적으로 해체하는 결정타가 되었다. 

불과 13년의 시차를 둔 이 두 조약은 근대 국제법의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조선의 법적 지위를 상이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변질시켰다.

본고는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와 주권에 각각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근대 국제법의 형식이 제국주의의 실질과 결합할 때 약소국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각 조약의 체결 배경과 핵심 조항의 법적 함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두 조약이 형식적으로 내세운 '주권'과 '독립'의 명분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실질적 불평등 및 예속의 관계를 파헤칠 것이다.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역사적 역할을 했는지 고찰할 것이다. 

먼저,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 질서를 살펴보겠다.


2.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두 세계의 충돌

19세기 말 동아시아는 전통적 중화 질서와 서구의 근대 국제법 질서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패러다임이 공존하며 격렬하게 충돌하던 시대였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지배가 교차하는 이 두 세계의 충돌은, 전통적 관계 속에서 안정성을 유지해왔던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이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재정의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2.1. 전통적 조공 책봉 체제와 조선의 '소중화(小中華)' 의식

명청 시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책봉 체제에 의해 규정되었다. 

이 관계는 서구적 관점의 단순한 지배-피지배 관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교적 예교(禮敎)에 기반한 군신(君臣) 관계이자, 나아가 황제를 어버이로, 제후를 자식으로 여기는 군부신자(君父臣子) 관계로 인식되었다. 

이 질서 속에서 조선은 명나라의 신하를 자처하며 사대(事大)를 국가적 정체성으로 삼았다.

특히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인식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이는 조선의 예악(禮樂)과 문물이 중화의 제도를 따라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국을 방불케 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17세기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오랑캐(夷狄)인 청이 중원을 차지함으로써 중화 문명이 소멸했다고 보고, 이제 유일하게 중화 문명을 계승한 국가는 조선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즉, 조선은 중국 다음가는 문명국이 아니라,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정체성을 내면화했다. 

이는 당시 조선이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틀이었으며, 이후 서구와의 관계 설정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2.2. 서구 근대 국제법 질서와 불평등 조약 체제

19세기에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 들여온 근대 국제법 질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가 동등한 주권을 가진다는 '주권 평등'의 원리를 표방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규제하고 정당화하는 법적 장치로 기능했다. 

열강들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 강요한 난징 조약을 필두로, 후대 역사학계에서 '불평등 조약(unequal treaties)'이라 명명한 일련의 비대칭적 법률 관계를 동아시아 국가들에 강요했다.

이러한 불평등 조약 체제는 치외법권(extraterritoriality)과 최혜국 대우(most-favored-nation treatment) 조항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한다. 

치외법권은 조약 체결국의 국민이 상대국 영토 내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상대국의 사법권이 아닌 자국 영사의 재판을 받도록 규정하여, 상대국의 사법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한 국가가 제3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조건을 자동으로 자국에도 적용받도록 하여, 약소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형식적 평등의 외피 아래 실질적 지배를 관철하는 이 새로운 질서는 전통적 중화 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상이한 두 국제 질서가 충돌하는 가운데, 조선은 전통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청나라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서구 열강, 그리고 대륙 진출의 야욕을 가진 일본 사이에서 복잡한 외교적 격변에 휘말리게 되었다.


3.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근대 국제 질서로의 편입과 그 한계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이 수백 년간 유지해 온 전통적 중화 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나 서구 중심의 근대 국제법 체제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조선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청나라의 개입과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었다. 

이 조약의 내용과 그 이면에 담긴 법적 함의는 조선의 국제적 지위에 모호한 이중성을 부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朝美修好通商條約)


3.1. 체결 배경: 청국의 '속방(屬邦)' 유지 의도와 미국의 통상 이익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의 주선자는 역설적이게도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청나라였다. 

당시 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세력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이러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일환으로 청은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중재했다.

그러나 청의 의도는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청은 조약을 통해 조선이 근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더라도, 전통적인 종주-속방 관계는 변치 않음을 명확히 하려 했다. 

그 의도는 조미조약 체결 직후인 1882년 10월, 청이 조선과 체결한 「중조(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의 서문(序言)에 명백히 드러난다. 

『황해에서의 초국경 협력과 동아시아평화』 자료에 따르면, 이 서문은 "조선은 오랫동안 번봉(藩封)으로 있었으며" 이 장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뜻(中國優待屬邦之意)"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청나라가 조선을 근대 국제법의 주체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종주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3.2. 주요 조항의 법적 함의: 형식적 주권과 실질적 불평등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항들은 겉으로는 주권 국가 간의 평등한 약속처럼 보였으나, 그 실질은 조선의 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제1조 (거중조정 조항):

• 조선은 이 조항의 '필수상조(必相助)'라는 문구를 근거로 유사시 미국이 군사적 지원까지 포함한 실질적인 동맹 관계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이 조항은 분쟁 당사국 간의 대화를 주선하는 최소한의 외교적 협력 방식인 '주선(周旋, good offices)'을 의미할 뿐이었다. 

조선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분쟁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고자 했으며, 이 조항은 실질적인 안전 보장 장치로 작동하지 못했다.

• 제4조 (치외법권 조항): 

이 조항은 조선 내에서 미국인이 저지른 민사 및 형사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미국 영사관이 갖는다는 영사 재판권(consular jurisdiction)을 규정했다. 

이는 조선 영토 내에서 조선의 법이 아닌 미국의 법을 적용하는 체계를 확립한 것으로, 국가의 핵심 권력 중 하나인 사법 주권(judicial sovereignty)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이자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이었다.

• 제14조 (최혜국 대우 조항):

이는 조선이 향후 다른 나라에 더 유리한 조건을 부여할 경우, 그 혜택이 미국에도 자동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혜국 대우는 당시 국제 통상 조약의 표준적 조항이었으나, 국력이 비대칭적인 관계에서는 강대국에게 일방적인 이익을 영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조선은 특정 국가와 독자적인 외교 및 통상 정책을 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외교적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제약당하는 족쇄가 되었다.


3.3. 조약의 영향: 모호한 이중적 국제 지위의 형성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형식적으로 조선은 독립된 주권 국가로서 서구 중심의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 조항으로 인해 사법권과 관세 자주권 등 핵심 주권을 제약받는 불평등한 관계에 편입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조약은 조선을 매우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했다. 

전통적인 동아시아 질서 내에서는 여전히 청나라의 '속방'이었고, 동시에 갓 편입된 근대 국제법 질서 내에서는 주권이 온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주권 국가'였다. 

이러한 모호하고 이중적인 국제 지위는 이후 조선의 외교관들이 국제 관계를 헤쳐나가는 데 심각한 제약으로 작용했으며, 열강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선의 지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4. 시모노세키 조약(1895) 분석: '독립'의 명분과 주권의 상실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의 결과물로서,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분수령이었다. 

이 분석이 논증하듯이, 조약은 표면적으로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명시했지만, 그 실상은 청나라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일본의 독점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법적 장치에 불과했다. 

'독립'이라는 명분 아래 조선의 주권은 실질적으로 상실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4.1. 체결 배경: 조선 지배를 둘러싼 청일전쟁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톈진조약에 따라 청이 파병 사실을 통고하자, 일본 역시 자국 교민 보호를 명분으로 대규모 병력을 조선에 파견했다. 

동학농민군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일본은 철병을 거부하고 오히려 조선의 내정 개혁을 강요하며 청과의 군사적 충돌을 유도했다. 

결국 일본은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정권을 수립한 뒤 청나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처럼 청일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싼 제국주의적 다툼이었다.


4.2. 제1조의 법적 함의: 조공 책봉 체제의 공식적 해체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에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강요했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은 제1조였다. 

관련 자료들에 따르면, 이 조항은 청나라로 하여금 조선이 완전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하고, 조선이 청에 바치던 공물과 같은 모든 종속적 관계의 상징을 완전히 폐지하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은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전통적 종주권을 국제법적으로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로써 수백 년간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근간을 이루었던 양국 간의 조공 책봉 관계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해체되었다. 

청나라에게 이 조항은 단순히 속방을 잃는 것을 넘어, 서구 열강에 이어 후발 주자인 일본에게까지 패배한 국가적 굴욕의 상징이었다.


4.3. 조약의 영향: 일본 제국주의 예속의 서막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에 명시된 '조선의 독립'은 조선의 실질적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서구 국제법 체제의 언어(주권, 독립)를 전통적 중화 질서에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하여, 청국의 종주권을 제거한 자리에 법적 공백을 만들고 그곳을 일본이 독점적으로 차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즉, 조선에 대한 모든 외부의 간섭, 특히 청나라의 영향력을 합법적으로 배제하고 그 공백을 일본이 독점적으로 채우기 위한 법적 명분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독립국' 조선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노골적으로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약 체결 불과 몇 달 뒤에 일어난 을미사변(乙未事變)이다. 

일본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던 민비(閔妃)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독립국'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국정을 마음대로 유린한 것으로, 조약이 내세운 '독립'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을 청의 영향권에서 떼어내 일본의 완전한 지배 아래 두는 법적 통로를 열었으며, 이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적 역사의 서막이 되었다.


5. 비교 분석 및 고찰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두 조약을 종합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와 주권이 어떻게 변모하고 침탈당했는지, 그리고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전환되었는지를 다각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5.1. 형식과 실질의 괴리: '주권'과 '독립'의 명분

두 조약은 공통적으로 '주권 국가 간의 평등'이나 '완전한 독립'과 같은 근대 국제법의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실질은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깊은 괴리를 보인다. 

이들의 차이는 조선의 법적 행위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을 불평등한 파트너로 만들었을지언정, 조약의 당사자로서 여전히 독자적인 법적 실체로 인정하는 서구 법률 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평등'의 형식 아래 실질적 '불평등'을 강요한 것이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이 조약은 근대 국제법의 언어를 사용하여 조선의 행위성을 근본적으로 삭제했다. 

조선의 '독립'은 스스로 쟁취하거나 행사하는 권리가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외부 세력에 의해 부여되고 정의되는 지위로 전락했다. 

즉, '독립'의 명분 아래 실질적 '예속'을 강요한 것이다.


5.2. 주권 침해의 양상: 소극적 제약에서 적극적 박탈로

두 조약이 조선의 주권에 미친 영향은 그 성격과 강도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점진적으로 조선의 주권이 침해되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치외법권, 최혜국 대우 등을 통해 조선이 주권 국가로서 행사해야 할 권한의 일부를 '소극적으로 제약'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주권의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했다.

• 시모노세키 조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조약은 청의 종주권을 법적으로 '박탈'하고, 그 자리에 일본의 지배권을 이식함으로써 조선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했다. 

이는 주권의 불완전성을 넘어, 주권 상실과 식민지화로 향하는 결정적인 단계였다.


5.3.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전환

두 조약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전환 과정에서 서로 다른 단계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전통적 중화 질서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서구의 근대 국제법 질서가 침투하기 시작한 '과도기'를 상징한다. 

조선은 청의 속방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불평등한 조약 파트너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짐으로써, 두 질서가 위태롭게 공존하는 시대의 모순을 체현했다.

• 시모노세키 조약은 이 과도기를 종식시킨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 조약은 청일간의 전쟁이라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중화 질서를 완전히 해체했으며, 일본 중심의 제국주의적 질서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으로 자리 잡았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사건이었다.


6. 결론

본고의 분석이 보여주듯이,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은 19세기 말 격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두 조약은 각각 조선을 근대 국제법 체제로 편입시키고 전통적 중화 질서로부터 이탈시키는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그 결과는 조선의 온전한 주권 확립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조약은 공통적으로 근대 국제법의 언어와 형식을 빌렸지만, 그 실질은 조선의 주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에 '불완전한 주권'을 부여하며 국제 질서의 모호한 경계 지대에 세웠다. 

형식상 독립국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라는 족쇄에 묶인 불평등한 파트너였다. 

반면, 시모노세키 조약은 '독립'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조선의 실질적 주권을 박탈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합법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청의 종주권이 소멸된 자리는 조선의 자주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지배권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조선이 전통적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은 주권의 온전한 회복이 아닌 새로운 예속 관계로 귀결되는 역사적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불완전한 주권'에서 '명목상의 독립'으로 이어지는 이 법적 경로는, 제국주의 세력이 약소국의 주권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실질적으로 침탈하는 선례를 만들었으며, 동아시아에서 국제법의 보편적 약속을 공허하게 만드는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두 조약은 근대 국제법이 약소국에게 어떻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역사적 증거로 남아있다.


이 글은 19세기 말 조선이 전통적인 조공·책봉 질서에서 벗어나 서구식 근대 국제법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1882)과 시모노세키 조약(1895)이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비교해 정리한 글입니다. 

조약 조항(치외법권, 최혜국 대우, ‘독립’ 선언 등)은 가능한 한 원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석했고, 독자가 흐름을 따라가기 쉽도록 핵심 논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다만 ‘주권’, ‘독립’, ‘속방/종주권’ 같은 개념은 시대와 권력 관계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실제 작동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의 평가는 “형식(조약 문구)”과 “실질(정치·군사적 강제)”을 분리해 보려는 관점에 기반합니다.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지점은 단정 대신 논리의 근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술했으며, 더 깊은 확인이 필요하다면 각 조약 원문과 당시 외교 문서, 관련 연구를 함께 대조해 읽는 것을 권합니다.


This paper compares the 1882 Korea–U.S. Treaty of Amity and Commerce and the 1895 Treaty of Shimonoseki in shaping Joseon’s international legal status. 

The 1882 treaty brought Joseon into the Western treaty system and treated it as a contracting state, yet sovereignty was curtailed by unequal terms such as consular jurisdiction (extraterritoriality) and a most-favored-nation clause that narrowed legal and diplomatic autonomy. 

With Qing still insisting Joseon was a dependent tributary, Joseon occupied a fragile dual position: formally sovereign on paper, but constrained in practice. 

Shimonoseki’s “full independence” clause ended Qing’s suzerainty, but independence was granted and defined by outsiders, enabling Japan to fill the vacuum and tighten control on the road to colonization. 

Together, the treaties show how legal language could cloak imperial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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