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과 수궁가 : 동물 나라에 숨겨진 진짜 세상 이야기
별주부전 줄거리 요약
'별주부전'은 조선 시대에 널리 퍼진 고전 소설로, 병에 걸린 용왕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올라온 자라(별주부)와 꾀가 많은 토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 용궁의 위기: 바닷속 용왕(龍王)이 중병에 걸리자, 약으로는 오직 토끼의 간(肝)만이 특효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2. 별주부의 자원: 충신 자라(별주부)는 목숨을 걸고 육지로 나가 토끼를 데려오겠다고 자원합니다.
3. 토끼의 유혹: 육지에 도착한 별주부는 토끼를 만나, 용궁이 얼마나 화려하고 살기 좋은 곳인지를 현혹하며 꾀어냅니다. 순진한 토끼는 그 말을 믿고 별주부의 등에 올라 용궁으로 향합니다.
4. 간(肝)을 두고 벌어진 기지: 용궁에 도착한 토끼는 자신이 용왕의 약이 될 운명임을 깨닫고 경악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토끼는 기지를 발휘하여 "나의 간은 세상 만물을 넣어두는 보물 창고라서, 육지에 두고 왔다"고 속입니다.
5. 귀환과 탈출: 용왕은 이 말을 믿고 별주부에게 토끼를 다시 육지로 데려가 간을 찾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육지로 돌아온 토끼는 별주부를 비웃으며 도망치고, 별주부는 헛걸음한 채 빈손으로 용궁으로 돌아가 용왕에게 처벌을 받습니다.
별주부전의 상세 기원과 유래: 2,000년을 관통하는 토끼의 기지
1. 스토리의 원형: 인도 불경(佛經)에서 시작되다
별주부전의 가장 오래된 '유전자'는 놀랍게도 인도에서 발견됩니다.
그 기원은 기원전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경전의 설화집, 《자타카》(Jātaka)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형 설화: 《자타카》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전생(前生)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요 내용: 악어의 아내(또는 용왕)가 병에 걸려 원숭이의 심장(또는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원숭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악어를 속이고, "귀한 심장을 평소에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다닌다"고 말한 뒤, 악어의 등에 타고 강을 건너 육지로 돌아와 살아남습니다.
이 인도 설화는 불교가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함께 유입되었습니다.
여기서 '원숭이'는 육지의 꾀 많은 동물인 '토끼'로, '악어'는 물속의 충성스러운 동물인 '자라'나 '거북'으로 대체되며, 이야기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바다(水宮)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아는 별주부전의 기본 구도입니다.
2. 한국 고대 기록: '구토지설'(龜兎之說)의 정치적 무대
별주전 이야기의 한국적 정착은 삼국시대의 복잡한 정치 드라마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가 아닌, 외교적 위기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구토지설의 등장: 12세기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3세기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구토지설'(거북과 토끼 이야기)이라는 이름으로 이 설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7세기 중반,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에 시달리던 신라의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억류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합니다.
이때 김춘추는 고구려 보장왕(寶臧王)에게 이 구토지설을 인용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며 탈출의 기회를 얻습니다.
설화 자체의 내용은 별주부전과 거의 동일합니다.
용궁에서 위기에 처한 토끼가 간을 두고 왔다고 속이고 육지로 돌아와 거북을 조롱한다는 내용(무사히 탈출후 당나라와 연합)과 같습니다.
구토지설의 의의: 이 기록은 별주부전이 적어도 7세기부터 한국에 유입되어 상류층의 지식층에게도 널리 알려졌음을 증명하며, 단순한 민담을 넘어 재치와 기지를 통한 위기 극복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3. 고려와 조선 초: 문인들의 지적 유희와 전승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에 이르러 구토지설은 여전히 문인(文人)들의 문집(文集) 속에서 짧은 일화나 교훈적인 이야기로 전승되었습니다.
문헌 기록: 고려의 이인로(李仁老)가 쓴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등 여러 문헌에 구토지설과 유사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기의 기록들은 아직 독립적인 장편 소설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며, 주로 교훈적이거나 해학적인 일화로 다루어졌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간을 두고 왔다고 속인 토끼가 거북이를 조롱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정적(靜的)인 서술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문헌들을 통해 설화는 꾸준히 지식층 사이에서 유통되며 생명력을 이어갔고,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배경 설정이 점점 더 정교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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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주부전 |
'수궁가'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는 바로 그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수궁가'는 단순히 동물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넘어, 그 속에 인간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수궁가'의 주요 무대인 바닷속 '수궁'과 뭍의 '육지'가 각각 어떤 사회를 상징하는지, 그리고 그곳에 사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암시하는지 함께 탐색해 보겠습니다.
동물 나라에 빗대어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 떠나볼까요?
우리의 첫 번째 여정은 바로 위기에 빠진 바닷속 나라, 수궁입니다.
1. 위기에 빠진 바닷속 나라, 수궁(水宮)
1.1. 절대 권력자, 용왕의 고민
'수궁가'의 이야기는 남해 용왕(광리왕)이 큰 병을 얻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새로 지은 '영덕전'에서 '군신빈객'을 모두 모아 성대한 잔치(대연)를 열고 즐기다 과음한 탓에 병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화려한 궁궐에서 큰 잔치를 여는 모습은 그의 절대적인 지위와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절대 권력자 용왕도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절망적인 심정을 토로합니다.
"탑상(榻床)을 탕탕 뚜다리며 탄식허여 울음을 운다. 용왕의 기구(寄軀로)되 괴이한 병을 얻어... 화타(華陀) 편작(扁鵲)이 없었으니 어느 누구가 날 살릴거나"
이 대사는 천하를 호령하는 용왕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2. 엄격한 질서의 세계, 수궁
수궁은 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세계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영덕전'이라는 궁궐의 이름, '군신빈객'과 함께한 '대연' 등의 표현은 수궁이 왕을 정점으로 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잡힌 봉건 왕조 사회와 매우 닮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징은 용왕의 병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도사가 나타나 왕의 병을 진단하고 온갖 약재와 침술을 논하는 등, 용왕 한 사람의 문제가 곧 나라 전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모든 신하가 왕의 명령에 따라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사회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이는 군주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과음으로 인한 병)가 국가 전체를 마비시키는 위기로 번지는, 중앙 집권 체제의 취약성을 날카롭게 꼬집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별주부가 목숨을 걸고 찾아간 뭍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다와는 전혀 다른 육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2. 소란스러운 뭍의 세상, 육지
2.1. "내가 어른이 아니더냐!": 끊임없는 서열 다툼
별주부가 육지에 도착해서 처음 목격한 것은 동물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며 다투는 '상좌다툼(上座다툼: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 장면입니다.
질서정연한 수궁과는 달리, 육지 세계는 뚜렷한 지배자 없이 저마다 자신의 '근본'과 '자격'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다투는 혼란스러운 공간입니다.
특히 봉황새와 까마귀는 서로를 헐뜯으며 자신이 윗자리에 앉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 봉황새의 주장: "공부자도 내 앞에서 탄생허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 까마귀의 주장: "천하에 반포은(反哺恩: 자식이 자라 늙은 어버이를 봉양하는 은혜)을 내 홀로 알었으니 천하에 비금주수(飛禽走獸) 효자는 나뿐인가"
참 재미있지 않나요? 뚜렷한 지배자가 없는 혼란한 세계에 사는 이 동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유교적 위계질서의 핵심 가치인 신성한 혈통(봉황새)과 효(까마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이기적인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명분만 내세우며 싸우는 동물들의 모습은 뚜렷한 지배층 없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2.2. 서로를 헐뜯는 동물 사회
육지 동물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며 서로를 헐뜯기 바쁩니다.
예를 들어, 부엉이는 까마귀의 효심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니 심정 불칙(不則)하야 열두가지 울음을 울어 과부집 낭기 앉어 울음을 울어..."
이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불길하다는 약점을 공격하여 그의 자격을 깎아내리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지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 비정하고 경쟁적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모습을 통해 '수궁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3. 수궁과 육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3.1. 두 세계 비교하기
'수궁'과 '육지'는 서로 다른 사회 구조와 모습을 상징하며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두 세계의 특징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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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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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 (바닷속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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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뭍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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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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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 집권적 왕조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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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지배자 없이 서열을 다투는 혼란한 경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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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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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위계적이고 질서 잡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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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이기적이고 분열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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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용왕과 동물들이 보여주는 권력의 모습
'수궁가'는 이 두 세계의 모습을 통해 '권력'의 허망함과 어리석음을 이야기합니다.
• 용왕은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병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권력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 육지의 동물들은 실질적인 힘도 없는 '상좌'라는 보잘것없는 서열을 두고 다투며 권력욕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수궁가'는 절대 권력을 쥔 지배층(용왕)과 보잘것없는 명분을 내세우는 피지배층(육지 동물들) 모두의 허황된 권력욕과 어리석음을 풍자합니다.
이처럼 '수궁가'는 동물들의 세계를 빌려 지나간 시대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재하든 상상 속의 것이든 지혜와 성찰 없이 추구하는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을 비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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