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쿄토(교토)의 밤을 집어삼켰다.
그 어둠을 찢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1582년, 혼노지(오다 노부나가가 숙박하던 사찰)는 지옥의 입구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칼날, 그리고 배신자의 이름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아케치 미쓰히데(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으나 반란을 일으킨 인물)의 군세가 혼노지를 포위했다.
불길 속, 한 거대한 그림자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갑옷도 없이, 검은 피부를 드러낸 채 검을 휘두르는 사내.
그의 이름은 야스케(오다 노부나가의 아프리카 출신 사무라이).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고, 칼은 번개처럼 번뜩였다.
하지만, 그의 주인 노부나가(천하통일을 꿈꾼 영웅)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였다.
"더 이상 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야스케. 나의 삶은 여기까지다."
노부나가의 목소리에는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
"노부나가 님..."
야스케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단단했던 그의 심장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야스케에게 말했다.
"너는 나의 특별한 검이었다. 이제 자유를 찾아 너의 길을 가라."
야스케는 눈물을 삼키며 노부나가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주인에게 남은 유일한 유품인, 칼 한 자루를 쥐었다.
그 칼은 야스케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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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케 전설 일러스트 | The Legend of Yasuke (illustration)" Public Domain(United States Marine Corps via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야스케의 원래 이름은 야쿠부(아프리카에서의 이름).
모잠비크의 작은 부족 출신으로 전해진다(야스케의 출신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여러 설 중 하나를 차용).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체격과 힘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의 평화로운 삶은 포르투갈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되면서 송두리째 무너졌다.
쇠사슬에 묶인 채 대양을 건너는 고통스러운 여정.
그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그 과정에서 그의 마음속에는 복수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타올랐다.
인도 고아(포르투갈의 식민지 거점)에 도착한 그는 예수회 선교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일본 선교를 총괄하던 이탈리아인 선교사)의 눈에 띄어 그의 시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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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초상 | Portrait of Alessandro Valignano"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발리냐노는 야쿠부의 강인함과 지성을 높이 샀지만, 그를 여전히 '노예'로 대했다.
야쿠부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자신을 구원해준 존재였지만, 동시에 자유를 속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발리냐노를 따라 마카오, 그리고 결국 일본 땅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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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반 병풍, 포르투갈 상인 입항 | Nanban Folding Screen, Portuguese traders arriving"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1581년 발리냐노 일행이 교토에 들어왔을 때,
야스케를 보려는 인파가 몰려 예수회 거처 대문이 부서지고 부상자까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부나가도 소문을 듣고 “흑인을 보고 싶다”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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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다 노부나가 초상 | Portrait of Oda Nobunaga"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발리냐노는 오다 노부나가를 알현하기 위해 아즈치성(노부나가의 거점)을 찾았다.
야쿠부는 발리냐노의 호위병으로 동행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저녁, 야쿠부는 노부나가와 처음 대면했다.
노부나가는 처음 보는 그의 검은 피부에 호기심을 보였다.
"저 피부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노부나가는 야쿠부의 피부를 직접 문질러보기도 했다.
노부나가는 처음에 피부가 먹물인지 확인하려고 상반신을 씻기게 했다.
옆에서 자녀·친족들이 지켜보았고, 조카가 야스케에게 돈을 건넸다는 대목도 전한다.
그리고 야쿠부의 압도적인 체격과 위엄에 감탄했다.
노부나가는 야쿠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야쿠부는 노부나가의 질문에 유창한 포르투갈어로 답하며 자신의 지성을 드러냈다.
발리냐노는 노부나가에게 서양의 진귀한 문물과 함께 야쿠부를 선물로 바쳤다.
사실 ‘선물’이라기보다 알현과 협의 끝에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배속,
이름(야스케)를 받고 검·거처·봉록을 받은 것으로 정리된다(사료 종합).
야스케는 처음으로 '소속'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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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즈치성 도해 | Azuchi Castle illustration"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그는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노부나가는 야스케를 자신의 가장 특별한 가신으로 대우했다.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곁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문화를 익혔다.
노부나가는 야스케의 독특한 시각을 존중했고, 그에게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야스케가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를 둘러싼 질투와 음모도 시작되었다.
기존의 사무라이들은 이방인인 야스케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야스케의 존재를 '노부나가의 기이한 취미' 정도로 치부하며 그를 멸시했다.
특히 시바타 가쓰이에(노부나가의 중신)와 하시바 히데요시(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 인물) 등 야스케의 등장이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가신들은 야스케를 견제했다.
하지만 야스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야스케는 노부나가를 따라 여러 전장을 누비며 그의 뛰어난 전투 실력을 증명했다.
특히 야마시로(교토 일대)의 반란군 진압에서는 야스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거대한 체구와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압도하며 노부나가의 신임을 더욱 굳건히 했다.
1582년 봄 다케다 정벌 이후 영지 순시 때,
야스케가 노부나가 곁을 따르는 모습을 이에타다가 직접 봤다고 기록했다.
노부나가의 신뢰는 야스케에게 큰 힘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야스케는 점차 노부나가의 사생활에까지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아자이 나가마사의 부인)와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는 야스케를 향한 노부나가 가문의 의심을 깊게 만들었다.
오이치는 남편을 잃고 노부나가의 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이방인 야스케와 고귀한 혈통의 오이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야스케는 오이치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오이치는 야스케에게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꼈다(전승).
그러나 이는 야스케의 입지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오이치와 야스케의 관계를 의심하는 일부 가신들은
야스케를 노부나가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계략을 꾸미기도 했다.
야스케는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노예 신분에서 사무라이가 된 야스케.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인지, 아니면 노부나가의 또 다른 소유물인지 혼란스러워했다.
노부나가는 야스케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자신의 특별한 '소장품'처럼 대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총애 속에서 자유와 종속의 모순을 동시에 느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야스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때때로 감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이로 인해 노부나가와 다른 가신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특히 그는 노부나가의 가혹한 처사에 반발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충성심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1582년 6월 21일 새벽, 혼노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곁을 지켰다.
혼노지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세에 의해 포위되었고, 노부나가는 절망에 빠졌다.
"배신당했다. 나의 꿈은 여기까지인가."
노부나가의 탄식에 야스케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야스케는 끝까지 노부나가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는 불타는 혼노지의 잔해 속에서 미쓰히데의 군사들과 맞서 싸웠다.
야스케의 검은 마치 악마의 춤처럼 날카롭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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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노지 전투 목판화 | The Battle at Honnō-ji (woodblock print)" Public Domain(MFA Boston via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그러나 역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아들 오다 노부타다(노부나가의 아들이자 후계자)와 함께 니조성(노부나가의 거처 중 하나)으로 향했다.
하지만 노부타다 역시 미쓰히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혼자 남은 야스케는 미쓰히데의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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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조성 전경 | Nijō Castle, Kyoto"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미쓰히데는 야스케의 처분을 두고 고민했다.
야스케의 충성심은 미쓰히데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야스케가 이방인이었기에,
그리고 그가 노부나가의 가신이었기에 그를 죽일 명분이 없었다.
결국 미쓰히데는 야스케를 예수회에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쓰히데의 명령은 야스케에게 충격과 굴욕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노예로 끌려와 사무라이가 되었지만, 결국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야스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주인도, 명예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을 따라 일본을 떠나야 했다.
그는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하사한 검을 꽉 움켜쥐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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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케치 미쓰히데 초상 | Portrait of Akechi Mitsuhide" Public Domain(위키미디어 공용) 위키미디어 공용 |
일본을 떠난 야스케의 행적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일본과 서양의 기록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야스케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신의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추정).
또 다른 기록에서는,
그가 일본을 떠나지 않고 예수회의 보호를 받으며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한다(역시 추정).
이 이야기에서는, 야스케가 일본을 떠난 후 다시 자유를 찾아 대양을 건너는 여정을 그린다.
그는 노부나가가 하사한 칼을 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야쿠부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사무라이, 야스케였다.
그는 일본에서 배운 검술과 정신으로 자신을 지키며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그는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모두 간직한 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야스케의 이야기는 후대에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낳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야스케가 단순히 노예였을 뿐, 정식 사무라이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논란).
반면 다른 학자들은 야스케가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았으며,
사무라이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논란).
최근에는 야스케를 주인공으로 한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역사 왜곡,
블랙워싱 등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스케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다양성과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개인의 투쟁을 보여준다.
야스케는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존재에서, 이제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검은 피부를 가진 사무라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인물이다.
야스케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선 존재들의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는 영원한 전설로 남아있다.
이 글은 신뢰할 수 있는 1차·권위 자료(예수회 연례서, 루이스 프로이스 서간, 『신장공기(信長公記)』 등)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해석이 갈리는 대목은 과도한 단정을 피하고 필요한 범위에서만 최소 보강을 했습니다.
사실 오류나 더 나은 사료 제보를 환영합니다.
확인 즉시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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