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등잔 불빛이 문짝의 옹이를 또렷하게 만들었다.
막딘찌(Mạc Đĩnh Chi, 1280–1350, 쩐 왕조(1225년~1400년 베트남일대) 장원급제·외교관)는 종이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러 평평하게 폈다.
지문에 기름기가 남지 않게 손을 먼저 씻는 버릇이 있었다(전승).
그는 가난했고, 키가 작았으며, 얼굴 생김새로 놀림을 받았다(전승).
하지만 글씨는 단정했고, 문장은 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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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딘찌 사당 전경, 하이즈엉 남싹” / “Mạc Đĩnh Chi Temple, Nam Sách, Hải Dương” Wikimedia Commons, PD-user(공개저작물). 위키미디어 공용셜 |
그의 집은 한동안 등잔기름을 아껴야 했다.
밤마다 필사를 돕던 작은 아이가 하품을 하면, 막딘찌는 “이름을 먼저 정확히 부르자”고 말했다.
벼와 콩, 새와 나무, 물과 길.
잘못 부르면 일이 틀어진다고, 그는 늘 적었다.
그 습관은 그가 훗날 외교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홍강 평야에 더운 바람이 불던 1304년, 그는 장원급제라는 첫 문을 열었다.
장원급제(狀元, 최상위 합격자).
문(文)과 시(詩), 그리고 수사(修辭 언어표현기법)의 결합으로 왕 앞에 불려갔다.
“작지만 넓은 자.”
평가가 이렇게 적혔다(전승).
작은 몸, 넓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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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문묘 규문각” / “Khuê Văn Các pavilion, Temple of Literature (Văn Miếu), Hanoi”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셜 |
그는 궁정의 사(史)를 더듬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선대의 외교문서, 국경에서 주고받은 문안, 사절단의 길.
문장은 예로 시작해 ‘쓸모’로 끝나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학문이 생활을 놓치면 소용이 없다.
그의 글은 늘 사람에게 닿았다.
그가 처음 대륙으로 떠난 날, 하늘은 눅눅했다.
작은 상자에는 도장과 봉서, 왕의 뜻이 들어 있었다.
도시의 문(門)은 크고, 사절단이 서면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그에게 허락된 것은 큰 정문이 아니라, 측문이었다(전승).
“번국(藩國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이나 속국)의 사신은 작은 문으로 드나든다.”
막딘찌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문지기에게 물었다. “작은 문은 누구를 위한 문인가.”
“하급과 개, 수레.”
문지기는 짧게 말했다(전승).
막딘찌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문가에 서서 띠 두른 기둥을 손으로 두드렸다.
“중요한 외교는 예를 갖춘 자리에서 합니다. 측문 대우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가 돌아섰다는 판본이 있다(전승).
또 다른 판본에선, 그는 일부러 그 문을 통과한 뒤 바닥의 먼지를 털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개와 수레의 문길은 지나왔으니, 사람으로서의 일을 하러 큰전으로 가자”(전승).
두 판본 모두 ‘예를 지키되, 모욕은 그대로 돌려준다’는 그의 방식을 보여준다.
대전(大殿)에선 벽 두께가 소리를 눌렀다.
황제는 웃으며 물었다.
“너는 작은 자다. 큰 나라의 앞에서 무엇을 믿고 서는가.”
막딘찌는 대답했다.
“작지만, 무거운 이름을 갖고 왔습니다.”
그리고 봉서를 내밀었다.
궁정의 시험은 여러 형태였다.
어떤 날엔 난문(難文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내려와 구절을 채우게 하고,
어떤 날엔 격률(格律 윤리설의 용어)을 바꿔 급히 율시를 짓게 했다(전승).
막딘찌는 흥분하지 않았다.
그는 늘 ‘이름부터 정확히’라고 시작했다.
원 조정의 문신이 상련을 던졌다.
“十口心思 - 생각은 먼저 나라·집·부모로 향한다.”
막딘찌는 지체하지 않았다.
“寸身言謝 - 몸과 말로 하늘·땅·임금께 사례한다.”
글자를 쪼개고 합치는 장난 같았지만, 예(禮)와 충(忠)을 말하는 방식이었다(전승).
다만 이 대련은 지역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전승이어서, 정확한 귀속은 논쟁이 남아 있다(논쟁).
그는 두 번 대륙에 가서 대우를 받았다고 전한다(전승).
한 번은 도회의 벽돌과 문양을 칭찬하는 서문으로 마음을 열었고,
또 한 번은 강을 건너는 군량과 말을 예로 들어 국경 무역의 길을 열었다(전승).
그의 외교는 복잡하지 않았다.
상대를 높이고, 우리의 필요를 문장에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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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파 문자(원나라의 문자) 황제 교서(원)” / “Imperial edict in ’Phags-pa script (Yuan dynasty)”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셜 |
연경에서 그는 고려 사신과 시문을 겨루고 벗이 되었다 한다.
어떤 전승은 그 인연이 혼인으로까지 이어져 후손이 생겼다고 적는다(전승).
그러나 양국의 정사·문헌으로 확증되지 않아, 학계의 표준 견해는 “전승으로 남겨 둘 것”이다(논쟁).
때로 그는 조롱당했다.
작고 못생겼다는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전승).
하지만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말했다.
“크기가 큰 것이 아니라, 이름이 큰 것이다.”
그 말은 자신에게 먼저 한 것이었다.
그의 집엔 서랍이 여러 칸이었다.
각 칸에는 다른 색의 끈이 감긴 종이 묶음이 들어 있었다.
빨강은 외교, 파랑은 제도, 검정은 시.
그는 사소한 부호로 삶을 정리했다.
그 습관은 먼 길에서 그를 지켜줬다.
궁정에서 돌아오던 날, 그는 어머니 앞에 앉았다(전승).
어머니는 손을 씻고 등잔불을 조금 밝게 했다.
“작은 몸으로 큰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니.”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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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딘 포민사 석탑(쩐 왕조)” / “Phổ Minh Pagoda tower (Trần dynasty), Nam Định” Wikimedia Commons, CC BY-SA 3.0/GFDL. 위키미디어 공용셜 |
그는 젊은 관리들을 자주 불러 책상 앞에 세웠다.
“문장은 칼이 아니다.
칼은 찌르는 데 쓰이고, 문장은 잇는 데 쓰인다.”
그가 외교에서 배운 것은 칼로 얻는 이익은 짧고, 문장으로 얻는 이익은 길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문장은 다리를 놓았다.
막딘찌는 때로 질투를 받았다.
궁중의 시회(詩會)에서 그의 구절이 칭찬받으면, 누군가는 흠을 찾았다(전승).
그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구절은 살리고, 사람은 살려라.”
그의 원칙은 언제나 예로 돌아왔다.
그의 연애담은 길지 않다.
혼인은 검소했고, 집안은 조용했다(전승).
아내는 종이 묶음을 정리했고, 아이는 글자 모양을 외웠다.
막딘찌는 가족 앞에서 자주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바깥에서 받은 칭찬이 이 집의 법보다 클 수 없다.”
그는 한 번 큰 비판을 받았다(전승).
대륙의 예를 과장해 우리를 낮췄다는 말이었다.
그는 조용히 답했다.
“예를 높이면, 우리가 높아진다.
예를 낮추면, 우리가 작아진다.”
그리고 도서(圖書)를 더 살피고 문장을 더 가다듬었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제자를 통해 문장과 예를 남겼다.
각국의 문안 형식, 개봉 순서, 봉서의 접는 법.
작은 규칙이 전쟁을 멀리한다는 믿음.
그의 집에 찾아온 젊은 사신들이 떠날 때마다 그는 말끝을 낮췄다.
“부디 ‘이름부터’ 잊지 마라.”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작은 집은 더 작아졌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커졌다.
아이들은 “작지만 넓은 자”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꿈꿨다(전승).
그의 이름은 때로 “두 나라의 장원”이라는 별칭과 함께 불렸다(전승).
대륙에서 그의 시·예가 공인되었다는 전승 때문이다(논쟁).
그의 일화는 여러 갈래로 전해진다.
‘작은 문’ 사건.
십구심사 대련.
공주가 낸 난문에 답을 적었다는 이야기.
고려 사신과의 시문 대결.
궁정의 뜰에서 병풍 뒤 목소리만 듣고 인사를 올렸다는 이야기(전승).
어떤 것은 분명하고, 어떤 것은 전승이다.
그러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몸집보다 큰 일을 문장으로 옮겼다.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지 않고, 예로 돌려보냈다.
상대의 체면을 세우면서 우리 쓸모를 얻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막딘찌가 남긴 것은, 내겐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작지만, 무거운 이름.”
이름은 사람을 지킨다.
정확한 이름은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를 건너면, 작은 나라의 사신도 큰 전에서 목소리를 얻는다.
그의 사후, 몇몇 집안 족보는 그를 먼 후대의 다른 ‘막(莫)’ 가문과 잇는다(전승).
하지만 학계에선 혈통 연결의 고리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본다(논쟁).
그와 후대의 권력자는 같은 성을 썼지만, 이름의 무게는 다르다.
막딘찌의 이름은 예와 문장의 무게로 남았다.
그게 더 오래 간다.
어느 날 그의 제자가 묻는다.
“스승님, 대전 앞에서 두려움은 어디로 가나요.”
그는 웃었다.
“두려움은 이름 옆으로 간다.”
정확한 이름을 쓰면, 두려움은 자리를 잃는다.
그의 대답은 늘 같았다.
작은 문을 둘러싼 전승은 지금도 사람을 모은다.
어떤 이는 그가 돌아섰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일부러 통과한 뒤 말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두 이야기를 모두 적는다.
둘 다 그의 핵심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예로 모욕을 돌려보내는 태도.
막딘찌의 방에는 언제나 두 개의 물건이 있었다고 한다.
단정한 붓, 잘 닦인 도장(전승).
붓은 길을 만들고, 도장은 그 길을 굳힌다.
문장은 칼이 아니지만, 칼보다 오래 남는다.
그의 생애가 증명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문장도 짧다(전승).
“작다고 낮추지 말라.
크다고 교만하지 말라.
예가 우리를 잇고, 문장이 우리를 지킨다.”
그의 제자들은 그 말을 책 첫 장에 적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닫는다.
눈에 보이는 문은 크고 작을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의 문은 누구에게나 같다.
정확한 이름, 절제된 예, 사람을 잇는 문장.
막딘찌는 그 문을 열고 다녔다.
그래서 작은 몸으로 넓은 세상을 건넜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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