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글로벌 금융위기 완전정복: 서브프라임 모기지·MBS·CDO·CDS, 리먼 파산·AIG 구제, 도드-프랭크·바젤III 타임라인 총정리 (The 2008 Global Financial Crisis)


 2008 글로벌 금융위기: 탐욕이 빚어낸 죽음의 맹세, 대침체의 서막


아메리칸 드림의 달콤한 유혹과 금단의 열매

2000년대 초,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은 두 개의 큰 충격파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 기술주의 거품이 꺼진 닷컴 버블 (Dot-com Bubble) 붕괴였고, 다른 하나는 2001년 9.11 테러 (New York City와 Washington D.C.를 목표로 한 알카에다의 동시 다발 테러)였습니다.

기술주의 신화가 빠르게 꺼지고, 연이어 테러까지 겹치자 미국 경제와 금융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습니다. 

경기 침체를 막아야 했던 미연방 준비제도 (Fed, Federal Reserve Board, 미국의 중앙은행)는 강력한 부양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은 6%대에 달했던 기준 금리 (Key interest rate,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금리)를 13차례에 걸쳐 인하하며 2003년 6월에는 1%까지 낮추는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은 실물 경제 (Real Economy, 상품 생산 및 소비 활동)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 (Asset Market)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논쟁)

그는 자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와 기업의 부 (Wealth)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초저금리 정책은 돈이 부동산 시장 (Real Estate Market)으로 물밀듯이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배경에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었습니다. 

미국은 근로자들이 자신의 집, 즉 '내 소유의 집'을 가지면 모든 것이 긍정적인 순환을 시작하며 근로 의욕이 커진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서민들도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큰 목표였습니다.


"신용이 조금 낮더라도 상관없네. 집값은 계속 오르지 않나! 이들에게도 대출을 해주고, 집을 사게 해 주자!"


이러한 기조 아래,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라는 이름의 대출 상품이 탄생했습니다.

모기지 (Mortgage)란 주택을 담보로 한 주택 담보 대출을 의미하며,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옛 프랑스어 mort (죽음)와 gage (맹세)가 합쳐진 '죽음의 맹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서브프라임 (Subprime)은 돈을 빌리는 대출자 (Debtor)의 신용 등급 (Credit Rating) 중 가장 낮은 등급을 의미하며,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 (저소득층 혹은 신용 불량자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제공된 주택 담보 대출을 말합니다.


당시 미국의 주택 가격 지수 (House Price Index)는 1991년 100을 기준으로 2002년 168, 그리고 2007년에는 227로 치솟았습니다. (추정)

주택 가격 상승률은 이자율보다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령 대출을 갚지 못하더라도 담보인 집을 팔아버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탐욕적 믿음에 빠졌습니다.

여기에 파생 상품의 발달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위험 추구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금융계의 기막힌 연금술: 위험을 숨기다 (CDO의 탄생)

은행이나 대출 전문 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처럼 장기 대출에 돈이 묶이는 리스크 (Risk)를 피하고,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리스크를 덜고자 머리를 썼습니다. 

그들이 고안한 전략은 대출 비상환 리스크를 타인에게 떠넘기면서도 장기 대출을 단기 현금 흐름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금융회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차용증 (Loan Agreements) 수백만 장을 한데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서들을 가상으로 쪼개서 (Pool of mortgages) 새로운 상품으로 포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기지 담보부 증권 (MBS, Mortgage-Backed Securities)이었고, 이를 다시 묶고 쪼개서 만든 상품이 채무 담보부 증권 (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었습니다.


이 CDO (채무 담보부 증권) 상품들은 복잡한 구조로 인해 실제 부실 위험 수준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신용 평가 기관 (Credit Rating Agencies)들은 이러한 고위험 상품들을 '안전하다'고 평가하며 높은 신용 등급 (High Credit Rating)을 부여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증권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막대한 규모로 사들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가 만연했습니다.


"이 파생 상품의 핵심 기반은 신용 낮은 사람들의 대출이지만,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수백만 개의 대출을 섞어놓았고, 미국 전역에서 동시에 대규모로 대출을 못 갚는 일은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곧 수학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자산 가격 버블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자산 가격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높거나 같아야 하는데, 동일한 상승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통화량 (Money supply)은 자산 가격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통화량 증가는 불가능했습니다.


탐욕의 폭주, 시스템의 비합리성

1. 이중 플레이와 공매도: 시스템에 거는 은밀한 내기

집값이 끊임없이 오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 아래, 은행들은 돈을 마구 퍼주었습니다. 

고객과 은행,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점점 탐욕 (Greed)에 눈이 멀기 시작했습니다. 

대출자들은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고 싶어 했고, 은행들은 적절한 심사 없이 고위험 대출을 확대했습니다.

한편, 일부 금융 기관과 헤지 펀드 (Hedge Fund,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위험성이 높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펀드)들은 이 거품의 끝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마이클 버리 (Michael Burry,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였습니다. 

그는 이 주택 시장이 곧 붕괴할 것이라 예측하고 공매도 (Short Selling, 특정 자산의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행위)에 나섰습니다.


이때 핵심적인 상품인 CDS (Credit Default Swap, 신용 부도 스와프)가 등장합니다. 

CDS는 자신이 투자한 CDO (채무 담보부 증권)가 부도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 상품이었습니다.

투자자가 보험료를 내면, CDO가 부도날 경우 보상해 주겠다는 개념이었습니다. 

AIG (American International Group, 미국의 거대 보험사)와 같은 대형 보험사들이 주택 시장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엄청난 규모의 CDS를 판매했습니다. 

그들은 보험료만 계속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도덕적 해이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 같은 일부 금융기관은 투자자들에게 서브프라임 CDO를 팔면서도, 동시에 관련 CDS를 사들여 주택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이중 플레이를 했습니다.

이는 고객들에게 판매한 상품이 실패할 것을 믿으며, 그 실패에 돈을 건 행위였습니다.


마크 바움 (Mark Baum, 영화 《빅 쇼트》에서 스티브 아이스먼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을 연기했던 스티브 카렐 (Steve Carell)은 이런 구조를 비판하며 외쳤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만든 폭탄을 우리에게 팔아넘기면서, 몰래 그 폭탄이 터지는 쪽에 돈을 걸었다고? 이게 바로 월스트리트의 비즈니스인가!"


2. 위기의 카운트다운: 금리 인상과 거품 붕괴

2004년, 연준 (Fed)은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해 기준금리 (Key interest rate)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위적인 초저금리 (Artificial Low Interest Rate) 속에서 실제 저축 (Savings)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오인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실행된 잘못된 투자들이 문제의 핵심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금리 인상기 (Interest Rate Hike)와 맞물려, 서브프라임 대출의 대부분이 초기에는 저금리로 유지되다가 이후 변동 금리 (Variable Rate)로 전환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자 부담액 (Interest Burden)이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결국 2006년 말부터 주택 가격 (House Prices)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의 대부분을 대출로 샀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은 집값이 대출 잔액 (Loan Balance) 밑으로 떨어지는 역자산 (Negative Equity) 상태로 돌아서자, "집만 팔면 되지"라는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미국은 담보 매각액이 대출액보다 적더라도 담보만 포기하면 상환 의무가 사라지는 유한 책임 담보 대출 시스템이 상당히 많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상환 의지를 상실하며 디폴트 (Default, 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의 디폴트 사태는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Subprime Mortgage Crisis)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2007년 4월 뉴센추리 파이낸셜 (New Century Financial) (미국 2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이 파산을 신청했고, 2007년 8월에는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 (AHMI)도 파산했습니다.


미국 평균 주택 가격은 2006년 중반 대비 2008년 중반까지 약 20% 하락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폭락했습니다. 

이로 인해 MBS와 CDO의 가치는 폭락했고, 이 상품들을 보유하고 있던 국제 금융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대출 유형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2000~2010)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딜레마와 리먼 쇼크

1. 폭풍 전야: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2008년, 서브프라임 대출의 부실은 금융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전염 효과 (Contagion Effect)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채권 및 모기지 관련 투자가 많았고, 부채 비율이 굉장히 높았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리먼은 2007년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대규모 손실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리먼 (Lehman Brothers)의 경영은 불투명했으며, 대규모 부채를 숨기기 위한 장부 조작이 2001년부터 만성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리먼 내부에서는 '레포 105 (Repo 105)'라고 불렸던 수법으로 대차대조표 (Balance Sheet) 상 부채 규모를 줄이고 재무 건전성이 높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2008년 2분기에는 무려 500억 달러 (약 55조 원)의 부채를 숨기기도 했습니다.(논쟁)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KDB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한국 3대 국책은행 중 하나)이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인수를 시도했습니다. 

당시 산업은행 총재였던 민유성 (Min Yoo-sung) (산업은행 총재로 취임 직전까지 리먼 브라더스 서울사무소장)이 협상을 주도했으며,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리먼이 지고 있는 리스크를 이용해 1주당 가격을 고작 6.4달러 (당시 30달러에서 18달러까지 내려간 상황이었음)에 제시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논쟁)


그러나 당시 서울 외환 시장 (Seoul Foreign Exchange Market)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고, 국정 감사 등 여러 요인이 겹쳤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금융 전문가들이 한국에 와서 "이건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망했다. 우리한테까지 순서가 온 것이다"라며 뜯어말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산업은행은 2008년 9월 10일, 리먼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는 리먼에게는 최후의 생존 수단이 사라졌음을 의미했습니다.


2. 2008년 9월 15일: 리먼 쇼크 (Lehman Shock)

산업은행의 인수 포기 소식이 보도되자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의 주가는 하루 만에 45% 폭락했습니다. 

그리고 6일 뒤인 2008년 9월 15일 (한국의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리먼 브라더스는 뉴욕 남부 법원에 파산 보호 (Chapter 11)를 신청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는 당시 약 6,390억 달러 (약 706조 4,145억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미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리먼 (Lehman Brothers)의 파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정점이었으며,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참사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진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3. 글로벌 도미노 공포와 '퍼펙트 스톰'

리먼 (Lehman Brothers) 파산 당일, 뉴욕 증시 (New York Stock Exchange)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504.48포인트 (4.42%) 넘게 폭락했습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낙폭이었습니다.


다우지수 급락

리먼의 파산은 신용 시장 (Credit Market)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금융기관들 간의 대출 (Lending)이 중단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도미노 공포 (Domino Fear)가 확산되었습니다. 

금융 기관 간의 긴밀한 연결성 (Interconnectedness)으로 인해 시스템적 위험 (Systemic Risk)이 고조되었고, 다음 침몰 대상이 어디일지에 대한 불안감이 뉴욕 월가 (New York Wall Street)를 휩쓸었습니다.


다음 타자는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 (American International Group)였습니다. 

AIG는 리먼 (Lehman Brothers)과 달리 파산 직전에 미 정부의 구제금융 (Bailout)을 통해 국영화되었습니다. 

2008년 9월 16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ED)는 AIG에 850억 달러 (약 91조 7천억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했습니다. 

FED는 AIG의 무질서한 몰락은 이미 심각한 금융 시장의 취약성을 더 심화시키고, 특히 AIG가 전 세계 모든 재보험 (Reinsurance)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였기 때문에 AIG마저 무너지면 전 세계 모든 보험사들이 AIG의 손실을 떠안아 같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리먼 (Lehman Brothers)은 파산하게 놔두고, AIG는 살린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기준이 대체 무엇인가?"


이 결정은 '대마불사 (Too Big To Fail)'의 기준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다는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논쟁)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의 전 CEO인 리처드 펄드 (Richard Fuld)는 금융 위기 이후 7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탓이 아닙니다.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퍼펙트 스톰 (Perfect Storm,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상황) 때문이지요."


그는 오히려 금융위기의 책임이 주택담보인정비율 (LTV)을 더 낮추도록 한 정부 당국자와, 마치 집을 현금인출기 (ATM)처럼 생각한 집주인들에게 있다고 떠넘겼습니다. 

하지만 펄드 (Fuld)는 리먼 파산 직전에 개인 주식을 팔아치워 여론의 공분을 샀으며, 파이낸셜타임스 (FT), CNN, 타임 (TIME) 등으로부터 '사상 최악의 CEO'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좌) 리먼 브라더스 (우) AIG

4. 한국 경제의 직격탄

리먼 쇼크 (Lehman Shock)는 즉각적으로 한국 금융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처음 개장한 9월 16일, 국내 증시 (Korean Stock Market)는 당사자인 미국 시장보다도 더 심한 폭락세를 기록했습니다.

코스피 (KOSPI) 지수는 개장 초부터 1,400선이 힘없이 붕괴되며 전일 대비 6.10% 폭락한 1,387.75로 마감했고, 코스닥 (KOSDAQ) 지수는 무려 8.06% 추락했습니다. 

선물 지수 (Futures Index)가 급락하면서 '사이드카 (Sidecar,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조치)'가 발동되기도 했습니다.


외환 시장 (Foreign Exchange Market) 역시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원/달러 환율 (KRW/USD Exchange Rate)은 외환위기 (IMF Crisis) 이후 최대 폭으로 폭등하며 4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1,16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는 미국이 불안해지면 안전 자산 선호 현상으로 자금이 달러 (USD)로 몰리고, 한국처럼 구조적으로 취약하고 종속 변수 (Dependent Variable)인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손해가 적은 자금을 빼내 부족분을 메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몇 차례에 걸쳐 고환율 정책을 시사했는데, 이는 달러화 약세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오히려 환율을 끌어올리려 했던 정책이었고, 이후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때 잘 먹혀들지 않아 외환 보유고만 축내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환율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이 확대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 선호 현상에 의해 국내 주식 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 (Bank of Korea)은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통화 정책 (Monetary Policy)과 재정 정책 (Fiscal Policy)을 총동원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여섯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2008년 9월 5.25%였던 금리를 2009년 2월 2.00%까지 떨어뜨렸고, 미국, 중국, 일본 등과 통화 스와프 (Currency Swap Agreement, 외환 위기 시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계약) 계약을 체결하여 외화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대침체의 유산, 후대의 평가와 교훈

1. 금융 시스템의 대수술과 제한적 변화

리먼 쇼크 (Lehman Shock) 이후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 (Central Banks)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구제 금융 (Bailout)과 양적 완화 (Quantitative Easing, QE, 중앙은행이 시장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를 단행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금융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도드-프랭크법 (Dodd-Frank Act)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금융 개혁안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금융 서비스 감독위원회, 금융 소비자 보호청 등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고, 증권화 시장, 장외 파생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신용 평가 기관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법에는 은행의 고위험 자산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 (Volcker Rule)도 포함되었습니다.(볼커룰은 은행의 자기매매(Proprietary Trading) 제한과 헤지펀드·사모펀드 투자 한도 제한)


국제적으로도 금융 규제가 강화되었습니다. 

바젤 III (Basel III) 협약 등을 통해 은행의 자본 건전성 (Capital Adequacy) 및 유동성 (Liquidity) 규제를 높였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 (SIFIs)에 대한 규제 및 그림자 금융 (Shadow Banking) 규제 등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러한 금융 규제 변화가 제한적인 형태의 보조적 변화 (Auxiliary Change)에 머물렀다고 평가합니다. 

위기 이전에 국제 금융 규제의 중핵 원리 (Core Principle)였던 '효율적 시장 가설 (Efficient Market Hypothesis)' (국제 금융 시장은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의 존재론적 가정은 유지되었고, 단지 거시 건전성 규제 (Macroprudential Regulation)와 자본 이동 관리 방안 (Capital Flow Management Measures)이라는 보조 가설이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 (Paradigm Shift)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적 금융 지구화 (Neoliberal Financial Globalization)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2. 과실과 책임: 모두가 공범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실수가 아닌, 모두가 공범이었던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 은행/금융기관의 과실: 탐욕스러운 은행들은 끊임없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맹신 아래, 신용도 낮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위험을 숨긴 복잡한 파생 상품 (MBS, CDO)을 만들어 팔아치웠습니다. 특히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와 같은 일부 금융기관은 하락에 베팅하는 이중 플레이를 벌이며 도덕적 해이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 규제 당국의 과실: 당시 미국의 금융 당국은 규제 완화 기조 (Deregulation) 아래 금융 기관들의 무분별한 대출 관행이나 파생 상품 설계, 거래 등을 방치했습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Commercial Banks)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이들의 탐욕에 브레이크를 걸 제도가 부족했습니다.

• 신용 평가 기관의 과실: 이들은 고위험의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들에 '안전하다'는 높은 신용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고 무능함을 드러냈습니다.

• 대출자 (소비자)의 과실: 마치 집을 현금인출기 (ATM)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상환 능력 (Repayment ability)을 넘어서는 무분별한 대출을 받은 순진하거나 탐욕스러운 주택 구매자들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위기 이후에도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는 공매도 덕분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2009년에 130억 달러의 이익을 내고 직원들에게 두둑한 보너스 (Bonus)가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3. 문화적 영향과 후대의 평가

2008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사건을 넘어섰습니다. 

위기는 사회 불평등 (Social Inequality)과 불안정성을 심화시켰고, 부의 양극화 (Wealth Polarization)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고소득층 이상의 사람들은 자산 증식의 기회를 다시 가질 수 있었으나, 일반 서민들은 자산 축적의 기반을 상실했습니다.


(Bail Out People) 국민을 구제하라!


특히 미국에서는 이 사태를 겪기 전까지 공무원 (Public Servant)이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아니었으나,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회사가 문을 닫고 실업자가 급증하자, 월급은 적지만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는 풍조가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역으로 공무원 선호 풍조가 일어난 것은 이 사태가 미국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 사건임을 시사합니다. 

한국인에게 IMF 외환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인들에게 2008년 금융 위기는 그 삶의 질을 이전으로 되돌리지 못한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이 위기를 다룬 가장 유명한 문화적 산물은 영화 《빅 쇼트 (The Big Short)》 (2015, 실제 인물 마이클 버리와 마크 바움 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금융 위기를 가장 영화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복잡한 금융 용어 (CDO, CDS)를 유명 인사 (샤를리즈 테론, 셀레나 고메즈 등)가 유머러스하게 설명하는 '브레이킹 더 포스' (Breaking the Fourth Wall) 형식의 내레이션을 사용해 대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영화는 이 사태를 "인간의 탐욕과 시스템 실패의 교차 지점"으로 묘사하며, "위기 전환점은 예외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왜곡"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연출자는 관객에게 "연봉 40만 달러 넘는 금융맨 1%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며, "이 모든 일 뒤에는 대체 누가 책임을 졌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습니다.


2015년작 빅 쇼트

역사로 배우는 교훈

"이봐, 자네, 자네는 이 모든 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탐욕은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았지. 신용이 낮은 서민부터 시작된 작은 부실이, 복잡한 금융상품이라는 연금술을 거치며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었어."


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 영화 《빅 쇼트》의 트레이더 제이미 역)이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했던 것처럼,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결국 인간의 비합리성 (Irrationality)과 탐욕이라는 요소들이 뭉쳐 만들어낸 거대한 폭탄이 터진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경제는 순환하며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우리에게 시스템의 안정성 (Stability)이 개별적인 효율성 (Efficiency)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위험성을 고려하는 행위자들이 모여도, 그들의 상호작용 (Interaction)은 금융 시스템 전체의 체계적 위험 (Systemic Risk)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구성의 오류 (Fallacy of Composition)'가 존재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2007년 미국 가계 재산 압류 차트

우리는 이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눈앞의 이익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Overconfidence)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언제나 취약하며, 그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은 바로 경계와 성찰하는 인간의 몫입니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 (Trust)이며, 탐욕이 신뢰를 갉아먹을 때 '죽음의 맹세' (Mortgage)처럼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는 금융 지식뿐 아니라, 탐욕을 경계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책임감을 고민하는 자세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주류 연구·공식 보고서·1차/2차 사료를 우선으로 서사를 구성했습니다. 

확인 가능한 사실을 중심으로 하되, 불확실하거나 가설적 요소는 본문 안에서 [논쟁]/[전승]/[추정]으로 즉시 표기했습니다. 

인물의 내면·대화 등 극적 장면은 최소한의 창작으로, 사실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용했습니다. 

 연대·지명·혈연·수치 등 이견이 큰 대목은 보수적으로 기술하고 대표 견해를 병기했습니다. 

오탈자·사실 오류 제보와 추가 사료 추천을 환영합니다.


The 2008 crisis sprang from post-dot-com/9-11 ultra-low rates that inflated a U.S. housing bubble and subprime lending. 

Banks sliced mortgages into MBS/CDOs, misrated as safe; some sold them while hedging with CDS. 

As rates rose and prices fell, defaults exploded, Lehman collapsed, and credit froze.

Bailouts (AIG), QE, and rules (Dodd-Frank, Basel III) followed. 

The shock exposed moral hazard, systemic risk, wider inequality, and that finance runs on trust—not g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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