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사리 창건자 켄 아록 - 토마펠 반전에서 건국까지 (Ken Arok)



 토마펠(Tumapel, 오늘날 말랑 Malang 일대의 지역 권력 중심)은 산자락과 강이 만나는 고장이다.

아침이면 능선길을 따라 사람들이 브란타스 강(Brantas, 동자바의 큰 강) 나룻터로 내려간다.

곡식 자루는 저울에 오르고, 사람들은 부역과 세금 때문에 하루가 비어 간다.

이곳에서 자란 켄 아록(Ken Arok, 싱하사리 창건자)은 

어려서부터 “길과 세금”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눈으로 배웠다.

그는 언젠가 이 질서를 고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토마펠을 다스리던 사람은 퉁굴 아메퉁(Tunggul Ametung, 토마펠 지방장관)이었다.

그의 통치는 거칠었고, 부역과 징세가 잦았다.

장정들은 강을 건너 곡식을 내고 돌아오면 또다시 산길에 불려 나갔다.

사람들은 불만이 쌓였지만, 누구도 앞장서 바꾸지 못하고 있었다.

켄 아록은 “힘”과 “명분”이 동시에 있어야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he Beginning of Long story (Ken Arok & Ken Dedes) 
CC BY-SA 4.0.
위키미디어

어느 날 행렬이 산자락을 지났다.

가마 속 여인은 켄 데데스(Ken Dedes, 학승 가문 출신 여성·정통성의 상징)였다.

사람들 사이엔 그녀에 관해 “왕이 될 씨를 잉태한다”는 예언이 돌았고(전승), 

그 말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켄 아록은 이 소문이 훗날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분만으로는 부족했으니, 우선 힘이 필요했다.


자바 크리스(Kris) 의례·정치 권위 상징 | Javanese kris and sheath, court/authority symbol
The Met Open Access, Public Domain.
The Metropolitan

그는 엠푸 간드링(Empu Gandring, 대장장이·‘엠푸’는 장인 칭호(어원))을 찾아갔다.

엠푸는 크리스(Keris, 물결무늬 단검·찌르기에 유리한 단검(어원))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이었다.

켄 아록은 단단하고 흔적이 분명한 칼을 원했다.

엠푸는 마지막에 낮게 경고했다. “이 칼은 일곱의 피를 먹고 끝난다(전승).”

그러나 켄 아록의 계획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터에는 케보 이조(Kebo Ijo, 토마펠 장수·허세로 유명한 무장)가 있었다.

그는 새 칼이 생기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습관이 있었다.

켄 아록은 그에게 크리스를 잠시 맡겼고, 

케보는 사람들 앞에서 칼을 번쩍이며 “내 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다음 일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먼저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비가 오는 밤, 퉁굴 아메퉁의 관저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칼이 등 뒤로 들어갔고, 퉁굴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 후 어떤 사람이 그 칼을 케보의 창고에 몰래 두었다.

아침이 되자 “어젯밤 쓰인 칼이 케보의 창고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케보는 현장에서 결박되어 처형되었다(전승).


많은 전승은 케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한다(전승).

그가 전날 칼을 자랑한 사실이 증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과는 하나였다.

토마펠의 최고 권력자가 사라졌고, 도시는 불안정해졌다.

이때 누군가 공백을 메워야 했다.


켄 아록은 야경대와 병사들의 급식을 정리하고, 교대 시간을 되살렸다.

세금대와 나룻터는 이전처럼 운영되도록 표를 다시 짰다.

도시는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

원로와 서기관, 사원 대표가 모여 “임시로 도시를 맡아 다스릴 사람”을 정해야 했다.

야간과 치안을 책임지고 표를 다시 맞춘 사람이 바로 켄 아록이었다.


그는 임시 지방장관 ‘아쿠우 서리(Akuwu, 지방장관 대행(어원))’가 되었고, 장례와 의식을 무사히 마쳤다.

곧 켄 데데스와의 혼인도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상례를 마친 뒤 관례에 따라 혼인이 이루어졌다는 전승이 있고(전승), 

강제와 납치가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논쟁).

어떤 경로였든 이 혼인은 켄 아록에게 강한 정통성을 부여했다.


임시가 끝나자 켄 아록은 정식 ‘아쿠우’가 되었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부담을 줄이는 조치를 했다.

산길 운반일을 줄이고, 나룻터 통행료를 강 수위에 맞춰 조정했으며, 

역참(말 갈아타는 곳) 간격을 보급 속도에 맞게 바꾸었다.

상류의 목재와 평야의 곡식이 같은 시간에 도착하자, 세금은 안정적으로 거두어졌다.

도시는 “누가 지배자냐”보다 “언제 열고 닫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서쪽의 카디리(Kediri, 당시 다하/Daha 왕국의 수도권)에서 소식이 왔다.

브라만(Brahmin, 성직자 집단) 대표들이 찾아와 “케르따자야(Kertajaya, 다하/카디리 국왕)가 의식을 어지럽힌다. 보호해 달라”고 청했다(논쟁).

이 요청은 토마펠이 전쟁을 시작할 명분이 되었다.

강 수위가 낮아지는 시기, 나룻터 대기 시간, 

수레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같은 계산이 표에 올라갔다.

전쟁은 표와 길을 믿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토마펠 군은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내려가 얕은 여울에서 강을 건넜다.

간테르(Ganter, 카디리 인근 전장으로 전승)의 넓은 들에서 양군이 마주섰다.

측면 기병과 보급대의 속도가 맞아떨어지자, 카디리의 전열이 갈라졌다.

브라만들의 흰 행렬이 멀찍이 서서 기도했다는 말이 전하지만(전승), 

승패를 가른 건 결국 속도와 거리였다.

케르따자야가 물러나자, 켄 아록은 그 자리에서 새 왕국을 선포했다.


싱오사리 드와라팔라 수호상 | Dvarapala guardian statue at Singosari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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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왕국이 싱하사리(Singhasari, 국호·‘사자의 궁전’으로 전함(어원))이다.

수도는 토마펠에 두었다.

제방은 보수되고, 나룻터는 넓어졌으며, 역참과 장터의 시간이 서로 맞물렸다.

“전쟁 때는 빠르게, 평소에는 싸게” 움직이도록 표를 꾸민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길과 세금이 안정되자,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궁정 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아누사빠띠(Anusapati, 켄 데데스의 아들·친부 서사 갈림(논쟁))가 성장했다.

그의 친부를 두고 “퉁굴 아메퉁의 아들이다”라는 전승과,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전승이 갈린다(전승/논쟁).

이 문제는 곧 “누가 왕위를 이을 것인가”라는 민감한 주제로 번졌다.

갈등은 결국 칼을 불렀다.


연회가 열리던 밤, 켄 아록은 칼에 찔려 죽었다.

칼은 엠푸 간드링이 만들었던 그 크리스로 알려졌다(전승).

아누사빠띠가 왕위에 올랐고, 사냥과 활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전승).

그러나 권력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토자야(Tohjaya, 켄 아록의 또 다른 아들)가 다시 칼을 들었고, 왕좌는 또 바뀌었다.


혼란은 오래갈 수 없었다.

랑가우니(Ranggawuni, 즉위명 위스누와르다나 Wisnuwardhana, 수습 군주)와 마히사 참파까(Mahisa Campaka, 동맹 귀족)가 나서서 행정을 정비했다.

역참 보고 체계를 복구하고, 사원 의식 시간과 장터 개장 시간을 맞췄다.

사람들은 통치자의 이름보다 달력을 먼저 떠올릴 만큼 일정이 안정되었다.

나라가 다시 숨을 고르게 쉬기 시작했다.


싱하사리 왕국(1222–1292) 영역과 케르따네가라 시기 확장, 파말라유·파발리 원정 루트, 항구·해상로가 표시된 지도
Gunawan KartapranataWikimedia CommonsCC BY-SA 3.0 (Attribution-ShareA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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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케르따네가라(Kertanegara, 싱하사리 마지막 왕)가 바다로 시야를 넓혔다.

브란타스 강 하류는 바다 항로와 이어졌고, 상류의 말길은 사원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우중 갈루(Ujung Galuh, 옛 수라바야 항구로 전승(전승)) 같은 항구가 활기를 띠었다.

이 흐름은 나중에 마자파힛(Majapahit, 싱하사리의 후계 제국(어원))이라는 더 큰 왕국으로 이어졌다.

토마펠에서 시작된 길과 표의 질서가 바다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켄 아록은 토마펠에서 자란 청년으로, 무거운 부역과 세금을 직접 겪었다.

그는 퉁굴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켄 데데스와 혼인하여 정통성을 얻고, 

행정표를 고쳐 도시를 안정시켰다.

카디리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싱하사리를 세웠으며, 그 뒤로는 내분과 정비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알려진 이야기들 중 일부는 전승이고, 해석이 갈리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길과 세금, 그리고 누가 그것을 다루느냐가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는 점이다.


싱오사리 사원 전경 | Candi Singosari temple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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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오사리(Singosari, 사원군·도성 유적지)의 석단과 키달(Kidal, 아누사빠띠 관련 사원으로 전하는 곳(전승))의 부조, 자자그(Jago/Jajaghu, 위스누와르다나 관련 사원)의 계단은 그 시대의 흔적을 보여 준다.

브란타스의 옛 나룻터 자리는 지금은 다리와 도로가 놓였지만, 산자락→강→평야→하구라는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흐름 위에서 켄 아록과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의 선택이 이어졌다.

그 선택이 싱하사리를 만들었고, 더 큰 왕국으로 연결되었다.


이 글은 파라라톤(Pararaton)·나가라크르따가마(Nāgarakṛtāgama) 등의 기록과 학술 해설을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식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Ken Arok of Tumapel seeks to change harsh levies. 
He orders a kris from Empu Gandring, has Kebo Ijo flaunt it, then kills Tunggul Ametung and plants the blade—framing Kebo (legend). 
As acting akuwu he resets rations and tolls, then marries Ken Dedes for legitimacy. 
With Brahmin backing he defeats Kediri at Ganter, founds Singhasari, and reforms supply lines. Palace feuds follow: Anusapati kills him with the same blade; Wisnuwardhana restores order; Kertanegara turns seaward toward Majapa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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