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겨울, 안동(Andong, 영남 양반 거점)의 한 사랑채에서 아이의 울음이 들렸다.
아기의 이름은 장계향(張桂香, Jang Gye-hyang, 17세기 여성 생활문화 기록자·〈음식디미방〉 저자)이다.
아버지 장흥효(張興孝, 퇴계학파 성리학자) 집에는 제자들이 드나들었고, 아이는 글과 예법을 일찍 접했다.
한글로 쓰인 생활 글을 익히고, 어린 나이에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전승).
집안의 여인들은 부엌과 장독대에서 계절을 기록했다.
| 공인 영정이 경북 영양 두들마을(존안각/정부인 안동장씨 유물전시관)에 봉안 Kculture |
열아홉, 혼례 날이 왔다.
배필은 이시명(李時明, 호 석계·영남 은둔 학자)으로, 전실과 사별하고 1남 1녀가 있던 사람이었다.
새색시는 시부모와 시동생, 조카들까지 돌봐야 했고, 곧 친자녀들도 태어났다.
장계향은 6남 2녀를 더 낳아, 전실 자녀까지 합쳐 7남 3녀의 큰 집안을 맡았다(전승).
하루의 장부와 곡식 배분, 약과 미음의 농도까지 그녀가 결정했다.
전쟁과 피난의 시간도 지나갔다.
병자호란 이후, 부부는 영해·영양 일대로 삶의 거점을 옮겼고 1640년 무렵 영양 두들마을(Doodle Village, 언덕에 자리한 재령이씨 집성촌)에 자리를 잡았다(전승).
낙기대(두들마을 화매천변 바위 글각) 아래로 사람들이 모이면, 죽솥과 곡식 자루가 내려갔다고 한다(전승).
곡식값이 오르면 저장 목록을 바꾸고, 식구와 이웃을 함께 고려했다.
그녀에게 부엌은 가족의 생계이자 마을의 안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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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들마을 석계고택 전경(장계향·이시명 생활공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석계고택). EncyKorea |
큰집의 교육은 엄격했다.
아이들이 글을 익히는 시간과 일을 배우는 시간이 분리되지 않았다.
한 아들은 장부를, 다른 아들은 물을 덥혔고, 며느리들은 절임 시간과 제수의 순서를 익혔다.
셋째 아들 이현일(李玄逸, 갈암·성리학자)은 훗날 어머니의 행실을 적어 남겼고, 관직에 올라 이조판서까지 지냈다.
그 결과 어머니 장계향은 생전 혹은 사후에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전승).
이 무렵 그녀는 기록을 시작했다.
집집마다 다른 ‘손맛’을, 누구나 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꾸려 했다.
한문이 아닌 한글을 택한 이유는, 부엌에서 곧바로 읽고 쓰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쌀 한 되를 씻어 물이 맑아질 때까지 바꾸고, 엿기름 두 되를 곱게 내려라.”
“절임 소금물은 끓여 식힌 뒤 붓는다.” 같은 문장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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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 부엌(아궁이·가마솥) / Hanok kitchen with agungi & gamasot Wikimedia Commons, CC BY-SA. commons.wikimedia.org |
그녀는 기록을 집안의 규칙으로 바꾸려 했다.
“같은 재료면 같은 맛이 나야 한다.”
한 번 성공한 날은 이유를 적고, 실패한 날은 원인을 적었다.
장독의 위치, 뚜껑을 여닫는 시각, 소금과 물의 비율, 불 앞에 앉는 사람의 순번까지 종이에 남겼다.
부엌의 일이 글이 되자, 집안의 시간이 안정됐다.
밤에는 등잔 곁에 앉아 시를 썼다(전승).
아이들이 잠든 뒤, 낮의 냄비와 항아리가 조용해지면 종이를 펼쳤다.
문장은 부엌에서 배운 단어들로 시작했고, 끝은 종종 가족의 안부로 닿았다.
남편 이시명(李時明, 호 석계·영남 은둔 학자)은 사랑채에서 글을 마치고 안채 문턱에 섰다.
“오늘은 무엇을 적었소.” “소금물 온기와 절임 시간.” 둘은 그렇게 하루를 정리했다(전승).
그녀는 아이들을 사람의 수만큼 다르게 가르쳤다.
어떤 아이에겐 장부를 쥐여 숫자를 익히게 했고, 어떤 아이에겐 칼질을 맡겨 칼끝의 감각을 익히게 했다.
며느리에게는 절임 시간과 제수의 순서, 손님이 많을 때의 동선을 먼저 가르쳤다.
집안의 질서는 “먼저 할 일, 나중 할 일, 확인할 일” 세 줄로 정리됐다.
그 세 줄이 실수와 다툼을 줄였다.
외부의 압박도 있었다.
“부엌 일을 글로 남기다니, 사치다.”라는 말이 친족 입을 타고 들어왔다(전승).
장계향은 싸우지 않았다.
대신 이유를 문장 끝에 더했다.
“이렇게 해야 덜 상한다.” “이 순서여야 오래 간다.” 설명이 논쟁을 이겼다.
흉년이 든 해, 그녀는 저장 목록부터 바꿨다.
곡식 가격이 오르면 장아찌와 젓갈을 줄이고, 콩과 채소를 늘렸다.
값싼 생선의 비린내를 줄이는 데 필요한 소금·식초·불의 순서를 따로 적었다.
마을에 아픈 이가 많으면 미음과 죽의 농도를 세 단계로 나눠 처방했다(전승).
부엌은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을 버티게 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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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독대 항아리(발효·저장) / Jangdokdae earthenware jars (fermentation/storage) Wikimedia Commons, CC0(퍼블릭 도메인). commons.wikimedia.org |
장마가 길던 어느 해, 장독 네 통이 잇따라 상했다(전승).
어른은 소금을 아꼈다고 꾸짖었고, 하녀는 뚜껑을 덜 열어 바람을 막았다고 했다.
장계향은 두 가능성을 모두 기록하고, 장독대를 바꾸었다.
햇볕이 드는 시간을 표로 만들고, 뚜껑의 재질과 무게를 바꾸고, 바람길을 냈다.
그 해의 실패는 다음 해의 안전 장치가 되었다.
아이를 병으로 먼저 보낸 기록도 있다(전승).
그날 그녀는 생강즙과 꿀의 비율을 낮추고, 죽의 온기를 오래 유지하는 법을 메모했다.
“아픈 날의 음식”이라는 제목이 그 장의 맨 위에 적혔다.
그 문장은 눈물로 번졌지만, 종이에서 지워지지는 않았다.
개인의 슬픔은 다음 사람의 지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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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디미방〉 첫 장 / ‘Eumsik Dimibang’ (1670), first pag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음식디미방(Eumsik Dimibang, 여성 한글 조리서)〉의 장들은 서서히 굳었다.
찜·전·장·젓·술·식초·떡·과자·저장·상차림.
각 장의 첫 문장은 재료와 단위를, 둘째 문장은 순서와 불 세기를, 셋째 문장은 주의와 대체를 적었다.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열 번의 일관성.”
그녀가 스스로 세운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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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 클로즈업 / Doenjang close-up Wikimedia Commons, CC BY-SA. commons.wikimedia.org |
문서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은 자연스러웠다.
혼수 상자에 들어간 복사본이 새집의 부엌 첫날을 도왔다(전승).
새 며느리는 그 묶음을 교과서처럼 펼쳤고, 친정과 시댁의 상차림이 닮아 갔다.
동네의 저장법은 표준을 갖기 시작했다.
여성의 손에 든 한글 문장이 지역의 기준이 되었다.
남편과의 시간도 기록의 한 부분이다.
석계는 벼루를 덮고 안채를 찾았다.
그녀는 하루치 장부와 식단표를 보여주고, 내일 장을 볼 품목을 말했고, 남편은 “오늘 낮의 글에서 용례 하나를 바꿨다”고 답했다(전승).
두 사람의 대화는 사사로움과 학문이 섞여 있었다.
사랑채의 묵향과 안채의 장내가 하루의 균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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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갈암 이현일이 만년에 후학을 위해 강도하던 곳. 경상북도 기념물 제116호. EncyKorea |
셋째 아들 이현일(李玄逸, 갈암·성리학자)은 어머니의 생활을 글로 남겼다.
그는 관직에 오른 뒤에도 “집안의 질서는 어머니의 기록에서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다(전승).
장계향은 생전 혹은 사후에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전승).
이 칭호의 의미는 권위가 아니라 표준에 대한 예우였다.
부엌의 기술이 문서로 승격되었다는 뜻이었다.
말년에 그녀는 문장을 덜어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장은 하나만 남겼다.
“먼저 할 일, 나중 할 일, 확인할 일.”
세 줄이 책의 뼈대가 되었고, 나머지는 예시로 남겼다.
그녀의 글은 더 짧고, 더 명확해졌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종이는 움직였다.
이본(異本)이 생겼고, 빠진 문장과 더해진 문장이 섞였다.
초본의 연대와 필사 경로는 지금도 (논쟁)이다.
그러나 핵심만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이 한글로, 생활 기술을 표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오늘의 독자가 인물로서의 장계향을 기억하려면 세 가지를 본다.
첫째, 실패를 버리고 이유를 적던 태도.
둘째, 손의 기술을 숫자와 순서로 고정한 결정.
셋째, 접근 가능한 문자로 대상을 넓힌 선택.
이 세 가지가 그녀의 삶을 한 권의 기술서로 만들었다.
아침의 안동, 장독대 뚜껑이 다시 열린다.
소금물의 온기가 맞는지, 술독의 호흡이 일정한지, 절임 그릇의 물선이 정확한지.
그녀는 오늘도 “누구라도 따라 하면 같은 결과”라는 문장을 확인한다.
인물의 일대기는 화려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선택으로 완성된다.
장계향의 이름은 그 반복의 정확함으로 남았다.
이 글은 [기본 사료·논문·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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