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길이 될 때: 여권·신분증으로 읽는 경계의 역사 (The history of ID cards)



 이 글은 로마 제국의 관문 행정 문서, 중세 유럽의 안전통행장, 베네치아 검역기록, 

조선의 호패·관련 사료, 국제연맹의 난센 여권,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Doc 9303 등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대사, 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장면 중심 재구성’이며, 

(논쟁) 표시는 학계 이견이 있음을 뜻합니다. 

인물·용어는 처음 등장할 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로마 군사 외교문서(청동판·diploma)
출처 위키미디어


황혼빛 사막길에 먼지가 가라앉는다. 

기병의 손에는 접힌 청동판이 있다. 

로마식 diploma(납 봉인을 한 두 장짜리 청동증서)가 햇빛을 튕기자 

관문 병사가 봉인을 확인하고 길을 연다. 

“국가가 허락한 길입니다.” 

그날, 문서는 실제의 길만큼 힘이 있었다. 

칼과 창을 지나치게 한 것은 칼과 창이 아니라 글자와 봉인이었다.


중세 ‘안전통행장’(salvus conductus)
카지미에시 4세가 1474년에 발급한 사절단용 안전통행장.
출처 위키미디어


천 년이 흘러 종이는 양피지로 바뀐다. 

북풍을 맞으며 도시 성문에 선 상인이 안전통행장, 

즉 salvus conductus(‘안전하게 지나가도 된다’는 군주의 보장문서)를 내민다. 

인장과 서명이 경계의 언어를 대신한다. 

성문지기는 인장을 손톱으로 만져 보곤 짧게 말한다. 

“봉인 훼손 없음, 통과.” 

종이는 갑옷보다 가벼웠지만, 때로는 갑옷보다 단단했다.


그러나 문서가 언제나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얀 후스(1415년 콘스탄츠로 소환된 보헤미아 종교사상가)는 

제국의 안전통행장을 받았지만 화형을 피하지 못했다. 

반대로 마르틴 루터(1521년 보름스 회의에 선 독일 종교개혁가)는 

황제의 안전보장 아래 무사히 떠났다. 

같은 ‘보장’이 남긴 상반된 결말은 문서가 약속이지 운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겼다. 

문서의 힘은 ‘누가 지키는가’에 달려 있었다.


이탈리아 ‘건강 패스’(fede di sanità·1611)
검역 통과·무역 허가를 증명하는 전염병기 건강증.
위키미디어 공용 


바다 냄새가 밴 베네치아에서는 종이가 병을 막는 방패가 되었다. 

라차레토 섬의 작은 방에서 상인은 

fede di sanità(검역을 통과했음을 증명하는 건강증명서)를 받는다. 

quaranta giorni, 사십 일의 격리. 

이 말이 영어 quarantine의 어원이 되었고, 

도시들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종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항구마다 잉크와 인장이 늘었고, 배는 물과 함께 문서를 하역했다.


조선 ‘호패’(신분 표찰)
상아/목재 호패 실물(국립자연사박물관 소장, CC0).
위키미디어 공용 


멀리 동쪽에서도 이름표가 길을 만들었다. 

1413년 조선 태종은 호패(16세기 재정비되어 정착한 신분 표찰)의 소지를 명했다. 

군역 동원과 유민 통제, 범죄 추적과 조세 운영의 효율을 위해 

사람은 나무패 한 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관문 앞 대화는 단순했다. 

“패를 보이라.” 이 간결한 절차가 관청과 사람을 하나의 표로 묶었다. 

기록은 몸을 앞질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세 유럽의 길은 더 촘촘해졌다. 

프랑스의 노동자 수첩, 즉 livret ouvrier(고용·이동·평판을 적은 ‘노동 수첩’)는 

일터와 도시를 잇는 사슬이 되었다. 

고용주는 수첩에 도장을 찍었고, 경찰은 수첩을 확인했다. 

자유와 통제가 한 권의 얇은 책자 안에서 만났다. 

장부는 임금을 보증하는 방패였으나, 동시에 임금의 발길을 묶는 끈이기도 했다.


19세기 중엽, 기묘한 ‘틈’이 잠깐 열렸다. 

철도와 증기선이 국경을 촘촘히 잇기 전, 

어떤 유럽 여행자는 거의 여권 없이 대륙을 건널 수 있었다. 

귀족의 추천장, 상인의 신용, 평화의 공기가 통행비용을 낮췄다. 

하지만 1914년 총성이 도시를 덮자 길은 다시 닫혔다. 

전쟁은 사람과 종이를 다시 결박했다.


영국은 사진이 부착된 여권(passport·( ‘항구(port)·문(porte)을 지나가다(pass)’에서 온 말로 보는 견해가 있음))을 표준화했고, 

프랑스·독일도 얼굴의 특징을 여백에 적게 했다.

 “모자를 벗고, 귀가 보이도록 정면을 바라볼 것.” 

수염, 눈동자 색, 신장, 흉터가 기록으로 변했다. 

사람의 신체는 텍스트가 되었고, 텍스트는 국경을 통과하는 표준형 얼굴이 되었다.


난센 여권(국제연맹 난민·무국적 여행증)
프랑스에서 인쇄된 난센 여권 견본.
위키미디어 공용 


국경이 닫히자 ‘국가 없는 사람’을 위한 임시 문서가 등장했다. 

난센 여권(Nansen Passport·(노르웨이의 외교관 프리티오프 난센이 주도한 국제연맹 난민·무국적자 여행증))이다. 

집을 잃은 이들에게 종이는 잠시 ‘주소’가 되었다. 

난센의 이름이 적힌 서류는 유럽의 철길 위에서 작지만 현실적인 다리가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생계와 재기의 기회를 열었다.


켄카르테(Kennkarte)
독일 점령하 폴란드에서 사용된 신분증 내부면(1943).
위키미디어 공용


제2차 세계대전은 신분증을 ‘국민 전반의 문제’로 밀어 올렸다. 

독일 점령하의 Kennkarte(점령지 주민에게 강제된 신분증), 

프랑스의 carte d’identité(전국민 신분증의 전신), 

네덜란드·벨기에의 신분증 같은 문서들은 검문소의 기본 언어가 되었다. 

신분증은 범죄 수사와 치안 유지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박해와 차별의 도구로도 쓰였다. 

종이의 중립성은 권력의 손에서 성질을 바꾼다.


프랑스 국가신분증(1970–1990s)
공식 ‘스페시멘’ 이미지(정부 제공).
위키미디어 공용 


전쟁이 끝난 뒤 국가들은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대륙의 다수 국가는 전국민 신분증을 보편 제도로 정착시켰다. 

독일의 퍼스날아우스바이스 Personalausweis(전국민 신분증)는 

은행·행정·전자서명까지 기능을 확장했고, 

프랑스의 carte nationale d’identité(국가 신분증)는 공공·민간 인증의 ‘첫 질문’이 되었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전국민 의무 신분증에는 신중했다. 

영국은 전시 신분증을 폐기했고, 

미국은 주(州) 운전면허·주 신분증과 사회보장번호(SSN·(복지·세금 식별번호))가 

사실상 일상 신분의 역할을 분담했다.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제도로 푼 셈이다.


이 무렵 여권은 ‘세계 공용의 형식’을 배웠다. 

국제연맹이 1920년대 사진·언어·면 수를 논의해 틀을 잡자, 

항공 시대에 들어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설명: United Nations specialized agency for civil aviation)가 Doc 9303(기계판독·전자여권 표준)을 통해 기계판독영역 MRZ(OCR로 읽는 두 줄 코드), 페이지 크기, 데이터 위치, 글꼴까지 맞췄다. 

공항의 게이트는 이제 사람보다 먼저 문서를 읽었다.


21세기에 들어 여권은 칩을 품었다. 

전자여권 ePassport(칩에 얼굴·생체정보를 저장한 여권)가 보편화되고, 

자동출입국 게이트가 얼굴과 사진의 일치를 먼저 판단한다. 

안전과 편의를 높이는 기술이지만, 저장·공유·오류의 문제는 새로운 윤리의 질문을 낳았다. 

무엇을, 어디까지, 누가 열람할 수 있어야 하는가. 

‘한 장의 허락’은 더 많은 기술을 품을수록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한다.


이제 ‘세계로 퍼져나간 신분증’의 큰 흐름을, 몇 나라만 골라 ‘특징’으로 본다. 

더 넓은 목록 대신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진 대표적 사례들이다.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전국민 신분증, 1960–70년대 제도 정착)은 

행정·치안·복지의 기본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주민등록번호는 세금·의료·금융 인증까지 실무를 연결했고, 

개인정보 보호 논쟁을 거치며 암호화·부분표시·재발급 체계를 강화해 왔다. 

한국의 경험이 말하는 핵심은 ‘한 번호가 너무 많은 일을 맡을 때의 장단’이다. 

빠른 처리와 높은 연결성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형 유출 시 피해의 범위가 넓다. 

그래서 최근 전자여권·민간 인증과 역할을 배분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프랑스의 carte nationale d’identité(국가 신분증)는 공화국의 일상 언어다. 

은행 창구, 우체국, 투표소에서 “카르트, 실례합니다”라는 말은 거의 의식처럼 반복된다.

 프랑스는 이 카드의 디지털 전환을 신중히 하되, 사진·지문 같은 핵심 필드를 엄격히 관리한다. 

신분증은 국가와 시민이 ‘서로 신뢰를 확인하는 문’이라는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


독일의 Personalausweis(독일 전국민 신분증)는 전자 신분증(eID) 기능을 일찍 얹어, 

온라인 행정·전자서명에서 표준 인증 수단이 되었다. 

독일식 접근의 요점은 ‘분산된 신뢰’다. 

신분증 자체는 강력하지만, 용도별 최소 정보만 제공하도록 설계해

 ‘필요 없는 건 보여 주지 않는다’를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영국과 미국은 다른 선택을 했다. 

영국은 ‘전시 신분증’을 해제한 뒤, 전국민 의무 신분증의 재도입을 끝내 하지 않았다. 

대신 NHS 번호, 세금 번호, 운전면허증 등 다중 식별자를 용도별로 쓰면서, 

여권은 국제 이동용으로 집중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주 운전면허·주 신분증이 사실상 ‘내부 신분증’으로 기능하고, 

여권·SSN이 상황을 보완한다. 

이 ‘다중 체계’는 프라이버시 측면의 장점이 있지만, 

디지털 행정의 통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따른다.


여기서 ‘특이한 나라’ 두 곳을 살펴본다. 

서로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하지만, 공통의 질문을 던진다.


에스토니아 전자 신분증(eID·2021)
앞면 견본(디지털 행정 대표 사례).
위키미디어 공용


에스토니아의 전자 신분증 eID(칩 기반 국가 신분증)는 

행정, 의료, 은행, 전자서명, 심지어 전자투표까지 연결한다. 

‘종이 없는 정부’가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본인확인의 기술과 법, 개인정보 통제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설계를 병행하며, 

해외 거주자도 전자영주(이-레지던시)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 

경제와 외교의 경계를 일부 ‘서비스’로 바꿨다. 

핵심은 ‘디지털이 먼저’라는 전략을 일관되게 법과 인프라로 받쳐 준 점이다.


인도의 아드하르 Aadhaar(12자리 고유번호+지문·홍채 등 생체인증 기반 대규모 신분 인프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신분 프로젝트다. 

복지·보조금·은행 계좌 개설이 간단해졌지만, 

생체정보의 중앙집중, 배제 오류, 민간 활용의 범위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논쟁을 낳았다. 

인도의 사례는 “포용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어디서 배제의 문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게 한다. 

규모가 클수록 거버넌스와 감사, 구제 절차가 더 중요해진다.


다시 여권으로 돌아간다. 

국제선 카운터에서는 ICAO Doc 9303가 정한 기계판독영역 MRZ(OCR로 읽는 두 줄 코드)가 여권을 표준어로 바꾼다. 

문서의 색이 달라도, 글꼴과 줄 수, 데이터의 위치는 같다. 

공항의 자동게이트는 먼저 칩을 확인하고, 사진과 얼굴의 일치를 평가한다. 

전자여권 ePassport(칩·전자서명·보안 인증을 포함하는 여권)는 

위·변조를 어렵게 했지만, 칩을 읽는 장비·소프트웨어의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과제를 더했다. 

기술이 해결책을 만들 때, 기술 자체가 새로운 질문을 만든다.


용어의 뿌리를 잠깐 본다. 

여권(passport)의 어원은 대체로 프랑스어 passer(지나가다)+port(항구)에서 온 것으로 본다. 

어떤 학자는 passer+porte(성문·문을 지나가다)로 설명한다(논쟁). 

이름이 가리키는 바는 같다.

 ‘문과 항구를 통과하는 허락’. 

신분증(identity card·national ID)은 도시와 국가가 

‘사람을 구분·보호·동원’하려는 순간 나타났다. 

노동 수첩(livret ouvrier), 내부 여권(internal passport), 

거주등록(propiska), 주민등록, 번호제… 이름은 달라도 질문은 같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문서가 없던 시대에는 얼굴과 증인이 신뢰의 통화였다. 

문서가 보편화되자 기록과 인장이 신뢰의 통화가 되었다. 

지금은 칩과 알고리즘이 신뢰의 통화가 되었다. 

달라진 것은 형태이고, 남은 것은 본질이다. 

사회는 언제나 ‘누가 들어오고, 누가 머물고, 누가 떠나는지’를 합의해야 한다. 

그 합의가 공정할수록 문서는 방패가 되고, 그렇지 않을수록 족쇄가 된다.


그래서 현대의 여권·신분증은 세 가지 균형을 묻는다. 

첫째, 편의와 안전. 자동게이트는 시간을 줄이지만, 

오류와 배제가 있을 때 그 문을 어떻게 다시 열 것인가. 

둘째, 프라이버시와 신뢰. 

필요한 만큼만 보여 주는 설계(최소 공개)가 가능한가. 

셋째, 포용과 배제. 번호·칩·얼굴 인식이 누구를 취약하게 만들고, 누구를 보호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각국의 답이 서로 다르다. 

독일·프랑스는 ‘강한 신분증+엄격한 데이터 관리’로, 

영국·미국은 ‘다중 식별자+분산된 확인’으로,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우선+법·인프라 정합성’으로, 

인도는 ‘포용 우선+규모의 도전’으로 각자의 길을 쓰고 있다.


이제 마지막 장면. 

공항 자동출입국 앞, 화면에 얼굴이 뜬다. 

카메라가 눈 사이 거리와 코의 높낮이를 잰다. 

판정등이 초록으로 바뀌고 문이 옆으로 밀린다. 

손안의 여권은 따뜻하고, 칩은 조용하다. 

로마의 병사가 청동판을 내밀던 그때처럼, 

우리는 여전히 한 장의 ‘허락’을 들고 경계를 지난다. 

다만 오늘의 허락은 더 많은 기술과 더 많은 책임을 함께 요구한다.

 그 책임을 제도와 시민이 함께 떠안을 때, 문서는 약속이지 운명이 되지 않는다.


From Rome’s bronze diplomas to today’s ePassports, 

borders have been managed by documents. 

Medieval safe-conducts and Venice’s health passes made contagion and passage legible; Joseon’s hopae labeled subjects. 

War tightened ID regimes, while the Nansen Passport gave the stateless a bridge. 

After 1945, ICAO standards (MRZ) unified passports; 

national IDs diverged—France/Germany strong cards, 

UK/US dispersed systems. 

Estonia’s eID and India’s Aadhaar lead the digital turn, 

weighing convenience, privacy, i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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