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포도밭 필록세라 대재앙: 접목이 살린 와인 (Great French Wine Blight)


새벽 공기가 포도향 대신 흙 냄새로 가득했다.

랑그도크의 작은 밭에서 루이(프랑스 남부 소규모 포도 재배자)는 포도나무 줄기 밑을 손톱으로 긁었다.

껍질이 들리자 미세한 혹과 갈라진 뿌리가 눈에 들어왔다.

잎은 멀쩡했는데, 나무는 안에서부터 죽어가고 있었다.

동네 원로는 가뭄 탓이라 했고, 장터의 약장수는 약수를 팔겠다고 떠들어댔다(전승).

“포도잎의 필록세라 혹” / “Grape leaf galls from phylloxera”
Wikimedia Commons,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이상 징후는 프랑스 전역으로 번졌다.

보르도의 통 널판을 대던 공방에서는 주문이 줄었고, 프로방스의 협동조합은 새 술통 대신 빈 창고를 세었다.

사람들은 땅을 캐보았다.

뿌리마다 미세한 벌레가 들러붙어 있었다.

이름은 필록세라(phylloxera·학명 Daktulosphaira vitifoliae·포도뿌리혹진딧물).

북아메리카 자생 포도에서 함께 건너온 해충이었다(논쟁).


“필록세라(포도뿌리혹진딧물) 세밀화” / “Phylloxera (Daktulosphaira vitifoliae) illustratio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몽펠리에의 강의실에서 쥘 엠릴 플랑숑(Jules-Émile Planchon·식물학자)은 현미경을 들이댔다.

“원인은 이 벌레다.”

그의 말은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흙이 탓이라느니, 안개가 문제라느니, 포도주를 너무 뽑았다는 둥 온갖 얘기가 나왔다(전승).

훗날 찰스 발렌타인 라일리(Charles V. Riley·미국 곤충학자)가 와서 그 판단을 거듭 확인했다.

두 사람의 결론은 단순했다.

잘못된 손님이 유럽의 포도뿌리를 먹고 있다.


“와인의 최고 산지를 찾아붙는 필록세라(풍자만화)” / “Punch cartoon: ‘The Phylloxera, a True Gourme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해결책을 찾는 시간은 잔혹했다.

사람들은 포도밭을 침수(장기간 담금)해 벌레와 알을 익사시키려 했다.

탄화이황화(carbon disulfide·CS₂)를 거대한 구리주사기로 땅에 주입하기도 했다.

“필록세라 방제용 탄화이황화 주입 장치” / “Carbon disulfide injector for phylloxera control, 190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어느 방법도 넓은 포도밭을 구하진 못했다.

모래 많은 밭만 예외처럼 버텼고, 밭 가장자리의 풀밭에서 번진 벌레는 벽처럼 확산했다.

수확은 뚝 끊어졌고, 포도나무는 제 손으로 설거지하듯 뿌리를 비웠다.


“파리 필록세라 회의(1874)” / “Phylloxera Conference in Paris, 187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재배자들은 빚을 냈다.

통을 팔고, 소를 팔고, 밭을 저당 잡혔다.

아이들 키에 맞춰 걸었던 도구들은 장터로 나갔다.

어떤 마을은 교구 창고를 열어 구휼을 돌렸고, 어떤 곳은 포도밭을 갈아엎고 올리브를 심었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은 지역에 따라 반 토막, 혹은 그 이상 줄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논쟁).

어떤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포도밭의 40%가 파괴됐다고 적었다.


“1882년 1월 26일 기준 필록세라 확산도” / “Map of phylloxera advance in France, 188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나무 윗부분은 유럽종(Vitis vinifera·와인용 품종군)으로 두고, 뿌리만 북미 종으로 바꾸자.”

말하자면 접목(grafting)이었다.

비티스 리파리아(Vitis riparia·북미 하천변 포도)와 루페스트리스(V. rupestris·건조지 바위지대 포도) 같은 뿌리는 벌레에 강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석회질 흙에서는 잘 노랗게 질렸다(염소증).

이때 피에르 비알라(Pierre Viala·프랑스 포도학자)가 미국으로 건너가 비티스 벌란디에리(Vitis berlandieri·석회질 토양 적응)를 찾아냈다.

돌과 석회가 많은 땅에서도 버티는 뿌리였다.


“Vitis riparia—북미 하천변 포도(대목)” / “Vitis riparia—North American rootstock species”
Wikimedia Commons(USDA-NRC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텍사스의 재배가 T. V. 먼슨(Thomas Volney Munson·아멜로그라퍼/육종가)는 비알라와 함께 종·토양 궁합을 좇아 강을 건넜다.

그들은 어느 뿌리가 어느 프랑스 흙에서 사는지 표를 만들었다.

그 표는 훗날 41B(berlandieri × vinifera) 같은 석회 적응 대목(rootstock)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농가의 말은 간단했다.

“접목한 나무는 죽지 않는다.”

다만 다시 술을 담그려면 해를 바꿔 기다려야 했다.

병에 채워 넣는 건 하루면 끝나도, 포도나무는 몇 해가 필요했다.


그 사이에 시장은 틈을 메웠다.

보르도와 랑그도크가 주저앉자, 알제리(당시 프랑스 식민지)에서 대량의 포도주가 들어왔다.

스페인 리오하에는 보르도의 통상업자와 양조인들이 몰려가 대체 공급선을 세웠다.

프랑스는 한때 수입국이 되었고, 유럽의 와인 지도가 통째로 들썩였다.

가짜 와인과 당 보충, 포도즙 이류품이 늘면서 규제도 함께 늘어났다(논쟁).


 “알제리 사울라의 포도밭, 1890” / “Vineyards of Saoula, Algeria, 189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무명저자).
위키미디어 공용


루이는 빈 포도밭에 새 줄을 맸다.

위는 옛 품종, 아래는 새 대목.

첫 해에는 바람 때문에 묶은 끈만 갈았다.

둘째 해에는 연한 수액이 오르고, 셋째 해에 작은 송이가 달렸다.

그가 병마개를 눌러 닫을 수 있게 되기까지 딱 그만큼의 해가 필요했다.


바뀐 건 술만이 아니었다.

식재 거리와 밀식 관행이 정리되고, 포도학·곤충학·토양학이 포도밭의 언어가 되었다.

“감(感)”으로 심던 시대에서 시험과 기록으로 심는 시대로 옮겨갔다.

포도나무 아래에서 뿌리가 ‘품종’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와인의 향보다 먼저, 뿌리의 이름이 노트에 적혔다.


물론 모든 게 매끈하진 않았다.

직접결실(아메리칸 하이브리드 직매종)로 급한 불을 끄려 한 밭은 때로 시장에서 고전했고(논쟁), 접목이 낳는 조합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들었다.

어떤 마을은 침수로 버텼고, 모래 많은 밭은 끝까지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대세는 분명했다.

치료약은 없고, 회피 전략만 있다.

해충을 없애는 대신 상대가 약한 곳으로 옮기는 방법.

그 방법이 유럽의 포도밭을 살렸다.


“필록세라 방제—침수용 펌프 광고 포스터” / “Poster: Submersion of vineyards, pumps & steam machine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세월이 흐른 뒤, 루이는 아들에게 말했다.

“우린 위에다 술을 담지만, 밑에서 목숨을 얻는다.”

포도주는 다시 흘렀고, 통은 다시 채워졌다.

와인의 풍경은 예전과 닮았지만, 뿌리의 국적은 달라졌다.

그 이질적인 결합이 유럽의 포도밭을 붙잡아 주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포도밭의 재건은 그렇게 완성되어 갔다.


이 사건의 교훈은 오래 간다.

새로움은 늘 문턱을 넘어온다.

나쁜 것과 함께 좋은 것, 혹은 그 반대로.

그럴 때 필요한 건 편견이 아니라 시험과 표다.

루이는 현미경을 들지 않았지만, 현미경으로 확인된 사실을 밭에서 실천했다.

그게 재난을 끝내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이 글은 1860s–1900s 유럽 포도밭 필록세라 대재앙과 재건을 다룬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From the 1860s, European vines withered from an unseen enemy: phylloxera, a North American root-louse. 

Planchon and later Riley pinned the cause; flooding and carbon disulfide failed as yields crashed, debts soared, and France even imported wine from Algeria and Rioja. 

Salvation came by grafting Vitis vinifera onto American rootstocks—riparia, rupestris, berlandieri—mapped to soils by Pierre Viala and T.V. Munson. 

Viticulture rebuilt around rootstocks, regulation, and data: no cure, only avoidance.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