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바람이 일자 킴벌리(Kimberley·남아공 북부 광산 도시)의 굴착 현장에 하얀 돌가루가 날렸다.
젊은 영국인 세실 로즈(Cecil Rhodes·영국 식민 사업가/정치인)는 모자를 눌러쓰고 돌밭을 내려다봤다.
그가 온 이유는 단순했다.
다이아몬드였다.
그리고 그 돌을 매개로 타인의 땅·노동·법을 자기 수익으로 묶어버리려는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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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실 로즈 연필 스케치, 1902년 이전” / “Sketch portrait of Cecil Rhodes, pre-190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로즈는 1853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남아프리카로 와 형과 채굴을 시작했다.
곧 계산이 바뀌었다.
삽 몇 자루가 아니라 합병과 독점이 답이라고 믿었다.
데비어스(De Beers·다이아몬드 기업)를 축으로 경쟁 채굴권을 빨아들이듯 인수했고, 유통을 장기 계약으로 잠갔다.
이 구조는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우고 현장 임금은 억누르는 전형적인 카르텔이었다.
광산 현장에서는 흑인 광부가 위험을 떠안고, 회계는 런던과 케이프타운의 금고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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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 거대 채굴구” / “The Big Hole, Kimberley diamond mine” Wikimedia Commons,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
사업 확대는 곧 정치 장악으로 이어졌다.
그는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 의회에 들어가 1890년 총리가 되었다.
의회 연단에서 그는 인종 위계의 신념을 감추지 않았다(논쟁).
“문명”을 앞세운 정책은 실제로는 토지 박탈·강제 노동 공급·투표권 축소의 번역이었다.
권력과 기업이 한 사람의 손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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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프 식민 의회 본회의장” / “Cape Colony Parliament chamber”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핵심 도구는 글렌 그레이 법(Glen Grey Act·1894)이었다.
아프리카인 공동소유 토지를 쪼개고, 남성에게 노동세를 물려 현금을 벌어오게 만들었다.
현금은 광산·농장에서만 벌 수 있었다.
말이 세금이지, 사실상 노동 동원 명령이었다.
법은 원주민을 빈집으로 밀어냈고, 가족은 분리되었다.
컴파운드(compound·합숙소) 제도는 광산 주변을 감시구역으로 바꾸었다.
출입 통제, 수색, 임금 공제, 직종 색깔 장벽(어원: color bar·인종별 숙련직 제한)이 규칙이 되었다.
회사 비용은 줄었고, 인간의 자유는 규정서 속 항목이 되었다.
그의 별장 그루트 스히어르(Groote Schuur·케이프타운 저택)에서는 밤마다 정책-사업-언론이 한 식탁에 앉았다.
리앤더 스타 제임슨(Leander Starr Jameson·측근), 알프레드 베이트(Alfred Beit·금융가), 차를스 러드(Charles Rudd·동업자)가 와인을 들었다.
이 모임은 문화 살롱이 아니라 이해상충의 도면실이었다.
의회 법안·회사 전략·민병대 움직임이 서로 내부정보로 연결되었다.
로즈는 공공선이라 주장했지만, 결과는 사적 이익과 식민 권력의 동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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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드 협정 문서 첫 장” / “The 1888 Rudd Concession documen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지도의 빈칸을 채우는 방식도 폭력적 계약이었다.
1888년 러드가 따낸 러드 협정(Rudd Concession)은 마타벨레랜드·마쇼나랜드(오늘날 짐바브웨) 광물권을 회사에 넘기는 효과를 냈다.
조약 과정의 강압·오역·기망 논란은 지금도 크다(논쟁).
그러나 논란과 무관하게 브리티시 사우스 아프리카 컴퍼니(BSAC)가 총과 인장을 들고 행정·사법·조세를 행사했다.
토지는 선으로 잘렸고, 원주민의 사냥길·샘·조상 묘역까지 허가증의 대상이 됐다.
이것이 훗날 로디지아(Rhodesia·로즈의 이름을 딴 지명)라는 기괴한 지명으로 굳어졌다.
현장은 곧 전쟁이 됐다.
마타벨레 전쟁(1893–94 BSAC가 은데벨레 왕국에 대항한 전쟁)에서 회사군과 백인 민병대는 맥심 기관총으로 기마 전사를 갈아버렸다.
패배 뒤 돌아온 것은 몰수·벌금·이주였다.
1896–97년 다시 봉기하자, 진압은 더 거칠어졌다.
학살 통계는 자료마다 다르지만, 불균형 살상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로즈는 ‘평정’이라 불렀고, 기록은 강제 평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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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른콥 돌격 장면” / “Charge at Doornkop during the Jameson Raid” Wikimedia Commons, CC BY 4.0 위키미디어 공용 |
그의 오만은 다른 재난도 불렀다.
1895년 겨울 제임슨 급습(Jameson Raid. 세실 로즈가 고용한 영국 식민지 행정관 리앤더 스태르 제임슨이 트란스발 공화국 (일반적으로 트란스발로 알려짐)에 대한 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건).
트란스발(보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기습해 정권을 흔들려던 모험이었다.
결말은 국제적 망신과 총리직 사임.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긴장은 보어전쟁으로 번졌다.
로즈가 직접 방아쇠를 당겼든 아니든, 무모한 사적 공작이 대륙 분쟁에 불을 붙인 건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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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슨 체포 장면” / “Arrest of Leander Starr Jameson”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가 남긴 것을 따져보자.
철도·전신·항만·광산 인프라? 맞다.
그러나 그 기반은 원주민 토지에서 빼앗은 지대와 저임금 강제노동 위에 세워졌다.
케이프의 대학·박물관 기부? 사실이다.
하지만 기부는 가면이었다.
장학금과 도서관 이름이 기억을 미화하는 동안, 광산 합숙소의 폐결핵·폐질환·사망은 통계의 뒷면에 묻혔다(전승/논쟁).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은 탁월한 개인을 길렀지만, 동시에 제국 엘리트 네트워크를 재생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의 사생활은 종종 신비로 포장된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남성 동료들과 가까이 지냈다는 단편 기록만 반복된다(논쟁).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핵심은 그가 권력-돈-법을 엮어 구조적 인종차별을 설계했다는 사실이다.
총리의 서명은 회사의 계약으로 번역되었고, 회사의 계약은 식민지의 법으로 둔갑했다.
그가 만든 문서들이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족쇄가 되었다.
1902년, 그는 49세로 죽었다.
유언장에는 장학금·토지·“제국의 결속”이 적혔다.
그러나 그 결속은 누군가의 땅을 풀면서 묶은 결속이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합숙소 철망은 남았고, 인종분리 행정은 더 정교해졌다.
후대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로즈와 동시대 식민 엘리트들이 깔아 둔 법·세금·노동 규정에서 싹텄다(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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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프타운대 로즈 동상” / “Rhodes statue at the University of Cape Town” Wikimedia Commons,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
시간이 흘러 ‘로즈 머스트 폴(Rhodes Must Fall 2015년 3월 9일에 시작된 항의 운동)’이 외쳐졌다.
동상 앞에서 학생과 시민이 물었다.
“이 이름의 출처는 무엇인가.”
“그 영광의 대가는 누구에게 청구되었는가.”
동상 철거는 상징이지만, 회계의 시선을 돌려놓는 상징이었다.
장학금·건물 명패·재단 보고서에 착취의 근거를 붙이는 일, 그게 최소한의 시작이다.
정리하자.
로즈는 투자자가 아니라 착취 설계자였다.
그는 토지 박탈·노동세·컴파운드 통제·인종별 직종 제한을 엮어 가난을 제도화했다.
그는 사기업과 식민 권력을 한 장부에 묶어 공·사 경계를 허물었다.
전쟁과 기습, 조약의 그림자 속에서 죽음·이주·침묵이 늘었다.
장학금 몇 줄로 이 죄목을 상쇄할 수는 없다.
야심의 크기가 죄의 크기를 덮지 못한다.
오늘의 독자에게 필요한 태도는 간단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제도와 기부의 재원·경로를 끝까지 추적할 것.
광산의 합숙소와 의회 속 법 조항을 한 문장으로 연결할 것.
그리고 글의 맨 끝에 이렇게 적을 것.
“이익이 남은 자리에는 피해가 있었다. 그 피해를 기록하고 보상하라.”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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