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달빛이 동북 변경의 설원을 긁었다.
갑옷의 가죽끈이 얼어붙고 말숨이 흰 증기처럼 퍼졌다.
척준경(拓俊京, Cheok Jun-gyeong, 고려 장수·여진전 승장)은 등자에 발을 깊이 넣고 칼자루의 매듭을 한 번 더 조였다.
그가 중얼거린 말은 늘 같았다.
“오늘 밤, 살아서 돌아가고 내 사람 전부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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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마기 위로 비늘갑옷이 비치는 고려 보병 상상 복원도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
그의 출발점은 궁궐이 아니라 곡주(谷州, 오늘 황해북도 곡산 일대)의 향리 집안이었다(전승).
글씨보다 들보, 학문보다 장정 일이 먼저였고, 겨울마다 짚신을 삼아 팔았다(전승).
힘은 있었으나 줄은 없었다.
그에게 궁문이 열린 건 계림군(鷄林君, 훗날 숙종)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칼을 쓸 데가 있다면 나를 쓰라.” 그가 건넨 인사는 짧았다(전승).
그가 군인으로 만든 습관은 세 가지였다.
첫째, 말에서 내리지 않고 활줄을 교체하는 연습.
둘째, 칼을 뽑는 손보다 칼을 넣는 손을 천천히 하는 호흡.
셋째, 철과 가죽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잠들기 전 손을 씻는 의식.
이상한 의식이라고 놀린 병사도 있었지만, 부대는 그가 지휘할 때 더 적게 죽었다(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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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진(金) 기병 돌격 장면, 북방 기동전 이미지” / “Jin (Jurchen) iron cavalry charge, steppe mobile warfar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적대는 강 너머의 동여진(Eastern Jurchen)에서 왔다.
1104년, 임간(林幹) 휘하의 부대가 뒤흔들릴 때 그는 말머리를 틀어 역으로 파고들었다.
앞선 여진 장수 하나를 말에서 떼어내 칼끝으로 눌렀고, 뒤따라오던 둘은 현이 짧은 활 두 발에 무너졌다(전승).
돌파의 틈이 생기자 퇴로가 열렸고, 무너질 전열이 재정비되었다.
이 하루가 그의 이름을 전선에 올렸다.
그는 자주 웃지 않았지만, 먹는 것을 가리지도 않았다.
술은 아꼈고, 밤에는 건조한 고기를 조금씩 씹었다(전승).
병영에서 그는 자던 자리를 바꾸지 않으려 했다.
“침낭을 바꾸면 꿈이 바뀐다.” 동료가 놀리면 그는 무표정으로 대꾸했다.
“꿈이 바뀌면 사람이 죽는다.” 이 습관은 오랫동안 이어졌다(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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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관(동북 9성 개척의 장수) 동상 / “Statue of General Yun Gwa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윤관(尹瓘, 동여진 정벌 총지휘)이 그를 불러 세웠다.
“성(城)을 세워 전선을 고정한다. 선봉에 서라.”
척준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107~1109년, 동북 9성(논쟁) 축조와 공방은 그의 무대를 넓혔다.
석성 공방전에서 그는 방패를 들어 화살 비를 견디며 사다리를 올렸고, 성벽 위의 지휘자를 향해 사선 베기를 두 번 넣었다고 전한다(전승).
그가 “소드마스터”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기술이 아니라 결과 때문이었다.
첫 대면에서 적장이 살아 돌아간 적이 거의 없었다는 소문이 퍼졌다(전승).
그는 넓은 칼(환도)에 무게를 싣지 않고 손목 회전으로 궤적을 짧게 만들었다.
창과 칼의 간격이 애매한 거리에서 칼끝을 먼저 도착시키는 감각이 있었다.
병사들은 그 감각을 ‘한 칸 당겨 베기’라고 불렀다(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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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환도(단도류) 전시—동아시아 만곡도 계열” / “Korean single-handed saber (Hwando) on display”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
그의 인간관계는 거칠었지만 단순했다.
군관 오연총(吳延寵, 윤관 부장)과는 말 한마디로 통했다.
매복에서 오연총이 화살을 맞자 그는 열 명을 끌고 역돌격으로 끊어냈고,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오연총은 그의 침낭 곁에 앉아 한마디만 남겼다고 한다.
“다음은 내가 앞선다.” 이런 약속은 기록보다 오래 남는다(전승).
부대 안에서 그는 병졸의 이름을 외웠다.
이름을 부르면 사람이 산다고 믿었다(전승).
장교 식탁이 나오는 날에도 그는 말먹이통에 손을 집어넣어 풀 냄새를 맡았다.
사소한 의식은 어리석어 보였지만, 부대의 긴장을 낮췄다.
그는 사람을 칼로 모으기보다 습관으로 묶었다.
겨울의 강은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얼기 전의 얇은 표면과 얼어 붙은 가장자리 사이로 도하를 해야 했다.
그는 신호를 단순화했다.
횃불 하나면 전진, 둘이면 정지, 셋이면 역행.
병사들은 초저녁 눈발 속에서도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뒤집힘은 전선이 아니라 궁궐에서 왔다.
전쟁의 공으로 궁정 문턱을 넘어선 그는 이자겸(李資謙, 인주 이씨 권신)과 얽혔다.
정략과 친분이 뒤엉킨 자리에서 칼을 내려놓아야 했고, 대신 입과 도장이 힘을 가졌다.
1126년, 반대파의 움직임에 그는 궁궐의 문을 장악하고 불을 질렀다는 기록이 있다(논쟁 여지 적음).
칼끝은 적이 아닌 기둥과 기와를 겨눴고, 그날 밤은 그를 벼락처럼 올리고 땅처럼 묶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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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 만월대(고려 궁성) 자리에서의 계회도, 궁정 공간 상상” / “Kyehoe painting on the site of Manwoldae (Goryeo palace), court setting referen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해 겨울, 그는 한 장의 종이를 오래 들여다봤다(전승).
“칼은 적에게 쓰되, 왕궁에는 쓰지 않는다.”
누군가 남겼다는 규정이 종이 위에 있었고, 그는 그 줄을 가만히 문질렀다.
다음 해, 그는 돌연 이자겸을 체포해 유배 보냈다.
권력의 판이 뒤집히자마자 그는 정지상(鄭知常, 문신)의 탄핵을 맞고 파직·유배를 받았다.
유배지에서 그는 매일 활시위를 갈아놓았다(전승).
쓸 데 없는 습관이었지만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던 소문은 두 종류였다.
“전장에서는 천 명 중 한 명.”
“궁궐에서는 한 번의 불.” 두 평판이 한 사람 위에서 싸웠다.
그의 사생활은 글에 많지 않다.
그러나 병졸들이 모아놓은 말이 있다.
그는 말을 좋아했고, 검보다 안장을 더 오래 닦았다(전승).
양초 두 자루를 절반만 태우고 껐다가 다음 날 다시 붙였다.
밤의 길이를 손으로 맞추려는 버릇이었다(전승).
그가 사랑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희박하다.
부인과 자식의 이름을 또렷이 남기지 못한 시대의 습관이 있었다(전승).
그렇다고 가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겨울 행군 직전, 그는 작은 노끈꾸러미를 부대 기록관에게 맡겼다고 한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이것을 집에.” 그 안에는 말갈기와 무명천이 들어 있었다(전승).
그의 검법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 장졸은 많았다.
그는 ‘세 가지 거리’를 강조했다.
붙기 전의 거리, 붙은 뒤의 거리, 그리고 물러나는 거리.
“물러나는 거리에서 지는 자가 죽는다.”
한 칸을 남겨두고 베는 법을 익히면, 칼은 무겁지 않았다(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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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상쌍검(馬上雙劍) 도해—기병 검술 운용” / “Mounted twin-sword technique plate (Muyedobotongji)”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의 별명이 “한국사 최고의 소드마스터”로 굳어진 이유는 전장 설화의 누적이었다.
베었다, 꿰뚫었다, 살아돌아왔다 같은 동사가 세대마다 더해졌다(전승).
당대 기록은 절제되어 있지만, 실전의 장면들이 군담과 구전으로 과장되어 퍼졌다.
그 과장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 하나였다.
‘선봉에 선 자’였다는 사실과, 그 선봉이 이긴 날이 많았다는 결과였다.
정치의 무대에서 그는 ‘선봉’이 될 수 없었다.
서열, 문장, 인척, 상소, 표결이 칼의 궤적을 이겼다.
유배에서 돌아온 뒤 복권의 흔적이 있으나 중심으로 복귀하진 못했다(논쟁).
1144년, 그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장례의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북변의 바람은 길게 불었다.
남은 사람들은 그를 두 문장으로 기억했다.
“돌파의 칼.”
“방화의 밤.”
역사는 둘 중 하나만 고르지 않았다.
둘을 함께 적었다.
그와 함께 싸운 병사들은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밤에 손을 씻던 장수.”
“이름을 불러주던 상관.”
“퇴로를 두 개 잡아두던 지휘관.”
결국 사람을 살게 한 건 검술만이 아니라 이 습관들이었다(전승).
오늘의 독자가 손에 쥘 좌표는 분명하다.
전장에서는 거리·호흡·신호가 체계로 작동했고, 그 체계가 승리를 반복했다.
궁정에서는 관계·의례·문서가 체계였고, 그 체계가 그를 밀어냈다.
한 사람의 일대기는 기술과 제도가 엇갈릴 때 가장 크게 흔들린다.
척준경의 곡선은 그 교차점에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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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 성벽의 겨울 지형—산악 공수(攻守)의 감각” / “Namhansanseong walls in winter—mountain fortress feel”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그리고 한 장면.
석성 아래, 그는 발을 네 번만 옮겼다.
방패의 윗선을 화살보다 높게 들고, 사다리의 마지막 두 계단에서 칼을 눕혔다.
적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 칼끝은 이미 돌아 나갔다.
이렇게 짧게 끝나는 싸움이 전설을 만든다(전승).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의 잔상을 붙인다.
윤관은 그를 “아들처럼” 여겼다는 말이 남아 있고, 오연총은 “내가 앞선다”고 남겼다(전승).
이자겸과는 연루의 무게만큼 결별의 상처가 컸다.
정지상의 상소는 기록으로 남아 그의 이름을 눌렀다.
사람이 사람을 올렸고, 또 사람이 사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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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원수 윤관 퍼블릭도메인 위키백과 |
이야기를 닫는다.
그는 칼로 올라가 불로 내려왔다.
그러나 검은 것과 붉은 것 사이에는 수많은 회색의 습관이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씻고, 퇴로를 남기는 습관.
그 습관이 있었기에 어떤 밤에는 모두가 살아 돌아왔다.
이 글은 [기본 사료·논문·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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