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포네, 금주법 시대를 지배한 시카고의 갱스터 왕 (Al Capone)



 이 글은 FBI 기록, 시카고 언론 기사, 

『Capone: The Life and World of Al Capone』 등 자료를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각색과 서사적 대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드라마와 긴장감을 살린 소설체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인물과 사건에는 이해를 돕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1899년, 뉴욕 브루클린. 

좁고 습한 아파트에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이 살고 있었다.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알폰소 가브리엘 카포네(알 카포네)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거리에서 배우는 건 학교 교과서와 달랐다. 

말썽꾸러기였던 그는 6학년 때 교사에게 대들다 퇴학당했다. 

그 이후 거리는 그의 학교가 되었다.


알 카포네, 1929년 젊은 시절의 모습 – Picryl, Public Domain


청소년 시절, 

그는 “패이브 포인츠 갱”이라 불리던 갱단과 어울렸다. 

얼굴에 칼자국을 남긴 사건도 이때 일어났다. 

한 술집에서 다른 남자의 여자에게 험한 말을 했다가 칼로 긁혀 얼굴에 상처가 남았고, 

이후 그는 “스카페이스(Scarfac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카포네는 이 별명을 싫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훗날 그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스무 살 무렵, 카포네는 시카고로 향했다. 

거기에는 그의 멘토 같은 존재, 조니 토리오(시카고 갱스터)가 있었다. 

토리오는 계산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범죄 세계에서는 냉혹한 전략가였다. 

카포네는 그의 오른팔로 들어갔고, 곧 시카고 암흑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0년, 미국은 금주법을 시행했다. 

술의 판매와 유통이 전면 금지되자, 합법적 술집들은 문을 닫았지만, 지하세계에는 금광이 열렸다.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원했고, 그 갈증을 채워주는 자가 돈을 벌었다. 

바로 카포네였다. 

그는 밀주 공장과 비밀 술집(스피크이지)을 장악하며 하루에 수십만 달러를 벌었다. 

당시 시카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의 조직을 통해 술을 공급받았다는 말까지 있었다.


카포네의 제국은 단순히 술에 그치지 않았다. 

매춘, 도박, 보호비. 

시카고의 거리와 나이트클럽, 카지노는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경찰과 정치인에게는 뇌물을 뿌려 충성심을 샀다. 

기자들은 그를 “공공의 적”이라 불렀지만, 

가난한 이웃들에게 빵과 수프를 나눠주는 그의 자선 행위는 

그를 “로빈후드”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수프 키친’을 운영하며 매일 수천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


추운 겨울, 한 끼를 기다리는 실직자들 - 카포네가 운영한 급식소 앞 풍경


그러나 카포네의 세계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1929년 2월 14일, 세인트 밸런타인 데이 학살이었다.

 라이벌 갱단인 모란 패거리를 제거하기 위해 카포네는 경찰로 위장한 부하들을 보냈다. 

그들은 시카고의 한 차고에서 일곱 명의 갱단원을 벽에 세워 총으로 난사했다. 

피비린내 나는 현장은 전국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카포네의 이름은 미국 전역에서 악명으로 울려 퍼졌다.


1929년 2월 14일 벌어진 냉혹한 희생. 시카고 역사에 각인된 사건 도식


그의 곁에는 언제나 충직한 부하들이 있었다. 

프랭크 니티(후계자), 잭 맥걸른(킬러), 토니 아카르도(훗날 대부). 

이들은 카포네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고, 그를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러나 동시에 배신과 음모도 끊이지 않았다. 

갱 세계에서 우정은 언제나 총구 앞에서 깨지기 마련이었다.


카포네는 폭력만으로 군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카고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시장 선거 때 후보들에게 거액을 건네며 자신의 이해에 맞게 판을 짰다. 

경찰의 상당수는 그의 봉투를 받아먹었고, 판사조차도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범죄자이자 동시에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의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다. 

연방 정부는 카포네를 잡기 위해 특별팀을 꾸렸다. 

“언터처블(The Untouchables)”이라 불린 엘리엇 네스(연방 수사관)와 

그의 팀은 카포네의 밀주 사업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러나 살인이나 밀주 거래 같은 범죄는 증거가 불충분했다. 

결국 검찰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세금이었다.


1931년, 카포네는 소득세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난 사업가일 뿐이다. 술을 원한 건 사람들이고, 나는 공급했을 뿐이다”라고 항변했지만, 

법정은 냉정했다. 

그는 11년 형을 선고받고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되었다.


1934년 8월 22일자 알카트라즈 수감 기록 속 알 카포네의 사진. 그의 제국이 무너진 순간.


알카트라즈의 차가운 독방에서 카포네는 점차 무너져 갔다.

 젊은 시절 걸렸던 매독이 신경을 갉아먹으며 정신을 황폐하게 했다. 

그는 점점 현실 감각을 잃었고, 한때 시카고를 지배했던 거물은 망령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1947년, 

플로리다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을 때 그는 겨우 48세였다.


알 카포네의 삶은 폭력과 부, 권력과 몰락의 이야기였다. 

그는 금주법이라는 시대의 산물이었고, 동시에 그 시대를 가장 강렬하게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에서 ‘갱스터 보스’의 전형으로 살아남았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영화 <언터처블>,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 속 카포네, 

그리고 수많은 패러디와 언급들. 

카포네는 죽었지만, 그의 이미지는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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