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간 사무라이: 하세쿠라 쓰네나가와 1613–1620 게이초 사절단 (Hasekura Tsunenaga)



 이 글은 사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대사, 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설명합니다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왔다

츠키노우라(츠키노우라 항·現 이시노마키 인근) 방파제 위에 선 사무라이가 

손을 들어 바다를 가리켰다

“출항이다”

그의 이름은 하세쿠라 쓰네나가(센다이 번 다테 마사무네의 가신, 사절단장)

배의 이름은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 다테마루)

센다이 번이 스페인식 갈레온을 본떠 건조한 대양선으로 거대한 나무성 같았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 복원선 / San Juan Bautista replica, Ishinom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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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에서는 프란시스코회 수도사 루이스 소텔로(스페인 출신 선교사·통역)가 

라틴어 기도를 낮게 읊조렸고 선원들 사이로 포르투갈 항해사와 

일본인 선원, 상인, 사무라이가 뒤섞여 움직였다

쓰네나가는 바람 냄새를 맡았다

소금기와 송진, 그리고 먼 육지에서 실려 온 듯한 향신료의 잔향

그의 임무는 단순했다

교황과 스페인 국왕에게 국서를 전하고 신앙의 길과 무역의 문을 연다

에도 초기, 센다이 번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가고자 했다

그가 믿은 것은 커다란 배 한 척과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장인의 손이었다


태평양은 끝없이 복제되는 파도의 선 같았다

사절단은 몇 달을 항해해 1614년 초 신대륙 누에바 에스파냐(現 멕시코) 아카풀코에 닿았다

줄지어 선 배들이 양피지와 은괴, 카카오와 원주민의 목판을 실어 나를 때 

쓰네나가는 항구의 열기 속에서 조용히 손가락을 펴 보였다

“여기가 출발이오”

그는 대서양을 건너기 전에 먼저 태평양의 끝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카풀코 만 전경 / Acapulco Bay pano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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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풀코에서 베라크루스까지 마차와 노새, 먼지와 태양이 사절단을 따라붙었다

대륙을 가로질러 스페인령 총독부의 길을 밟았다

베라크루스의 항만에서 기다리는 범선의 돛이 바람을 채우자 

쓰네나가는 발코니처럼 돌출된 함미에서 소텔로에게 물었다

“우리의 말이 그들에게 届(도달)할까요”

소텔로는 미소만 지었다

그 역시 바다를 믿었다


세비야 토레 델 오로 / Torre del Oro on the Guadalquivir, S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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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이 느리게 몸을 틀며 대서양으로 스며드는 도시였다

사절단의 등장은 동방에서 온 무사라는 이국 취향의 정점이었다

스페인 조정의 귀족들은 견고한 면류관과 구슬 같은 라틴어 수식으로 사절을 맞았다

쓰네나가는 무역과 선교를 말했고 스페인 측은 신앙과 정치를 헤아렸다

당시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 탄압이 강화되던 길목에 서 있었다

그 모순은 스페인 조정의 마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세쿠라 쓰네나가 로마 초상, 1615 / Hasekura Tsunenaga portrait in Rome,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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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로마

교황 바오로 5세 앞에 선 쓰네나가는 세례명 돈 펠리페 프란시스코 하세쿠라로 알현했다

아포스토리카 궁정의 대리석 복도에서 낯선 갑주가 창백한 빛을 반사했다

교황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바다를 건너 온 사절이여, 그대의 뜻을 알겠다”

쓰네나가는 십자가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센다이의 바람과 태평양의 파도 그리고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쇠망치 같은 의지였다


하세쿠라·소텔로의 교황 바오로 5세 알현 / Hasekura & Sotelo kneeling before Pope Paul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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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정의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스페인은 호의적이었으나 일본 본토에서 기독교가 금지되는 조짐이 뚜렷했다

무역 조약을 확답하기엔 시대의 바람이 거칠었다

쓰네나가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회색의 대답을 가슴에 넣고 다시 길을 떠났다


1619년 사절단은 다시 누에바 에스파냐를 횡단했고 

아카풀코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북상했다

1620년 그의 사명은 바다에서 끝났다

일본 땅에 도착했을 때 나라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사쿠쿠(쇄국)의 기운이 어둡게 내려앉았고 지나간 약속들은 서랍 속으로 밀려났다

그는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절단이 남긴 서류와 선물, 회화와 초상은 흩어졌다가 

훗날 메이지기의 재개방 이후에야 다시 불려 나왔다


그러나 이야기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다

안달루시아의 작은 강변 마을 코리아 델 리오

그곳 사람들 중 수백 명이 하폰(Japón)이라는 성씨를 갖고 산다

17세기 사절단 중 일부가 귀국하지 않고 그 땅에 남아 혈통을 이었다는 전승이 

오늘날 주민들의 이름 위에 가벼운 음영처럼 자리한다

도시의 광장에는 일본에서 온 사무라이의 동상이 서 있고 

바람이 불면 검이 아닌 올리브 잎이 흔들린다


코리아 델 리오 하세쿠라 동상 / Hasekura statue in Coria del Río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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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시 센다이로 돌려보자

바다의 배 산 후안 바우티스타

그 거대한 배는 청동 대포와 노, 삭구와 장부의 목재 결합으로 이루어진 움직이는 공방이었다

설계도는 온전치 않았으나 다테 가문의 기록과 장인의 손이 배의 치수를 재고 다시 그렸다

그 복제는 현대 이시노마키의 박물관에서 축소·재현으로 새 생명을 얻으며 

쓰네나가의 항로를 오늘의 방문객에게 체험으로 보여준다

쓰네나가는 사라졌지만 배의 이야기는 견고하게 남았다


그의 심리를 상상해 본다

로마의 회랑에서 교황의 그림자와 마주했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우리 번의 항로를 열고 신의 길을 지키고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져올 수 있을까

소텔로는 때로 과감했고 때로 조급했다

그의 야심에 대해선 (논쟁)이 많다

선교와 권좌의 꿈이 얽혔다고 말하는 글도 있고 오직 복음만을 보았다고 말하는 글도 있다


쓰네나가는 기록으로는 말이 적은 사람이다

그의 일기와 국서, 교황청의 공문이 조각조각 보일 뿐 그가 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항해의 흔적은 분명하다

일본 최초의 공식적 범대양 사절 중 하나가 유럽과 교황에게 직접 닿았다

그가 꿴 실은 두 나라의 정치가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지도였다


코리아 델 리오의 하폰 성씨는 낭만적인 일화로 소비되기도 한다

여섯 명의 사무라이가 정착했다는 수치와 구체적 계보에 관해선 (전승)의 냄새가 강하다

스페인 국립통계 자료와 지방사 서술에 따르면 수백 명 규모의 Japón 성씨 사용자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정확히 어느 인물의 어떤 결혼으로 이어졌는지는 학술적으로 더 따져야 한다

다만 도시의 통계와 주민 인터뷰 동상과 기념비 교류행사 등 문화적 기억은 살아 있다


게이초 사절단 항로 지도 / Map of the Keichō Embassy route (1613–1620)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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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나가의 여정이 남긴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실패처럼 보이는 외교도 지도를 남긴다

그 지도는 누군가에게 길을 가르친다

일본의 다음 유럽 사절은 200여 년 뒤인 1862년에야 이루어진다

쇄국의 긴 터널을 지난 후였다

둘째, 항해는 늘 인간의 몸을 바꾼다

아카풀코의 태양과 세비야의 강바람과 로마의 석재 냄새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돌아온 쓰네나가는 허리춤에 가벼워진 칼만 찼을 뿐 

손에 무역조약은 쥐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서 회수해 온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신뢰와 용기가 번역이 된다는 체험이었다


어떤 밤 이시노마키의 박물관에 전시된 복원선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흔들린다

파도가 아니라 방문객의 발소리와 어린이의 웃음에 배가 반응하는 듯하다

쓰네나가는 이제 사진 속 인물 동상 속 사무라이가 되었지만 

그의 배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배움의 감각을 남긴다

바다는 과거의 경계가 아니라 이야기의 시작점이었음을


In early 17th-century Japan, samurai envoy Hasekura Tsunenaga sails aboard the San Juan Bautista to seek trade and religious ties with Spain. 

Crossing the Pacific to Acapulco and overland to Veracruz, he reaches Seville and Rome, kneels before Pope Paul V, yet gains only vague promises as persecution grows at home.

 Returning via Manila, he dies soon after. 

His voyage leaves a map between oceans and a small legacy in Spain’s Coria del Río. It won no treaty, yet proved Japan could bridge two oc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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