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5세기 말 조선과 명의 관찬 문서·사행록·여정 기록을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합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합니다.
1488년 초, 제주 목포(제주도 북쪽 작은 포구)의 바람은 등잔불을 두 번씩 흔들어 껐다.
최부(崔溥, 1454–1504, 조선 성종 대 문신·『표해록(漂海錄)』 저자)가 마지막 짐을 배에 옮겼다.
상선의 돛이 축축했고, 줄은 이미 소금물로 뻣뻣했다.
“날이 더 좋아지기를 기다립시다.” 선주가 말했다.
최부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떠나지 않으면 기한을 어긴다.”
그는 관비(官費) 계산서와 관인(官印)을 다시 확인했다.
바람은 북동에서 밀려왔고, 파도는 등줄기를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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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사에 모셔져있는 최부 영정 | 
밤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바다는 배를 굴렸다.
돛대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통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로 시간을 셌고,
배 밑창의 곡식 자루는 눅눅해져 기름비린내를 뿜었다.
사흘째, 남쪽에서 몰아친 회오리바람이 돛을 찢어 버렸다.
선주는 노를 내리자고 소리쳤고, 사공들은 서로의 호흡에 맞춰 노를 맞댔다.
“지금 우리가 어디쯤이오.”
“별이 안 보여서 계산이 안 됩니다.”
해침(海針, 나침반)은 파도에 두 번 넘어져 바닥으로 굴러갔다.
그날 밤, 그들은 물을 아끼기 위해 입을 적실 정도만 돌렸다.
“저기… 새다.”
새벽녘, 선두의 젊은 사공이 외쳤다.
높게 선 하늘을 가르며 흰 날개가 지나갔다.
육지가 가깝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안도는 짧았다.
짙은 안개 뒤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수초 뒤, 노를 든 배들이 다가왔다.
창을 든 사내들이 고함을 질렀다.
“왜인(倭人)이냐!”
바닥에 앉아 있던 사공이 얼굴이 질려 최부를 보았다.
“도망치면, 해안 수사들이 더 쫓아옵니다.”
최부가 말했다.
“도망치지 않는다. 말로 증명하자.”
해안의 수사(巡檢, 해안 단속관)가 배 위로 올라왔다.
그의 첫 질문은 거칠고 짧았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최부가 허리를 펴고 대답했다.
“조선(朝鮮)의 관리다.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그는 포대 속에서 비단 조각과 조선 동전을 꺼내 놓고,
버선을 벗어 발목의 문신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당시 왜구 식별법, (전승)).
수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글자를 쓸 수 있느냐.”
“붓만 주면.”
최부는 무릎 위에 판자를 놓고 붓을 받아 쥐었다.
‘朝鮮之人 崔溥 謹白(조선 사람 최부 삼가 아뢴다).’
한 줄이 마르기도 전에 수사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저자(邸者, 관사)로 데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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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강도 옛 지도, 최부 표류 경로 배경 (Zhejiang map, Choe Bu drift contex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들은 절강(浙江, Zhejiang)의 해안 도시 태주(台州, Taizhou)에 상륙했다.
성문은 아직 이른 아침의 냉기를 품고 있었고,
관아 마당에는 소금 자루와 조운(漕運, 조세 수송) 배달표가 쌓여 있었다.
현령이 앞에 앉았고, 최부와 선주가 무릎을 꿇었다.
“왜구와 함께 오지 않았는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현령은 먼저 서면과 물건을 요구했다.
최부는 조선 관인의 인영과 길잡이문(통관 성격의 공문)을 묶어 내놓았다.
“글을 낭독해 보라.”
최부가 문장을 읽어 내려가자, 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와 법을 아는 자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물음을 던졌다.
“자네 나라의 법도와 예(禮)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가.”
최부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바는 같고, 나라가 백성을 거두는 뜻도 같습니다.
다만 풍속과 말이 다를 뿐입니다.”
그 대답은 관아 사람들의 긴장을 느슨하게 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쌀밥과 마른 생선을 얻었다.
사람들이 잠들 무렵, 최부는 얇은 종이를 빌려 오늘의 일을 정리했다.
‘지금부터 내가 본 이름들을 잊지 말자.’
그의 기록은 항해일지가 아니라, 눈과 귀와 혀로 확인한 삶의 목록이었다.
그는 시장의 물가, 항구의 측량법, 각 고을의 경비순서를 적고,
배가 들어오는 간격과 하역 인부의 수를 세었다.
아침이면 관의 인솔을 받아 북쪽으로 길을 이어갔다.
영파(寧波, Ningbo)에서는 바람이 다르게 분다.
포구의 낮은 비계 위에 말린 해초가 걸렸고,
사찰 앞 장터에서는 북방에서 실린 비단과 남방에서 올라온 차가 가지런히 나뉘어 있었다.
최부는 장판을 손으로 만져 보고, 장사꾼의 말을 빌려 단위를 적었다.
“한 필, 한 근, 한 섬.”
낭중에는 몸을 풀 새도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조선의 농서에는 모내기와 볍씨량을 어떻게 기록하느냐.”
“부역은 어떤 순서로 돌리느냐.”
최부는 아는 대로 대답했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는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진 ‘질서’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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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대운하·소금 운송 지도, 최부의 남북 이동 경로 맥락 (Grand Canal salt-transport map) British Library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그들의 길은 물길을 탔다.
대운하(大運河, Grand Canal)를 따라 북상하는 조운선에 합류하자,
강폭이 넓어지고 물결이 매끈해졌다.
쌀자루가 층층이 쌓였고, 세곡(稅穀)을 실은 배는 일정한 간격으로 서로를 따라갔다.
최부는 물길의 표지를 세는 습관을 들였다.
돌비의 문자는 닳아 있었으나, 집자(集字)한 획의 방향만으로도 북과 남을 구별할 수 있었다.
밤에는 배 위에서 별을 보았다.
별은 방향을 알려 주었고, 바람은 내일의 속도를 말했다.
그는 밤마다 낮의 일들을 기록하며, 그 기록이 언젠가 조선의 눈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한 도에서는 돌발 사건이 있었다.
장터 끝에서 시비가 붙었고, 누군가가 “왜놈이 섞였다!”고 외쳤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란스러워졌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인솔관이 급히 와서 둘 사이를 떼어 놓았다.
최부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는 이미 배웠다.
낯선 땅의 소란에는 말보다 문서가 효력이 크다는 것을.
잠시 뒤 관아에서 전달이 왔다.
“석양이 지나기 전, 관문으로 들어오라.”
그는 그 말만으로도 오늘 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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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양문(전양문) 성루, 북경 도성 남문 상징 (Zhengyangmen Gatehouse, Beijing)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 
봄의 끝에, 그들은 드디어 북경(北京)의 성벽을 봤다.
바람은 황토빛이었고, 문 앞의 군사들은 짧은 호흡으로 일렬을 유지했다.
예부(禮部, 명나라의 외교·의례 담당 관청)의 누각에 올라가자 종이 울렸다.
“조선에서 온 표류민.”
최부가 무릎을 꿇자, 위쪽에서 목소리가 떨어졌다.
“자네가 기록을 남긴다 하더군.”
“돌아가 왕에게 바칠 보고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좋다. 그러나 먼저 확실히 하자. 자네가 왜인이 아님을, 사신들과 문답으로 증명할 것.”
그는 조선 사행(使行, 외교 사절단)의 숙소에서 동향을 확인했고, 오래지 않아 통행패가 발급되었다.
그 패에는 돌아갈 길이 적혀 있었다.
북쪽 요동(遼東)을 거쳐 의주로, 그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은 바다보다 육지가 더 길었다.
요동의 바람은 지난 계절의 소금기를 씻어 가버렸고, 말의 발굽 아래 먼지는 쉬지 않고 일어섰다.
때로는 팔에 찬 인(印)보다 더 무거운 것이 배낭 속의 기록들이라고 느꼈다.
‘여기서 간격은 몇 보인가.’
‘저 도로의 폭은 어제보다 얼마쯤 넓어졌는가.’
그는 정지(程支, 일정 지원)를 받는 곳마다 잣대를 꺼내 들었다.
지나온 것들의 폭과 길이를 재면, 마음의 무게도 함께 잴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주에 다다랐을 때, 강물은 말이 필요 없다는 얼굴로 흘렀다.
조선의 세관은 그를 맞아들였고, 최부는 한양으로 올라가 보고를 바쳤다.
그의 보고는 곧 『표해록(漂海錄, (어원) ‘표류의 기록’)』이 되었다.
책은 단지 바다의 무서움을 적은 것이 아니었다.
길의 이름, 다리의 수, 깃발의 색, 도장을 찍는 순서,
선박이 부두에 묶이는 매듭의 방식 같은 작은 것들이 책의 중심이었다.
그는 그 작은 것들에서 나라의 체질을 보았다.
그리고 타인의 체질을 이해하는 법은 작은 관찰을 꾸준히 쌓는 일임을, 이 기록으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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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해록(漂海錄) 고려대 소장 동활자본 고려대 동활자본 표제/본문 컷 위키미디어 공용 |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렇게 꼼꼼히 적었는가.”
최부는 대답했다.
“우리가 모르면, 우리가 두려워한다.
알면, 덜 두렵다.”
그는 왜구(倭寇, 일본계 해적)와 혼동되어 목숨을 걸고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긴장의 순간들을 덜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을 책의 중심으로 당겨, 의심이 어떻게 풀리고 신뢰가 어떤 절차로 쌓이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의 책은 관료들의 책상에서만 읽힌 것이 아니었다.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들은 이 책으로 ‘길을 보는 눈’을 배웠고,
해외 사행을 준비하는 이들은 도시의 거리 폭과 시장의 가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는 법을 익혔다.
어떤 이들은 그가 쓴 한 문장을 밑줄 쳤다.
‘사람은 나라를 달리하되, 예의의 틀을 같이 한다.’
이 문장은 후대에 논쟁을 낳기도 했다(논쟁).
중화의 예를 기준으로 만물을 재단한 편견이 섞여 있는가,
아니면 서로의 질서를 인정하려는 노력인가.
그러나 현장에서 소문과 칼날 사이를 건너야 했던 그의 입장에서는,
그 문장이 낯선 이를 살게 한 최소한의 언어였다.
밤이면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매듭을 한 번 더 만졌다.
태주 관아의 하역 인부에게서 배운, 배를 묶을 때 쓰는 단단한 매듭.
그 매듭법은 『표해록』의 문장과 닮았다.
두 번은 정확히 겹치고, 한 번은 여유를 남긴 후, 마지막 당김으로 전체를 고정한다.
문장도 그렇게 묶였다.
사실을 두 번 겹치고, 관찰로 여유를 남기고, 판단으로 고정한다.
그가 나중에 관직을 옮겨 다닐 때, 사람들은 그를 ‘바다를 다녀온 사람’으로 기억했다.
사람들은 종종 영웅담을 원했지만, 그는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가 가진 무기는 기록과 질서, 그리고 낯선 곳에서 통하는 예였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적은 폭풍이 아니라, 폭풍 다음에 찾아오는 의심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을 이긴 것은, 말의 힘이 아니라 말의 형식이었다.
누구 앞에서나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절차를 따르며, 서명을 남기는 것.
그 형식이 그를 살렸다.
“그때 무서웠느냐.”
누군가 물었다.
최부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적었다.”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뒤의 추임새는 길었다.
‘적으면, 다시 지나갈 때 길이 된다.’
그의 책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그 문장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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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부 이동경로 | 
그의 여정에는 빈틈이 남아 있다.
그가 정말로 어떤 날 어떤 항구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몇 날 며칠을 바다에서 보냈는지는 사본마다 차이가 있다(전승).
또 기록에 실린 몇몇 인물의 호칭과 직책은
지방 문서와 중앙의 장계가 어긋나 수정이 붙기도 했다(논쟁).
그러나 각각의 작은 오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흐름은 명료하다.
한 사람의 관찰이 한 나라의 시야를 넓혔다는 사실.
바다의 비늘과 강의 물결, 관아의 도장과 시장의 활자 같은 작은 디테일이,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최소한의 지도가 되었다는 점.
다시 제주 앞바다의 날로 돌아가 보자.
바람은 등잔불을 껐다 켰다.
배가 떠나기 전, 최부는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았다.
저 끝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기 때문에, 적어야 한다.
그는 물끄러미 손에 든 붓을 바라보고, 돛이 펼쳐지는 소리에 맞춰 한 줄을 썼다.
‘오늘 떠난다.
길 위에서, 길을 배운다.’
그 문장은 바람이 바뀌어도, 사람 사이의 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읽힐 것이다.
1488, off Jeju, Joseon official Choe Bu is blown off course by a storm and drifts to China.
Seized as suspected pirates, he proves his identity with seals and neat brush script, then is escorted north through coastal towns and the Grand Canal to Beijing.
Each night he records prices, measures, routes, labor, and ritual—facts that turn fear into order.
Returning via Liaodong, he submits his journal as Pyohaerok: a procedural map of people and states meeting across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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