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고조선 건국 신화, 단군 신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한민족의 정신과 세계관, 그리고 고대인들의 자연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옛날, 하늘세상을 다스리던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인간 세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저 세상에 내려가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삶을 돕고 싶습니다.”
환인은 아들의 뜻을 받아들이며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건네주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바람·비·구름(풍백.우사.운사)을 다스리는 신들과 함께 신시(神市)를 열었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왔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환웅은 그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조건을 내걸었다.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 그러면 사람이 될 것이다.”
호랑이는 며칠도 못 버티고 뛰쳐나갔지만, 곰은 어둠 속에서 꿋꿋이 견뎌냈다.
21일째 되던 날, 곰은 마침내 여인 웅녀(熊女)로 변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왜 하필 곰이 주인공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곰이 가을에 굴로 들어가 겨울 내내 모습을 감추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이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로 인식했다.
- 겨울 → 죽음과 암흑의 시기
- 봄 → 새로운 생명과 빛의 귀환
곰은 이 생명의 순환을 몸소 보여주는 동물이었기에, 신성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따라서 웅녀의 100일 인내는 곰의 겨울잠을 의례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봄의 도래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웅녀는 혼자가 되었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환웅은 그 소원을 들어주어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해지며, 이는 오늘날 개천절(10월 3일)로 기념된다.
단군 신화에는 여러 해석이 공존한다.
토템 신앙 – 곰과 호랑이는 각각 부족 집단을 상징, 곰 부족이 주도권을 잡아 고조선을 세웠다는 설.
농경 vs 수렵 사회 – 곰은 인내와 농경 생활을, 호랑이는 사냥과 유목 생활을 상징.
부활과 재생의 신앙 – 곰의 겨울잠과 봄의 귀환이 ‘죽음-부활’의 주기와 연결.
여성 시조 신앙 – 웅녀를 통해 고대 한민족의 여성 중심 창세관을 엿볼 수 있음.
단군 신화는 곰이 사람이 되는 기묘한 변신담을 넘어,
계절의 변화, 생명의 순환, 하늘과 인간의 연결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4천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곰이 다시 깨어날 봄을 기다리며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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