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영원한 불꽃: 설죽화(雪竹花)의 생애와 귀주대첩의 서사적 재구성
1. 여요전쟁의 전략적 형세와 설죽화라는 상징의 출현
11세기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거란(요나라)의 팽창주의와 이에 맞선 고려의 수성 의지가 충돌하며 극도의 긴장감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제3차 여요전쟁은 고려의 국가 존망이 걸린 실존적 위기였으며,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은 고려의 심장부인 개경을 직접 겨냥하며 국운을 위협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 ‘설죽화(雪竹花)’라는 인물의 출현은 단순한 개인의 참전을 넘어, 계층과 성별을 초월한 고려인의 총체적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전략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정사(正史)에 명확히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민담과 설화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온 설죽화의 서사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민초들이 보여준 애국심이 어떻게 승리의 동력으로 치환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전장의 먼지 속에 사라진 이름 없는 병사가 아니라, 고려라는 공동체를 지탱한 보이지 않는 힘이자 ‘서사적 구심점’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의미를 발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국운을 건 대결전의 이면에 흐르는 한 가문의 비극과 결의를 살펴보기 위해, 설죽화의 아버지 이관의 유산으로 논의를 전환하겠습니다.
2. 애국의 씨앗: 이관(李寬)의 유언과 설죽화의 실존적 결단
설죽화의 비범함은 그녀의 탄생 설화에서부터 예견되었습니다.
어머니 홍씨는 태몽으로 북두칠성의 마지막 별인 파군성(破軍星)을 치마에 담는 꿈을 꾸었습니다.
파군성은 전통적으로 대장군이나 영웅의 탄생을 암시하는 별로, 이는 설죽화가 장차 고려를 구할 무인(武人)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장을 관통한 실제적 동력은 부친 이관(李寬)의 희생이었습니다.
평민 대장장이이자 무관 가문의 후손이었던 이관은 제2차 여요전쟁 당시 양규 장군 휘하에서 전사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이 텍스트는 설죽화에게 단순한 유품을 넘어 가문의 명령으로 기능했습니다.
이 땅에 침략하는 무리들이 천만 번 쳐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리라 믿고 나는 긴 칼을 치켜세운 채 이 한 몸을 바쳐 내달릴 뿐이로다.
이 유서에 담긴 핵심 가치는 설죽화의 삶을 규정하는 전략적 지침이 되었습니다.
• 미동(微動) 없는 저항: "고려의 자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적의 수세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가문의 정체성으로 확립시켰습니다.
• 후손의 투쟁에 대한 신뢰: 자신의 희생이 다음 세대의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설죽화에게 실존적 부채감을 부여했습니다.
• 자기희생적 실천: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무인의 자세를 가업으로 계승하게 했습니다.
어머니 홍씨는 딸을 보며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탄하였으나, 설죽화는 이를 성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동력으로 삼아 무예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설죽화가 선택한 남장의 길과 고난의 수련 과정을 이어가겠습니다.
3. 단련과 변모: 남장(男裝)의 필연성과 무예의 완성
여성이라는 사회적 제약과 군법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전장에 진입하기 위해, 설죽화는 ‘남장(男裝)’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감행합니다.
이는 단순한 변장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사회적 돌파구’였습니다.
무관 집안 출신의 대담한 조력자였던 어머니 홍씨는 설죽화에게 가문의 비전(秘傳) 무예를 전수하며 그녀를 병기로 완성시켰습니다.
• 무예의 섭렵: 귀주의 굴암산 일대에서 설죽화는 궁술, 검술, 창술을 비범한 속도로 익혔습니다.
• 백마와 청룡도의 시각적 위압감: 설죽화는 특히 주 무기로 청룡도를 선택하고 백마를 타고 전장을 누볐습니다.
이 흰색과 청색의 강렬한 시각적 대비는 거란군에게 '전장의 귀신'과 같은 공포감을 심어주는 심리전의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 실전적 단련: 남성 군인들 사이에서 위화감 없이 녹아들기 위해 혹독한 체력 단련과 소년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귀주 대첩의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수련을 마친 소년 전사가 고려의 총사령관 강감찬과 대면하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을 추적합니다.
4. 강감찬과의 독대: '고려의 꽃'으로 발탁된 전략적 배경
제3차 여요전쟁의 결전이 임박한 시점, 설죽화는 마양리 군마 훈련장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상원수 강감찬의 영루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장군의 친척이라 속여 독대를 성사시켰고, 소년의 모습으로 입대를 간청했습니다.
• 강감찬의 거절: "너의 뜻은 장하나, 나이가 차면 그때 다시 오라."
• 설죽화의 항변: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
강감찬 장군은 이 당당한 논리와 눈빛에 담긴 진정성을 발견했습니다.
노련한 전략가인 강감찬은 설죽화가 지닌 '애국적 상징성'이 군 전체의 사기를 고취할 수 있는 '전략적 불꽃'임을 간파했습니다.
이에 장군은 자신이 타던 백마 한 필과 창 한 자루를 하사하며 그녀를 소년군의 선봉장으로 파격 발탁했습니다.
이제 강감찬의 신뢰를 얻은 설죽화가 제3차 여요전쟁의 정점인 귀주대첩에서 펼친 활약상을 재구성합니다.
5. 결전의 귀주: 소년 선봉장의 용맹과 숭고한 희생
1019년 2월 1일(음력), 고려의 운명을 결정지을 귀주 평원의 대회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설죽화는 고려군의 최전방에서 소년 선봉대를 이끌며 전술적 돌파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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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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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귀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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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죽화의 서사적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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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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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동쪽 교외에서 양군 대치 및 장시간 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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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를 타고 청룡도를 휘두르며 적진 깊숙이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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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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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병대 합류와 남풍·소나기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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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의 기상 관측과 맞물린 과감한 돌격 타이밍으로 적의 전열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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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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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石川)과 반령(盤嶺)에서 거란군 궤멸 및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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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가슴에 창을 꽂는 순간, 배후에서 날아온 화살에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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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이 예견한 기상 이변(남풍)이 시작되자, 설죽화의 선봉대는 순풍을 타고 적의 궁기병 진영을 압도했습니다.
비바람으로 시야가 차단된 거란군에게 백마를 탄 설죽화의 돌격은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승기가 확정된 순간, 후방의 적병이 쏜 화살이 그녀를 관통했습니다.
그녀의 전사는 전쟁의 비정함과 개인의 숭고한 희생이 교차하는 극적인 서사의 정점이었습니다.
6. 설죽화(雪竹花)의 유산: '고려의 꽃'이 지닌 역사적 함의
전투가 끝난 후 전장에서 발견된 설죽화의 품 안에서는 아버지 이관의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가 남장 여성이었음을 알게 된 강감찬 장군은 큰 슬픔 속에서 그녀에게 '설죽화(雪竹花)'라는 이름을 헌사했습니다.
• 이름의 상징성: "눈 속에 핀 대나무 꽃"이라는 명칭은 한겨울(국난)의 모진 추위를 뚫고 피어난 고결한 절개와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 정치적 보상과 통치 전략: 강감찬은 그녀를 '고려의 꽃'이라 부르며 공신으로 예우하고 사당을 세울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신분과 성별을 불문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민초를 국가 영웅으로 격상시켜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고려의 고도화된 통치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 역사적 위치: 공식 정사에는 누락되었으나, 민담과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설죽화의 서사는 한국 여성 영웅 역사에서 성별의 제약을 실력과 의지로 돌파한 독보적인 인물상으로 평가됩니다.
결론적으로, 설죽화의 생애는 성별과 나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어 ‘용기’와 ‘애국’을 실천한 현대적 가치를 지닙니다.
그녀는 고려의 산하에 스러진 한 전사를 넘어, 위기의 시대마다 일어서는 평범한 영웅들의 영원한 상징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글은 《고려사》 등 정사에 기록된 귀주대첩과 여요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와 구전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물과 사건을 서사적으로 각색한 글입니다.
설죽화라는 인물과 그 구체적 행적은 공식 사료로 확인되는 역사 인물이 아니라, 전란 속에서 전해진 민간 설화와 상징을 재구성한 존재입니다.
본 글은 역사적 사실의 전달을 넘어, 당시 고려 사회가 공유했을 법한 가치·정서·저항 의지를 서사적으로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사료 해석이나 서사 구성에 대해 오류나 누락, 다른 견해가 있다면 댓글을 통해 자유롭게 제보하고 토론해 주시길 바랍니다.
This article is a narrative reconstruction inspired by Korean folk tales surrounding the Third Goryeo–Khitan War and the Battle of Gwiju in 1019.
Set against the existential crisis faced by Goryeo under Khitan invasion, the story centers on Seoljukhwa, a legendary female warrior figure passed down through oral tradition rather than official records.
Disguised as a young male soldier, she joins the army driven by her father’s sacrificial legacy and a profound sense of duty.
Recognized for her resolve, she fights at the forefront during the decisive battle led by General Gang Gam-chan.
Though her deeds are absent from formal chronicles, Seoljukhwa symbolizes the anonymous courage, sacrifice, and collective resistance of ordinary people who upheld Goryeo in its darkest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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