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부터 '고난의 행군'까지: 북한 대기근의 인과관계 총정리
1994년 가을, 평양의 한 아파트.
라디오에선 "사회주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작 부엌의 밥솥은 며칠째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국가가 주는 배급표는 이제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흉년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던 국가라는 기계가 통째로 멈춰 서는 소리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을 덮친 대기근은 단순한 식량 부족을 넘어 국가 시스템의 전면적 붕괴를 의미하는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 참혹한 시기를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했습니다.
이 용어는 1938년 말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유격대가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했다는 선전 우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북한 정권이 '기근' 대신 '행군'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체제의 실패를 혁명 정신으로 포장하여 주민들의 인내를 강요하려는 정치적 의도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이 시기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는 추산 방식에 따라 약 24만 명에서 3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편차가 큽니다.
사학계에서는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위해 2011년 미국 인구조사국(50~60만 명), 대한민국 통계청(약 33만 명) 등의 추산치를 병기하여 그 비극의 깊이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추정/논쟁)
이 미증유의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술적인 분석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식량의 절대적인 총량이 줄어든 현상인 '식량 가용량 감소(FAD, Food Availability Decline)'와, 식량은 존재하되 특정 계층이나 지역이 이를 얻을 권리를 박탈당한 '식량 획득권 상실(FED, Food Entitlement Decline)'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이 사건을 분석해야 합니다.
배경 분석: 북한 농업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
북한의 대기근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 아니라, 외부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집약적 농업'의 구조적 결함에서 싹텄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FAD(가용량 감소)의 잠재적 요인이었습니다.
[북한 농업의 선천적 제약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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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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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및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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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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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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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80% 이상이 산악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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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지 절대 부족, 서해안 평야에 생산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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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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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육 기간 및 냉해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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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지방 무상(無霜) 기간 130일에 불과, 이모작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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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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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농법 (에너지 집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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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관개), 화학 비료, 살충제에 대한 절대적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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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북한 농업의 비극적인 역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족한 경작지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주체농법은 대량의 비료와 전력을 소모했고, 이는 외부 에너지 공급이 끊기는 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았습니다.
[주체농법, 족쇄가 된 '기적의 농법']
주체농법은 겉보기엔 부족한 경작지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노력이었으나, 실제로는 생태계의 원리를 거스른 '화석 연료 중독 농법'이었습니다.
다락밭(산비탈 개간)의 비극: 북한은 "알곡 고지 점령"을 외치며 경사 15도가 넘는 산비탈까지 모두 깎아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사라진 산은 빗물을 머금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이는 훗날 홍수가 났을 때 토사가 그대로 하천으로 쏟아져 내려 강바닥을 높이고, 평야 지대까지 통째로 수몰시키는 '자폭 장치'가 되었습니다.
밀식 재배(빽빽하게 심기)의 한계: 한 뼘이라도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 농작물을 다닥다닥 붙여 심었습니다.
이를 버티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화학 비료와 살충제가 필수였습니다.
비료가 끊기자 지력(땅의 힘)은 순식간에 고갈되었고, 땅은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죽은 땅으로 변했습니다.
관개 시스템의 전기 의존: 북한은 가뭄을 막기 위해 전국에 수많은 펌프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펌프들은 오직 '전기'로만 돌아갔습니다.
소련 붕괴로 발전소용 석탄과 원유가 끊기자 관개망은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었고, 인민들은 눈앞에 물을 두고도 논에 물을 대지 못해 타 들어가는 작물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도미노: 소련의 붕괴와 에너지-산업 악순환
1991년 소련의 붕괴는 북한 농업을 지탱하던 에너지 줄기를 완전히 끊어놓았습니다.
소련은 원조 중단과 함께 무역 특혜를 폐지하고, 국제 통화로 거래하는 '경화 결제'를 요구했습니다.
외환 보유고가 전무했던 북한에 이는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 에너지 수입 75% 감소: 원유 수입이 급감하며 비료와 살충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 에너지-산업의 연쇄 붕괴: 북한 에너지의 85%를 담당하던 석탄 산업이 무너진 과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력 부족으로 탄광의 배수 펌프 가동이 멈추자 탄광이 침수되었고, 이는 다시 석탄 생산 감소와 전력난 가중이라는 파괴적인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 관개 시스템의 마비: 전력 공급이 끊기자 전동 펌프에 의존하던 논밭의 관개 시스템이 멈췄고, 비료조차 없는 토양에서 수확량은 급전직하했습니다.
두 번째 도미노: 중국의 태도 변화와 무역 방식 변경
소련의 공백을 잠시 메워주던 중국 역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북한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 1993년의 전환점: 중국은 자체 곡물 부족과 경화 확보 필요성으로 인해 북한에 제공하던 '우호 가격'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 의존의 한계: 당시 북한은 연료 수입의 77%, 식량 수입의 6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중국의 원조 축소로 인해 외부로부터의 식량 조달 창구는 사실상 봉쇄되었습니다.
결정적 재앙: 1995년 대홍수와 '악순환의 고리'
이미 한계에 다다른 북한 체제에 가해진 1995년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인재(人災)'였습니다.
7월 30일부터 8월 18일 사이, 평산군에는 단 7시간 만에 877mm라는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 자연 개조의 역습: 식량 생산을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락밭'과 땔감을 위한 무분별한 벌채가 산림을 황폐화했습니다.
나무가 사라진 산에서 쏟아진 토사는 강바닥을 높였고, 이는 홍수 피해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웠습니다.
• 구조적 악순환: '산림 황폐화 → 홍수 피해 가중 → 농경지 침수 및 토사 유입 → 수확량 감소 → 다시 산림 개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완성되었습니다.
• 성서적 규모의 파괴: 수력 발전 시설의 85%가 파괴되었고, 지하에 비축했던 비상 곡물 약 120만~150만 톤이 물에 잠겨 소실되었습니다.
가속화된 비극: 거버넌스의 실패와 선별적 배급(FED)
기근이 대량 아사로 이어진 결정적 이유는 북한 당국의 거버넌스 실패, 즉 FED(식량 획득권 상실)에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1996년, 북한 당국이 김일성 시신 보존을 위한 '금수산기념궁전' 확장 공사에 8억 9,000만 달러(당시 중앙당 국제비서 황장엽 주장)를 투입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 시세로 옥수수 600만 톤을 살 수 있는 금액이며, 북한 주민 전체의 3년 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또한, 당국은 체제 유지에 필요한 핵심 계층만을 살리는 '선별적 배급(Triage)'을 자행했습니다.
[정치적 지위에 따른 배급 우선순위 및 지역별 차별]
1. 특권층 및 군대: 조선인민군, 보위부 등 체제 핵심 인력 (최우선 배급)
2. 핵심 산업 노동자: 탄광 및 에너지 전략 부문 노동자
3. 일반 평양 시민: 체제의 안면 유지를 위한 최소 배급
4. 비특권 지역 주민: 함경도 등 동북부 지역 주민 (배급 중단 및 방치)
이러한 정책의 잔혹함은 아래의 대조 데이터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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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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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식량 생산량(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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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주민 배급량(g/2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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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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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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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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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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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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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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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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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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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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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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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지역은 평양보다 식량 생산량이 월등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급량은 평양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당국은 이 지역에 대한 배급을 의도적으로 끊고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여 '식량을 획득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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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행군시기 뉴스보도 |
[성역 안의 만찬, 성역 밖의 사투]
당시 북한의 현실이 얼마나 기괴했는지는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일본인 요리사)의 고백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인민들이 길거리에서 쓰러져 가던 그 시기, 평양의 '성역' 안에서 벌어진 초현실적인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김정일 패밀리의 생활상은 풍요로운 일본에서 온 나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하지만 성역 바깥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그날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1%를 위한 전 세계 쇼핑: 아이들이 굶주림에 풀뿌리를 씹을 때, 후지모토는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최고급 참치를 사러 일본으로, 철갑상어 알(캐비아)을 구하러 이란으로, 최고급 와인을 실어 오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미식의 집착: 김정일은 쌀 한 알까지 검수원들이 일일이 골라낸 '무결점의 밥'을 먹었습니다.
후지모토의 증언에 따르면, 최고 지도부의 연회장에는 전 세계 진미가 깔렸고 최고급 코냑인 '헤네시 파라디'가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오직 한 가족의 안위와 체제 유지에 몰빵(집중 투자)한 '자원 배분의 극단적 왜곡'이었습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잔혹한 대비는 고난의 행군이 왜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서글픈 증거입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과 분기점
소련 붕괴에서 시작된 에너지 위기(FAD)는 북한의 에너지 집약적 농업을 무너뜨렸고, 거버넌스의 실패와 정치적 분별 배급(FED)은 이를 대량 아사라는 참극으로 악화시켰습니다.
• 외부적 요인: 사회주의 권역의 붕괴와 기록적인 자연재해.
• 내부적 요인: 경직된 계획 경제, 무리한 자연 개조, 주민의 생명보다 체제 영속을 우선시한 비도덕적 자원 배분.
북한은 2000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고난의 행군이 종료되었음을 공식 선언했으나, 그 상흔은 깊었습니다.
국가 배급망이 멈춘 자리에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장마당'은 오늘날까지 북한 사회를 지탱하는 시장 경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은 가공되지 않은 구리선을 잘라 장터로 나갔고, 아이들은 산에서 캔 약초를 옥수수 한 줌과 바꿨습니다.
국가가 버린 목숨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거대한 노천 시장, 장마당이라는 북한판 암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의 심장부에서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인민들에게 '국가는 나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남겼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단순히 배고픈 시절이 아니라, 북한의 국가 시스템이 인민을 먹여 살릴 능력을 상실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한 역사적 분기점이었습니다.
이 글은 1990년대 북한 대기근(‘고난의 행군’)을 원인–결과의 흐름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역사 스토리텔링입니다.
사건의 뼈대(소련 붕괴 이후 대외교역 조건 변화, 에너지·비료·전력 부족, 1995년 홍수, 배급체계 약화, 장마당의 확산 등)는 널리 알려진 연구·증언·통계 논의에 기대고 있으나, 도입부의 장면(1994년 평양 아파트, 라디오 멘트, 부엌의 밥솥 같은 묘사)처럼 독자의 몰입을 돕기 위한 상상에 기반한 각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기록 그대로의 현장 재현’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문학적 재구성입니다.
또한 이 주제는 자료 접근의 한계가 크고, 정치·외교적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어 수치와 해석이 크게 엇갈립니다.
예를 들어 사망자 추산은 산출 방식(인구통계 방법, 조사 표본, 기간 설정, 누락·과대계상 가능성)에 따라 폭이 매우 넓고, 특정 사건(대외 원조·투자 규모, 시설 파괴 비율, 비축 곡물 손실량 등)도 증언 출처·정치적 맥락에 따라 신뢰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저는 이런 불확실성을 감추지 않기 위해 (추정/논쟁) 같은 표시를 넣었고, ‘식량의 총량이 줄어든 문제’와 ‘있어도 특정 집단이 얻지 못한 문제’를 나눠 설명하는 틀을 사용했습니다.
정리하면, 이 글은 “누가 언제 무엇을 100% 단정한다”가 아니라, 왜 그런 비극이 연쇄적으로 커졌는지를 독자가 한 번에 파악하도록 만든 각색된 분석 서사입니다.
정확한 연구·검증 목적이라면, 동일 사안에 대한 여러 보고서·통계·증언을 교차 확인해 읽어주세요.
In the mid-1990s, North Korea’s “Arduous March” famine signaled a state-wide breakdown.
After the USSR collapsed, fuel and fertilizer imports plunged and hard-currency trade rules bit, triggering power shortages, stalled mines, and failed irrigation—devastating energy-dependent farming.
China also tightened terms.
The 1995 floods then hit deforested slopes and terrace fields, worsening losses.
Mass death followed as governance and rationing turned selective: the military and Pyongyang were prioritized while outlying provinces were cut off.
With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failing, people turned to jangmadang markets to survive, leaving a lasting social scar and seeding market habits.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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