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왕정의 몰락과 공화정의 탄생: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루크레티아의 비극 (Lucius Tarquinius Superbus)


피의 마차와 루크레티아의 눈물: 로마의 마지막 폭군,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1부: 붉은 마차의 길, 찬탈자의 탄생

로마의 공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제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로마 제6대 왕)의 통치는 안정적이었으나, 그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고 있었다. 

그 균열의 중심에는 왕의 사위,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있었다. 

그는 선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오만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내였다.


“장인의 왕좌는 본래 나의 것이다.”


그는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곁에는 아내 툴리아(Tullia, 세르비우스의 딸)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보다 더 지독한 야망을 품은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각자의 배우자를 독살하고 결합한, 탐욕으로 맺어진 동맹이었다. 

툴리아는 매일같이 남편의 귀에 독을 탔다. 

"당신이 진정한 왕의 아들이라면, 왜 노예의 사위 노릇이나 하며 기다리고 있느냐"는 조롱 섞인 부추김이었다.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결전의 날이 밝았다. 

루키우스는 무장한 사병들을 이끌고 원로원(Senatus, 로마의 입법 및 자문 기구) 회의장에 난입했다.

그는 아무런 허가도 없이 왕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원로원 의원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리는 사이, 그는 당당히 선포했다.


“세르비우스는 왕의 자격이 없다! 그는 우리 가문의 권리를 훔친 자이며, 민중의 비위를 맞추는 노예의 자식일 뿐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구의 세르비우스 왕이 회의장 문을 열었다. 

“이게 무슨 무례인가, 루키우스!” 

왕의 외침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루키우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늙은 장인의 멱살을 잡고 회의장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왕은 부축을 받으며 궁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루키우스는 이미 자객들을 배치해 둔 상태였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차가운 칼날에 숨을 거두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존속 살해의 순간이었다.


로마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살해 장면을 묘사한 그림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성공을 확인하러 마차를 몰고 온 툴리아가 그 현장에 나타났다. 

마부는 길 한복판에 쓰러진 왕의 시신을 보고 경악하며 고삐를 당겼다.


“멈추지 마라.” 

툴리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마님, 저분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 내 앞을 막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시체일 뿐이다. 지나가라!”


로마 공주 툴리아가 아버지의 시신 위를 달려가고 있다


마차 바퀴가 세르비우스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거리에 울렸다. 

툴리아의 옷과 마차 바퀴는 아버지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훗날 로마인들은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거리를 '범죄의 거리(Vicus Sceleratus, 저주받은 길)'라고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Vicus Sceleratus 저주받은 길, 보르지아 계단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그렇게 피의 세례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전임 왕의 장례식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로물루스(Romulus, 로마의 건국 시조)도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원로원 의원들을 그날 밤부터 하나둘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는 민중의 투표도, 원로원의 승인도 거치지 않은 최초의 왕이었다. 

오직 공포와 무력만이 그의 왕권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로마인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정 오만한 자(Superbus)가 왕좌를 훔쳤구나.”

로마의 가장 어두운 시대, 폭정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2부: 오만한 자의 성벽, 피로 세운 제국

왕좌에 오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게 '법'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에 불과했다. 

그는 로마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이었던 원로원의 자문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자신을 호위하는 무장 경호원들과, 반대파의 목을 치는 서슬 퍼런 칼날뿐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원로원의 숫자를 줄였다.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의원들을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거나 추방했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왕실의 창고를 채웠다. 

로마인들은 이제 광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지 못했다. 

누군가 왕의 이름을 거론하면, 어디선가 왕의 첩자가 나타나 귓속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도시를 잠식했다.


“나는 로마를 이전보다 더 거대하고 장엄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너희의 신역(神役)이다.”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의 위상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대규모 토목 사업을 강행했다. 

그중 핵심은 로마의 주신을 모시는 유피테르 옵티무스 맥시무스 신전(Jupiter Optimus Maximus Temple,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주신전) 건립이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을 위해 그는 에트루리아(Etruria, 이탈리아 중부의 고대 문명권)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했다. 

돌을 나르고 흙을 팔 거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의 평민(Plebs, 로마의 자유 시민 계층)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어제까지 쟁기를 들고 밭을 갈던 시민들은 이제 채찍 아래에서 거대한 석재를 끌어야 했다.


“우리는 자유로운 시민인가, 아니면 왕의 노예인가?”


공사 현장에서 누군가 나직이 내뱉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것은 감독관의 가죽 채찍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의 하수도 시스템인 클로아카 맥시마(Cloaka Maxima, 거대한 하수도) 역시 이 시기에 정비했다. 

도시의 오물을 배출하는 이 혁신적인 시설은 로마를 쾌적하게 만들었지만, 그 하수도 안에는 노역에 지쳐 쓰러진 시민들의 원망이 함께 흘러들어갔다.


로마의 하수도 시스템


그는 대외 관계에서도 오만함을 감추지 않았다. 

인근의 라티움(Latium, 로마 주변의 평원 지대) 연맹체들을 압박하기 위해 그는 교묘한 계략을 썼다.

연맹 회의에서 자신을 비판한 투르누스 헤르도니우스(Turnus Herdonius)라는 인물에게 누명을 씌워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은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투르누스의 짐 속에 몰래 무기를 숨겨두고 '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조작된 증거를 제시했다. 

그리고는 투르누스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나무 격자를 덮은 뒤, 무거운 돌을 쌓아 산 채로 압사시켰다.


이 잔혹한 외교술 덕분에 로마는 라티움 연맹의 맹주가 되었고, 타르퀴니우스는 로마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절대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부유한 전리품과 웅장한 신전, 그리고 정비된 하수도까지. 

외견상 로마는 그 어느 때보다 번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려한 대리석 기둥 뒤에서 시민들은 야위어갔고, 귀족들은 숨을 죽이며 기회를 엿보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신전의 꼭대기에서 로마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1. 시빌라의 예언서 (폭군의 오만과 두려움) 

타르퀴니우스의 오만함이 극에 달했을 때, 정체모를 노파가 왕궁을 찾아왔다. 

그녀는 쿠마에의 예언자 시빌라(Sibylla)였다. 

노파는 아홉 권의 예언서를 내밀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왕은 비웃으며 그녀를 쫓아냈다. 

그러자 노파는 그 자리에서 세 권을 불태우더니, 남은 여섯 권을 처음과 같은 가격에 사라고 요구했다.

왕이 다시 거절하자 그녀는 또 세 권을 태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단 세 권. 

가격은 여전히 아홉 권 값이었다. 

그 기묘한 고집에 등골이 서늘해진 타르퀴니우스는 결국 막대한 금화를 지불하고 남은 책을 샀다. 

그것은 로마의 운명이 담긴 신탁서였으나, 폭군은 그 경고를 읽지 못했다.

이 책들이 훗날 로마가 국가 위기 때마다 펼쳐본 '시빌라 신탁서'가 된다.


타르퀴니우스와 시빌라


2. 꽃 꺾기 (잔혹한 통치 교육) 

어느 날, 이웃 도시 가비이(Gabii)를 공략 중이던 아들 섹스투스가 전령을 보냈다. 

"그곳의 유력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로마의 발아래 두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전령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정원을 거닐며, 지팡이로 가장 높이 솟아오른 양귀비 꽃봉오리들만 툭툭 쳐서 떨어뜨렸다.

전령이 보고한 이 기괴한 행동을 듣자마자 섹스투스는 무릎을 쳤다. 

그것은 '가장 머리 좋은 자들부터 목을 치라'는 침묵의 명령이었다. 

그날 가비이의 광장은 귀족들의 피로 씻겼다.


그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무렵, 왕실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왕궁의 기둥에서 뱀이 기어 나오고, 불길한 예언들이 로마를 감쌌다. 

타르퀴니우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아들들을 델포이(Delphi, 그리스의 유명한 신탁소)로 보냈다. 

그리고 그 일행 중에는, 멍청한 척하며 목숨을 보지하고 있던 조카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 '멍청이'라는 뜻의 별명을 가진 사내)가 섞여 있었다.

로마의 운명을 바꿀 폭풍이 서서히 북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타르퀴누스의 사악한 양심


3부: 루크레티아의 눈물, 폭발하는 로마

황금 지팡이 (브루투스의 위장된 지혜) 

왕실의 숙청 칼날이 친족들에게 향할 때,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바보(Brutus)'가 되기로 했다. 

그는 왕자들과 함께 델포이 신전으로 향할 때, 신에게 바칠 선물로 볼품없는 나무 지팡이 하나를 준비했다. 

왕자들은 그를 비웃었으나, 사실 그 지팡이 속은 텅 비워져 있었고 그 안엔 눈부신 순금 막대가 숨겨져 있었다. 

겉은 거칠고 멍청해 보이나 속은 가장 고귀한 지혜를 품은, 훗날의 브루투스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대지의 입맞춤 (운명적인 신탁)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왕자들은 장난스레 물었다. 

"우리 중 누가 로마의 다음 통치자가 되겠습니까?" 

신전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기이했다. 

"누구든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입을 맞추는 자가 로마의 주인이 되리라." 

왕자들은 고국에 남겨진 어머니에게 달려가려 앞다투어 말을 몰았다. 

하지만 브루투스는 발을 헛디딘 척 땅바닥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Terra)'에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왕자들이 인간의 어머니를 찾을 때, 그는 로마라는 대지를 먼저 품은 것이었다. 

훗날 그가 공화정의 시조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델포이의 신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브루투스가 땅에 입맞추는 그림


폭군의 권세가 영원할 것 같던 어느 날, 로마 군대는 아르데아(Ardea, 로마 인근의 부유한 도시)를 포위하고 지루한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선이 정체되자 왕자들과 귀족 자제들은 막사에서 술판을 벌이며 무료함을 달랬다. 

술기운이 오르자 대화는 자연스레 '누구의 아내가 가장 현숙한가'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내 아내 루크레티아(Lucretia)만큼 정숙한 여인은 없소."


왕의 친척인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Tarquinius Collatinus)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왕자들은 내기를 제안했다. 

그들은 즉시 말을 달려 예고 없이 각자의 집을 방문했다. 

다른 귀족 부인들이 연회를 즐기며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루크레티아만은 늦은 밤까지 등불 아래에서 시녀들과 함께 물레를 돌리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은 그 현장에 있던 모두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 고결함이 왕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Sextus Tarquinius)의 마음속에 검은 욕망을 심었다. 

며칠 뒤, 섹스투스는 홀로 콜라티누스의 집을 찾아갔다. 

루크레티아는 남편의 친척을 정성껏 대접했지만, 그날 밤 섹스투스는 칼을 들고 그녀의 침실에 난입했다.


그는 비열한 협박을 내뱉었다. 

그녀를 죽인 뒤, 곁에 발가벗긴 노예의 시체를 두어 '간통 현장을 들켜 살해당한 것'처럼 꾸미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루크레티아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섹스투스와 루크레티아


짐승 같은 욕망을 채운 섹스투스가 떠난 뒤,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전갈을 보냈다. 

그들이 달려오자,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겪은 치욕을 털어놓았다.


"내 몸은 더럽혀졌으나, 내 마음은 결백합니다. 죽음으로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하지만 부탁입니다. 그 살인자에게 복수를 맹세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루크레티아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울부짖을 때, 일행 중 한 남자가 그녀의 가슴에서 피 묻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동안 왕의 눈을 속이기 위해 바보 행세를 해왔던 조카,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 '멍청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나 실제로는 명민했던 인물)였다.


"이 순결한 피를 걸고 맹세한다!"


브루투스의 맹세


브루투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어눌하지 않았다. 

그것은 로마를 깨우는 천둥소리였다.


"신들께서 나의 증인이 되실 것이다. 나는 칼과 불,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그 사악한 자들을 쫓아낼 것이다. 그리고 맹세코, 앞으로 그 누구도 로마에서 왕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브루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로마 광장(Forum Romanum)으로 옮겼다. 

차갑게 식은 귀족 부인의 시신을 본 로마 시민들은 경악했다. 

그동안 왕의 오만함과 강제 노역에 억눌려 있던 분노가 이 비극적인 사건을 기폭제 삼아 불길처럼 타올랐다.


로마 광장


브루투스는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포효했다. 

그는 왕이 저지른 수많은 숙청과 오만함, 그리고 이제는 왕자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를 낱낱이 고발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왕의 노예로 남기를 거부했다.


"폭군을 몰아내라!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추방하라!"


광장을 가득 메운 함성은 로마 성벽을 넘어 아르데아 전선에 있던 왕에게까지 전달되었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급히 로마로 말머리를 돌렸으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굳게 닫힌 성문과 성벽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한 여인의 죽음이 240여 년간 이어진 로마 왕정의 기둥을 뿌리째 흔들고 있었다.


4부: 닫힌 성문, 그리고 위대한 유산 '레스 푸블리카'

로마의 성문은 견고했다. 

성문 너머로 쫓겨난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발아래 엎드렸던 백성들이 이제는 창을 거꾸로 쥐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권위가 한순간에 무너졌음을 직시했다. 

하지만 '오만한 자'는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그는 로마를 되찾기 위해 에트루리아의 강력한 군주 포르세나(Lars Porsena, 클루시움의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왕권이 무너지면 당신의 권위도 위험해질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연합군을 결성했다. 

로마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전임 왕이 성벽 밖에서 적군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티베리스강(Tiberis, 로마를 가로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의 배신자들을 규합해 성벽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더 이상 왕의 명령에 따르는 장기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시민'이 되어 있었다.


호라티우스 코클레스(Horatius Cocles, 다리를 홀로 지킨 영웅)가 외나무다리에서 적군을 막아내고, 무키우스 스카에볼라(Mucius Scaevola, 자신의 오른손을 불에 태운 용사)가 적진에 뛰어들어 로마인의 결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초인적인 저항 앞에 타르퀴니우스의 복위 꿈은 서서히 산산조각 났다.


다리를 방어하는 호라티우스 코클레스


결국,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레길루스 호수 전투(Battle of Lake Regillus, 로마와 라티움 연맹의 결정적 전투)에서도 패배했다. 

늙고 지친 폭군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쿠마에(Cumae, 이탈리아 남부의 고대 도시)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로마의 마지막 왕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왕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브루투스는 약속대로 로마를 '왕 없는 나라'로 선포했다.


"이제 로마의 주인은 단 한 명의 왕이 아니라, 로마 시민 전체다."


그들은 이 새로운 체제를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공공의 것)', 즉 공화정이라 불렀다.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해 왕의 권한을 둘로 나누어 집정관(Consul, 공화정의 최고 정무관) 제도를 도입했고,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했다. 

브루투스 스스로가 첫 번째 집정관이 되어 공화정의 기틀을 닦았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폭정은 로마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지만, 동시에 강력한 예방주사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왕(Rex)'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고, 이 지독한 혐오감은 역설적으로 로마가 민주적 절차와 견제 시스템을 갖춘 거대 국가로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다.

찬탈과 폭정으로 시작된 그의 일대기는 비참한 추방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폭군의 그림자'가 짙었던 만큼, 로마가 쏘아 올린 '자유의 빛'은 더욱 강렬하게 서구 역사를 비추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끝낸 마지막 왕,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 최초의 시민들. 

로마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이 피비린내 나는 폭정의 종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 글은 리비우스(Livy)의 『로마사』를 비롯한 고대 사료에 기록된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로마 왕정 말기의 사건을 바탕으로, 독자의 이해와 몰입을 돕기 위해 소설적 서사로 재구성한 역사 스토리텔링입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죽음, 툴리아의 마차 사건, 시빌라의 예언서, 루크레티아의 비극과 공화정의 성립 등은 모두 고대 사료에 근거하되, 구체적인 대사·심리·장면 묘사는 전승과 학계 해석을 참고해 각색되었습니다.

본 글은 학술 논문이 아닌 서사 중심의 역사 해설임을 밝히며, 일부 장면은 (전승)에 기반해 구성되었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This story recounts the fall of Rome’s last king, Lucius Tarquinius Superbus, whose rise to power began with blood and betrayal. 

Driven by ambition and encouraged by his ruthless wife Tullia, Tarquin seized the throne by murdering his father-in-law, King Servius Tullius, inaugurating a reign based solely on fear and force.

As king, Tarquin ruled without Senate approval, executed opponents, and forced Roman citizens into harsh labor to build monumental projects such as the Temple of Jupiter and the Cloaca Maxima. 

Rome appeared powerful, yet resentment grew beneath its grandeur. 

His cruelty extended beyond Rome, as he manipulated and murdered rival leaders to dominate Latium.

The turning point came with his son Sextus. 

After witnessing the virtue of Lucretia, the wife of Tarquin’s kinsman, Sextus assaulted her under threat of disgrace. 

Unable to live with the dishonor, Lucretia took her own life, demanding vengeance. 

Her death ignited Rome’s suppressed fury.

Lucius Junius Brutus, long pretending to be a fool to survive the tyrant’s court, revealed his true resolve. 

Swearing over Lucretia’s blood, he led the people in revolt. 

The royal family was expelled, Rome’s gates were closed to its king, and Tarquin’s attempts to reclaim power failed.

From this violence emerged a new order: the Roman Republic, founded on shared authority and the rejection of kingship. 

The tyranny of Tarquin became the dark lesson that shaped Rome’s enduring fear of absolute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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