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 아들의 반전 실화: 황치신과 온양 방씨, 조선 최고의 공처가가 된 이유 (The Love Story of Hwang Chi-sin)


꽃가마 대신 짚신을 신은 그대에게: 황치신과 온양 방씨의 조선 로맨스


[제1부] 소년, 평생의 정인을 만나다

1. 청백리 아버지의 그늘, 그리고 가난이라는 이름의 일상

내 아버지는 황희(조선 최고의 정승, 청백리의 상징)라는 이름 으로 온 나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이셨다. 

사람들은 정승의 아들인 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줄 알지만, 우리 집 담장 안의 풍경은 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방안에서도 삿갓을 써야 했고, 겨울이면 칼바람이 문풍지를 찢고 들어와 이불 속에서도 입김이 나왔다. 

아버지는 조정의 최고 관직에 계셨으나, 집으로 돌아오면 그저 낡은 도포를 기워 입는 고집 센 선비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출세'보다는 '생존'이 시급한 소년이었다.


"치신아,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가난을 이기지 못해 뜻을 굽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열여섯 소년이었던 나에게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장의 배고픔이었고, 겨울날 갈라진 발뒤꿈치의 통증이었다. 

그런 나의 척박한 삶에 한 줄기 빛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2. 온양 방씨,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

혼사가 결정되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대대로 명망 있는 가문인 온양 방씨 댁 귀한 따님이 우리 집의 이 지독한 가난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혼례 날, 연지곤지를 찍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새하얀 피부와 맑은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며 살짝 지어 보이던 그 단아한 미소. 

나는 그 순간 맹세했다. 

내 평생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노라고.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신혼방에 깔린 이불은 솜이 다 죽어 딱딱했고, 첫날밤 대접한 음식은 거친 보리밥과 소금에 절인 채소가 전부였다.


"부인, 미안하오. 정승의 집안이라 하여 호강시켜 줄 줄 알았을 텐데, 내 처지가 이리도 구차하구려."

고개를 숙인 나에게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손을 잡았다. 

"서방님, 저는 황희 정승의 명성을 산 것이 아니라, 서방님의 꼿꼿한 기개를 보고 온 것입니다. 기와집 수백 채보다 서방님의 마음 하나면 족합니다."


3. 꽃가마 대신 호미를 든 여인

결혼 후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단 옷을 입고 가야금이나 뜯어야 할 귀한 몸이, 우리 집에 오자마자 거친 삼베옷을 입고 밭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청백리의 길을 걷느라 자식들에게 땅 한 마지기 물려주지 않으셨기에, 우리 부부는 직접 흙을 일궈야 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밭일하느라 손마디가 굵어지고 얼굴이 그을린 아내를 보며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꼭 과거에 급제하여 부인을 비단 방석에 앉혀 주겠소." 

나의 다짐에 그녀는 땀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비단 방석이 무엇입니까? 서방님과 함께 걷는 이 흙길이 제게는 비단길인걸요."


그녀는 영리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댁 식구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늘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를 보며 흐뭇해하셨다. 

"치신아, 네가 나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구나. 저런 보물을 아내로 맞이했으니 말이다."


4. 과거 급제, 그리고 눈물로 쓴 약속

세월이 흘러 나는 드디어 대과에 급제했다. 

급제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왔을 때, 아내는 여느 때처럼 낡은 옷을 꿰매고 있었다.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서방님,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 눈물은 지난 세월 우리가 견뎌온 가난에 대한 보상이었고, 나에 대한 믿음의 증거였다. 

나는 그녀를 품에 꽉 안았다. 

이제는 관직에 올라 그녀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관직에 나가는 것이 우리를 더 큰 시련 속으로 밀어 넣을 줄은. 

아버지가 걸었던 그 외로운 길을 나 또한 걸어야 했고, 아내는 여전히 내 뒤에서 고독한 등불이 되어 주어야 했다.


[제2부] 내 지아비의 등 뒤에서

1. 연지곤지를 찍던 날의 무거운 약속

가문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온양 방씨 댁 귀한 딸이 비 새는 오두막이나 다름없는 황희 정승 댁으로 시집을 간다니, 숙모님들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님이신 황희 정승의 청렴함이 이 나라의 기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둥 아래서 자란 아들이라면 필시 내 평생을 맡길 수 있는 굳건한 사내일 것임을.


꽃가마를 타고 도착한 시댁은 생각보다 더 참담했다. 

담장은 허물어져 있었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러나 가마 문이 열리고 나를 맞이하던 치신 서방님의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가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눈에는 미안함과 설렘, 그리고 나를 귀히 여기겠다는 서약이 서려 있었다.


첫날밤, 서방님은 내 거친 손을 잡고 울먹이셨다. 

"부인, 내 반드시 그대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날을 만들겠소." 

나는 속으로 웃었다. 

선비의 아내가 되어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니, 이 얼마나 바보 같고 사랑스러운 다짐인가. 

나는 대답 대신 서방님의 낡은 도포 자락을 꼭 쥐었다.


2. 정승 댁 며느리의 감춰진 눈물

아침마다 시아버님인 황희 정승의 세숫물을 올리는 것으로 내 하루는 시작되었다. 

일국의 영의정이라 하지만, 아버님의 밥상에는 늘 거친 나물 서너 가지가 전부였다. 

며느리로서 고기 한 점 올리지 못하는 심정은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


살림은 늘 바닥을 보였다. 

쌀독이 비는 날이면 나는 친정에서 가져온 비단 옷감을 몰래 시장에 내다 팔았다. 

서방님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버님이 국정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나는 집안의 배고픔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어느 겨울날, 땔감이 떨어져 방바닥이 얼음장 같았다. 

나는 서방님이 깰까 봐 조심스레 일어나 내 겉옷을 서방님 위에 덮어드렸다. 

그때 서방님이 잠결에 내 손을 잡으셨다. 

"부인, 춥지 않소? 내가... 내가 무능하여 그대를 떨게 하는구려." 

서방님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밤, 서방님의 품 안에서 처음으로 가난이 서러워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는 연민의 눈물이었다.


3. 지극한 사랑, 세상이 '공처가'라 불러도

서방님이 관직에 나간 후에도 우리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서방님은 아버님을 닮아 결코 부정한 재물에 손을 대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를 향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풍족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방님이 동료 관료들과의 모임에서 내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단다. 

"내 부인은 조선 최고의 여인이오. 그대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오." 

체통을 중시하는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아내 자랑은 금기였다. 

동료들은 서방님을 '공처가(어원: 아내를 두려워하는 남편)'라 놀려댔다.


그 소문을 듣고 내가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서방님, 밖에서 제 자랑을 너무 하지 마셔요. 사람들이 비웃는답니다." 

그러자 서방님은 허허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 안으셨다. 

"부인, 내가 부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것인데 어찌 비웃음이 두렵겠소? 내 마음이 그러한 것을 어찌 숨기란 말이오." 

그 우직한 사랑 앞에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4. 황금빛 노을 아래서 나누는 진심

세월이 흘러 서방님은 높은 관직(판중추부사)에 올랐고, 우리 집에도 드디어 쌀이 귀하지 않은 날이 왔다.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청렴한 정신은 우리 가문의 자부심으로 남았다.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센 서방님과 나는 가끔 마당에 앉아 노을을 바라본다. 

서방님은 여전히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부인, 이제 비단 옷도 입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 소원이 없소?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소?"


나는 그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서방님, 제 소원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뿐입니다. 다음 생에도 서방님의 낡은 도포를 기워주는 아낙으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서방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독했던 가난도, 서러웠던 눈물도 이 손의 온기 앞에서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등 뒤를 지키며 평생을 걸어왔다.


[제3부] 600년을 이어온 사랑의 유산

1. 전설이 된 청백리의 아들과 그의 정인

세월은 물처럼 흘러 조선의 산천은 수없이 변했지만, 황치신(황희의 차남)과 온양 방씨 부인의 이야기는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다. 

조선 초기,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영의정 황희의 아들이라면 으레 부귀영화의 상징이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기록이 전하는 황치신의 삶은 오히려 '가난한 사랑'의 숭고함을 증명하는 데 바쳐졌다.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아내를 지극히 아끼는 남편은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황치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아내가 젊은 시절 자신을 위해 거친 베옷을 입고 호미를 들었던 그 시간을 평생의 빚으로 여겼다.

실록에 기록된 그의 관직 생활은 강직했으나, 집 안에서의 그는 아내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가슴을 졸이는 다정한 사내였다. 

사람들은 그를 '공처가'라 부르며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그런 진실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의 시샘이 서려 있었다.


2. 가문을 세운 것은 칼이 아니라 '헌신'이었다

황치신이 훗날 판중추부사(조선시대 정1품·종1품 관직)라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의 후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안의 모든 궂은일을 도맡으며 남편의 기개를 지켜준 온양 방씨 부인의 헌신 덕분이었다. 

그녀는 명문가의 딸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우는 대신, 시아버지의 청렴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비단옷을 팔아 끼니를 잇는 '지혜로운 가난'을 택했다.


역사는 대개 영웅들의 정복 전쟁이나 피 튀기는 정치 싸움을 기록한다. 

하지만 황치신 가문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준다. 

부인은 남편이 청백리의 길을 걷느라 봉급조차 제대로 가져오지 못할 때도, 단 한 번도 남편의 무능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빈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은 그녀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황치신을 조선의 대들보 같은 신료로 성장시킨 것이다.


3. 사라지지 않는 온기, 600년의 시간을 넘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들의 사랑은 후손들에게 가장 큰 유산이 되었다. 

장수 황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풍은 단순한 '효(孝)'나 '충(忠)'을 넘어, 부부간의 '신(信)'과 '애(愛)'를 강조한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올 때 사랑이 대문으로 나간다는 서양 속담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가난이 들어올수록 서로의 손을 더 꽉 맞잡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유독 달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빈곤을 겪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건 없이 서로의 밑바닥을 사랑했던 황치신과 방씨 부인의 모습은, 사랑이 곧 '인내'이자 '함께 걷는 길'임을 일깨워준다.


4.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

장수 황씨의 선산 어딘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있을 것이다.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죽어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말이다. 

황치신이 아내를 위해 읊었을 법한 연가는 이제 바람을 타고 내려와 현대인들의 귓가에 속삭인다.


"사랑이란 화려한 기와집 아래서 나누는 비단결 같은 대화가 아니라, 빗물이 새는 초가삼간 아래서 서로의 젖은 어깨를 닦아주는 손길이다."


600년 전 조선을 뜨겁게 달궜던 이 공처가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한 편의 명작 드라마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았다. 

그들이 남긴 것은 높은 관직도, 엄청난 재산도 아니었다. 

오직 '그대여서 고마웠다'는 짧은 고백 하나였다. 

그리고 그 고백은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해피엔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조선 초기의 분위기와 당대 가치관(청렴, 과거, 사대부 가정의 살림살이 등)을 바탕으로, 황치신(黃致身)·온양 방씨 부부의 이야기를 “서사”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관직·사회상은 가능한 한 사실 틀에 맞추되, 대화·심리·장면 전개(가난의 구체 묘사, 부부의 대사, 생활 디테일 등)는 독자의 몰입을 위해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연대기식 강의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 위에 올린 “이야기”이며, 동일 소재라도 자료와 해석에 따라 세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신 분은 관련 실록·문집·가문 기록(족보·묘갈명 등)과 연구서를 함께 대조해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A son of the famously incorrupt minister Hwang Hui, Hwang Chisin grows up in poverty despite his father’s rank. 

Married to a noblewoman of the Onyang Bang clan, he fears she will suffer—yet she chooses his integrity over comfort, selling silks for rice and working the fields to keep the household afloat. 

Her resolve steadies him through study; when he passes the civil exam and enters office, he rejects easy wealth, drawing mockery as a “wife-fearing” man for praising her sacrifices. 

In old age, with modest security at last, they see hunger and cold as the price of a truer legacy: lifelong partn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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