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명주옷을 입은 성군: 전한 문제(文帝) 유항의 위대한 생애
1. 피바람 부는 장안의 그림자 속에서
기원전 2세기 초, 한나라의 수도 장안은 화려한 궁궐의 외양과는 달리 비릿한 혈향과 서슬 퍼런 공포가 지배하는 거대한 감옥과 같았습니다.
제국을 건국한 고조 유방이 서거한 후, 권력의 고삐를 쥔 것은 그의 정처였던 여후(여태후)였습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유씨 종친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고조가 생전에 아꼈던 척부인과 그녀의 아들 조왕 유여의의 비극이었습니다.
여후는 유여의를 독살한 것도 모자라,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고 귀를 태운 뒤 변소에 던져 '사람 돼지(인체)'라 부르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여후의 친아들 혜제조차 큰 충격을 받아 정사를 돌보지 못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을 떠날 정도였습니다.
장안의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유씨 성을 가진 왕자들이라면 누구나 자다가도 목에 칼이 들어오는 환청을 들어야 했습니다.
조왕 자리는 특히 저주받은 자리였습니다.
유여의가 죽은 뒤 그 자리를 이은 조유왕 유우는 여씨 출신 왕후의 모함으로 굶어 죽었고, 그 뒤를 이은 조공왕 유회는 애첩이 여씨 일가에 의해 살해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장안의 미앙궁은 이제 주인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오직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만을 물을 뿐이다."
이토록 위태로운 제국의 운명 속에서, 훗날 천하를 평안케 할 한 줄기 빛은 변방의 대나라에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유방의 넷째 아들 유항, 그는 어머니 박씨와 함께 북쪽 변방의 척박한 땅에서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가 훗날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이 죽음의 문턱에서 배운 겸손과 인내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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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한 5대황제 문제 유항 |
2. 변방의 어린 왕: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겸손
유항이 6세가 되던 해(기원전 196년), 그는 대나라의 왕으로 봉해졌습니다.
당시 대나라는 흉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험지 중의 험지였습니다.
화려한 장안에서 밀려난 셈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소외'가 그에게는 천운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박씨는 유방의 총애를 거의 받지 못하던 후궁이었습니다.
여후의 질투는 유방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척부인이나 강력한 외가를 가졌던 다른 왕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세력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았던 박씨와 유항은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나라의 찬바람을 맞으며 유항은 어머니로부터 권력의 덧없음을 배웠습니다.
박씨는 아들에게 늘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장안에서 들려오는 참혹한 소식들을 경계의 거울로 삼았습니다.
어머니 박씨: "항아, 대나라의 흙먼지는 눈을 따갑게 하지만 장안의 비단결은 목을 조이는 밧줄이 될 수 있다. 조나라의 형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았느냐? 권력은 네가 잡으려 할 때 너를 집어삼키는 법이다. 오직 백성만을 살피며 네 존재를 세상이 잊게 하거라.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아 언젠가 뜻을 펼칠 유일한 길이다."
어린 유항: "어머니, 장안의 화려함보다 어머니와 함께 이 거친 땅의 백성들과 흙을 밟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황제가 누구인지,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고 오직 오늘 하루의 평안만을 구하겠습니다."
▣ 유항을 둘러싼 인물 관계 및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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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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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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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및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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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에게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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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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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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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건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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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을 변방 대나라로 봉해 정치적 거리를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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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박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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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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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후궁, 지혜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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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효심, 생존을 위한 '무위'의 미학을 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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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여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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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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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실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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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종친을 숙청했으나 유항은 위협이 안 된다고 판단해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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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의·유우·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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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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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조왕(趙王)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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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다툼의 참혹한 결말을 몸소 보여준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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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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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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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의 공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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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여씨를 타도하고 유항을 황제로 세우는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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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몸을 낮추며 백성을 돌보던 유항에게, 어느 날 운명의 수레바퀴가 거칠게 회전하며 찾아왔습니다.
기원전 180년, 제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후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3. 운명의 부름: "이것은 함정인가, 천운인가?"
여후가 죽자 장안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주발과 진평 등 구공신들은 유씨 종친들과 손잡고 여씨 일가를 뿌리 뽑는 반정을 일으켰습니다.
피의 대숙청이 끝난 후, 공신들은 새로운 황제를 세워야 했습니다.
처음 거론된 이는 제애왕 유양이었습니다.
그는 반정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대신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애왕의 외가인 사(駟)씨 일가는 포악하기로 소문났소. 만약 그를 세운다면 우리는 또 다른 여씨 가문을 맞이하게 될 것이오."
대신들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북쪽 변방, 아무런 세력도 없고 성품이 어질기로 소문난 대왕 유항에게로 향했습니다.
장안에서 보낸 사신이 대나라 국경에 도착했을 때, 유항은 기쁨보다 깊은 의심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신하 송창(宋昌): "전하, 장안의 중신들이 전하를 황제로 추대하고자 합니다. 이는 천운입니다!"
유항: "아니다, 송창. 장안의 대지는 내 형제들의 피로 젖어 있다. 공신들이 나를 부르는 것은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다루기 쉬운 허수아비가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사신을 따라갔다가 미앙궁 문턱에서 목이 달아날지 누가 알겠느냐?"
신하들: "전하, 신중하셔야 합니다. 이는 분명 함정일 것입니다. 차라리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이곳에 머무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유항은 점을 치고 어머니와 상의한 끝에야 비로소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장안 근처에 도착해서도 송창을 미리 보내 분위기를 살피는 등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공신들이 자신에게 옥새를 바치며 머리를 숙일 때까지도 황제의 자존심보다는 목숨의 안위를 먼저 살폈습니다.
▣ 유항이 즉위할 수 있었던 3가지 결정적 비화
1. 외가의 미약함(정치적 안전성): 어머니 박씨 가문은 권력욕이 없고 조용했습니다.
중신들은 여씨 일가와 같은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경 없는' 유항을 선택했습니다.
2. 형제들의 희생: 유방의 여덟 아들 중 맏아들 유비는 일찍 죽었고, 둘째 혜제는 병사했으며, 셋째 유여의와 여섯째 유우, 일곱째 유회는 여후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결했습니다.
남은 왕자들 중 유항이 가장 현명하고 명분이 뚜렷했습니다.
3. 검증된 '무위(無爲)'의 성품: 17년 동안 대나라를 다스리며 단 한 번도 중앙 정치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그의 침묵이 대신들에게는 최고의 신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을 안고 장안 미앙궁에 입성한 유항은, 비로소 제국의 주인이 되어 자신만의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되어서도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려한 제왕의 위엄보다 한 어머니의 아들이자 백성의 부모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4. 지극한 효심: 천하를 감동시킨 3년의 병간호
문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지탱해주던 기둥인 어머니 박태후가 깊은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습니다.
천하의 주인이 된 유항이었지만, 그는 수천 명의 시녀와 어의들에게 어머니를 맡겨두고 정사만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직접 간병을 자처했습니다.
장장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문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의 머리맡을 지켰습니다.
황제의 화려한 면류관은 방 한구석에 놓였고, 그는 잠시라도 어머니가 부르실까 봐 옷의 띠조차 풀지 않은 채 쪽잠을 잤습니다.
깊은 밤, 탕약이 끓어오르면 황제는 누구보다 먼저 약사발을 들었습니다.
문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머니.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
박태후: "폐하, 한 나라의 황제께서 어찌 이런 비천한 일을 하십니까? 시녀들에게 시키셔도 될 것을..."
문제: "어머니, 황제이기 전에 저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약이 너무 쓰지는 않은지, 혹시 온도가 너무 높지는 않은지 제 혀로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제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탕약 맛보기'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궁궐 내의 독살 위협과 불안한 정세 속에서 어머니를 지키겠다는 철저한 신뢰와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황제가 직접 쓴 약을 삼키며 어머니의 고통을 나누는 모습은 궁궐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피바람 불던 장안의 살벌함은 어느새 황제의 따스한 효심에 녹아내렸습니다.
박태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황제의 업무가 과하니 이제 그만하라"고 만류했으나, 문제는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효도할 수 있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복입니다"라며 끝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3년 후 어머니의 병세가 회복되자 천하의 백성들은 이 일화를 전해 듣고 황제를 진심으로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지극한 사랑은 곧 천하의 백성을 향한 거대한 자애로 확장되었습니다.
5. 검은 명주옷의 황제: 성군이 보여준 검소의 미학
문제는 황제의 권위가 화려한 궁궐이나 비단옷에서 나온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대 어떤 제왕보다도 검소했습니다.
황제로서 그가 즐겨 입던 옷은 장식이 전혀 없는 거친 검은 명주옷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중산층조차 꺼릴 정도로 소박한 재질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제는 도성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누각인 '노대(露臺)'를 짓고자 관리들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설계도를 받아든 그는 곧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문제: "이 누각을 짓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관리: "황금 100근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폐하."
문제: "황금 100근이라... 그것은 중산층 열 가구의 전 재산과 맞먹는 거액이다. 내 선조들께서 물려주신 궁궐도 충분히 넓고 화려한데, 어찌 나의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백성 열 가구의 삶을 희생시키겠는가? 당장 이 계획을 취소하라."
그의 검소함은 자신뿐만 아니라 후궁들에게도 엄격했습니다.
그가 가장 총애했던 신부인(愼夫人)에게조차 비단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명했습니다.
"옷감이 닳는 것은 아까운 일이니, 사치를 버리고 소박함을 몸소 실천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 제왕의 사치 vs 문제의 절약 (성군의 철학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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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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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제왕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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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文帝)의 통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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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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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비단, 금박 장식,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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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없는 검은 명주옷 (익의/弋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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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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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증축, 화려한 정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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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露臺) 건설 포기, 기존 궁궐 수리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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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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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 수천 가지 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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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농사를 지으며 검소한 식단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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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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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능묘, 금은보화 부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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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기(진흙 그릇) 사용, 기존 산을 이용한 패릉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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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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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적 통제와 황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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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로학(黃老學) 기반의 무위지치(無爲之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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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옷소매가 닳아갈수록 백성들의 곳간은 전례 없는 풍요로 채워졌습니다.
그는 도가의 무위(無爲) 사상을 통치에 녹여내어, 국가가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백성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검소함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끝의 굳은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문제는 즉위 초, 대신들을 이끌고 궁궐 밖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황제의 전용 농지인 '적전(籍田: 황제가 직접 농사짓는 땅)'이었습니다.
화려한 면복 대신 거친 베옷을 입은 문제가 직접 쟁기를 잡았습니다.
문제: "천하의 근본은 농업이다. 짐이 직접 흙을 밟지 않으면서 어찌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땅을 갈라 말할 수 있겠는가."
황제가 직접 쟁기를 끌며 밭을 갈자, 구경하던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습니다.
소의 뒤를 따르며 흙먼지를 뒤집어쓴 황제의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행차보다 위엄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한나라 전역에는 농사를 귀하게 여기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황제가 직접 모범을 보이니, 관리들도 감히 백성들의 농사철을 방해하며 부역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도, 자신이 읽는 등불의 기름이 백성의 고혈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하들이 올리는 상소문에 "글자를 너무 크게 써서 종이를 낭비하지 말라"고 지시할 정도로 세심한 절약가였습니다.
6. 문경지치: 가혹한 형벌을 지우고 민본의 길을 열다
문제의 정치는 한마디로 '민본(民本)'이었습니다.
그는 진나라 때부터 내려온 가혹한 법률이 백성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한 소녀의 눈물 어린 편지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어 육형(신체형)을 받게 되자, 어린 딸 '제영'이 황제에게 자신을 관비로 삼아 아버지의 형벌을 면하게 해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문제를 감동시킨 이 사건은 제국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를 벌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 가족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것은 짐의 덕이 부족한 탓이다. 또한 코를 베고 발꿈치를 자르는 육형은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선량한 백성으로 살아갈 기회를 영영 앗아가는 것이니, 이 어찌 백성의 부모 된 자가 할 짓이겠는가! 오늘부로 연좌제와 육형을 전면 폐지하라!"
문제는 이와 함께 조세를 획기적으로 감면했습니다.
고조 유방이 정했던 15분의 1세를 30분의 1로 줄였고, 풍년이 들면 아예 세금을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 문제의 3대 핵심 민본 정책과 실제 혜택
• 조세 30분의 1 감면 및 부역 경감: 국가의 수입보다 농민의 생계 보전을 우선시함.
◦ 농촌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창고의 곡식이 썩어 넘치고 땅바닥에 돈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만큼 부유해짐.
• 육형(肉刑) 및 연좌제 폐지: 신체 훼손형을 태형이나 징역으로 바꾸고 가족 처벌 금지.
◦ 법에 대한 공포 정치가 사라지고,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도덕과 예를 지키는 사회적 신뢰가 구축됨.
• 흉노와의 화친 외교: 소모적인 전쟁 대신 공주를 보내고 교역을 장려하는 저자세 외교 선택.
◦ 전쟁을 위한 강제 징집과 군비 부담이 사라져 백성들이 40년 가까운 평화를 누리며 국력을 축적함.
그의 인자함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에게도 미쳤습니다.
전쟁보다 농업을 중시한 그의 치세 아래 한나라는 비로소 제국의 기틀을 완벽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유항의 시선은 늘 북쪽 변방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곳엔 맹수 같은 흉노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흉노의 노상 선우(흉노의 왕)가 오만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한나라의 공주를 보내고 조공을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제국의 들판을 말발굽으로 짓밟겠다."
조정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젊은 장수들은 "당장 쳐부수어야 한다"며 칼을 뽑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대나라 왕 시절, 흉노의 칼날에 스러져간 백성들의 비명을 직접 들었던 이였습니다.
문제: "복수는 한순간이지만, 그 대가는 백성들이 수십 년간 짊어져야 할 피의 무게다. 나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상관없으나, 내 백성들의 목숨이 꺾이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그는 분노를 삼키고 정중한 답서와 함께 화친의 예물을 보냈습니다.
황제의 굽힌 허리 덕분에 제국은 40년의 평화를 샀고, 그 평화 속에서 한나라의 국력은 소리 없이 강해졌습니다.
"길을 막는 자의 목을 칠 것인가?" : 법치와 감정의 경계
어느 날 문제가 궁궐 밖으로 행차하던 중, 다리 밑에 숨어있던 한 백성이 갑자기 튀어나와 황제의 수레 말을 놀라게 했습니다.
황제가 수레에서 떨어질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화가 난 문제는 사법 책임자인 장석지(張釋之)에게 이 자를 엄벌하라고 명했습니다.
얼마 후 장석지가 보고했습니다.
"그 백성에게 벌금을 내리는 것으로 종결했습니다."
문제는 격노했습니다.
"내 말이 놀라 내가 다칠 뻔했는데 고작 벌금이라니!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러자 장석지가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법은 황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천하의 약속입니다. 법에 따르면 길을 막은 죄는 벌금이 맞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셨다면 어쩔 수 없었겠으나, 이미 법관에게 넘기셨다면 법대로 판결해야 합니다. 법이 황제의 기분에 따라 흔들리면 백성들은 발 하나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문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대의 말이 옳다. 법관이 공정해야 천하가 안정되는 법이지."
황제는 자신의 분노보다 법의 위엄을 선택했습니다.
사고 친 장군을 대하는 법: 신가(新嘉)의 일화
문제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신가'라는 장군이 황제의 수레를 몰다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수레가 덤불에 처박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황제의 몸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변 신하들은 "황제의 안위를 위협했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며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덤불에서 옷을 털며 일어나 허허 웃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잘못 들 수도 있는 법이다. 장군이 일부러 나를 구덩이에 넣었겠느냐? 오히려 이 길 덕분에 우리 제국의 지형이 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됐다."
그는 신가를 처벌하지 않았고, 감동한 신가는 평생 충성을 다해 국경을 지켰습니다.
처벌보다 '사람'을 얻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을 문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7. 인간 유항의 조각들: 아홉 필의 말과 뱃사공 등통
완벽한 성군처럼 보이는 유항에게도 뜨거운 심장과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무척 사랑하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 아홉 필을 얻고는 이를 '구일(九逸)'이라 부르며 아꼈습니다.
▣ 문제의 아홉 마리 명마 (구일)
1. 부운(浮雲):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가벼운 말
2. 적전(赤電): 붉은 번개처럼 빠른 말
3. 절군(絶群): 무리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말
4. 일표(逸驃): 뛰어난 기상을 지닌 황백색 말
5. 자연(紫燕): 보랏빛 제비처럼 날렵한 말
6. 녹이총(錄離驄): 신비로운 빛깔의 총이말
7. 용자(龍子): 용의 자손이라 불릴 만큼 위엄 있는 말
8. 인구(鱗驅): 비늘 같은 털을 지닌 건장한 말
9. 절진(絶塵): 먼지를 일으키지 않을 만큼 가벼운 말
문제가 아홉 마리의 명마(구일)를 아꼈다는 기록도 있지만, 반대로 선물 받은 명마를 돌려보낸 유명한 사건도 있습니다.
어느 지방관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천리마'를 황제에게 상납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뻐하기는커녕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황제인 내가 앞장서서 천 리를 달린들, 뒤따르는 신하들과 군사들은 어찌 따라오겠는가? 황제가 혼자 빨리 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황제가 천리마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면 천하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쥐어짜서 말을 구하러 다닐 것이 뻔하다."
문제는 그 천리마를 돌려보내며, 앞으로는 절대로 진귀한 짐승이나 물건을 바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황제의 속도보다 백성의 보폭을 맞추려 했던 성군의 면모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는 다소 기이하고 논란이 된 총애가 있었습니다.
바로 뱃사공 출신의 등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어느 날 꿈속에서 하늘로 오르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깬 문제는 꿈속의 그 사내와 똑같이 생긴 등통을 발견하고는 그를 극진히 총애하게 됩니다.
한번은 문제의 등에 난 고통스러운 종기(boil)가 터졌을 때, 등통이 입으로 그 고름을 직접 빨아내어 황제의 고통을 덜어주었습니다.
문제는 감동하여 태자(훗날의 경제)에게도 똑같이 해보라고 시켰으나, 태자는 난처해하며 주저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문제는 등통을 태자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고, 심지어 "등통이 굶어 죽을 팔자"라는 점쟁이의 말에 반발하여 그에게 화폐 주조권을 하사하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황제가 된 경제는 즉시 등통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그를 성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돈을 찍어냈던 사내, 등통은 결국 어느 길가에서 예언대로 굶어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성군 유항의 유일한 '오점'이자 인간적인 '맹목'이 낳은 서글픈 결말이었습니다.
또한 총애하는 신부인을 황후 두씨와 나란히 앉히려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강직한 신하 원앙이 나서서 일침을 가했습니다.
원앙: "폐하, 과거 고조의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했던 척부인이 여후에게 어떤 참변(사람 돼지 사건)을 당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서열을 무시하는 총애는 결국 신부인을 죽이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문제는 화를 내며 궁으로 돌아갔으나,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원앙의 충언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완벽한 성군이기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이었던 유항은, 이러한 약점조차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바로잡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말 잘하는 자를 경계하라: 상림원(上林苑)의 관리
문제가 사냥터인 상림원에 행차했을 때의 일입니다.
문제는 상림원의 책임자에게 동물의 수와 관리 상태를 물었으나, 책임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렸습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말단 관리(嗇夫, 색부)가 기다렸다는 듯 유창한 언변으로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감탄한 문제가 그 말단 관리를 즉시 높은 벼슬로 승진시키려 하자, 강직한 신하 풍당(馮唐)이 가로막았습니다.
"폐하, 말만 번지르르한 자를 등용하시면 천하의 관리들이 일은 안 하고 말솜씨만 기르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문제는 번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즉시 승진 명령을 거두고, 오히려 묵묵히 일하지만 말은 서툴렀던 책임자를 격려하며 '말의 화려함이 아닌 일의 실체'를 보겠다는 원칙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가 입은 검은 명주옷처럼, 통치 또한 겉발림이 없어야 함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8. 패릉에 묻힌 거대한 유산
기원전 157년, 23년간의 치세를 마친 문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백성을 걱정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제왕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소박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짐이 죽은 뒤 장례를 위해 백성들이 생업을 멈추고 슬퍼하는 시간을 단 3일로 제한하라. 묘지를 크게 만들지 말고, 금은보화 대신 진흙 그릇을 묻어라. 나의 죽음이 백성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라."
어느 날 문제가 자신의 묫자리인 패릉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총신 등통이 아부하며 말했습니다.
"이곳을 요새처럼 튼튼히 만들면 영원히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산(賈山)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진시황의 아방궁과 여산릉을 보십시오. 금은보화로 채우고 요새처럼 만들었으나, 결국 나라가 망하자마자 도굴꾼들이 가장 먼저 달려들어 시신을 파헤쳤습니다. 진정으로 무덤을 지키는 것은 견고한 성벽이 아니라, 파헤칠 가치가 없는 소박함입니다."
문제는 이 말에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보물을 묻지 않는 것은 백성의 돈을 아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사후의 평온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구나."
그가 죽을 때 진흙 그릇(와기)만 묻으라고 한 것은, 도굴꾼들이 아예 관심을 두지 않게 하려는 지독히 현실적이고 명석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인위적 무덤 대신 기존의 산을 이용한 패릉에 묻혔습니다.
그가 남긴 '문경지치'의 유산은 손자 무제 시대에 한나라가 세계 제국으로 뻗어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총평: 성군의 조건]
문제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수천 년 후 조선 땅에도 닿았습니다.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 "무제의 정복 사업보다 문제의 인자한 치세가 훨씬 아름답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영조는 아들의 이런 성향을 못마땅해하며 "너같이 포악한 성격이 어찌 문제를 좋아하느냐, 거짓말하지 마라"며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문제를 흠모했던 사도세자의 비극은, 문제를 성군의 표본으로 삼으려 했던 그의 철학이 당대 권력의 논리와 충돌했음을 보여줍니다.
문제 유항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적을 정복하는 칼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탕약을 맛보는 따뜻한 혀에 있으며, 백성의 세금을 깎아주는 검은 명주옷의 소박함에 있다고 말입니다.
"나의 정치가 과연 한의 문제만 한가?"라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모든 지도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성군의 조건입니다.
이 글은 전한 문제(文帝) 유항(劉恒)의 치세와 관련된 사료(정사 기록, 후대 편찬 기록, 고사 전승)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한나라 초기의 궁정 일화, 흉노(匈奴)와의 긴장, 인물 간 대화나 심리 묘사처럼 “기록이 짧거나 문장 몇 줄로만 남아 있는 구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독자의 몰입을 돕기 위해, 사실의 뼈대(연대·인물·사건의 큰 흐름)는 유지하되 장면·대사·감정선은 필자의 상상력이 들어간 “각색된 역사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특정 인물의 발언, 궁중의 공기, 현장 묘사(복식·공간·표정·침묵의 의미 등)는 실제 기록에 그대로 존재한다기보다, 사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모습을 “소설적으로 채워 넣은 부분”이 포함됩니다.
또한 후대 고사로 전해지는 유명 일화(예: 탕약 맛보기, 절약 일화, 총신 관련 일화 등)는 시대마다 전승의 결이 달라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구간을 단정하지 않기 위해, 전승 성격이 강한 요소는 ‘전해진다’ ‘일화로 알려졌다’처럼 표현을 조정해 서술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강의용 연대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서사적 재구성”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신 독자라면, 인물·연도·제도(법령·형벌·조세 단위) 등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사 원문과 주석서를 함께 대조해 보시길 권합니다.
Set in early Western Han, this story follows Liu Heng, later Emperor Wen, who survives the terror of Empress Dowager Lü’s court by living quietly on the northern frontier with his mother Lady Bo.
After Lü’s death, veteran ministers topple the Lü clan and, fearing another powerful in-law family, summon the mild, “background-free” prince to the throne.
Wen enters Chang’an wary of traps, then rules through restraint: he embodies filial devotion by personally nursing his mother, and he turns austerity into policy—rejecting extravagant projects, wearing plain dark cloth, and urging officials to spare commoners’ labor.
He softens harsh punishments, reduces taxes, and chooses pragmatic peace over costly northern wars, buying time for recovery.
Yet he remains human: favoritism toward attendants and small misjudgments reveal limits, while candid advisers keep the law above imperial anger.
His frugal burial and long calm legacy become the foundation of “the rule of Wen and Jing,” later enabling Han expansion under his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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