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동 사건 재구성: 성종 시대 스캔들, 문신과 처형의 진실은 어디에 (Eou-dong)


붉은 낙인: 어우동, 달빛에 가려진 이름


제1부: 꽃이 지는 소리 (The Sound of Falling Blossoms)

1. 얼어붙은 규방

태강수(세종의 서자인 계양군의 아들) 이동의 저택은 적막했다. 

십여 년을 지켜온 규방의 공기는 차갑다 못해 서늘했다. 

박씨, 훗날 어우동(於乙宇同)이라 불릴 여인은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명문가 박윤창의 금지옥엽으로 자라 왕실의 며느리가 되었을 때, 세상은 그녀에게 '정절'과 '침묵'이라는 화관을 씌워주었다.


하지만 그 화관은 가시관이었다. 

남편 이동은 밖으로 돌았다. 

그의 시선은 아내의 단아한 옷매무새보다 저잣거리 은장이(장인)의 거친 손 끝에서 피어나는 천박한 웃음에 머물렀다.


"부인, 당신의 몸에서 다른 사내의 향취가 나는것 같소?"


방문에 비친 남편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술 냄새가 문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이동은 자신의 외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내에게 '부정'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겁한 사내의 가장 쉬운 탈출구였다. 

어우동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이려 했으나, 훈련된 유교의 예법이 그녀의 혀를 묶었다.


2. 모함과 추방

사건은 사소한 데서 터졌다. 

어우동이 집안의 은그릇을 수리하기 위해 은장이를 부른 날이었다. 

이동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몰아세웠다.


"종친의 안방에 외간 남자를 들이다니! 네 이년,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동의 고함은 저택의 담장을 넘었다. 

실록(성종)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야사가 전하는 그날의 진실은 참혹했다. 

이동은 어우동을 끌어내어 마당에 내팽개쳤다. 

왕실의 족보에서 그녀의 이름이 지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박(疏薄)'. 여인에게는 사형 선고보다 무서운 낙인이었다.

조선 시대에 남편이 아내를 싫어하여 멀리하거나, 아예 아내 취급을 하지 않고 내쫓는 것을 '소박데기'라고 불렀다.

공식적인 이혼 절차인 '기처(棄妻)'와는 조금 다르다. 

공식 이혼은 국가의 허락이나 명확한 사유(칠거지악 등)가 필요했지만, 소박은 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냉대하고 잠자리를 거부하며 집안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실질적인 축출이었다.

소박맞은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가도 "가문의 수치"라며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여성은 반드시 누군가의 보호(아버지, 남편, 아들) 아래 있어야 했기에, 소박은 경제적·사회적 생존권의 박탈을 의미했다.


친정으로 쫓겨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부모의 따뜻한 품이 아니었다. 

아버지 박윤창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가문의 수치다. 나가서 죽어라."


담장 너머로 던져진 짧은 한마디. 

그것이 그녀가 평생을 믿어온 유교적 세계관의 종말이었다. 

어우동은 비 내리는 거리에 홀로 섰다. 

비단 치맛자락이 진흙탕에 절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나를 버린 세상이라면, 나 또한 세상을 버리리라.


3. 어우동(於乙宇同)으로의 부활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녀는 웃었다. 

광기 어린, 그러나 지독하게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딸도 아니었다.


그녀는 이름부터 바꿨다. 

어우동(於乙宇同). '사내들과 어우러져 크게 한바탕 노는 아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종의 옷을 빌려 입고 머리를 올렸다. 

규방의 닫힌 문 대신, 만인의 눈길이 머무는 길 위로 나섰다.


밤이 되자 그녀는 달빛 아래서 춤을 추었다. 

은장이의 집을 찾아갔고, 과거를 보러 온 유생들의 숙소를 기웃거렸다. 

그녀의 미모는 독이 든 성배와 같았다. 

한 번 본 사내는 반드시 그녀의 치맛자락에 코를 박아야 했다.


"사내들이여, 나를 욕하라. 하지만 그대들의 욕망은 이미 내 발밑에 있지 않은가."


어우동은 자신의 방으로 사내들을 불러들였다. 

그중에는 왕실의 종친 방산수 이난(임영대군의 아들)도 있었다. 

그는 어우동의 육체에 매료되어 넋을 잃었다. 

촛불이 일렁이는 방 안, 어우동은 이난의 손을 잡아 자신의 하얀 팔뚝 위에 올렸다.


"대감, 저를 잊지 마시겠습니까?" 

"어찌 잊으리. 내 목숨보다 그대를 더 탐하는데."


그 순간, 어우동은 날카로운 바늘을 꺼내 들었다. 

붉은 촛농이 떨어지는 아래에서, 그녀는 자신의 살갗을 찌르기 시작했다.


"잊지 못하게 해드리지요. 제 몸에 대감의 이름을 새길 것입니다. 이것이 조선의 여인이 사내를 소유하는 법입니다."


바늘 끝에서 솟아난 선혈이 그녀의 하얀 피부 위에 꽃처럼 피어났다. 

'방산수(方山守)'. 조선 역사상 가장 발칙하고도 치명적인 '문신'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훗날 성종실록을 피로 물들일 거대한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신윤복이 그린 월하밀회(月下密會)


제2부: 달빛 아래의 정사 (A Liaison Under the Moonlight)

1. 한양의 밤을 삼킨 여인

어우동의 집은 이제 한양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은밀한 성지가 되었다. 

대문 앞은 해가 지기도 전에 몰려든 사내들의 마부와 하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과거를 치르러 상경한 유생부터, 조정의 대소사를 논하는 고위 관료, 심지어는 대궐의 담장을 넘나드는 종친들까지. 

그들은 모두 '어우동'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섰다.


방 안은 항상 기묘한 향취로 가득했다. 

매화 향과 사향이 뒤섞인 가운데, 촛불이 일렁이며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어우동은 붉은 사(紗, 얇은 비단)로 만든 속치마 한 장만을 걸친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무심했으나, 그 무심함이 사내들의 사냥꾼 기질을 더욱 자극했다.


"나를 얻는 법은 간단합니다. 조선의 법도를 잊으시오. 명분과 예법을 이 방 문턱 너머로 던져버릴 수 있는 자만이 내 살을 만질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사내들은 입고 있던 관복을 허물처럼 벗어 던졌다.


2. 방산수의 집착과 팔뚝의 낙인

그들 중 가장 깊이 빠진 자는 역시 방산수 이난이었다. 

그는 세종의 손자이자 왕실의 종친이었으나, 어우동 앞에서는 그저 욕망에 허덕이는 짐승에 불과했다.


"부인, 정녕 내 이름을 새겼단 말이오?"


이난의 떨리는 손이 어우동의 하얀 팔뚝을 더듬었다. 

어우동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촛불 아래 드러난 살갗 위에는 붉은 꽃술처럼 돋아난 흉터가 선명했다. 

'方山守(방산수)'. 바늘로 수천 번을 찔러 먹을 입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이것이 대감이 내게 준 유일한 진실이지요. 이 글자가 지워질 때쯤이면 대감의 목숨도 끝날 것입니다."


이난은 광기 어린 희열에 휩싸였다. 

그는 어우동의 팔에 입을 맞추며 울부짖었다. 

왕실의 품위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팔뚝에도 어우동의 이름인 '於乙宇同'을 새겨달라며 바늘을 건넸다. 

조선의 왕족이 길거리 여인의 이름을 제 몸에 새기는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승에 따르면, 어우동과 하룻밤을 보낸 사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의 이름을 몸 어딘가에 새기거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보를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팔에는 방산수 외에도 수진, 김휘 등 당대 내노라하는 사내들의 이름이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3. 신분을 조롱하는 침소

어우동의 파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그녀의 집 담을 넘은 것은 은쟁이와 그의 제자였다. 

왕실의 종친과 정사를 나누던 침소에 천민 중의 천민인 장인이 발을 들인 것이다.


"부인, 저희 같은 것들이 어찌 감히 이 자리에..." 

은장이는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어우동은 직접 그의 거친 손을 잡아 자신의 허벅지로 이끌었다.


"이 방 안에는 정승도 없고 노비도 없소. 오직 사내와 여인만 있을 뿐이지. 당신의 손이 왕족의 손보다 훨씬 따뜻하구려."


그녀는 일부러 고관대작들이 보는 앞에서 하급 관리나 노비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호색(好色)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린 조선의 신분 질서를 향한 가장 노골적인 '냉소'였다. 

실록은 이 시기의 그녀를 가리켜 '남녀의 구별이 없고, 귀천의 차례가 없으니, 실로 금수와 같다'고 극렬히 비난했다.


4. 사헌부의 눈과 도화선

한양의 밤이 음란한 열기로 타오를 무렵, 어우동을 주시하는 차가운 시선이 있었다. 

바로 사헌부(조선의 사법기관)의 대간들이었다. 

그들은 도성 내에 퍼진 이 괴상한 문신과 난교의 소문을 접하고 분노했다.


"일개 계집이 왕실의 피를 모독하고 도덕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전하, 이를 방치하시면 조선의 근간이 흔들릴 것입니다!"


성종의 어좌 앞에는 매일같이 어우동의 목을 치라는 상소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성종은 눈을 감았다. 

그는 이 여인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야사에서 말하듯 그 또한 달빛 아래 그녀의 눈빛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주로서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우동의 집 근처에 포교들이 매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달 밝은 밤, 방산수와 밀회를 즐기던 어우동의 침소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어우동, 너를 음행의 죄로 체포한다!"


어우동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흩어진 비단옷을 몸에 감았다. 

그리고 자신을 포박하려는 포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 몸에 새겨진 이름들이 무섭나 보구려. 그 이름들이 대궐 안까지 뻗어있으니 말이오."


이것은 단순한 체포가 아니었다. 

조선의 거대 권력들이 연루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제3부: 판도라의 상자 (Pandora's Box)

1. 차가운 추국장, 뜨거운 눈빛

의금부(수사기관) 추국장(심문장)의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쇠사슬에 묶인 어우동의 하얀 살결 위로 붉은 피멍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녀를 심문하던 대간들은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죄인의 그것이라기엔 너무나 당당하고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네 이년! 네 몸을 거쳐 간 자들의 이름을 대라! 감히 왕실의 종친과 정을 통하고도 목숨이 보존되길 바라느냐!"


추관의 호령이 떨어졌지만, 어우동은 입술 끝을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심문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 시선은 마치 상대의 은밀한 치부를 꿰뚫어 보는 칼날 같았다.


"내 몸에 새겨진 이름들이 너무 많아 입이 아프구려. 차라리 내 팔을 직접 보시겠소?"


그녀가 묶인 팔을 들어 올리자, 찢어진 소매 사이로 '방산수(方山守)', '수진(守眞)' 등 푸르스름하게 번진 문신들이 드러났다. 

추국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조선 지배층의 도덕적 파산을 알리는 '명단'이었다.


2. 무너지는 금기, 폭로의 향연

어우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실록에 기록된 대로, 자신과 관계한 남성들의 직함과 이름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병조판서의 아들 김휘는 내 치맛자락을 잡고 울며 매달렸고, 어의는 내 몸의 열을 식혀주겠다며 밤새 곁을 지켰지요. 아, 태강수 이동은 나를 쫓아냈으나, 정작 내 침소에 다시 숨어든 것은 그의 친척들이었소."


폭로는 파격적이었다. 

왕실 종친부터 고위 관료, 심지어는 유교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집현전 출신 학자들까지 언급되었다.

추관들은 당황하여 서리의 붓을 멈추게 하려 했으나, 이미 밖으로 새 나간 말들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야사에 따르면, 당시 한양의 양반들은 어우동이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올까 두려워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가산을 정리해 도망갈 준비를 했고, 어떤 이는 어우동을 독살하려 자객을 보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3. 성종의 딜레마 (논쟁: 국법인가, 기강인가)

소식은 즉시 성종에게 전해졌다. 

성종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경국대전'의 법전대로라면, 간통죄는 장형(곤장)과 유배형에 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어우동은 단순한 간통을 넘어 조선이라는 국가의 '명분' 자체를 비웃고 있었다.


"전하! 어우동을 살려두면 조선의 여인들이 모두 담을 넘을 것입니다! 이는 반역보다 무서운 풍속의 파괴이옵니다!"


사림파와 훈구파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어우동을 죽여 자신들의 치부를 덮으려 했다. 

하지만 성종은 알고 있었다. 

어우동을 죽이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남성들의 비겁함을 감추는 '입막음'이라는 것을.


그러나 성종은 '성군'의 가면을 써야 했다. 

왕권의 안정과 유교 국가의 기강을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4. 독이 든 성배, 마지막 만찬

의금부 옥사로 의문의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어우동에게 화려한 비단옷과 기름진 음식을 내밀었다. 

누군가가 보낸 '마지막 배려' 혹은 '침묵의 대가'였다.


어우동은 그 음식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고기를 씹으며 옥사 창살 너머의 달을 보았다.


"이 달빛이 내 방 창가에 비치던 그 달빛과 같구나. 사내들은 달이 뜨면 나를 찾고, 해가 뜨면 나를 돌로 치려 하는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서 이 문을 나가는 순간, 조선의 모든 질서가 무너질 것임을. 

그녀의 존재 자체가 조선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금기'를 깨트리는 송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성종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우동에게 '교형(교수형)'을 명한다. 

조선의 법전 어디에도 없는, 오직 그녀만을 위한 특수한 극형이었다.


제4부: 형장의 붉은 이슬 (Crimson Dew on the Execution Ground)

1. 마지막 단장

1480년(성종 11년) 10월 18일, 한양의 공기는 유독 시리고 날카로웠다. 

의금부 옥사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동이었다. 

며칠간의 가혹한 추국으로 몸은 쇠약해졌으나, 그녀의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녀는 형장으로 향하기 전, 옥졸에게 빗을 청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성껏 빗어 내리고, 소매 속에 감춰두었던 붉은 연지를 꺼내 입술에 발랐다.


"죽으러 가는 길치고는 너무 곱지 않소?"


옥졸의 물음에 어우동은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은 자신을 구경하러 몰려든 한양의 사내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조소였다. 

그녀에게 사형장은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내려오기 전 마지막 '독무대'였다.


2. 한양의 구름 관중

형장인 망나니의 터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록에는 짧게 기록되었으나, 야사에 따르면 그날 몰려든 남성들 중 상당수가 그녀와 한때 정을 나누었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혹여나 그녀가 죽기 전 자신의 이름을 외칠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면서도, 그 지독하게 아름다웠던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전하께서 교형을 명하셨다! 죄인 어우동은 들으라. 너는 왕실의 종친을 유혹하고 강상을 어지럽혔으니, 그 목숨으로 죄를 씻으라!"


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어우동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자유로웠다. 

억지로 죄를 뉘우치게 하려는 관리들의 압박에도 그녀는 단 한 마디의 참회도 내뱉지 않았다.


3. 교형(絞刑): 목을 죄는 조선의 법도

어우동이 형틀 위에 섰다. 

성종은 법전에도 없는 극형을 내리면서까지 그녀를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 

유배를 보내면 그녀의 입에서 또 어떤 이름이 나올지, 그녀가 간 곳마다 어떤 풍파가 일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목에 굵은 밧줄이 감겼다. 

어우동은 숨이 막혀오는 순간에도 팔뚝의 문신을 어루만졌다. 

밧줄이 조여지기 직전, 그녀는 곁에 서 있던 방산수의 하인을 발견하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가서 전하라. 내 몸에 새긴 이름은 저승까지 가져가겠다고. 그러니 그대들은 이승에서 마음 편히 도덕을 읊으며 사시라고."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비명은 없었다. 

다만 차가운 바람만이 그녀의 붉은 치맛자락을 거칠게 흔들었을 뿐이다. 

한양을 뒤흔들었던 꽃 한 송이가 그렇게 꺾였다.


4. 사라진 시신과 전설 (야사: 붉은 나비)

형 집행 직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실록에는 그녀의 시신을 친척들이 거두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야사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가 숨을 거둔 순간, 형장 주변으로 수천 마리의 붉은 나비가 날아올랐고, 관군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을 때는 이미 형틀 위에 시신은 온데간데없었다는 전설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와 정을 통했던 은장이와 노비들이 목숨을 걸고 시신을 빼돌려 이름 없는 산에 묻어주었다고도 한다.


그녀가 죽은 날 밤, 성종은 침전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성종은 이후 더욱 유교적 기강을 강조하며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마치 어우동이라는 오점을 역사 속에서 완전히 덮어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제5부: 남겨진 자들의 그림자 (Shadows of Those Left Behind)

1. 지워지지 않는 문신, 파멸의 시작

어우동의 숨은 끊겼으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독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녀가 형장에서 사라진 뒤, 한양은 거대한 침묵과 공포에 짓눌렸다. 

가장 먼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팔뚝에 가장 깊게 새겨졌던 이름, 방산수 이난이었다.


"부인,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갔소!"


이난은 폐인이 되었다. 

종친의 명예는 진흙탕에 처박혔고, 그는 매일 밤 술에 취해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어우동'의 이름을 보며 통곡했다. 

실록은 성종이 종친이라는 이유로 그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관직을 박탈하고 먼 곳으로 유배 보냈다고 전한다. 

하지만 야사는 더 처참한 결말을 말한다. 

이난은 유배지에서 스스로 제 팔의 문신을 칼로 도려내려다 파상풍에 걸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어우동은 죽으면서 자신의 몸에 새긴 이름을 저승으로 가져가겠다 했지만, 살아남은 사내들에게 그 이름은 영혼을 갉아먹는 '산 자의 낙인'이 되었다.


2. 조정에 부는 피바람

성종은 어우동 처형 이후 돌변했다. 

평소 인자했던 '성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어우동의 입에서 나왔던 이름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기 시작했다.


"계집 하나에게 나라의 기강이 놀아났단 말이냐! 그들과 정을 통한 자, 그들을 숨겨준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어우동과 연루되었던 수십 명의 관료가 파직되거나 유배를 갔다.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문의 멸문을 막으려 했고,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동료의 이름을 고발했다. 

한양의 저잣거리에는 '어우동 살생부'라는 기괴한 명단이 나돌았다.


기록 전문가인 사관들은 붓을 멈추지 않았다. 

성종실록은 이 시기를 '조정이 여인의 치맛바람에 흔들려 선비의 기개가 사라졌다'고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정작 그 선비들을 유혹한 것은 어우동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 숨겨진 비겁한 욕망이었음을 실록은 행간에 교묘히 감춰두었다.


3. 은장이와 노비, 이름 없는 애도

고위층이 권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정작 그녀를 진심으로 애도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신분이 비천하여 실록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한 은장이와 종들이었다.


야사에 따르면, 어우동이 처형된 자리에는 매일 밤 이름 모를 들꽃이 놓였다고 한다. 

그녀는 양반들에게는 '음녀'였으나, 낮은 곳의 사람들에게는 유일하게 신분의 벽을 허물고 인간으로 대해준 '달빛의 주인'이었다.


"그분은 우리의 거친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네. 오히려 그 손이 조선의 정승들보다 깨끗하다 하셨지."


은장이는 어우동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반지를 만들어 그녀가 사라진 형장 근처 흙 속에 묻었다. 

죽어서라도 비단옷 대신 은을 몸에 두르고 자유로이 날아다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4. 성종의 서재, 밤의 독백

어우동 사후 1년, 성종은 늦은 밤까지 서재에서 책을 읽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 

달은 어우동이 죽던 날처럼 시리도록 밝았다.


성종은 알고 있었다. 

어우동을 죽인 것은 그녀의 음행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자유'가 두려웠기 때문임을. 

여인이 사내를 선택하고, 노비와 왕족을 한 방에 앉히는 그 발칙한 세상이 도래할까 봐 그는 서둘러 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과연 짐이 죽인 것이 계집뿐이었겠느냐."


성종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경국대전』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법전은 완성되었고 조선의 질서는 더욱 공고해졌지만, 왕의 가슴 한구석에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았다. 

그것은 어우동이 죽기 전 자신을 향해 던졌던 그 서늘한 웃음이었다.


제6부: 달빛으로 남은 이름 (The Name That Remained as Moonlight)

1. 야사의 부활, 민초의 노래

어우동이 사라진 지 수십 년이 흘렀다. 

성종은 승하했고, 뒤를 이은 연산군의 광풍이 몰아쳤다. 

기록은 승자의 것이었으나, 기억은 산 자들의 것이었다. 

조선의 엄격한 유교 사회가 깊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어우동의 이름은 저잣거리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 여인은 죽은 게 아니라, 나비가 되어 금강산으로 날아갔다더군." 

"아니야, 팔뚝에 새긴 사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우기 전까지는 저승길도 마다하고 한양의 달밤을 거닌다네."


사람들은 그녀를 '음녀'가 아닌 '운명의 반역자'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꾼들은 그녀의 삶에 살을 붙여 패관문학(저잣거리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부활시켰다. 

실록 속의 죄인은 야사 속에서 비운의 여인으로, 전승 속에서는 억압된 욕망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2. 박제된 이름,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낙인

성종실록의 먹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사관들은 그녀를 기록하며 '풍속을 어지럽힌 짐승'이라 단정 지었으나, 그 상세한 기록 덕분에 그녀의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원성을 얻었다. 

한명회 같은 권력자들의 이름이 세월에 씻겨 권세의 허무함을 말할 때, 어우동의 이름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본능과 자유'를 상징하며 살아남았다.


후대의 학자들은 그녀의 사건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녀는 사회 기강을 무너뜨린 죄인인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의 이중성을 폭로한 희생양인가?"


어원적으로 '어우동'은 '어우러지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녀의 삶은 이름 그대로였다. 

그녀는 왕족과 노비를, 법도와 욕망을, 삶과 죽음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했다. 

그녀가 팔뚝에 새겼던 문신들은 살점이 썩어 없어졌을지언정, 조선이라는 국가의 거대한 자존심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3. 달빛의 귀환

세월은 흘러 조선의 궁궐터에는 이제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도 한양의 옛터에 달이 차오르면, 사람들은 문득 어우동을 떠올린다.


사랑을 위해 신분을 던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세상이 부여한 신분을 비웃었던 여인. 

그녀가 원했던 것은 화려한 비단옷도, 왕실의 권세도 아니었다. 

그저 달빛 아래서 누구의 아내나 딸이 아닌, 오직 '어우동'이라는 이름으로 사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찰나의 자유였다.


형장으로 가던 날 그녀가 발랐던 붉은 연지는, 수백 년 뒤 후손들의 입술 위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불멸이 되었고, 침묵당함으로써 더 큰 목소리가 되었다.


4. 맺음말

성종 시대, 가장 많이 기록된 자가 한명회였다면,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 자는 단연 어우동이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은 부패하나, 인간의 욕망과 그에 저항하는 생명력은 기록의 행간을 뚫고 살아남는다. 

어우동의 대서사시는 여기서 멈추지만, 그녀가 남긴 질문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새겨준 낙인대로 살고 있는가?"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성종실록)에 남아 있는 ‘어우동 사건’의 뼈대를 바탕으로, 후대에 전해진 야사·민간 전승·패관문학적 이미지들을 함께 엮어 “이럴 수도 있었겠다”는 방향으로 장면과 심리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대사, 구체적인 밤의 풍경, 인물의 내면 독백, 문신을 새기는 방식과 그 의미, ‘붉은 나비’ 같은 상징적 연출, 사건의 시간 흐름을 드라마처럼 압축한 구성은 역사 기록에 그대로 적힌 사실이라기보다, 독자의 몰입을 위한 창작적 장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실록의 문장은 당시 유교적 가치관과 국가 기강의 관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같은 사건이라도 표현이 가혹하거나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시대의 ‘기록 방식’과 ‘후대의 상상’이 섞여 있다는 점을 전제로, 재미로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학습·인용 목적이라면, 반드시 실록 원문과 연구서(사료 비판 포함)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Red Stigma retells the Eou-dong scandal as a tragedy of power. 

Lady Park, married into the royal clan, is shamed and cast out when her husband brands her unchaste. 

Rejected by her own family, she renames herself Eou-dong and lives in defiance, taking lovers from scholars to princes, including Bangsan-su Yi Nan. 

To bind him, she tattoos his title on her arm, and her body becomes a ledger of hypocrisy. 

Rumors ignite; Censorate raids her house and drags her to interrogation, where names spill and the court panics. 

King Seongjong wavers: the law points to lesser penalties, but ministers demand a public sacrifice to restore "virtue" and silence the scandal. 

He orders hanging. 

Afterward, men are punished, fear grips the capital, and legend turns her into a ghost of Hanseong's night. 

Eou-dong endures as a forbidden emblem of freedom, asking whether we live by our own name or by society's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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