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위에 오른 알몸의 여인, 1,000년을 내려온 레이디 고다이바의 숭고한 스캔들 (Lady Godiva)


숭고한 노출, 금지된 시선: 레이디 고다이바와 '피핑 톰'의 전설


[제1장] 캔버스 위의 알몸: 1,000년을 내려온 스캔들

영국 워릭셔주의 고도(古都) 코번트리(Coventry)에는 1,000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노출'의 기록이 있습니다. 

1898년, 화가 존 콜리어(John Collier)가 발표한 한 점의 그림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유럽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짙은 붉은색 마구(말의 장구)를 두른 백마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고개를 깊게 숙인 채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긴 금발 머리만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가까스로 몸의 일부를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레이디 고다이바


이 여인이 바로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11세기 영국의 귀족 부인)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접한 대중은 본능적인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왜 고귀한 귀족 부인이 대낮에 알몸으로 거리에 나왔는가?"라는 질문이 쏟아졌죠.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숭고한 진실을 마주한 순간, 대중의 시선은 관음(觀淫)에서 경외(敬畏)로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고드기푸(Godgifu,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입니다. 

11세기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기 직전, 앵글로색슨 시대의 마지막 서광이 비치던 1050년경의 인물입니다. 

그녀는 코번트리의 강력한 영주였던 레오프릭(Leofric)의 아내였습니다. 

당시 고다이바는 단순한 영주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독립적인 영주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수도원을 세우고 예술을 후원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왜 모든 권위와 옷을 벗어 던지고 말 위에 올라야 했을까요? 

그것은 한 여인의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닌, 권력의 횡포에 맞선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정치적 시위'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존 콜리어의 캔버스를 넘어, 차가운 돌바닥 위를 달렸던 그녀의 말발굽 소리를 따라 중세 영국의 심장부로 떠나봅니다.


[제2장] 폭정의 시대, 천사 같은 여인의 위험한 거래

11세기의 코번트리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했으나 속으로는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영주 레오프릭(Leofric, 머시아의 백작이자 코번트리의 지배자)은 유능한 군사 지도자였으나, 세금에 있어서만큼은 잔혹하리만큼 가혹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 덴마크인들의 침입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습니다.

흉작이 들어 식량이 바닥나고, 전염병이 돌아 가족을 잃어도 영주의 세금 고지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인,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세금을 내고 나면 아이들에게 줄 죽 한 그릇이 남지 않습니다."


영주의 성문 밖에는 매일같이 백성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독실하고 자애로웠던 고다이바 부인은 그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레오프릭에게 간곡히 청했습니다.


"영주시여, 저 가련한 백성들을 보십시오. 저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세금을 낮추어 그들에게 숨 쉴 틈을 주소서."


하지만 레오프릭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세금을 낮추는 것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약점으로 여겼습니다. 

아내의 계속되는 간청에 짜증이 난 레오프릭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조건을 내걸며 비웃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저 천한 것들을 사랑한다면, 알몸으로 말을 탄 채 코번트리 시장터를 한 바퀴 도시 오. 만약 당신이 수치심을 이기고 그 일을 해낸다면, 내 즉시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겠소."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백한 모욕이었습니다. 

당시 엄격한 기독교 사회에서 귀족 여성이 대낮에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레오프릭은 당연히 아내가 수치심 때문에 포기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다이바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백성들에게 내린 세금 면제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영주의 비웃음은 경악으로 변했고, 소문은 삽시간에 코번트리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옷을 벗기로 했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율했습니다.


에드먼드 레이튼(Edmund Leighton)의 그림 (1892)


[제3장] 정적의 마을: 백성들이 선택한 '숭고한 예의'

서기 1050년의 어느 이른 아침, 코번트리 성의 육중한 문이 열렸습니다. 

안개가 낮게 깔린 거리에는 평소와 다른 기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시장터의 활기찬 소란스러움도, 대장간의 망치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인 금령을 내렸습니다. 

"부인이 우리를 위해 수치심을 견디시는데, 우리가 그 알몸을 보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짓이다." 

백성들은 스스로 모든 창문을 닫아걸었고, 문틈 사이로 새어 나갈 빛마저 두꺼운 커튼으로 차단했습니다. 

거리에는 단 한 명의 행인도, 짖는 개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말의 발굽 소리가 고요한 돌바닥을 울렸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은 옷을 하나씩 벗어 던졌습니다. 

서늘한 아침 공기가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았습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긴 금발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가린 채 백마에 올랐습니다. 

말 위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살을 에는 듯한 수치심보다 더 무거운 백성들의 삶의 무게였습니다.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거리에는 오직 적막만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커튼 뒤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요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시위였습니다.


쥘 조제프 르페브르가 그린 고다이바 부인의 그림


백성들은 부인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스스로 눈을 감았습니다. 

권력자가 강요한 '사회적 살인'인 노출을 백성들은 '신성한 의식'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부인이 광장을 지나 성 안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코번트리의 공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여인의 희생이 빚어낸 거룩하고도 장엄한 승리였습니다.


[제4장] 금기를 깬 시선: '피핑 톰(Peeping Tom)'의 유래

하지만 완벽한 신화 속에는 늘 인간의 추악한 본능이 끼어들기 마련입니다. 

모든 마을 사람이 눈을 감고 부인의 고귀한 행진을 경외하며 기도하던 그때, 호기심과 욕망을 이기지 못한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톰(Tom, 마을의 재단사로 전해짐)이었습니다.


그는 부인의 고귀한 뜻보다는 금지된 귀족 여인의 육체를 보고 싶은 저열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게 창문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밖을 엿보았습니다. 

부인이 말을 타고 지나는 찰나, 그는 모두가 지키기로 한 성스러운 금기를 깨고 말았습니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용어가 바로 '피핑 톰(Peeping Tom, 어원: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금기를 어긴 톰은 그 자리에서 눈이 멀어버렸다고 합니다. 

혹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지탄받는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고도 합니다.


이 '피핑 톰' 이야기는 사실 17세기에 들어서야 고다이바 전설에 덧붙여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논쟁). 

고다이바의 숭고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엿보는 죄인'이라는 대조적인 인물을 장치로 활용했다는 분석입니다.


피핑 톰


하지만 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공동체가 지키기로 한 '약속'과 '존중'을 깨트리는 개인의 비겁한 호기심이 얼마나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가에 대한 경고입니다. 

코번트리의 백성들은 톰을 제외함으로써 그들의 연대를 완성했고, 톰의 이름은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음증의 대명사로 박제되었습니다.


[제5장] 관습을 깨는 힘, '고다이바'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

약속대로 영주 레오프릭은 아내의 용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오만을 반성하며 코번트리의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었습니다. 

고다이바의 수치심이 백성들의 생존권으로 치환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중세의 전설을 넘어 '고다이바이즘(Godivaism)'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관습과 권위주의에 저항하여 세상을 바꾸는 행동주의를 뜻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벨기에의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고다이바(Godiva)' 역시 그녀의 이름과 로고(말을 탄 여인)를 사용합니다. 

창업자 조셉 드랍스는 단순히 맛있는 초콜릿이 아니라, 고다이바 부인이 보여준 '사랑과 이타심, 고귀한 희생'을 브랜드의 정수로 삼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실제 고다이바 부인이 알몸으로 거리를 돌았는지에 대해 사료적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논쟁). 

당시 기록인 《앵글로색슨 연대기》에는 이런 파격적인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의 기억'입니다. 

중세 영국인들은 권력의 가혹함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을 고다이바의 이야기를 통해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 했습니다.


영국 코벤트리 브로드게이트 광장에 있는 레이디 고디바 동상


고다이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묻습니다. 

리더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그 체면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1,000년 전 코번트리의 차가운 돌바닥을 울렸던 말발굽 소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울림을 줍니다. 

당신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껍데기'를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가? 

커튼 뒤에서 숨죽여 응원하던 백성들처럼, 타인의 희생에 감사할 줄 아는 품격을 갖추었는가?


레이디 고다이바의 알몸은 결코 외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저항이자, 신성한 사랑의 증명이었습니다. 

그녀가 벗어 던진 옷은 권위라는 이름의 가식이었고, 그녀가 걸쳤던 긴 머리카락은 백성을 향한 숭고한 자애였습니다.


[맺음말] 

영국의 작은 마을 코번트리에서 시작된 이 전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가끔은 세상의 가혹한 규칙에 맞서 '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이 보여준 그 숭고한 용기가 여러분의 삶에도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전설을 바탕으로 구성한 서사형 원고입니다.

실제 11세기 동시대 사료로 확정하기 어려운 대목(나체 기마의 사실 여부, ‘피핑 톰’ 일화의 성립 시점 등)은 전승과 후대 각색이 섞인 영역이므로, 본문에서는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가”를 단정하기보다, 전설이 담아낸 정치적 상징(권력-세금-희생-관음의 윤리)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Legend tells of Lady Godiva (Godgifu) of Coventry, wife of Earl Leofric, who begged him to lift the town’s harsh taxes. 

He mocked her with an impossible bargain: ride naked through the streets and he would grant relief. 

Godiva agreed, covered only by her long hair, and the townspeople repaid her courage by closing shutters and averting their eyes, turning forced shame into collective reverence. 

One voyeur, later dubbed “Peeping Tom,” supposedly spied and was punished—yet many historians see this episode as a 17th-century moral add-on. 

From John Collier’s famous painting to modern “Godivaism” and the Godiva brand, the story endures as a parable about power, protest, and the ethics of loo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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