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위의 제국들: 한·로마·당·몽골이 만든 실크로드 이야기 (Silk Road)


실크로드: 문명을 엮은 거대한 길


8세기, 세계 제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은 동서양의 문물이 한데 어우러진 눈부신 국제도시였습니다. 

거리에는 이란식 모자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활보했고, 해가 질 무렵이면 귀족 자제들은 백마를 타고 '호희(胡姬)'라 불리는 서역 출신 여인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푸른 눈화장을 짙게 한 호희들은 이국적인 음악과 춤, 그리고 포도주로 장안의 밤을 채웠습니다. 

황제 당태종마저 서역 원정에서 얻은 포도로 직접 여덟 종류의 포도주를 빚어 신하들에게 하사할 만큼, 서역의 문화는 제국의 심장부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동서 문명의 활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 길이 바로 실크로드입니다. 

'실크로드(Seidenstraße)'라는 이름은 19세기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중국 비단이 이 길의 핵심 교역품이었던 것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단순히 비단을 운반하던 단 하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간 거대한 '네트워크' 였습니다. 

이 거대한 네트워크는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유목민족이 말을 달리던 북방의 '초원길', 상인들의 낙타가 오아시스를 잇던 중앙의 '사막길', 그리고 계절풍을 타고 돛단배가 향신료를 실어 나르던 남방의 '바닷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글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과 장건의 탐험으로 그 서막이 열리고, 한나라와 로마 제국의 첫 교역을 거쳐, 당나라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했으며, 몽골 제국 아래 '팍스 몽골리카'를 이루며 절정에 달했다가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까지의 장대한 역사를 주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따라가 봅니다.


실크로드 교역망의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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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의 탄생: 의도치 않은 개척자들

실크로드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동쪽과 서쪽, 양 끝에서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두 개척자의 발걸음이 만나 비로소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복을 위한 군대의 진군로와 동맹을 찾기 위한 외교관의 여정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문명의 교차로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서쪽의 개척자,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는 거대한 동방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페르시아 제국 정복이었지만, 그 여정은 의도치 않게 실크로드의 서쪽 길을 닦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복을 목적으로 한 군사 작전이 역설적으로 훗날 수 세기 동안 이어질 평화로운 교류의 상업적, 문화적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의 군대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지나 인도 인더스강 유역까지 나아갔고, 이 과정에서 닦은 길들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도로망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원정 경로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건설했는데,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Herat)와 칸다하르(Kandahar) 등이 바로 그 유산입니다. 

이 도시들은 훗날 동서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원정은 문명 융합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원정 이후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의 문화는 인도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부처의 얼굴이 인간의 모습으로 섬세하게 조각되는 '간다라 미술'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동상


동쪽의 탐험가, 장건

서쪽에서 알렉산더가 길을 연 지 약 200년 후, 동쪽에서는 한 명의 외교관이 실크로드의 동쪽 문을 열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武帝)는 북방의 강력한 유목민족인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대월지(大月氏)와 군사 동맹을 맺고자 장건(張騫) 을 사신으로 파견했습니다.

장건의 여정 또한 교역이 아닌 순수한 군사·외교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어, 출발 직후 흉노에게 붙잡혀 10년간 억류되었고,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붙잡히는 등 무려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습니다. 

100여 명에 달했던 사절단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두 명이었습니다.


비록 대월지와의 동맹이라는 원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장건이 가져온 서역에 대한 생생하고 상세한 정보는 한나라의 눈을 서쪽으로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보고를 바탕으로 한나라는 서역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흉노를 몰아내며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을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실크로드의 동쪽 길이 공식적으로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서쪽에서는 알렉산더가, 동쪽에서는 장건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길을 열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교류의 길이 탄생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탐험가 장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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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단과 황금의 교류: 한나라, 로마, 그리고 파르티아

장건이 연 길 위로 교역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동쪽의 한나라와 서쪽의 로마 제국, 두 거대 문명이 실크로드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물자를 교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시기 실크로드는 어떤 상인도 전 구간을 여행하지 않고 여러 중개자를 거쳐 물품이 전달되는 단절된 '릴레이 네트워크'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로마를 사로잡은 비단 열풍

한나라가 서역으로의 길을 열자, 로마 제국에서는 중국산 비단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일어났습니다.

부드러운 감촉과 신비로운 광택을 지닌 비단은 로마 귀족들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비단을 '세리카(serica)', 비단을 만드는 중국인들을 '세레스(Seres)'라 불렀는데, 이는 비단을 뜻하는 한자 '사(絲)'의 중국식 발음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비단 열풍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한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비단옷을 본다. 만약 신체조차 가릴 수 없는 그것을 옷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남편보다 외간 남자가 아내의 몸을 더 잘 알게 하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로마 귀부인들이 속이 비치는 비단옷으로 몸매를 과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막대한 금이 비단 값으로 유출되자, 로마 원로원은 여러 차례 비단 착용 금지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과 서가 주고받은 보물들

실크로드를 통해 오간 것은 비단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은 각자의 특산품과 기술을 교환하며 서로의 문명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동양 → 서양
서양 → 동양
비단, 도자기, 종이: 부와 사치의 상징이자 선진 기술의 산물
유리, 포도(주), 금: 진귀한 공예품과 새로운 문화의 상징


중개 무역의 강자, 파르티아

초기 실크로드 교역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두 제국 사이에 위치하여 중계 무역을 독점했던 파르티아 제국이었습니다. 

이란계 민족이 세운 파르티아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동양의 비단을 로마에, 서양의 금과 유리를 한나라에 되팔며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두 제국이 직접 교류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 강력한 문지기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나라와 로마는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았지만, 파르티아라는 '중개자'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물자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상의 이동을 낳았고, 실크로드는 곧 세계 제국들의 전성기와 맞물려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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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번째 황금기: 세계제국 당과 길의 지배자 소그드인

7세기, 당나라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며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에 의한 평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정치적 안정과 적극적인 개방 정책 속에서 실크로드 네트워크는 이전보다 훨씬 통합되고 중앙집권화된 형태로 발전하며 첫 번째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수도 장안은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 사절, 유학생들로 붐비는 진정한 국제도시였습니다. 

거리에서는 이란풍의 옷과 포도주가 유행했고, 서역에서 온 음악과 춤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당나라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며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당나라가 마련한 이 평화의 무대 위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중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유라시아 교역망의 혈맥을 장악한 이들은 바로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상인들이었습니다. 

이란계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의 한 분파에서 기원한 소그드인들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에 거점을 두고 뛰어난 상술과 언어 능력으로 동서 교역 네트워크를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통일된 제국 없이 살아갔기에, 그들의 국가는 바로 실크로드 네트워크 그 자체였습니다.


소그드 상인 – 아프라시압(Afrasiab) 궁전 벽화


소그드 상인들은 낙타 대상을 이끌고 험준한 사막과 산을 넘나들며 물자뿐만 아니라 문화와 종교, 기술을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실크로드는 단순한 교역로를 넘어 문명 융합의 용광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활발한 교류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인류의 정신과 기술 문명을 송두리째 바꾸는 거대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구시가지 레기스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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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길 위의 사상과 기술: 문명의 대융합

실크로드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비단이나 보석이 아닌, 길 위에서 오고 간 '문명 그 자체'에 있습니다.

물자의 흐름을 따라 인류의 정신세계를 바꾼 사상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기술들이 동서양을 넘나들었습니다.


1. 종교의 전파: 인류의 정신세계를 넓히다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며 동아시아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많은 구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이 길을 따라 불경을 구하러 떠났고, 그들의 헌신은 동아시아 불교 문화의 찬란한 꽃을 피웠습니다. 

이 길 위에서는 불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가 퍼져나가며 인류의 정신세계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2. 기술의 이전: 역사의 흐름을 바꾸다 

인류 지성사의 혁명을 가져온 제지술은 실크로드가 낳은 가장 중요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가 이슬람 제국에 패하면서, 포로로 잡힌 중국인 기술자들을 통해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이후 이 기술은 유럽으로 건너가 지식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지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제지술 외에도 화약과 나침반 등 중국의 발명품들이 이 길을 통해 서양으로 전해져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3. 예술의 융합: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다 

실크로드는 동과 서의 예술이 만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용광로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간다라 미술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전해진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가 인도의 불교와 만나, 마치 그리스 신처럼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의 불상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는 실크로드가 어떻게 서로 다른 문명을 융합하여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잦아들던 실크로드의 활기는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묶은 거대한 제국의 등장과 함께 역사상 유례없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간다라(Gandhara) 불상 – 그리스풍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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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국의 길: 몽골과 팍스 몽골리카

13세기,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정복하며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로 인해 실크로드 전역이 사상 최초로 단일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정복 활동이 역설적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개방적인 교역 환경, 즉 피와 철로 다져진 평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몽골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도로망을 정비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숙소와 보급품을 제공하는 역참(驛站) 제도를 완비했습니다. 

덕분에 상인들은 도적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동서양을 오갈 수 있게 되었고, 실크로드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몽골에 의한 평화)'라 불리는 제2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에 실크로드 네트워크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이루어,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종단 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직접 여행하고 돌아와 쓴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신비로운 환상과 호기심을 불어넣었습니다.

• 이슬람 세계의 발전된 천문학과 수학(회회력)이 중국에 전해져 동아시아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등,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몽골 제국이 만든 이 안정된 교역망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퍼뜨리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발생한 흑사병(페스트) 이 바로 이 길을 따라 순식간에 아시아 전역과 유럽으로 퍼져나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는 실크로드가 가진 교류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제국의 평화와 육상 교역의 시대는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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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길의 쇠퇴와 남겨진 유산

14세기 중반 이후, 몽골 제국이 분열하면서 실크로드의 영광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쇠퇴가 아니었습니다. 

육지의 길이 막히면서 세계사의 중심이 바다로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 즉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서막이었습니다.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몽골 제국의 분열로 '팍스 몽골리카' 시대가 막을 내리며 교역 환경이 불안정해졌습니다. 

둘째, 15세기 서아시아에 등장한 오스만 제국이 기존의 육상 교역로를 장악하고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유럽 상인들의 동방 무역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로 이 세 번째 원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육로가 사실상 막히자, 동방의 향신료와 부에 대한 갈망이 식지 않았던 유럽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바다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해술의 발달에 힘입어 신항로를 개척하며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육상 무역을 대체하며 실크로드 시대의 종말을 고했습니다. 

결국 육상 실크로드의 쇠퇴는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 시대를 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실크로드의 영원한 유산

비록 육상 교역로로서의 기능은 쇠퇴했지만, 실크로드가 인류 역사에 남긴 유산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실크로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동양과 서양을 하나의 세계로 연결했고, 문명의 경계를 허물며 인류 전체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비단과 향신료뿐만 아니라 종교, 철학, 과학, 예술이 이 길을 통해 오가며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고대의 실크로드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고대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현대적으로 재구축하려는 거대한 구상입니다. 

이는 실크로드가 남긴 유산이 과거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의 국제 관계와 경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실크로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위대한 길로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신뢰할 수 있는 역사 연구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독자가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사건의 흐름과 장면을 서사적으로 엮어 재구성한 글입니다. 

연대·지명·인물 관계 등은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맞추었으며, 일부 해석이 갈리는 대목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학술 논문이나 과제, 엄밀한 연구용으로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추가 전문 문헌과 1차 사료를 함께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The article traces the Silk Road as a vast network of steppe, desert and sea routes linking China, Central Asia, the Islamic world and Europe.

It follows its formation under Alexander and Zhang Qian, its peaks under the Han, Tang and Mongol empires, and how it carried goods, religions and technologies such as Buddhism and papermaking. 

It ends with its decline in the age of oceanic trade and its modern legacy in projects like China’s Belt and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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