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전설, 수로부인의 두 가지 대화록: 꽃과 바다의 노래
1장. 절벽 위의 고독, 그리고 헌화가(獻花歌)
신라 성덕왕(聖德王) 대, 관직을 맡은 순정공(純貞公)은 강릉 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던 중이었다.
그가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과 함께 험준한 해안 절벽을 지나던 때였다.
수로부인은 그 시대에 둘도 없는 절세미인으로 (전승) 전해지지만, 그 아름다움이 그녀의 삶에 안온함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가마가 잠시 멈추자, 수로부인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득한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로 붉게 타오르는 듯한 절벽이었다.
수로부인: "아, 공(公). 저 절벽 위를 보십시오. 어찌 저토록 붉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것입니까. 손에 한 다발 꺾어 향을 맡을 수 있다면, 이 험한 길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을 텐데요."
순정공은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꽃이 피어 있는 곳은 수십 길 높이의 깎아지른 바위였고, 아래는 파도가 부서지는 낭떠러지였다.
순정공: "부인. 그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저곳은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 바위가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지 않습니까. 혹여, 누가 저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까."
순정공의 말에 곁에 있던 수행원들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미인의 간절한 소망 앞에서도, 모두 죽음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침묵만 흘렀다.
그 순간, 길가에서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늙은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이미 여든을 넘긴 듯한 모습이었으나, 눈빛은 초원의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노인: "어찌 이 아름다운 부인의 소망을 아무도 들어주지 못한단 말이오? 나야말로 이 고장의 늙은이. 내가 이 꽃을 꺾어 바치겠소."
순정공은 경악하여 늙은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늙은이는 이미 낡은 짚신을 신고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나무뿌리처럼 바위에 착 달라붙은 늙은이는 거침없이 붉은 꽃, 즉 진달래(혹은 철쭉)가 피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잠시 후, 늙은이는 아름다운 꽃을 한아름 안고 내려와 수로부인의 가마 앞으로 고이 바쳤다.
그의 눈빛은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홀린 듯했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었다.
노인 (노래하며)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암소 놓으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꽃 한 송이를 꺾어 드리오리다."
수로부인: "(꽃을 받아 들며, 놀라움과 감사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어르신! 이토록 숭고한 용기를 바쳐주시다니요. 꽃의 향보다 어르신의 노래와 마음이 더욱 오래도록 제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순정공은 늙은이의 용기와 노래에 담긴 깊은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채, 그저 미안함과 당혹감을 느꼈다.
늙은이는 말없이 다시 소를 몰고 길을 떠났다.
수로부인만이 그 붉은 꽃을 품고, 자신의 고독한 아름다움이 초래한 불가사의한 헌신을 되새겼다.
2장. 바닷속의 포획, 그리고 해가(海歌)
다시 얼마간 길을 가던 중, 이번에는 바닷가에서 수로부인에게 더욱 섬뜩한 일이 벌어졌다.
짙푸른 동해 바다 위로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다.
그리고 그 파도와 함께 바다 깊은 곳의 용왕(龍王)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은 수로부인의 가마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용왕: "미인아, 이 신비로운 바닷속 궁궐로 나 홀로 그대를 맞이하리라. 그대의 아름다움은 이 지상의 관직에 얽매인 늙은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로부인: "(겁에 질렸으나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용왕이시여, 저는 신라의 태수 부인입니다! 이 지상의 여인에게 어찌 그런 무례를 범하려 하십니까? 어서 저를 놓아주십시오!"
용왕은 수로부인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붙잡아 순식간에 파도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순정공과 일행들은 망연자실하여 바다만 바라볼 뿐, 어떠한 힘도 쓸 수 없었다.
순정공: "(울부짖으며) 부인! 부인!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바다 귀신이 내 아내를 데려가다니! 아아, 나의 무능함이여!"
그때, 또다시 한 노인(혹은 촌로)이 나타나 순정공에게 말을 건넸다.
그의 눈은 깊은 지혜를 담고 있었다.
노인: "공께서는 어찌하여 그리 무력하게 울부짖고만 계십니까? 용왕은 비록 신비로운 존재이나, 백성들의 입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상이나 바다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대들의 힘으로 용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순정공: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내 사랑하는 아내를 어찌 용왕의 손에서 되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노인: "백성들을 모아 크게 노래를 부르고, 몽둥이로 바위를 치며 용왕에게 돌려보내라 간청하십시오. 바닷속 용왕이라 한들,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원망과 간청의 노래는 거스를 수 없을 것입니다."
순정공은 노인의 말에 따라 즉시 주변 백성들을 모았다.
그들은 바위를 치며, 바다를 향해 간절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바로 해가(海歌)이다.
백성들 (노래하며)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큰가. / 만일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너를 잡아 / 구워 먹으리라! (돌려보내라!)"
백성들의 간절하고도 위협적인 노랫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자, 잠시 후 용왕은 두려움에 질린 채 수로부인을 다시 바다 위로 올려보냈다.
수로부인: "(젖은 옷을 감싸 쥐고서) 공, 저는 무사합니다. 용궁은 칠보단장(七寶丹粧)이요,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저는 오직 공과 이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함은 저의 고독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수로부인은 비록 용궁의 화려함을 보았으나,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의 두 이야기는 곧 신라 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절세미인의 고독한 운명을 상징하며, 오랫동안 이 땅에 전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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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수로부인 조각상 |
이 글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수로부인 설화를 바탕으로, 인물의 대사와 심리를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설화의 기본 줄기는 가능한 한 사료에 맞추되, 세부 장면·감정 묘사·대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있습니다.
전승과 해석이 갈리거나 (전승)/(논쟁) 표기가 필요한 부분은 이후 보완될 수 있습니다.
Set in Silla under King Seongdeok, this tale follows Lady Suro, famed for her beauty, through two linked legends.
On a sea cliff an old cowherd climbs a deadly rock to pick the red flowers she longs for, singing “Heonhwaga” as an offering.
Later the Sea Dragon abducts her, but villagers beat the rocks and chant “Haega” until he yields.
Together the stories explore beauty, loneliness and the saving power of a community’s united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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