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차 강도: 세기의 범죄와 추격전
1. 완전 범죄의 서막
1.1. 오프닝: 새로운 야망의 시작
전후 긴축의 시대가 저물고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의 활기가 움트던 1960년대 초반, 영국 사회는 표면적인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견고한 계급의 벽과 낡은 질서에 갇혀 있었다.
바로 이 과도기의 불안과 열망 속에서 영국 범죄사를 영원히 바꿔놓을 대담한 계획이 싹트고 있었다.
이 거대한 구상의 중심에는 브루스 레이놀즈(Bruce Reynolds)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도둑이 아닌, 범죄라는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로 여겼다.
골동품 딜러로 행세하며 상류층의 허영과 보안의 허점을 파고들던 그는 더 이상 소소한 절도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범죄 역사에 길이 남을 '레오나르도'급 걸작, 즉 시대를 뒤흔들 완전 범죄를 꿈꾸고 있었다.
1.2. '드림팀'의 결성
레이놀즈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을 규합했다.
런던 뒷골목의 전설들이 그의 지휘 아래 모여들며, 훗날 '드림팀'이라 불릴 15인조 강도단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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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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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Role/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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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레이놀즈 (Bruce Reyn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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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책임자,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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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구디 (Gordon Go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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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핵심,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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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윌슨 (Charlie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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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담당,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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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제임스 (Ro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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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도주 차량 운전사,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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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에드워즈 (Buster Ed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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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권투선수, '행동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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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 빅스 (Ronnie Bi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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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기관사 섭외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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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브루스 레이놀즈 , 존 데일리, 테렌스 호건 , 마이클 볼, 찰리 윌슨 . 레이놀즈, 데일리, 윌슨 |
이들 핵심 멤버 외에도, 철도 신호체계를 무력화할 전문가와 열차 운전에 능숙한 퇴역 기관사까지 팀에 합류했다.
각자의 욕망을 품은 범죄자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 모여 세기의 범죄를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1.3. 타겟: 왕립 우편열차
그들의 목표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런던 유스턴 역으로 향하는 왕립 우편열차 '업 스페셜(Up Special)'이었다.
강도단은 내부 정보원을 통해 8월 초 은행 휴일(Bank Holiday)이 끝난 직후, 스코틀랜드 은행들에서 수거된 막대한 양의 낡은 지폐가 런던으로 이송되어 소각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현금 수송 차량 중 보안이 가장 취약한 두 번째 칸에 실릴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1.4. 작전 기지: 레더슬레이드 농가
범죄의 무대는 버킹엄셔의 한적한 시골 철로, 시어스 크로싱(Sears Crossing)으로 정해졌다.
강도단은 범행 장소에서 멀지 않은 레더슬레이드(Leatherslade) 농가를 임대하여 작전 본부로 삼았다.
이곳은 범죄를 모의하는 아지트이자, 범행 성공 후 경찰의 추적이 잠잠해질 때까지 은신하며 전리품을 나눌 성소였다.
그들은 농가를 불태워 모든 증거를 없애고 유유히 사라질 계획까지 세웠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2. 1963년 8월 8일
2.1. 강도 실행
1963년 8월 8일 새벽 3시, 짙은 안개가 깔린 버킹엄셔의 철로 위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범죄가 시작되었다.
강도단은 장갑에 건전지를 연결해 철도 신호등을 붉은색으로 조작했다.
정지 신호를 본 기관사 잭 밀스(Jack Mills)가 열차를 멈추자, 어둠 속에서 복면을 쓴 사내들이 순식간에 기관실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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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트 트레인 강도 사건 현장 |
예상치 못한 저항은 없었으나, 이 과정에서 강도단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한 조직원이 쇠파이프로 기관사 잭 밀스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이 폭력은 대중의 낭만적 환상을 깨뜨리고 그들을 단순 강도를 넘어 흉악범으로 낙인찍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밀스는 이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다 결국 다시는 기관사로 복귀하지 못했다.
강도단은 부상당한 밀스를 협박해 열차를 시어스 크로싱 다리 위로 이동시킨 후, 120개의 돈 가방을 인간 사슬을 만들어 아래 대기하던 트럭으로 옮겼다.
단 30분 만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2.2. 예상 밖의 대성공
레더슬레이드 농가로 돌아와 돈 가방을 열어본 강도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손에 들어온 돈은 총 260만 파운드.
이는 오늘날 화폐 가치로 약 600억 원에 달하는, 당시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강도 사건 피해액이었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돈 앞에서, 총책임자 브루스 레이놀즈는 승리의 희열 대신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그는 직감했다.
이 액수는 단순한 범죄의 성공이 아니었다.
이것은 국가의 자존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 야드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추격전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완전 범죄의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2.3. 농가에서의 은신
농가에서의 시간은 승리의 축제에서 불안과 편집증의 지옥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자신들의 소식이 떠들썩했고, 하늘에는 경찰 헬리콥터가 선회했다.
원래 계획이었던 농가 소각은 발각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
대신 한 조직원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서둘러 흩어졌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모노폴리 게임 판부터 케첩 병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낼 수많은 지문을 남겨둔 채였다.
요새가 되어야 할 농가는 이제 그들의 목을 조여올 덫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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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신처로 사용되었던 레더슬레이드 농가 |
3. 세기의 추격전
3.1. 수사팀의 소집: '카퍼'의 이야기
대열차 강도 사건은 영국 정부를 충격에 빠뜨렸고, 내무부 장관은 스코틀랜드 야드에 즉각적인 범인 검거를 지시했다.
이 중대한 임무를 위해 소집된 인물은 '플라잉 스쿼드(Flying Squad)'의 전설적인 형사, 토미 '원데이' 버틀러(Tommy 'One-Day' Butler) 총경이었다.
그는 한번 목표로 삼은 범인은 하루 안에 잡아들인다는 집요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버틀러는 강도단에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최정예 수사팀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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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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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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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버틀러 (Tommy Butler)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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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총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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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윌리엄스 (Frank Williams)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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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팀 핵심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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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슬리퍼 (Jack Slipper)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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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추적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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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 퓨트렐 (Malcolm Fewt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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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셔 경찰국 수사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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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팀은 런던의 알려진 범죄자 명단을 샅샅이 뒤졌고, 브루스 레이놀즈의 이름은 초기 용의선상에 이미 올라 있었다.
세기의 범죄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막이 올랐다.
3.2. 결정적 단서: 버려진 농가
초기 수사는 난항을 겪었지만, 경찰이 1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자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레더슬레이드 농가 근처의 한 목동이 사건 발생 며칠 후 경찰에 농가의 수상한 움직임을 알렸던 것이다.
8월 13일, 버틀러의 팀이 농가를 급습했을 때, 그곳에는 돈의 일부와 함께 범인들이 남긴 결정적인 증거들이 널려 있었다.
모노폴리 게임 판에서 발견된 지문은 수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경찰은 지문을 통해 용의자들의 신원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고,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하며 범인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영국 전역이 거대한 수사망으로 변했다.
3.3. 범인들의 체포
농가에서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경찰의 추적은 급물살을 탔다.
정보원들의 제보가 빗발쳤고, 강도들은 독 안에 든 쥐처럼 하나둘씩 체포되었다.
어떤 이는 국외로 도피하려다 공항에서, 어떤 이는 은신처에서 잠복하던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완전 범죄를 꿈꿨던 '드림팀'은 버틀러가 이끄는 경찰의 촘촘한 그물망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4. 전설의 종말
4.1. 마지막 도망자, 브루스 레이놀즈
대부분의 강도들은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기관사 잭 밀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질타하며 주범들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3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기획했던 단 한 사람, 브루스 레이놀즈만은 5년 동안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멕시코와 캐나다 등지를 떠도는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끈질긴 도주는 1968년 영국 토키(Torquay)에서 체포되면서 마침내 막을 내렸다.
4.2. 그 후: 강도들의 운명
'세기의 범죄자'라는 낙인은 평생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들의 삶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로 남았다.
• 브루스 레이놀즈 (Bruce Reynolds): 10년 복역 후 출소하여 작가이자 '범죄계의 명사'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가족에게 준 고통에 대해서는 평생 괴로워했다. 2013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로니 빅스 (Ronnie Biggs): 복역 중 탈옥하여 브라질로 도주, 수십 년간 화려한 도피 생활을 즐기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건강 악화로 영국에 자진 귀국하여 수감되었고, 2009년 병보석으로 석방된 후 2013년 사망했다.
• 버스터 에드워즈 (Buster Edwards): 멕시코로 도피했다가 자수했다. 출소 후 런던 워털루 역 앞에서 꽃 노점상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사는 듯했으나, 199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찰리 윌슨 (Charlie Wilson): 감옥에서 탈옥하여 캐나다로 도주했으나 4년 만에 재검거되었다. 출소 후 스페인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1990년 자택 수영장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4.3. 역사적 의의: 세기의 범죄로 남다
1963년의 대열차 강도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대담한 계획, 천문학적인 액수, 그리고 끈질긴 추격전은 기성 질서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강도들은 기관사에 대한 잔혹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권력에 맞선 '반(反)영웅'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영국 경찰의 수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허술했던 과학수사 기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각 경찰청 간의 공조 체계가 강화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대열차 강도는 완벽한 범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과 함께, 20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신화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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