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 생줄리앵 바구미 재판: 교회법정과 포도밭의 심판 (Weevils of St Julien Trial)


법정 위의 곤충: Saint-Julien, 1587년의 기묘한 심판


어둠 속의 공포 - 신과 법이 지배하는 세상


흑색 전염병의 그림자 (1587년, Saint-Julien)

1587년, 프랑스 남동부의 작은 와인가도 마을 생줄리앵(Saint-Julien, 당시 교구 관할의 포도 산지)은 겉으로는 번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백 년간 유럽을 휩쓴 흑사병(Black Death,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킨 전염병)의 트라우마와, 끝없이 이어지는 기근(饑饉)의 공포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재해, 질병,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흉작(凶作)을 '하늘의 징벌'로 해석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중세 후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불행은 악마의 소행이거나, 신이 인간의 죄악을 징벌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특히 이 시기는 형식주의적 절차주의(법적 형식과 절차의 과잉 신뢰)가 강했고, 인간의 법을 자연계에도 적용하려는 기괴한 시도가 만연했다. 


안톤 포겔(Anton Vogel, 교구 법정의 젊은 서기)은 잿빛 법복을 입고 참나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라틴어 법전(Codex)이 들려 있었다.

포겔은 최근 법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판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지난달에는 이웃 마을에서 한 돼지(Pig)가 어린아이를 물어 죽인 죄로 붙잡혀와 교구 법정(교회법정)에서 ‘살해’에 준하는 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포겔: "헤르만 서기관님, 돼지를 교수형에 처하다니요. 그 동물이 인간의 법을 이해했을까요? dolus(고의)와 culpa(과실)라는 개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헤르만 (수석 서기): "쉿, 포겔! 불경한 질문이다. 법은 신의 질서를 반영한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악마에 홀려 죄를 저질렀다면, 그 육체를 처벌함으로써 악마의 영향력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요, 이 마을의 질서를 지키는 길이다. 우리는 인간의 오만(傲慢)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를 집행하는 것뿐이야."


EP Evans가 1906년에 쓴 '동물에 대한 형사 기소와 사형'의 표지에 나오는 암퇘지의 처형 장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

그해 봄, 생줄리앵의 농부들은 경악했다.

새로 파종한 밀과 보리가 싹트기 무섭게 검게 변하더니, 껍질만 남기고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은 바구미(Weevil, Rhynchites auratus로 전해짐)였다. 

수많은 바구미 떼가 밭과 창고, 포도밭을 휩쓸고 다녔다. 


농부들의 절규가 교구청(주교좌 대리 관할) 앞에 쏟아졌다.

기근은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라, 죽음과 폭동을 의미했다.

교구 법정과 교구장 대리(주교 대리)는 이 사태를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둘 수 없었다.

만약 통제 불가능하다면, 그들은 무능하거나 신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지도자로 비판받을 것이었다.

이 '자연의 재앙'은 반드시 '법적인 범죄'로 규정되어야 했다.

범인을 찾아 교회적 제재를 내려야만, 인간 사회의 질서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교구장 대리와 원로 사제단은 교회 변무관(promotor fiscalis)을 통해 '생줄리앵 관할의 모든 바구미'를 상대로 '재산 파괴 및 신성 모독에 준하는 행위'로 정식 소환·기소할 것을 명령했다. 


현미경 시대의 ‘바구미’ 상상도(1630, 프란체스코 스텔루티)

피고인을 위한 변호인 (콘라트 박사)

바구미 재판의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 전체가 술렁였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려면 교회법에 따라 피고인(바구미)에게 변호인(Advocatus)이 선임되어야 했다.

교구 평의회는 이 난감한 임무를 콘라트 슈뢰더 박사(Dr. Konrad Schröder, 세속법·교회법에 통달한 법학자)에게 맡겼다.


콘라트 박사는 이 비상식적인 임무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콘라트 박사와 안톤 포겔]

포겔: "박사님, 수많은 곤충을 어떻게 변호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은 출석할 수도, 변론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광기 아닙니까?"

콘라트 박사: (술잔을 들고 침묵하다가) "광기? 아니, 포겔. 이것은 법률의 오만일세. 신의 영역에 인간의 법을 끼워 맞추려는 오만. 그러나 법이 정한 절차는 지켜져야 하네. 피고가 아무리 작고 하찮은 생물이라도, 그들에게 공정한 절차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지."

콘라트 박사: "변호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을 위한 방파제일세.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권리를 논리적으로 옹호하면 법정의 권위는 오히려 더 확고해질 걸세."


콘라트 박사는 교회 문헌과 판례 기록 사이에서 바구미를 변호할 근거를 찾기 시작했다. 


법정의 연극 - 소환장과 변론 준비

법정 소환장(Summons)의 공포

재판을 시작하기 전, 첫 번째 단계는 피고인 소환이었다.

마을 광장과 포도밭 경계, 성당 앞에서 교구 전령(herald)이 라틴어 공고문(edictum)을 낭독했다. 

공고문에는 바구미들이 7일 이내에 변호인을 통해 의견을 제출하지 않으면, 교회적 저주와 금지 선언(anathema에 준함)을 선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절차는 당시의 형식주의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재판이라도, 인간에게 적용되는 정식 소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령의 외침]

전령: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생줄리앵 교구와 그 경계 내에 서식하는 모든 종류의 바구미(Curculionidae)! 7일 안에 이 법정에 의견을 밝혀라! 불응할 경우, 교회는 저주와 금지 선언을 내릴 것이다!"


7일 후, 당연히 단 한 마리의 바구미도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교구 변무관은 이를 '죄의 명백한 자인(自認)'으로 간주했다. 


기소 측의 논리: 신의 대리자

재판이 시작되었다.

교회 측 법무관(프로모토르)은 열정적으로 바구미 떼의 죄를 논했다.


주장은 단순했다.

바구미들이 인간의 재산을 파괴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악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이다.


법무관: "이 법정은 악의 하수인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이 해충들은 인간의 노동과 땀의 결실을 훔치고, 그리스도인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오만함이자, 죄를 숨기려는 비겁함입니다!"

법무관: "우리는 그들에게 교회적 금지 선언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생줄리앵이 다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군중의 공포심을 자극했고, 포겔 서기는 형식주의적 논리에 소름이 돋았다.


변론, 인간의 영역에 대한 경계

콘라트 박사의 세 가지 방어

이제 콘라트 박사의 차례였다.

그는 거구의 법무관과는 대조적으로 날카로운 눈빛과 정제된 언어를 구사했다.

그는 바구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법의 한계를 논했다.


[변론 1: 관할권 논쟁]

콘라트 박사: "나의 의뢰인들, 즉 바구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인간의 법이 아닌 자연법 즉 신의 섭리에 복종합니다."

콘라트 박사: "이 법정은 본래 인간 상호 간의 분쟁을 다루는 곳입니다. 만약 그들이 악의 도구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 악을 기소해야 합니다. 곤충의 재판은 악의 재판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재판은 관할권이 없습니다." 


[변론 2: 공정한 절차의 문제]

콘라트 박사: "공고문이 낭독되었으나, 나의 의뢰인들은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글을 읽을 수도, 인간의 절차를 알 수도 없습니다. 공정한 재판(Fair Trial)의 근본 원칙은 피고인이 절차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콘라트 박사: "법이 이 기본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제재를 선포한다면, 이 법정은 정의가 아니라 무지에 절차를 씌운 폭력이 될 뿐입니다." 


[변론 3: 서식권(棲息權) 논쟁]

이것이 콘라트 박사가 준비한 가장 충격적인 논리였다.

콘라트 박사: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생물에게 '땅을 차지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나의 의뢰인들은 신의 명령에 따라 이 땅에 거주할 서식권(Right of Habitat)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신이 허락한 양식을 취했을 뿐입니다."

콘라트 박사: "만약 우리가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낸다면, 우리는 신의 섭리를 거부하는 셈입니다. 교구가 주장하는 포도밭의 사용권이 신이 부여한 생존권보다 위에 설 수 있습니까?" 


콘라트 박사의 변론은 당시 마을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법정은 법률의 허점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변호사의 목소리에 침묵했다.

비록 목적은 바구미를 제재하는 것이었지만, 이 재판은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법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문화적 영향을 남겼다. 


법원의 최종 판결: 금지 선언과 ‘추방’

콘라트 박사의 논리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법정은 대중의 공포와 종교적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종 판결은 절충적 방식으로 내려졌다.

바구미가 악의 도구라는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무죄를 선고하면, 그들이 계속 포도와 곡식을 먹어치울 때 신의 분노가 인간에게 향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법정은 교회적 금지 선언을 선포하고, 마을 경계 밖 특정 구역을 바구미의 서식지로 할당하여 그곳으로 ‘추방’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 구역을 벗어나면 저주와 금지 선언의 효력이 미친다고 공표했다. 

이 합의(조정)는 1587년 6월 29일, 미사 뒤 광장 회합에서 재확인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종말과 성찰 - 법과 자연의 경계

허울뿐인 법의 힘

판결 후, 교회 관리들은 생줄리앵과 바구미들이 새롭게 할당받은 땅 사이의 경계에 경고 표식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이 지정된 땅으로 이동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법을 따르지 않았다.

바구미들은 여전히 밭과 창고를 휩쓸었다.

법원의 명령은 수많은 곤충 떼에게는 단순한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안톤 포겔(서기)은 경고문 앞에서 서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포겔과 콘라트 박사]

포겔: "박사님, 그들은 법을 비웃고 있습니다. 금지 선언이든 추방이든,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곡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실패작 아닙니까?"

콘라트 박사: "법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을 증명하려 했네. 하지만 자연은 법의 영역을 벗어난다네. 법은 인간 사이에서만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지. 결국 증명된 것은, 그들의 무죄가 아니라 법의 무력함이었어." 

포겔: "그렇다면 이 모든 절차, 변론, 판결은 과실(Fault)에 불과했군요."

콘라트 박사: "그렇다. 가장 큰 과실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인간의 오만이었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악마를 두려워하면서, 우리 자신의 법적 악마를 만들어낸 셈일세."


후대의 평가와 문화적 유산

생줄리앵 바구미 재판은 결국 바구미들이 자연적인 주기나 기후 변화로 인해 사라질 때까지 수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재판은 법적인 절차만 남긴 채, 실질적인 효력은 전혀 없었다.


계몽주의(Enlightenment)가 도래하고 이성이 강조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이런 재판은 미신적 관습으로 치부되어 서서히 사라졌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재판들을 '중세의 어둠'을 상징하는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사건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생줄리앵 바구미 재판은 인간의 오만과 지식의 한계가 빚어낸 블랙 코미디로 평가된다. 


이 재판은 당시 유럽 사회가 죄(Sin)와 처벌(Punishment)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광범위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인간의 법체계가 신의 질서와 동일하다고 믿었던 과도한 형식주의가 낳은 비극이었다. 


생줄리앵의 바구미 재판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 문제(기후 변화, 전염병)가 발생했을 때, 눈에 보이는 희생양(Scapegoat)을 찾아 법적 절차와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법과 논리는 인간 사회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일 뿐, 자연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무력하다. 


콘라트 박사의 변론처럼, 법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설 때 억지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법적 절차의 형식적 완벽성보다는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충실해야 하며, 과학과 이성의 영역을 법적 오만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당시 지도층은 사회적 배경(기근과 공포)에 편승하여, 정치적 이해관계(책임 회피)를 위해 가장 비이성적인 방법을 택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비이성적 절차를 따르기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생줄리앵의 이 코미디는 무지(無知)가 절차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준다.


이 글은 1587년 생줄리앵(Saint-Julien) 바구미 재판의 사료·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를 소설적으로 각색한 재구성입니다. 

불확실하거나 전언에 의존하는 내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말·관용구의 유래는 (어원)으로 표기합니다. 

서사적 효과를 위한 압축·구성 변경이 있으나, 핵심 사실(시기·장소·절차·판결 유형)은 사료 범위 안에서 유지했습니다.


This narrative dramatizes the 1587 Saint-Julien “weevil trial,” where a church court summoned crop pests, heard an advocate argue lack of jurisdiction, fair-trial defects, and habitat rights, then issued an anathema and “banished” the insects outside the parish. 

Framed by plague, famine, and politics, the case exposes late-medieval procedural formalism and scapegoating. 

Nature ignored the decree, revealing law’s limits and the peril of certainty without e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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