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오후 햇살이 아르노강 위로 번졌다.
금세공 장인이 벤치에 앉아 작은 톱으로 금을 켰다.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 금세공·조각가)는 그 날도 자기 이름을 칼처럼 갈고 있었다.
그의 삶은 장인의 일지이자, 도시의 무용담이었다.
소년 첼리니는 피렌체의 공방에서 금을 만지는 법을 배웠다.
금은 눈으로 보이지만, 진짜 가치는 손끝에서만 드러난다는 걸 일찍 알았다.
그는 도안과 망치를 넘나들며 금실과 보석발톱을 다듬었고, 작은 성물을 작품으로 바꿨다.
손이 단단해질수록 눈은 더 과감해졌다.
![]() |
| “벤베누토 첼리니 초상 판화(1771)” / “Engraved portrait of Benvenuto Cellini (Joseph Collyer, 1771)”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커먼스 |
1520년대, 그는 로마로 갔다.
교황청의 의뢰가 끊이지 않았고, 비늘 같은 금사 끝에 천사의 날개가 달렸다.
그러나 도시의 공기는 늘 칼끝처럼 서 있었다.
1527년 ‘로마의 약탈(Sacco di Roma 신성로마제국이 교황령의 수도인 로마를 약탈한 사건)’이 터졌고, 그는 카스텔 산탄젤로(Castel Sant’Angelo 영묘로 지은 건축물) 성벽에서 총을 들었다.
스스로는 그 자리에서 부르봉 공(Charles de Bourbon 로마약탈을 이끈 군 지휘관)을 쓰러뜨렸다고 썼다(전승).
심지어 오랑주 공(Prince of Orange 필리베르 드 샬롱)에게도 치명상을 입혔다고 했다(전승).
후대의 사료는 그 과녁을 확정하지 못했지만, 그가 성벽 위에 서 있었고 트리거를 당긴 사실만큼은 도시가 기억했다(논쟁).
![]() |
| “1527년 로마 약탈 장면” / “The Sack of Rome (1527), by Johannes Lingelbach” Wikimedia(위키피디아 파일),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
전쟁이 지나가고 그는 다시 세공 칼을 들었다.
하지만 손은 늘 한 번 더 멀리 나갔다.
금의 선이 입체의 덩어리로 커지면서, 그는 조각가가 되었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François I)에게 바친 ‘소금함(Saliera 황금소금함 (후기 르네상스의 걸작))’은 금과 에나멜이 만든 작은 우주였다.
바다의 신과 대지의 여신이 맞부딪히는 장면을 손바닥 안에 끌어다가, 왕의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금속은 단지 재료가 아니라 서사의 표면이었다.
| “첼리니의 금제 소금함 ‘사리에라’” / “Cellini’s gold ‘Saliera’ (Salt Cellar), Kunsthistorisches Museum”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위키미디어 커먼스 |
그는 찬사만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충동과 분노가 일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경쟁자와 칼부림을 했다는 기록이 남았고, 적을 죽였다는 자백도 자서전에 실려 있다(전승).
어느 날은 갈등이 덫이 되어, 카스텔 산탄젤로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는 탈옥을 감행했다가 다시 붙잡혔고, 더 오래 벽을 바라봤다.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재능을 망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그 불침번 같은 고독을 문장으로 옮겼다.
그의 『자서전(Vita)』은 자기 변명의 기록이면서 르네상스 장인의 손과 마음을 가장 생생히 보여 주는 연대기였다.
과장이 섞였다는 지적은 지금도 따라다니지만, 그 과장마저도 당시의 공기와 허영을 증언한다(논쟁).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한 방’을 준비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Perseo con la testa di Medusa)’.
주문자는 메디치 가문, 전시장은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
이미 그 자리에 서 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다비드(David)’와 도나텔로(Donatello)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를 쳐다보며, 첼리니는 심호흡을 했다.
브론즈는 대리석과 다르게, 첫 시도를 망치면 파국이 된다.
그는 일체형 대주조를 결심했다.
도시의 장인들이 “미쳤다”고 수군댈 만큼 무모한 선택이었다.
![]() |
| “18세기 금세공 공방 도해” / “18th-century engraving of a goldsmith’s workshop (Diderot’s Encyclopédie)”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
주조의 날, 노는 숨을 헐떡였다.
용해로가 꺼져가고 성형틀에 금속이 막혔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첼리니는 불길 사이로 뛰어들어 더 많은 숯과 건조 목재를 던졌고, 주물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주석기가 섞인 그릇들을 깨 넣었다고 썼다(전승).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그는 나무 기둥을 태워 열을 밀어 올렸다고도 했다(전승).
그 순간이 허풍인지 영감인지 오늘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거대한 몰드가 열렸을 때 광장엔 바로 그 ‘한 방’이 서 있었다.
페르세우스의 몸은 긴장했고, 손목의 힘줄이 서 있었고, 메두사의 목에서는 방울 같은 피가 떨어졌다.
도시의 자존심은 다시 한 번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동상(정면)” /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statue, frontal view” Wikimedia Commons, CC BY 2.5. 위키미디어 커먼스 |
첼리니의 조각은 힘과 상징을 동시에 사랑했다.
그는 영웅의 몸을 해부하듯 파고들었고, 신화의 순간을 무대처럼 연출했다.
근육은 오만했고, 표정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때로는 과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거리는 그 과잉을 기꺼이 감당했다.
광장엔 늘 관객이 있었고, 권력은 그 관객에게 보일 근육을 원했다.
그는 늘 영웅과 악당 사이의 민감한 경계에 서 있었다.
누구보다 치열한 장인이었고, 누구보다 시끄러운 주인공이었다.
교황청의 주문서를 붙잡았다가 감옥의 창살을 붙잡았고, 왕의 식탁 위 소금을 설계했다가 성문 위에서 화승총을 쏘았다.
그의 삶은 기술과 명예, 폭력과 기도, 칼과 펜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다 다시 돌려주는 반복이었다.
말년의 첼리니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스스로 설계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직접 썼다.
자기 몫의 과장과 자기 몫의 진실을 섞어, 한 권의 인간극장을 만들어 냈다.
그 책은 사후에 세상에 나왔고, 오랫동안 읽혔다.
“나는 내가 해냈다”는 문장과 “나는 그날도 흔들렸다”는 문장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
그 모순이 그의 힘이었다.
![]() |
| “‘페르세우스’ 왁스 모형 도판(16세기)” / “Wax model for ‘Perseus’ (plate from Cellini’s Vita)” 『첼리니 자서전』 도판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
우리가 첼리니를 다시 읽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천재 장인’의 로망을 현실의 땀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 땀에 허영과 허세까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보여주었다.
기술은 고독을 사랑하지만, 명성은 군중을 불러야 한다.
그 철학의 균열들 속에서, 첼리니는 도시의 조각이 되었다.
오늘 피렌체의 로자 데이 란치에 서면, 청동의 갈색이 오후를 잡아당긴다.
페르세우스의 손목에 걸린 메두사의 머리는 여전히 질량을 갖고 떨어진다.
관람객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주조장의 불길과 장인의 절규, 그리고 과장과 진실의 경계는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 자체가 첼리니의 사인이다.
그의 뒤에는 늘 누군가가 서 있었다.
스승과 동료, 라이벌과 의뢰인, 그리고 도시.
장인의 이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금빛은 언제나 배경의 어둠이 만들어 준다.
첼리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크게 빛났다.
그가 남긴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실패를 버티는 법, 무모와 계산 사이의 각도를 정하는 법, 자기 신화를 자기 손으로 주조하는 법.
그 법을 배워 둔 사람만이, 다음 날 아침 몰드를 열 수 있다.
브론즈가 딱딱한 피부를 드러내는 그 순간, 도시의 시간이 바뀐다.
그리고 누군가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 방이면 충분하다.”
그 한 방을 준비하는 데 평생이 걸릴 뿐이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jpg)

%E2%80%9D%20%20%E2%80%9CEngraved%20portrait%20of%20Benvenuto%20Cellini%20(Joseph%20Collyer,%201771)%E2%80%9D.jpg)
,%20by%20Johannes%20Lingelbach%E2%80%9D.jpg)
%E2%80%9D.jpg)
%E2%80%9D%20%20%E2%80%9CPerseus%20with%20the%20Head%20of%20Medusa%20statue,%20frontal%20view%E2%80%9D.jpg)
%E2%80%9D%20%20%E2%80%9CWax%20model%20for%20%E2%80%98Perseus%E2%80%99%20(plate%20from%20Cellini%E2%80%99s%20Vita)%E2%80%9D.jpg)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