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했어요, 이제 내려가요": 낭가파르바트에서 멈춘 '바람의 등반가' 고미영의 마지막 8,000m 레이스 (Ko Mi-young)

 

고미영, 바람의 등반가: 히말라야 8,000m 레이스에 모든 것을 걸다


늦게 피어난 거인의 씨앗 (The Late Bloomer)


늦깎이 클라이머의 탄생

1967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난 고미영(Ko Mi-young)은 처음부터 히말라야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젊음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도시의 벽(인공암벽)에서 타올랐다.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녀가 클라이밍(Climbing)에 발을 들인 것은 이미 29세가 되어서였다. 

히말라야 등반가에게는 '늦은 시작'이라 불리는 나이였다.


고미영
KBS

하지만 그녀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었다. 

바로 극한의 근면성과 천부적인 지구력이었다. 

고미영은 암벽등반에 몰입했고,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에서 곧바로두각을 나타냈다. 

1995~2003년 전국등반경기 ‘9연패’, 아시아선수권 다관왕 등 ‘암벽의 여제’로 자리 잡는다. 


그녀의 성격은 주변 사람들에게 단단하고 솔직하며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경쟁'에 집중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그녀의 몸은 마치 정교하게 단련된 기계처럼, 오직 위로 올라가는 것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암벽등반은 취미가 아니라, 삶의 목적 그 자체였다.


"남들이 10년에 걸쳐 이룰 것을 나는 5년에 이룬다.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세상에는 '늦은 출발'은 있어도 '불가능한 정점'은 없다."


8,000m로의 위험한 전환

30대 후반이 되자, 고미영은 인공암벽을 넘어섰다. 

그녀의 시선은 그녀를 키웠던 도시의 낮은 벽이 아니라, 세상의 지붕(Roof of the World)이라 불리는 히말라야(Himalaya)로 향했다. 

특히 8,000m가 넘는 14개의 거봉, 이른바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인류의 가장 위험한 레이스에 그녀는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이 결정은 단순히 스케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내 암벽등반의 기술과 히말라야 8,000m의 빙벽, 눈, 그리고 산소 부족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인공암벽에서 1g의 무게도 줄이려 했던 그녀는 이제 40kg에 달하는 장비를 짊어지고 섭씨 영하 40도의 살인적인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녀의 첫 8,000m 정상은 2006년 ‘초오유(8,201m)’였다. 

이어 성취를 거듭하며 고산 원정을 본격화했다. 


초오유(8,201m) — 고미영의 첫 8천미터 등정 대상
GFDL/CC
Cho Oyu from Gokyo, 조오유 전망
위키미디어 공용

14좌 레이스, 시간과의 전쟁 (The Everest Gambit)


에베레스트와 속도의 미학

고미영은 두 번째 목표로 곧바로 에베레스트(8,848m)를 택했다. 

2007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같은 해 브로드피크·시샤팡마를 잇달아 올랐다. 

그녀의 등반 속도는 놀라웠다. 

보통의 산악인들이 14좌 중 한 봉우리를 오르는 데 수년의 경험과 준비 기간이 필요한 데 반해, 고미영은 마치 시간을 건너뛰는 듯한 빠른 속도로 히말라야 거봉들을 정복해 나갔다. 


브로드피크(8,047m) 일출 - 카라코람 콘코디아에서
CC BY-SA 3.0
Broad Peak from Concordia
위키미디어 공용판

이 시기, 그녀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겨났다. 

스페인의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Edurne Pasaban)과 오스트리아의 게르린데 칼텐브루너(Gerlinde Kaltenbrunner) 역시 14좌 완등을 목표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참고: 파사반은 2010년 여성 최초 14좌 완등, 칼텐브루너는 2011년 여성 최초 ‘무산소’ 14좌 완등을 달성했다.) 

국내에선 오은선과의 동시대 경쟁 구도가 특히 부각됐다. 


"산은 정직하다. 내가 1시간 땀 흘리면 1시간의 고도를 내어준다. 세상은 나의 늦은 시작을 비웃었지만, 산은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미루지 않는다. 나는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빠르게 끝낼 것이다."


고독한 경쟁과 원정대의 재편

2008년은 고미영에게 있어 폭발적인 성장의 해였다. 

그녀는 로체(8,516m)를 비롯하여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63m) 등 1년에 4개의 8,000m 봉우리를 연달아 정복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K2(8,611m)도 등정했다는 보도가 남아 있다. 


K2(8,611m) — 콘코디아에서 본 북측 전경
CC BY-SA
K2 from Concordia, K2 View
위키미디어 공용판

하지만 히말라야의 등반은 '팀워크'를 생명으로 한다. 

이 무렵부터 그녀의 뒤에는 항상 김재수 대장을 필두로 한 한국인 원정대가 있었다. 

하지만 14좌 완등이라는 목표가 주는 중압감, 그리고 제한된 시간과 자원은 원정대 내부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썰: '산소 도둑' 논란]

8,000m급 등반은 막대한 자본과 셰르파, 그리고 보급품에 의존한다. 

당시 일부 국내 산악계에서는 고미영의 '놀라운 속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녀가 너무 많은 셰르파(네팔 산악지대 거주민족)와 산소에 의존하는 '페어 플레이가 아닌 등반'을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이는 14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던 심리적 충돌의 일환이었다. 

고미영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결과로만 말하겠다는 듯 더욱 빠르게 다음 봉우리를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등반은 등정 성공이라는 '결과 지상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이는 그녀가 짊어진 여성 최초 14좌라는 타이틀의 무게였다.


죽음의 8,000m 지대, 마지막 레이스 (The Summit Fever)


2009년, 끝이 보이는 도전

2009년 그녀는 마칼루(5월 1일), 캉첸중가(5월 18일), 다울라기리 등 8,000m봉을 잇달아 오르며 ‘해당 연도만 4좌’에 도전했다. 

이 시점까지 누적 10좌를 달성했고, 레이스는 한층 가팔라졌다. 

국내외 경쟁자(오은선·파사반 등)와의 간격이 좁혀지며 ‘시간과의 전쟁’이 되었다. 


[에피소드: 11좌의 위험]

가셔브룸 I 등반 당시, 그녀는 극심한 탈진과 동상 직전의 위기를 겪었다.

8,000m 이상의 고도에서 산악인들은 '정상 열병(Summit Fever)'이라는 치명적인 심리적 오류를 겪는다.

목표가 눈앞에 보일 때, 신체가 보내는 '철수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오직 전진만 선택하는 것이다.

고미영은 이 때의 상황을 "눈을 감으면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몸을 이끌고 가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가셔브룸 I을 포함해 ‘공식 집계 기준’ 누적 11좌를 밟았지만, 신체는 이미 극한의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낭가파르바트: '벌거벗은 산'의 유혹

11좌 성공 10일 후, 고미영은 마지막 남은 하나의 봉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8,126m, Nanga Parbat)였다. 

낭가파르바트는 '벌거벗은 산(Naked Mountain)'이라 불릴 정도로 잔혹하고 고립된 산이며, 최악의 사망률을 자랑하는 8,000m급 봉우리 중 하나였다.


낭가파르바트 라키오트(라키옷) 페이스 근경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판

2009년 7월 10일, 고미영은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하산 도중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 확인 보도는 7월 12일 나왔다. 

그녀는 무전기로 "성공했어요! 이제 내려가요!"라고 외쳤다. 

그 목소리는 기쁨보다는 극도의 피로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법칙은 '정상 등정보다 하산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미 11좌를 오르며 탈진했던 그녀의 몸은 마지막 봉우리의 하중을 견디지 못했다. 

등정 직후, 하산 도중 낭가파르바트의 라키오트(Rakhiot) 벽 부근, 약 6,200m ‘칼날 능선’ 구간에서 실족했다. 

그녀는 급경사 아래로 수백 미터를 추락했다. 


[사건: 조난과 구조 시도]

사고 직후, 동료 산악인 김재수 대장과 셰르파들은 즉각 구조에 나섰으나, 그녀의 추락 지점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절벽 아래였다. 

며칠간의 수색 끝에 고미영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녀는 정복의 기쁨을 누린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차가운 산의 품으로 돌아갔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The Enduring Legacy)


한국 산악사에 남긴 파장

고미영의 비극적인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14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생을 마감한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의 극한적인 도전과 그에 따르는 대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남겼다.


일부 산악계와 평론가들은 그녀의 죽음을 '경쟁 지상주의'가 낳은 비극으로 해석했다. 

너무 빠른 등반 속도, 충분한 휴식과 재정비를 포기하게 만든 '여성 최초 14좌'라는 타이틀 경쟁이 결국 그녀에게 치명적인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이었다.

8,000m급 산을 1년에 4개 이상 오른다는 것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무시한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따른다.


하지만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은 이와 다르게 평가한다. 

고미영은 단순히 '경쟁자'가 아니라, '여성은 거벽을 오를 수 없다'는 기존의 편견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선구자(Pioneer)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등반은 한국 여성 산악계에 자신감과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14좌" 목표를 이야기하며 웃는 고미영
서울신문


영원한 14좌의 등반가

고미영은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 중의 사고로 인해 국제 산악계의 공식적인 14좌 완등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14좌 완등은 등정 후 안전한 하산까지 포함한다.) 

그녀의 14좌 완등 기록은 최종적으로 ‘11좌’로 남게 되었다. 

동시대 여성 레이스의 결말은, 파사반(2010)과 칼텐브루너(2011·무산소)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첫 여성 14좌’ 타이틀을 가져가며 정리된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1좌 등정이라는 경이로운 속도와 집념은 여전히 깨기 힘든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한국 산악계에 '여성의 도전'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남겼다.


고미영은 히말라야의 차가운 봉우리를 오르며 자신의 삶을 완성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목표를 향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위대함이 때로는 얼마나 비극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상기시킨다. 

그녀는 여전히 낭가파르바트의 거대한 능선을 걷고 있는, 영원한 바람의 등반가로 기억될 것이다.


본 글은 공개된 보도·전기·백과(한겨레 2009.7.12 보도, 전북일보 2009.7.13, 위키백과등)를 교차 확인해 연도·좌수·사고 시점만 필수 교정하고, 나머지 서사는 각색했습니다. 

논쟁 여지는 ‘국내 경쟁 구도’(오은선·파사반 등)와 좌수 표기 관행에 한정해 최소 설명만 덧붙였습니다. 

오류 제보 환영합니다.



Ko Mi-young (1967–2009) rose from Korea’s indoor climbing queen to a relentless Himalayan contender. 
Beginning her 8,000-meter quest in 2006 on Cho Oyu, she moved at startling speed—Everest in 2007, multiple summits in 2008, and a furious 2009 push amid domestic and global rivalries. 
Her philosophy prized results over noise, yet the “summit fever” risk shadowed every gain. On July 10, 2009 she topped Nanga Parbat but fell during descent, and was confirmed dead two days later. 
She finished 11 eight-thousanders, short of the canonical “14,” but her pace, ambition, and the debates she sparked remade Korean women’s alpinism—leaving a bright, cautionary flame on the world’s highest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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