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침의 균열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 이전 — 전통적 견해. 단, 가을설[10월 전후]도 강하게 제기됨)
1. 축복받은 도시의 아우성
폼페이(Pompeii)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환했다.
베수비오 산(Mount Vesuvius)이 나폴리만을 굽어보는 그 위용 위로, 남부 이탈리아의 빛이 엷은 안개를 베어내며 쏟아졌다.
산등성이의 포도밭은 한 해의 풍요를 약속했고, 바람에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익어가는 과실의 단내가 섞여 있었다.
“빌어먹을, 또 땅이 흔들리는군!”
포룸(Forum) 근처 대리석 안뜰이 있는 저택.
와인 상인 루키우스(Lucius)가 짜증을 토했다.
몇 주째 이어지는 약한 진동은 이제 일상처럼 스쳐 갔다.
열일곱 해 전의 대지진(AD 62)에도 폼페이는 기어이 일어섰다.
사람들은 단단해졌고, 혹은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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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 포룸과 뒤편의 베수비오 | Pompeii Forum with Mount Vesuvius" Public Domain(CC0,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저택 앞 거리에서 젊은 하녀 니디아(Nydia)가 장바구니를 부여잡고 돌아왔다.
오늘 아침 강가의 물 내음은 유난히 시큼했고, 공기가 미묘하게 따뜻했다.
개들은 이유 없이 날카롭게 짖었고, 비둘기 떼는 원을 그리다 불안하게 흩어졌다.
“이상해.”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지만, 가난한 자에게 불길한 예감은 사치였다.
2. 하늘을 뚫는 굉음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도시를 가르는 포효가 터졌다.
천둥도, 전쟁의 공성기도 아닌, 땅의 내부가 뒤집히는 소리였다.
루키우스의 서재에서 와인 잔이 진동에 떨다 바닥에 깨졌다.
그는 창으로 달려가 얼어붙었다.
베수비오 산 정상 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가 사방으로 번지며 거대한 소나무 모양의 수관을 이루었다.
기둥의 밑동은 흙빛과 재빛이 소용돌이쳤고, 위로 갈수록 붉은 섬광이 검은 연기 사이를 스쳤다.
공기는 갑자기 차가워졌고, 먼 하늘이 낮처럼 환하더니 다시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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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리니식 분연주 도해 | Plinian eruption column diagram" Free Art License 1.3(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거리에서는 누군가 “신들의 분노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곧 잿가루가 솜털처럼 흩날려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수군거렸다.
“진흙 비인가? 화산재인가?”
루키우스는 이웃과 마주치며 으스댔다.
“걱정할 것 없네. 바람만 바뀌면 그만일 걸세.”
그의 부인은 부와 지위의 무게를 닮아 무거웠다.
오래 버틴 도시, 오래 버틸 거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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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의 주택과 거리 유적 | Pompeii houses and street" CC BY-SA 4.0(Diego Delso,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재의 비와 공포의 질주 (오후 1시 ~ 저녁)
3. 하늘이 뱉어낸 가벼운 돌
오후 1시를 넘기자, 솜털 같던 재는 경석(pumice)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레 떨어지더니 곧 빗발쳤다.
하얀 것(상층)과 회색빛 것(다른 분출층)이 섞여 지붕과 길을 두드렸다.
지붕 위를 때리는 소리는 북소리처럼 커졌다.
집으로 돌아온 루키우스의 아내 릴리아(Lilia)는 질식하듯 외쳤다.
“도망쳐야 해요, 루키우스! 숨이 막혀요!”
루키우스는 여전히 태연한 척했다.
“조금 피하면 돼. 지하 저장고로.”
그는 어둠 속에서 가장 귀한 팔레르니안(Falernian) 항아리를 더듬었다.
재앙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 했다.
경석은 한 시간에 손바닥 두께만큼 쌓였다.
오후가 깊어질수록 지붕의 하중은 눈에 띄게 늘었다.
폼페이의 지붕은 기와를 얹은 박공지붕이 많았으나, 가벼운 돌이 쌓여 생긴 무게는 건물의 숨을 서서히 끊었다.
여기저기서 대들보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고, 작고 가벼운 돌은 모래처럼 모여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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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수비오 79년 분화 | 79 AD eruption" 위키백과 |
4. 붕괴와 아비규환
콰직!. 인근 공중목욕탕의 지붕이 먼저 주저앉았다.
돌먼지와 비명이 동시에 솟았다.
거리의 칸나에(배수구)에서 재가 넘쳐 흐르자, 바퀴는 바닥을 잃었다.
말들은 눈을 부릅뜨고 히히힝 울었고, 마차들은 경석 더미에 바퀴가 묻혀 꿈틀거렸다.
니디아는 가볍게 챙긴 얇은 리넨과 물 한 병만 들고 성문을 향해 달렸다.
“가벼워야 산다.”
주인과 노예, 부자와 빈자가 한데 엉켜 밀려갔다.
낮은 이미 사라졌고, 잿빛 공기 속에서 횃불만이 겨우 1미터 앞을 밝혀 주었다.
누군가 쓰러지면 곧 돌가루가 그 몸을 묻었다.
5. 지연된 선택과 치명적인 짐
마침내 루키우스도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릴리아와 함께 금화와 보석을 담은 무거운 상자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선택은 지연되고, 지연은 곧 운명이 되었다.
문턱을 넘자마자 발목은 경석에 잠겼다.
무거운 상자는 그들의 숨을 도둑질했고, 횃불의 불씨는 재바람에 떨렸다.
“항구로!” 루키우스가 외쳤다.
많은 이가 그 길을 택했다.
그러나 해안은 이미 경석과 재, 바람에 휘몰려 혼란의 바다였다.
배를 띄울 수도, 육지로 되돌 수도 없는 곳.
밤의 지옥과 최후의 파도 (저녁 ~ 다음 날 아침)
6. 어둠, 약탈, 그리고 기도
밤은 빠르게 닥쳤다.
도시 전체가 칠흑 속에 잠겼다.
횃불이 꺼지면 사람과 벽의 윤곽조차 사라졌다.
무질서는 약탈자를 불러냈고, 절망은 사람을 서로에게 날카롭게 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버리고 달렸고, 누군가는 신전의 돌계단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어떤 이는 집 문지방에 엎드려 마지막으로 자신의 문지방을 더듬었다.
보물 상자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결국 루키우스는 경석 더미 속으로 그것을 던졌다.
릴리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좀 가벼워졌네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가벼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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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의 파괴 재현 그림 | The Destruction of Pompeii (painting reproduction)"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7. 바다의 숨과, 스승의 죽음
밤이 깊자 지진이 도시를 다시 흔들었다.
해안에서는 해수면이 일시적으로 물러나는 기이한 현상이 목격되었다고들 했다.
그러나 바다의 파동이 도시를 휩쓰는 대규모 해일의 흔적은 널리 확인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은 물러나고, 다시 밀려오는 축축한 바람뿐이다.
이때, 폼페이에서 15km 떨어진 미세눔(Misenum)의 해군 기지에서는 박물학자이자 제독 대(大)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배를 꾸렸다.
그는 구조와 관측을 위해 출항했고, 남쪽의 스타비아(Stabiae)에 도착했으나, 뜨거운 공기와 유독 가스, 진동 속에서 결국 그곳에서 쓰러졌다.
기록을 남기려는 인간의 호기심과 용기는, 자연의 숨결 앞에서 끝내 꺼졌다.
8. 새벽 1시 이후, 보이지 않는 파도들이 내리다
자정을 넘기며, 산의 심장부에서 새로운 것이 풀려났다.
공기보다 무겁고, 바람보다 빠른 다중 화쇄류(Pyroclastic Density Currents) 수백 도의 초고온 기체와 미세재, 파편이 뒤섞인 보이지 않는 급류가 산비탈을 따라 여러 차례 내려쳤다.
먼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쪽으로 밤중의 파(波,서지(surge))들이 닿아, 보트하우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한 번에 사라졌다.
불빛조차 비명을 다 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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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쿨라네움 보트하우스의 인골 | Herculaneum boathouses with human skeletons" CC BY 4.0(Bernard Gagnon,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화쇄류는 맥동하듯 내려왔다.
몇 분, 혹은 몇십 분 간격의 여러 파.
바람의 방향은 때때로 도시의 운명을 바꾸었고, 골목의 굴곡은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앗아갔다.
어디엔가는 재만 쌓였고, 어디엔가는 열이 먼저 닿았다.
9. 새벽 7시, 최후의 파도
서기 79년 8월 25일 새벽 7시 무렵.
산은 마지막 숨을 길게 내쉬었다.
더 뜨겁고, 더 무거운 파가 산에서 떨어져 내려오며 도시의 마지막 저항을 지웠다.
소리는 거의 없었다.
바람이 바뀌고, 공기가 달아오르고, 빛이 검어지는 것뿐.
숨을 들이키는 순간 몸의 수분이 한 번에 빼앗기는 듯한 열과 함께, 움직임은 멈췄다.
도시 외곽의 빈 창고에서 서로를 부여안은 루키우스와 릴리아는, 첫 번째 강한 파에 휩싸였다.
그들이 느낀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정지였다.
니디아는 성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가벼운 몸, 빠른 발.
그러나 파는 그보다 빠르고 길을 안다.
그녀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멈췄다.
하늘은 회색, 땅은 하얀 회. 인간의 시간이 꺼졌다.
에필로그 - 남겨진 그림자
폼페이는 경석과 재에 여러 미터로 묻혔다.
재앙은 도시를 파괴했지만, 동시에 시간을 봉인했다.
상점의 벽에는 가격표가 남아 있었고, 제빵사의 화덕에는 빵이 타다 남아 있었다.
밥그릇의 흔적, 반쯤 닫힌 문, 열린 창, 마무리되지 못한 대화.
18세기에 도시가 다시 빛을 보았을 때, 고고학자들은 빈 공간을 발견했다.
화산재가 굳은 뒤, 시간이 지나 육체가 사라져 남겨진 윤곽.
그들은 그 속에 석고(Plaster)를 부었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서기 79년의 마지막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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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자들의 정원 석고 주형 | Garden of the Fugitives plaster casts" CC BY-SA 4.0(Diego Delso, Wikimedia Commons) |
경석 더미 속 어디엔가 보물 상자는 여전히 있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이미 릴리아를 끌어안고 있었다.
니디아의 손은 공중을 긁어 쥔 채였다.
울음인지, 기도인지, 숨인지 모를 것이 입술에 얼어붙어 있었다.
석고 캐스트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말보다 선명하다.
부와 지위, 신분과 소유는 초고온의 바람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와 남지 못한 자를 가른 것은, 선택의 시각과 바람의 방향, 그리고 가벼움이었다.
폼페이의 마지막 하루는 신들의 변덕도, 운명의 장난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질학의 문장이 인간의 문장 위에 찍힌 굵은 마침표였다.
그리고 그 마침표 덕분에, 우리는 2천 년 전의 숨과 자세를 지금도 읽을 수 있다.
돌 속의 기대어 잠든 사람들,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날짜에 관하여(짧은 주해)
본 서사는 전통적 날짜인 8월 24일을 채택해 구성했으나, 2018년 발굴된 벽면 필기와 가을 과실·수확 흔적을 근거로 가을설(10월 전후)도 유력하게 논의된다.
연구는 진행 중이며, 독자는 두 견해를 함께 염두에 두길 바란다.
79년 베수비오 자료 묶음 | Category: Vesuvius eruptions in 79 (assorted sources)
이 글은 플리니우스의 서한(소나무 수관 묘사), 폼페이/헤르쿨라네움 고고학 보고와 최신 지질 재구성(경석 강하→다중 화쇄류→매몰), 대(大) 플리니우스의 미세눔 출항–스타비아 사망 정황, 해변 관측(일시적 해수 후퇴) 등을 교차 대조해 집필했습니다.
수치·시점은 지역별 편차가 존재하므로 서사 속 수식은 표준 시나리오 범위로 정리했습니다.
사실 오류·사료 제보는 환영하며, 확인 즉시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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