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포르투갈,
독립의 기로에 선 조국의 운명이 알주바로타(Aljubarrota) 전투에 걸린 순간,
여섯 손가락을 가진 기이한 여인 브리치스 드 알메이다(Brites de Almeida, ‘브리치스’)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거친 삶을 살아온 그녀는 우연히 숨어든 카스티야 병사들을 제빵 삽으로 처단하며
전설적인 영웅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영웅의 탄생 뒤에는 수많은 소문과 음모,
그리고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욕망과 광기가 숨어 있었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한 인간의 본성과 전설이 어떻게 뒤섞이는지,
그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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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é de Almeida Furtado(‘o Gata’)의 미니어처(19세기) CC/파일 페이지 크레딧. 위키미디어 공용 |
1370년대, 파루(Faro).
낡은 선술집, 지저분한 식탁 위에서 브리치스는 술잔을 털어 넣고 있다.
그녀의 손은 기이하게도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전승].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악마의 아이’라 불리며 손가락이 잘릴 뻔하기도 했지만,
부모는 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은 유산이라곤 낡은 선술집뿐이었다.
스무 살이 넘은 브리치스는 그 유산을 팔아치운다. 그녀는 싸움꾼이자 건달이 되었다 [전승].
남자처럼 옷을 입고 시정잡배들과 시비를 걸고 다녔고, 맷집과 완력으로 그들을 압도했다.
그러던 중 끈질기게 청혼했던 한 사내가 결투를 신청했고, 브리치스는 그를 잔인하게 죽였다 [전승].
살인자가 된 그녀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도시를 떠돈다.
(일부 전승에는 해적에게 붙잡혀 북아프리카로 팔려갔다가 탈출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한다 [전승].)
그녀의 여정은 험난했다.
한때는 마부로 일하며 거친 산길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상처투성이의 삶은 그녀를 더욱 강하고 뻔뻔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남성들조차 두려워할 만한 존재,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아는 전사였다.
그녀의 삶은 낭만적 모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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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deira de Aljubarrota 퍼블릭 도메인(PD). 위키미디어 공용 |
오랜 방랑 끝에 브리치스는 알주바로타에 정착한다.
낡은 빵집을 인수해 제빵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거친 과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덩치가 크고 힘센 과부 정도로만 여겼다.
브리치스는 제빵일과 함께 평범한 농부(알주바로타에서 만난 남편)와 결혼하여
조용하고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383년, 왕 페르난두 1세가 후사 없이 죽자 ‘1383–85 위기’가 시작되었고,
카스티야의 후안 1세가 왕위 계승을 주장하며 침공한다.
포르투갈은 주앙 1세(아비즈 기사단장)와 총사령관 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를 중심으로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고, 잉글랜드 동맹의 장궁병 일부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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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 피게이라 광장의 주앙 1세 기마상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CC BY-SA) 위키미디어 공용 |
남편은 군대에 징집되었고, 브리치스는 홀로 빵집을 지켰다.
마을은 공포와 불안에 잠겼다. 빵집은 연일 소문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브리치스는 빵을 구우면서도 칼을 갈고, 삽을 날카롭게 다듬는다.
과거의 야수성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빵집에는 구수한 빵 냄새와 함께 피 비린내가 스미는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여섯 손가락이 반죽을 주무르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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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주바로타 전투」(마리아노 S. 마에야)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CC BY-SA) 위키미디어 공용 |
1385년 8월 14일, 운명의 날.
알주바로타 평원에서 포르투갈군(주앙 1세·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 과
카스티야군(후안 1세) 이 맞붙었다.
브리치스는 빵집에만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제빵 삽을 들고 마을 주변을 수비하며 패잔병을 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전승].
그리고 전투가 끝나갈 무렵, 빵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불길한 예감에 빵집 안으로 들어간 브리치스.
그 순간. 오븐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카스티야 병사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들을 끄집어내어 제빵 삽으로 처단한다.
적의 수는 7명(또는 8명)으로 전한다 [전승].
병사들의 비명은 빵 반죽이 익어가는 소리에 묻혔다.
이 장면은 브리치스라는 인물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영웅적 행위 뒤에 숨어 있던 잔혹성과 광기.
그녀는 영웅인가, 아니면 광기 어린 살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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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제빵사 아줄레주(오븐에서 병사들을 끌어내는 장면)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CC BY-SA) 위키미디어 공용 |
전투는 포르투갈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곧이어 가을의 발베르데 전투(1385) 도 포르투갈의 손을 들어주었다.
브리치스는 하룻밤 사이에 영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알주바로타의 여제빵사’라 부르며 찬양했다.
그녀의 용맹함은 독립의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복잡했다.
영웅이라는 칭호가 어색했고, 살육의 기억은 그녀를 짓눌렀다.
늦은 밤, 빵집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옳은 일을 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광기에 휩쓸렸을 뿐인가?”
이때부터 소문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여섯 손가락을 이용해 병사들을 속였다고 했고 [전승],
또 어떤 이들은 남편을 죽였다고 모함했다 [전승/논쟁].
완벽한 영웅의 뒤편에 숨은 추악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시선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브리치스는 영웅과 마녀의 경계에 선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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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식 전투 도상(알주바로타 표현)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CC BY-SA) 위키미디어 공용 |
브리치스는 논란을 뒤로하고 조용히 살기를 택한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빵집을 지키며 평범함을 꿈꿨지만,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야기는 미화되었고, 잔혹성은 영웅적 서사 속에 묻혔다.
여섯 손가락은 신의 징표로, 오븐의 피비린내는 조국을 위한 의로운 심판으로 포장되었다.
아비즈 왕조의 성립과 윈저 조약(1386) 으로 독립은 굳어졌고,
마을에는 여제빵사를 기리는 동상과 아줄레주가 들어섰다.
오늘날에도 전투 현장과 해설관, 골목의 타일 벽화는 전설이 지역 정체성으로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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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주바로타의 ‘여제빵사’ 동상(전신 컷)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CC BY-SA) 위키미디어 공용 |
결국 브리치스 드 알메이다는 한 명의 인간을 넘어선다.
전설과 진실, 영웅과 광기, 애국심과 잔혹성이 뒤섞인 복합체로 남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빵집에는 고소한 냄새가 여전히 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향 사이로, 피비린내와 혼돈의 기억이 서려 있다.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브리치스. 그 삶은 영광과 상처가 교차하는 한 편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은 포르투갈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일 것이다.
이 글은 브리치스 드 알메이다(알주바로타의 여제빵사)에 관한
민간 전승을 토대로 한 서사적 각색입니다.
여섯 손가락, 방랑·결투, 북아프리카 포로, 오븐 속 적병의 수(7명/8명) 등은 후대 전승으로,
1차 사료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알주바로타 전투의 날짜(1385년 8월 14일), 양측 지휘(주앙 1세·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 / 후안 1세), 전투의 결정적 성격(아비즈 왕조 성립의 분수령) 등은 역사 연구의 합의된 사실에 속합니다.
현장 유적·기념물(전투 해설관, 동상·아줄레주)은
오늘의 지역 기억을 보여 주는 문화사적 단서로 참고했습니다.
사실 오류나 보완 의견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확인 후 신속히 정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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