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물안개가 환화계(Huanhuaxi·성도(Chengdu) 근교의 개울) 위로 얇게 흘렀다.
한 여인이 우물물에 적신 종이를 말리며 붉은빛을 살폈다.
그의 이름은 설도(Xue Tao·당대 시인/여관인(어원: 관청 소속 예능·문학 종사 여성, 기녀로도 표기됨 (논쟁)))였다.
사람들은 그 종이를 설도전(薛涛笺·설도의 이름을 딴 분홍색 편지지)이라고 불렀다(전승).
분홍빛이 마르면, 그녀는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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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앞에서 편지지를 든 설도 퍼블릭 도메인(PD-Art/PD-old). 위키미디어 공용 |
설도는 대력 3년(768) 무렵 태어났다고 전해진다(전승).
아버지가 관직 이동 중 세상을 떠나자, 어린 설도는 어머니와 성도(Chengdu·서천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재능이 또렷해 집안의 글을 대신 써주곤 했고, 지역의 문사들이 시를 청했다(전승).
가난과 재능이 동시에 그녀를 밀었다.
언젠가부터 관청의 연회와 접대석에 앉아 시를 부르고 대화를 이끌었다(여관인/관기 (논쟁)).
그녀의 이름이 크게 떠오른 때는 위고(Wei Gao·서천절도사/군정 최고책임자)의 시절이었다.
군정의 외교·연회에는 토번(Tufan·티베트계 국가)과의 긴장이 어른거렸고, 각지 사신과 장수들이 들고나는 자리마다 말과 글이 필요했다.
설도는 시를 통해 분위기를 풀고, 문사들과 교유하며 글로 정보를 다듬었다.
때로는 위고의 정무 편지에 시구를 보태거나 서신을 맡았다는 전승이 전해진다(전승).
그녀의 방에는 붓과 먹, 대나무 펄프와 섬유가 얹혔다(설도전 재료·기원은 문헌에 견해 차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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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를 삶는 제지 공정 / Boiling the bamboo – papermaking step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시의 결은 간결했다.
도시의 강바람, 초가의 등불, 술잔 위로 오르내리는 소식들이 핵심만 남기고 줄을 섰다.
그녀는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았고, 남의 마음을 정리하는 데 능했다.
화려한 수사보다 사물의 위치를 바르게 놓는 데 힘이 있었다.
그 덕에 장수의 보고, 문인의 편지, 여인의 속내까지 같은 폭의 종이 위에 담길 수 있었다.
원진(Yuan Zhen·당 시인/관인)과의 서신과 인연은 오래 회자되었다.
그가 성도를 떠났을 때 별리(別離)의 시가 오갔다는 이야기, 서로의 시에 답을 보냈다는 전승이 남았다(전승).
백거이(Bai Juyi·당 시인) 역시 그녀를 언급하며 재능을 아꼈다.
이름난 남성 시인들과 교유한 덕에 설도의 시는 더 널리 떠돌았다.
그러나 이 기록은 동시에 여성 시인의 자리를 남성의 이름에 기대 설명하는 관행을 드러냈다(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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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백거이 초상 / Portrait of Bai Juyi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설도의 하루는 규칙이 있었다.
아침엔 종이를 말리고, 낮엔 문사와 손님을 만나고, 밤엔 붓을 들었다.
비파와 거문고를 다루었고, 대나무 숲 산책을 즐겼다는 메모가 보인다(전승).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개울가 버드나무 색을 시로 남겼다.
그녀는 원고를 모으기보다 떠다니게 두었다.
정치의 바람은 자주 거칠었다.
절도사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었고, 설도의 처지도 달라졌다.
그녀가 도교(道敎)의 옷을 걸치고 조용한 거처로 물러났다는 기록이 보인다(말년의 출가·은거 여부 (논쟁)).
머문 곳은 환화계 근처였고, 지금 성도에는 망강루(Wangjianglou·望江楼)와 설도 우물을 기념하는 자리가 남아 있다고 전한다(전승).
분홍 종이와 개울, 버드나무가 뒤늦게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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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도정(시를 씻던 우물) / Xue Tao Well in Wangjianglou Park Wikimedia Commons, Daderot, CC0. 위키미디어 공용 |
그녀의 공은 분명하다.
첫째, 여성의 목소리로 도시와 정무, 사적 감정을 정제된 문장으로 기록했다는 점.
둘째, 종이·색·서체를 엮어 문학의 물성을 바꿔 놓았다는 점(설도전).
셋째, 성도의 네트워크 속에서 정보와 감정의 교환을 실용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다.
이 덕분에 설도의 이름은 ‘미인’이 아니라 ‘필력’으로 전해졌다.
그건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의 과를 묻는다면, 시대가 먼저 대답한다.
관청의 연회와 접대, 절도사 체제의 권력 장치 속에서 그녀의 글이 쓰였다는 사실.
시가 때로는 권력의 안쪽 언어가 되었다는 문제.
하지만 동시에 그 공간 밖에선 여성의 필명이 멸실되기 쉬웠다.
그녀는 존재하기 위해 조금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생활의 단서는 깨진 조각 같다.
연애와 동거에 관한 구체 기록은 적고, 원진과의 감정선은 문학적 상상과 전승이 섞였다(전승/논쟁).
술을 아꼈다는 말, 시 짓기 전에 물에 종이를 적셔 냉기를 빼곤 했다는 말, 매화와 대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말이 흩어진다(전승).
확실한 것은, 그녀가 자신을 조연으로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종이 위에 자신의 문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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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도가 분홍 편지지(薛涛笺)를 만들고 검토하는 장면을 담은 벽화/그림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남은 시는 많지 않다.
100여 수 안팎이 전한다고 하지만 숫자는 문헌마다 요동친다(논쟁).
사본의 계보가 섞였고, 위작 시비도 있다(논쟁).
그럼에도 몇 수는 성도의 강바람처럼 뚜렷하다.
이별과 계절, 작은 사물과 짧은 문장이 어우러진다.
후대의 평가는 둘로 갈라졌다.
한쪽은 설도를 기녀 시인의 범주로 가둔다.
다른 쪽은 문학적 주체로 복권한다.
둘의 간격엔 기록의 편향과 지워진 여성 노동이 놓여 있다.
오늘의 독자는 그 간격을 메우는 방식으로 그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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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백미도(古今百美圖)』 중 ‘설도’(오유여, 19세기).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
설도전은 문학사 밖에서도 살아남았다.
편지지의 분홍은 취향이 되었고, 장인들의 재료는 대나무·삼·닥 등 지역 섬유와 식물성 염료로 채워졌다고 전한다(제조법·재료 구성 (논쟁)).
종이는 글씨의 표정이 되었다.
분홍 종이에 적힌 검은 획은 성도라는 도시의 브랜딩이 되었고, 여인의 이름은 지역 산업의 이름이 되었다.
문학이 생활을 바꾸는 드문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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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강루 공원 설도정(설도전의 전설과 연결된 우물) 비문 석각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설도의 시간은 당 문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짧은 문장들은 뒤늦게 여성 작가의 계보를 잇는 기표가 되었다.
숙련된 감각, 도시에 대한 감각, 관계의 온도를 재는 감각.
그것은 전쟁과 황제의 연대기 바깥에서, 생활의 역사를 적는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 오늘의 독자에게 익숙한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그 생활의 언어로 하루를 쓰기 때문이다.
설도를 읽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질문을 바꾸는 일이다.
그녀가 누구의 연인이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언어를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
그녀가 누구의 손님이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종이를 바꿨는가를 보는 것.
설도는 두 질문에 모두 답을 남겼다.
분홍 종이 한 장, 그 위의 간결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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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도 동상(전신), 왕강루 공원 / Full-length statue of Xue Tao at Wangjianglou Park Wikimedia Commons, Daderot, CC0. 위키미디어 공용 |
개울가의 바람이 잦아들면 종이는 마르고, 시는 굳는다.
그녀는 종이뭉치를 매만지고, 마지막 장을 접어 묶는다.
달빛이 올라오면 물결이 흐릿하게 반사되고,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낮게 읊는다.
설도, 도시를 기록한 여인.
성도의 종이와 강바람을 사람의 말로 바꿔 놓은 이름.
네편의 춘망사(春望詞)
-1-
花開不同賞,花落不同悲。 (꽃이 피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다.)
欲問相思處,花開花落時。 (그리움이 언제 깊어지냐고? 꽃이 피고 지는 그때마다다.)
-2-
攬草結同心,將以遺知音。 (풀잎을 모아 동심결을 묶어, 마음 알아줄 이에게 주려 한다.)
春愁正斷絕,春鳥復哀吟。 (봄 시름이 막막한데, 봄새마저 애잔히 운다.)
-3-
風花日將老,佳期猶渺渺。 (바람과 꽃은 날로 쇠해 가고, 좋은 날의 약속은 여전히 아득하다.)
不結同心人,空結同心草。 (사람과는 정을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묶는다.)
-4-
那堪花滿枝,翻作兩相思。 (가지마다 꽃이 가득한데, 도리어 서로의 그리움만 짙어진다.)
玉箸垂朝鏡,春風知不知。 (아침 거울 앞에 옥 같은 눈물자국이 흐르니, 봄바람은 이를 아는가 모르는가.)
설도의 시 춘망사 (春望詞) 4수 가운데 세 번째 시는, 김억이 한국어로 번역하고 임성태가 곡을 붙여 《동심초》(同心草)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개작하였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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