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리태니커, 프랑스 국립도서관 자료,
17~18세기 신문·회고록 등 기록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소설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장면과 대사 중심의 재구성입니다.
인물·용어는 처음 등장할 때 ( )로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전승으로만 전하는 사건은 (전승)으로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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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모팽 대표 초상. Mademoiselle Maupin de l’Opéra (Julie d’Aubigny) |
파리의 저녁 종이 울리자 오페라의 막이 올랐다.
무대 위로 검은 망토와 남자의 칼이 먼저 빛났다.
관객은 입을 모았다.
“저건 그녀의 진짜 칼이야.”
줄리 도비니(프랑스 오페라 가수·결투가)가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녀를 라 모팽(무대명)이라고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면 무대는 상처를 잊었다.
칼끝이 노을처럼 반짝일 때는 객석이 숨을 삼켰다.
이야기는 파리 마구간 쪽에서 시작된다.
줄리의 아버지는 콩트 다르마냑(왕의 말 관리 총책)의 사람으로 기사 훈련소를 드나들었다.
소년들이 칼을 배울 때 줄리는 그 옆에서 똑같이 자세를 익혔다.
손등이 까지고 팔에 멍이 들어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검은 비밀을 숨기지 않아.”
줄리는 칼집을 품에 끼고 거울 앞에서 노래를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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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레이피어 검술 체계. Girard Thibault, Académie de l’Espée (1628) 도판 |
스무 살 무렵 줄리는 시외 공무원 모팽과 결혼했다.
이름은 얻었고 남편과는 멀어졌다.
그녀는 동성의 펜싱 교사 세라네(검술가)와 도망쳤다.
두 사람은 남장을 하고 프랑스 남부로 내려갔다.
여관 마루에 난로가 꺼질 즈음, 줄리는 술집 노래로 저녁을 벌었다.
낯선 도시에서 그녀는 처음 제대로 무대에 섰다.
마르세유의 작은 극장.
관객이 박수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밤이었다.
이 무렵 유명한 일화가 퍼졌다.
수도원의 어린소녀(연인)가 결혼 압박을 피해 들어가자 줄리가 뒤쫓아 들어갔다.
줄리는 한 수녀의 시신을 침대에 눕히고 연인의 옷을 갈아입힌 뒤
불을 질러 어수선을 틈타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밤길로 달아났다.
이 사건은 재판 기록에도 얼핏 흔적을 남겼으나, 세부는 모호해 전승으로 남았다.
줄리에겐 불꽃과 연기가 늘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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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무대에 섰던 아카데미 로얄 드 뮈지크(팔레 루아얄)의 역사적 외관. Veue et perspective du Palais-Cardinal (Palais-Royal) |
파리로 돌아온 줄리는 오페라로 직행했다.
파리 오페라(왕립 아카데미)는 남자 성악가의 시대였고, 그녀는 흔치 않은 메조 소프라노였다.
대본 읽는 시간은 짧고 레치타티보(대사를 노래하듯이)는 칼 장난처럼 빨랐다.
“이 장면, 칼을 실제로 쥘 수 있나요.”
감독이 눈살을 찌푸리면 관객이 대신 박수를 보탰다.
줄리는 피곤할수록 더 정확히 노래했다.
분노보다 정확함이 그녀의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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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파리 오페라의 무대 분위기를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 스케치 Scene from Lully’s “Armide” at the Palais-Royal (1761, Saint-Aubin) |
무도회가 열리던 밤, 커다란 가면들이 홀을 떠다녔다.
줄리는 한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세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결투를 요구한다.”
줄리는 캔들 스탠드 너머로 조용히 말했다.
“밖에서.”
세 자루 칼끝이 빛을 바꾸며 돌진했다.
줄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한 사람의 손목을 탁 치고, 다른 한 사람의 어깨를 스치듯 베었다.
마지막 칼끝이 그녀의 목을 스칠 때, 그녀는 손등으로 칼등을 밀어내고 상대의 무릎을 걷어찼다.
세 사람은 쓰러졌다.
이 일화는 곧장 소문이 되었고 왕의 귀까지 닿았다.
그녀는 곧 사면장을 받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왕도 여배우의 칼춤을 보고 싶어 한다.”
이 밤의 자세한 내막 역시 전승으로 내려오지만,
줄리의 이름을 파리 전체에 새긴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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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무도회 장면(가면, 검술 에피소드 연출용) A Masked Ball in Bohemia” (The Met) 출처 |
무대 밖 사랑은 더 복잡했다.
줄리는 달베르(귀족 청년)와 불꽃처럼 사랑했고, 남자들과 결투하다 그를 찌르고 말았다.
달베르는 며칠간 열에 시달렸다.
줄리는 무릎 꿇고 그의 머리를 감싸며 간호했다.
“나는 당신의 가장 큰 적이자 가장 가까운 간호사야.”
그가 깨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았을 때, 줄리는 처음으로 칼집을 내려놓았다.
이 사건은 파리의 회랑에서 오래 떠도는 연애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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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emoiselle de Maupin』(1897) 판본 내 삽화 스캔 |
줄리는 여자와도 사랑했다.
플로랑삭 후작부인(파리 사교계의 명성 높은 귀부인)과의 관계는 도시 풍문을 바꿔 놓았다.
두 사람은 같은 캐럿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고, 동시에 서로를 무뎌지게 했다.
플로랑삭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줄리는 며칠간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검은 천을 어깨에 걸치고 무대에 섰을 때, 그녀의 낮은 음은 관객의 심장을 천천히 내렸다.
사랑의 종결은 줄리의 노래를 더 깊게 만들었다.
줄리는 법정에도 섰다.
결투는 금지였고, 그녀는 종종 두건 아래에서 남자들과 칼을 섞었다.
“여자는 결투를 할 수 없소.”
“노래하는 사람도 칼을 들 수 있어요.”
판사는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오페라의 스타를 벌주는 일은 시민을 벌주는 일만큼 까다로웠다.
줄리는 벌금을 냈고 때로는 추가 연습으로 그 벌금을 갚았다.
도시가 그녀를 벌하고, 동시에 사랑했다.
무대의 줄리는 승리와 패배를 노래로 구분하지 않았다.
막이 내리면 그녀는 장식실에서 망토를 벗고 상처를 확인했다.
팔목의 작은 흉터 하나.
상처는 칭찬보다 오래 남는 메달이었다.
청중은 그녀의 음색을 이야기하며 떠났고, 밤거리는 여전히 어두웠다.
줄리의 초상화에는 칼과 악보가 함께 그려진다.
둘은 늘 함께였다.
칼은 그녀를 보호했고 음악은 그녀를 용서했다.
칼이 외로울 때 음악이 손을 잡았고, 음악이 흔들릴 때 칼이 균형을 잡아 주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그녀는 가수였나, 검객이었나.”
줄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만 대답했다.
마지막 기록은 조용하다.
1707년, 줄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그녀가 수도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적었고,
누군가는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고 적었다.
확실한 것은 노래가 먼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그녀는 끝까지 무대의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칼은 칼집에, 음은 공기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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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티에 『Mademoiselle de Maupin』(1883) 제목판(브리티시뮤지엄 소장) 남장 테마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 출처 |
줄리 도비니를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그녀는 규범의 틈에서 숨을 쉬었고, 무대와 거리 사이를 자유롭게 걸었다.
남장으로 사람들을 속이려 했다기보다, 옷장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악보를 든 여자는 시대를 가르는 간단한 질문을 남겼다.
“왜 여자는 칼을 못 들고, 왜 남자는 노래를 못 부르나.”
그 질문은 파리의 촛불을 조금 더 오래 태웠다.
이야기의 절반은 기록이고 절반은 전승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관객이 들은 건 분명했다.
낮은 음이 올라가다 칼끝처럼 예리하게 휘어지는 순간.
관객은 숨을 참고 기다렸다.
줄리는 그 기다림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만들었다.
줄리의 밤은 늘 오래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찾았다.
결투를 청하는 남자, 연습을 청하는 지휘자, 화해를 청하는 연인.
그녀는 모두와 조금씩 싸우고, 조금씩 화해했다.
어쩌면 그녀가 평생 싸운 건 남자들이 아니라 ‘제한’이었을지 모른다.
노래는 그 제한 위에 다리를 놓았다.
칼은 다리 아래의 강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아직도 무대와 골목 사이 어디쯤 떠다닌다.
Julie d’Aubigny(La Maupin) was a 17th-century Paris opera singer
who fenced as fluently as she sang.
Raised around cavalrymen, she eloped in men’s clothes,
toured small stages, and—by legend—freed a lover from a convent.
Back in Paris she became a sensation, won a royal pardon after the masked-ball
“three-at-once” duel, and scandalized salons with loves across class and gender.
Fined for illegal duels yet adored onstage,
she died young; her life lives between archive and ru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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