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스토리: 대전에서만 파는 이유와 ‘나눔’의 경영 (The History of Sungsimdang Bakery)



 이 글은 사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대사, 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적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한 대목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 어원 설명은 (어원)으로 표기합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합니다.


겨울 밤바다에 군함의 경적이 길게 울렸다.

흥남부두(함경남도 피난 항구)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피난선)가 검은 물길을 헤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임길순(창업자, 가톨릭 신자)과 한순덕(공동 창업자)은 아이를 끌어안고 손을 맞잡았다.

“살려만 주십시오.”

한 문장이 세 식구의 전부였다.


흥남철수 SS Meredith Victory 선상 난민 | Korean refugees aboard SS Meredith Victory (1950)
Wikimedia Commons/US Navy,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몇 해 뒤, 대전역 앞에 작은 천막이 올랐다.

간판에는 ‘성심당(聖心堂, (어원) 천주교 성심에서 따온 이름)’ 세 글자가 떨리는 붓끝으로 적혔다.

겨울 김이 올라오는 찐빵솥이 하루를 데웠다.

손님이 끊기면 임길순은 남은 빵을 광주리째 쌓았다.

어린이집과 고아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낯설지 않았다.

“우리도 남의 빵으로 살았지요.”

나눔은 장부에 적히지 않았지만 가게의 규칙이 되었다.


1967 성심당 초창기 모습 | Early Sungsimdang storefront, 1967
성심당 공식 연혁 페이지(사내 아카이브, All Rights Reserved).
성심당

도시는 커지고 빵은 바빠졌다.

성심당은 대전 원도심 은행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이면 노을과 방앗간 냄새, 전차 소리가 겹쳤다.

가게 안에서는 신부님 미사 종 소리와 반죽기 모터음이 동시에 들렸다.

“빵은 배만 채우면 반이다.

마음을 채워야 전부지.”

직원들 사이에 내려오는 말이었다.


1980년 5월, 반죽대 앞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설탕과 버터를 입힌 소보로가 기름솥에 ‘풍덩’ 빠졌다(전승).

누군가 “버려야지?” 하고 말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건져 올려 반으로 갈랐다.

바삭한 껍질 아래 따끈한 단팥이 숨을 쉬었다.

튀김소보로(대표 메뉴)가 그렇게 태어났다.

그날부터 가게 앞 줄은 두 겹이 되었고, 번호표가 끊이질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판타롱부추빵(계란·햄·부추가 들어간 간식빵).

이름의 유래에는 밴드와 통기타, 판타롱스타킹이 뒤섞여 있다(전승).

확실한 건 점심시간마다 매대가 비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손님들은 “튀소 하나, 판부 하나”로 주문을 줄였다.

빵 이름이 암호가 된 도시였다.


1970 은행동 153, 이전 직후 매장 | New Eunhaeng-dong store, 1970
성심당 연혁(사내 아카이브).
성심당

성심당은 확장 대신 ‘자리’를 골랐다.

대전역과 백화점, 컨벤션센터에 지점을 내면서도 대전 밖으로는 나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대전에 오면 사 먹는 빵.”

브랜드 전략이 아니라 도시의 약속처럼 들렸다.

누군가는 물었다.

“서울 가면 돈을 더 벌 텐데요.”

대답은 짧았다.

“우린 여기서 벌어서, 여기서 쓴다.”


밤마다 남는 빵은 따로 모아 새벽에 나갔다.

아동센터, 노인병원, 외국인노동자센터, 쪽방촌.

“빵은 신선해야 맛있다.”

기부에도 품질 원칙이 붙었다.

현관에는 감사장이 늘어났고, 직원들의 별명은 ‘빵천사’가 되었다.

가게 뒤편에는 나눔 일정표가 붙었다.

월말이면 빵의 숫자가 사람의 숫자로 바뀌었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4 한국 방문 | Pope Francis in Korea (2014 visit)
Wikimedia Commons(Korea.net/Jeon Han), CC 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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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을 찾았다.

성심당의 차바타와 바게트가 그의 식탁에 올랐다.

일 년 뒤, 임영진(2대 대표)은 교황청의 기사훈장을 받았다.

메달보다 중요한 건 그 뒤의 메모였다.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라.”

이 말은 가게 벽에 붙었다.

직원들은 비닐장갑을 끼고 다음 날의 나눔 바구니를 준비했다.


성심당 빵 진열대, 시즌 제품 디스플레이 | Sungsimdang bakery display stand with seasonal items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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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빵지순례’를 오기 시작했다.

“성심당 가면 뭐 먹어?”

튜토리얼은 단순했다.

튀김소보로, 판타롱부추빵, 그리고 그날의 계절빵 하나.

사진을 찍고, 포장을 열고, 한 입 베어 문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그 순간 사람들은 묻는다.

“이 맛은 어디서 오냐고요?”

대답은 보이지 않는 장부에서 왔다.

‘하루 일과: 만들기, 팔기, 나누기.’


대전역 지점은 일종의 관문이 되었다.

KTX 환승객들이 캐리어 손잡이에 봉지를 끼웠다.

본점 앞 골목에는 “오늘도 대전에 오셨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빵 냄새가 손님을 잡고, 도시가 손님을 잡았다.

성심당은 어느새 대전의 명함이 되었다.


성심당 본점 외관, 대전 은행동 | Sungsimdang main store exterior, Jungangno–Eunhaeng-dong, Daejeo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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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내부는 초콜릿 냄새와 계피 냄새로 계절을 표했다.

여름이면 포장빙수(선보임)와 과일 타르트가, 겨울이면 파운드와 슈톨렌이 얼굴을 내밀었다.

주말 오후에는 케이크 부띠끄 매장에 초가 켜진 상자가 연이어 나갔다.

“생일 축하합니다.”

가장 흔한 멜로디가 가장 좋은 광고였다.


직원 교육은 단정했다.

“빵은 반죽·발효·화덕으로 완성되고, 서비스는 3초 미소로 완성된다.”

초보 제빵사는 새벽 2시에 출근해 반죽을 만졌다.

발효의 온도표 옆에는 짧은 메모가 붙었다.

“빵은 사람과 닮았다.

서두르면 망친다.”

새벽의 시간은 길었지만, 결과는 한 입이면 충분했다.


성심당의 역사를 묻는 이에게 가게는 세 장의 사진을 보여 준다.

전쟁에서 건너온 부부의 초상.

대전역 앞 찐빵솥.

그리고 기름솥에서 반짝이며 떠오르는 튀김소보로.

세 장의 사이를 잇는 것은 ‘버틴다’와 ‘나눈다’였다.


대전 중앙시장 전경 | Daejeon Central Market scene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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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지인이 묻는다.

“빵집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도시 이야기가 많죠?”

직원은 미소 짓는다.

“우리는 대전이라는 반죽에서 나왔거든요.”

가게의 크림은 달라졌고, 오븐은 바뀌었지만, 간판의 한자는 그대로다.

성(聖), 심(心), 당(堂).

거룩한 마음의 집.

빵의 향이 사람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집.


해가 기울면 본점 앞 그림자가 길어진다.

줄은 여전히 이어지고, 마지막 손님이 계산대에 서면 직원이 문을 닫는다.

한 박스가 나눔 바구니로, 다른 박스가 배달차로 간다.

어느 쪽도 ‘오늘의 매출’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성심당의 맛을 완성한다.


Born from war refugees at Daejeon Station, Sungsimdang began as a tiny steamed-bun stall and grew with two rules: endure and share. 

An accident in 1980 dropped soboro dough into hot oil—creating its cult “fried soboro”; soon came the “Pantarong buchu” bun. 

The bakery stayed local by choice, gifting leftovers daily and supporting neighbors. 

In 2014 its bread reached Pope Francis. Today queues, charity, and Daejeon’s identity rise together with every b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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