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리태니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영국도서관·
은행노트 아카이브( ‘포야이스’ 채권·지폐 자료),
19세기 신문 기사(런던 모닝크로니클·타임스) 등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대사, 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며,
(전승)·(논쟁) 표기는 학계 이견을 뜻합니다.
인물·지명·용어는 처음 등장할 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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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고어 맥그리거 초상(동판화) General Gregor MacGregor (engraving after S. J. Rochard) 출처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
런던의 비 오는 오후, 1822년
남자는 은행가의 미소를 연습한 얼굴로 커피하우스 문을 밀었다.
“각하, 신대륙의 보석에 투자하실 시간입니다.”
그의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레고어 맥그리거(1786–1845, 스코틀랜드 출신 모험가)
포야이스의 카지크(Cacique)(원주민 ‘족장’을 뜻하는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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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야이스 선전서로 언급되는 핵심 1차 자료. “Title page, Sketch of the Mosquito Shore… (1822), ‘Thomas Strangeways’” 출처 Public Domain, Internet Archive/LOC 스캔 |
지도는 크림색 종이에 푸른 강과 금빛 해안을 그려 넣었다.
“수도는 세인트 조지프(포야이스의 ‘수도’라 소개된 허구의 항구도시)
항만은 깊고, 병원은 깨끗하며, 기후는 온화합니다.”
사람들이 속삭였다.
“혹시 모스키토 코스트(니카라과·온두라스 카리브 해안 일대)가 정말 금광이라면?”
남자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손에는 또 하나의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모스키토 해안의 개요, 포야이스 영토를 포함하여》
(‘캡틴 토머스 스트랭어웨이스’ 명의의 홍보서, 실상 맥그리거의 선전물로 의심됨)
사람들은 새 책을 넘기며 해안선에 손가락을 대고 꿈을 읽었다.
그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길은 길고도 변칙적이었다.
젊은 맥그리거는 영국군 장교를 거쳐 카리브 해로 건너갔다.
남미 독립전쟁의 바람 속에서
그는 볼리바르(시몬 볼리바르, 베네수엘라·콜롬비아 독립지도자)의 진영을 드나들었다.
“장군, 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그는 과감했고, 때로는 무모했다.
한때는 플로리다 아멜리아 섬(1817년 ‘플로리다 공화국’ 소동)에서
녹색 십자가 깃발을 올리고 사라졌고, 한때는 신생 공화국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 경력은 런던에서 더할 나위 없는 화관이었다.
“남미에 피와 모래를 두고 온 남자”라는 전설은,
투자자들에게 ‘현장성’을 보장하는 훈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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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은행권 실물 이미지. ‘종이로 만든 나라’의 상징 컷 One ‘Hard Dollar’, Bank of Poyais (c.1820s) 출처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스캔) |
그는 자신을 포야이스의 카지크라 불렀다.
“왕에게서 토지 증서를 받았지요.”
그가 말한 왕은 조지 프레데릭 아우구스투스(당시 ‘미스키토 왕국’의 우두머리로 불린 인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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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어거스터스 프레데릭(‘미스키토 왕’) 초상 ‘왕의 토지 증서’ 주장과 연결되는 인물. George Augustus Frederic, ‘King of the Mosquito Coast’ (engraving) 출처 |
실제 문서가 있었는지, 그 문서가 무슨 효력을 가졌는지는 지금도 (논쟁)이다.
하지만 종이의 힘은 논쟁보다 빨랐다.
런던의 인쇄소에서는 ‘포야이스 은행권(Bank of Poyais가 발행했다는 지폐, 실제로는 가짜)’이
번쩍거렸고, 채권 공고문에는 “연 6%, £200,000 발행” 같은 숫자가 점잖게 새겨졌다.
사람들은 숫자에 안심했다.
숫자는 늘 소설보다 믿을 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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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키토 해안 고지도 Carte de la Moskitie (19th c.) 출처 Public Domain, BnF via Wikimedia Commons. |
그해 가을, 두 척의 배가 떠났다.
케너슬리 캐슬(Kennersley Castle)(1822년 가을 출항한 이민선)
혼두라스 패킷(Honduras Packet)(그 무렵 같은 항로로 향한 또 다른 선박)
선창에는 목수와 교사, 양복장이와 음악가가 섞여 있었다.
“도착하면 어떤 집을 짓죠?”
“강은 정말로 달콤하답니까?”
아이들이 갑판에서 파도와 경주를 했다.
선장 일지는 평온했고, 선내의 이야기들은 점점 달콤해졌다.
그러나 바다는 예정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도 속 ‘수도’가 아니었다.
정박지엔 선착장도, 병원도, 백악으로 칠한 넓은 관청도 없었다.
한낮의 녹색은 아름다웠으나, 해가 지면 습지의 냄새가 올라왔다.
“여기가 맞습니까.”
사람들이 물었다.
“맞다네,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 말은 끝나지 못했다.
우기는 오래 앓아온 병처럼 기습했고, 열병은 이름을 알려 주지 않은 채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도움을 준 건 믿지도 못했던 이웃이었다.
벨리즈(당시 ‘영국 온두라스’라 불리던 항구)의 사람들은 익사 직전의 이민자들을 보았다.
린넨을 나눠 주고, 남은 음식으로 국을 끓였다.
살아남은 이들이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포야이스’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단어였다.
신문은 묻기 시작했다.
“카지크 각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이미 런던을 떠나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해.”
그는 파리에서 포야이스 채권을 다시 팔려고 했다.
이번엔 프랑스 검사가 먼저 셔터를 눌렀다.
그는 체포되었고,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피고는 허구의 국가를 이용해 사기를 쳤습니까.”
“각하, 저는 카지크입니다.”
그의 변론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당당하다.
경계선의 사람은 늘 ‘진실’과 ‘연출’을 뒤섞는 재능이 있다.
몇 차례 공방이 오갔고, 그는 파리에서 풀려났다(무죄/석방 기록 존재).
그러나 명예는 이미 흙탕물에 빠져 있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더 이상 그의 연설을 갈채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사교계의 농담이 되었고, 신문 만평의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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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런던에서의 조롱·여론 반전 분위기를 한 눈에. Satirical print: the Cacique of Poyais awaiting bail (British Museum) 출처 Public Domain(박물관 스캔), Wikimedia Commons. |
그는 남미로 돌아갔다.
베네수엘라는 그를 전쟁의 기억으로 맞았다.
“장군, 돌아왔군.”
그는 시민권과 연금을 받았고, 카라카스의 해가 그를 한동안 따뜻하게 데웠다.
거리의 벽에는 새로운 영웅들의 얼굴이 붙었다.
그의 얼굴은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를 영웅으로, 누군가는 사기로,
또 누군가는 두 얼굴 모두로 기억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다.
1845년, 카라카스에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신대륙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도, 문장도 남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의 채권과, 골동품 상점의 가짜 지폐가 남았다.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카지크, 사기꾼, 군인, 연설가, 투자유치가, 탈주자.
가능한 모든 호칭이 그에게 닿고, 동시에 그를 비켜 간다.
그가 만든 포야이스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포야이스를 믿은 사람들의 희망은 실제였다.
“우리는 왜 믿었을까요.”
한 생존자가 훗날 회고록에 적었다고 한다(전승).
“우리는 현실보다 친절한 지도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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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전물 속 항구 이미지, ‘지도는 친절했지만 현실은 정글’ Black River, ‘Territory of Poyais’—contemporary view (engraving) 출처 |
사기에는 늘 두 개의 칼이 쓰인다.
한 칼은 꾸며낸 약속이고, 다른 칼은 우리가 이미 품고 있던 욕망이다.
맥그리거는 약속을 잘 만들었고, 런던은 욕망을 잘 길렀다.
그가 만든 《개요》에는 청결한 병원과 고상한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다.
실제로 그 해안에는 모기와 소금기둥 같은 나무들이 있었다.
현실은 늘 키와 체중이 불명확한 동반자다.
우리는 종종, 현실보다 잘 재단된 옷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그를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그는 총을 쏘는 법도, 영업을 하는 법도 알았다.
볼리바르의 사촌과 결혼했고(호세파 아리스테기에타와의 혼인),
플로리다의 모래섬에 공화국을 세웠다가 사라졌다.
무모함과 용기는 늘 같은 옷장을 공유한다.
그 옷장 안에서, 그는 인생의 절반을 선택했고, 인생의 절반을 포기했다.
카지크라는 왕관은 가볍게 빛났고, 그 왕관의 무게는 타인이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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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ndon Coffee House (1845, engraving), Library of Congress 투자자 모집이 이뤄진 커피하우스 출처 |
런던의 어느 서재
채권을 사들였다가 파산한 가장이 밤늦게 장부를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잠든 방에서 그는 종이를 깔끔하게 접어 서랍에 넣는다.
그 종이는 그에게 ‘희망의 장부’였고, 이제는 ‘조용한 교훈’이 되었다.
파리는 재판의 열기 속에서 박수와 야유를 번갈아 보냈다.
신문은 “천재적 사기”와 “집단적 최면”을 같은 면에 배치했다.
벨리즈의 항구에서는 누군가 흰 깃발을 흔들며 이민선을 불렀다.
그들이 살아 돌아온 날, 항구의 노랫말은 조금 달라졌다.
바다는 더 이상 낭만만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레고어 맥그리거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실패담이 아니다.
그건 도시가 꾸는 꿈의 구조에 관한 보고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금광이 아니라, ‘믿을 만한 느림’이었을지도.”
한 은행원이 나중에 회고록에 적었다고 한다(전승).
우리는 너무 빨랐고, 그가 너무 잘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닫는 마무리는 간단하다.
가끔은 지도보다 기후를 먼저 믿고, 전설보다 항만의 깊이를 먼저 재고,
채권의 이자를 읽기 전에 선장의 일기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왕의 명함을 받으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당신의 나라는, 진짜 어디에 있습니까.”
Scottish adventurer Gregor MacGregor styled himself “Cacique of Poyais,”
a fictitious nation on the Mosquito Coast.
In London he sold bonds and land, brandished a glowing guidebook,
and floated “Bank of Poyais” notes.
Two emigrant ships—Kennersley Castle and Honduras Packet—reached jungle,
not a capital; fever spread and survivors were aided at Belize.
Tried in Paris, he later died in Caracas with a veteran’s pension.
His saga is a cautionary tale of crafted promises meeting investors’ des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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