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별이 하나둘 살아나는 저녁, 파리(프랑스)의 소매가게들은 유리창을 신문지로 막아 붙였다.
재봉사 에밀리(가상인물·몽마르트르 거주)는 틈새가 없는지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신문엔 ‘시안기체(Cyanogen·CN·독성 화합물·어원)’라는 단어가 굵게 찍혀 있었다.
“오늘 밤, 꼬리 속 가스가 공기를 물들일 수 있다더라.” 오빠 쥘(가상인물·마부)이 말했다.
그날은 1910년 5월 18일 밤이었다.
혜성 1P/핼리(Halley’s Comet·주기 74~79년)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진 지(1910년 4월 20일) 한 달 남짓 지난 때.
도시는 불을 끄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음 날 새벽, 지구가 혜성 꼬리의 희박한 띠를 스치고 지나갈 예정이라는 소식이 퍼져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예고는 쌓였다.
1910년 2월 7일, 미국 위스콘신주의 예르크스 관측소(Yerkes Observatory·미국·분광 관측)가 꼬리에서 시안기체를 검출했다는 발표를 냈다.
프랑스의 천문 대중가 카미유 플라마리옹(Camille Flammarion·작가·강연자)이 “지구 대기가 가스로 물들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는 보도가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논쟁).
대부분의 천문학자가 “꼬리는 상상을 넘어 희박하다. 해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불안은 설명보다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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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르크스에서 촬영한 핼리 혜성” / “Halley photographed at Yerkes, May 29, 191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미국). 위키미디어 커먼스 |
그즈음 사람들은 이미 하늘에 두 번 놀랐다.
1월엔 ‘그레이트 재뉴어리 코멧(Great January Comet·C/1910 A1·일명 대낮혜성(데이라이트 코멧))’이 갑자기 밝아져 낮에도 보였다.
이 ‘예고 없는 손님’이 대중의 기대와 불안을 한껏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망원경을 사고, 엽서를 사고, 불길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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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도 보였던 1월의 대혜성” / “The Great Daylight Comet of 1910 (C/1910 A1)”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스 |
파리의 에밀리는 헛기침을 했다.
약국 진열장에는 ‘코멧 필(Comet Pills·가짜 특효약)’이 가지런했다.
값은 하루치 빵 값의 서너 배.
“두 알이면 시안기체에 무적.” 포장 문구가 그렇게 말했다.
대서양 건너 뉴욕(미국)에서는 지붕이 무대가 되었다.
호텔들은 ‘루프톱 관측 패키지’를 팔았다.
망원경 대여, 온음료, 해설.
신문은 ‘특집호’를 만들고, 사진기자들은 동이 트기 전부터 옥상 난간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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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성을 향해 파이프를 겨누는 풍자만화” / “Satirical cartoon: ‘Pipe the Comet!’ (1910)” DPLA v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스 |
그 시간, 예르크스 관측소의 분광실에서는 별빛이 프리즘을 통과해 줄무늬로 갈라졌다.
학생 보조원은 연속 스케일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선의 위치를 기록했다.
“수 분마다 온도를 점검해.” 지도교수가 말했다.
데이터는 차분했지만, 도시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차분하기 어려웠다.
베를린(독일) 근교에서는 씨감자 상자가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몇몇 농부는 파종을 미뤘다.
“어차피 수확할 날이 오기 전에 끝날지도 몰라.” 아저씨가 담배를 물고 말했다는 신문 칼럼이 화제를 모았다.
은행에는 일시적으로 상환을 미루자는 손님들이 줄었다.
장사꾼들도 잠들지 않았다.
‘코멧 우산’은 공기 정화 필터가 달렸다는 설명서를 끼워 팔렸다.
산소병을 등에 지고 다니며 ‘한 번 들이마시면 하룻밤 안심’이라 외치는 상인도 있었다.
바(bar)에서는 “위스키 두 잔이면 가스가 못 들어온다”는 농담이 반값 세트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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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 혜성을 마케팅에 쓴 1910년 비누 광고” / “1910 Pears’ Soap ad featuring Halley’s Comet” Library of Congress via Commons, Public Domain Mark. 위키미디어 커먼스 |
로마(이탈리아)에서는 신자 행렬이 이어졌다.
교황 비오 10세(Pius X·교황)는 “과장된 걱정은 접어 두라”는 취지로 신자들을 안심시켰다.
워싱턴 D.C.(미국)에서는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미국 대통령)가 해군관측소에서 밤하늘을 관측했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각국의 신문 1면은 이틀 전부터 혜성의 그림으로 도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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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햄스테드 히스에서 혜성을 찾는 군중” / “Crowds on Hampstead Heath seeking Halley” Library of Congress v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스 |
그리고 1910년 5월 19일 새벽이 왔다.
지구 대기는 평소와 같이 바람을 섞었다.
에밀리는 신문지를 떼어 내고 창문을 열었다.
새들이 제때 울었고, 빵 굽는 냄새가 골목을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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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드웨이 위로 꼬리를 드리운 할리 혜성” / “Halley’s Comet over Broadway (postcard, 191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스 |
뉴욕의 옥상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길고 가느다란 꼬리가 새벽 하늘을 가로질렀다.
사진가들은 장노출을 걸고 숨을 참았다.
누군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이렇게 드라마틱할 줄은 몰랐다”고 적었다.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엘릭서와 알약은 하루이틀 더 팔렸다.
하지만 ‘세상의 끝’은 오지 않았고, 창문을 봉한 집들은 오후가 되자 문을 활짝 열었다.
파리는 그날 저녁 매진된 연극 포스터를 다시 붙였다.
사람들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왜 우리는 겁을 먹었나.
대답의 첫 줄에는 분광학과 신문이 함께 놓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과,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보여주는 활자가 서로를 증폭시켰다.
플라마리옹은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논쟁).
기자들은 ‘가능성’을 ‘예고’로 오독했고, 광고주는 그 틈을 ‘상품’으로 바꿨다.
학자들은 “꼬리는 극히 희박하다”는 계산을 여러 번 반복해 신문에 실었지만, 숫자는 겁을 달래는 데 서툴렀다.
눈앞의 ‘약’이 더 말이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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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성을 시각 요소로 활용한 독일 맥주 광고” / “German beer ad using comet motif (191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PD-Art). 위키미디어 커먼스 |
다만, 공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 세계 도시의 옥상과 광장에 즉석 천문 동호회가 생겼다.
학교는 특별수업을 열어 ‘혜성은 태양 주위를 도는 얼음과 먼지’라고 가르쳤다.
우편국엔 혜성 엽서가 넘쳐났고, 풍자만화는 ‘지구 종말’ 농담으로 서점 창을 장식했다.
과오도 기록해야 한다.
가짜 약을 판 상술, 불안을 돈으로 바꾼 광고, 불충분한 팩트체크.
그리고 ‘누가 말했는지’만 남기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빼먹은 기사들.
그렇지만 그 실패가 남긴 교훈도 분명했다.
첫째, 과학 소통의 문장.
‘검출’은 ‘독’이 아니다.
‘가능성’은 ‘예정’이 아니다.
‘위험’은 ‘위험도’와 함께 말해야 한다.
둘째, 대중 참여의 리듬.
옥상 관측회, 학교 수업, 박물관 해설이 공포의 빈틈을 메웠다.
모든 교정은 경험에서 시작해야 했다.
사람이 스스로 하늘을 보는 시간이, 소문을 이긴다.
셋째, 제도와 상거래의 윤리.
위기 마케팅은 항상 등장한다.
식품·의약, 안전용품 광고에는 근거 표기가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커졌다.
‘가짜 약의 유혹’은 그날 이후에도 여러 형태로 반복되었고, 반복될수록 반격하는 장치도 늘었다.
그날 밤을 지나며 개인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뉴욕의 호텔 지붕에서 숙박객은 서로의 망원경을 바꿔 들었다.
에밀리는 신문지를 말아 부엌 걸레로 썼다.
베를린의 몇몇 농부는 늦은 파종을 감행했다.
문학도 그 순간을 기록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본명 새뮤얼 L. 클레먼스)은 1835년 혜성의 내습 때 태어났고, 1910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의 생애를 ‘혜성과 함께 왔다가, 혜성과 함께 갔다’는 문장으로 기억했다.
하늘과 인간의 이야기엔 늘 상징이 끼어든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핼리는 1986년에 다시 왔고, 2061년에 또 올 것이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창문을 막는 일 대신, 먼저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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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온 꼬리와 먼지 꼬리가 분리된 혜성 이미지” / “Type I ion tail above Type II dust tail (NOIRLab)” NOIRLab/Lowell Obs., CC BY 4.0. 위키미디어 커먼스 |
그날 밤 파리의 에밀리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늘한 초여름 바람이 땀을 식혔다.
꼬리는 여전히 가늘고 길었다.
그녀는 필통에서 작은 메모장을 꺼내 한 줄을 썼다. “봤다. 무사했다. 다음은 어떻게 설명할까.”
사건의 여파를 간단히 정리한다.
1910년의 ‘혜성 공포’는 천문학의 분광 발견–언론의 선정성–상업적 상술–대중의 체험이 서로 엮여 만든 하나의 사회적 실험이었다.
피해는 주로 가계지출의 낭비·허위 상품 구매·불안에 따른 일시적 생활혼란이었다.
그러나 같은 과정에서 천문 보급·관측 동호회·박물관 교육이 성장했고, ‘과학의 말하기’는 다음 세대를 위해 갱신되었다.
마지막으로 단어 몇 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핼리 혜성(1P/Halley·주기 혜성), 시안기체(CN·독성·분광 검출), 예르크스 관측소(시카고대 연계·미국 위스콘신), 플라마리옹(프랑스 천문 대중가), 루프톱 관측(호텔 옥상·도심), 코멧 필(상술·가짜 약), 그레이트 재뉴어리 코멧(C/1910 A1·1월의 대혜성).
이 낱말들이 모두 모여 1910년 5월의 밤을 이룬다.
그리고 그 밤은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능성과 위험도를 구분해 말하라. 먼저 하늘을 보라. 그리고 다 함께 설명하라.”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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