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러시아 연대기』와 서방 사가들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소설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사(正史)가 아니라 드라마와 긴장감을 살린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530년,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이반 4세(러시아 차르, 별칭 ‘이반 뇌제’).
훗날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두려운 군주로 불리게 될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권력 투쟁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독살로 사라졌다.
궁정 귀족들은 어린 차르를 보호하기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소년 이반은 배신과 음모, 피와 공포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
그가 차르로 즉위했을 때, 러시아는 한 명의 절대 권력을 원했다.
이반은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는 스스로를 러시아 최초의 차르라 칭하며 제국의 권위를 세웠다.
처음엔 개혁자처럼 보였지만, 곧 그의 이름은 공포와 잔혹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의 별명은 러시아어로 “그로즈니(Grozny)”였다.
이는 단순히 “무섭다”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자”라는 의미였다.
그 별명은 곧 그의 정치와 삶을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단어였다.
그는 권력을 쥔 순간, 귀족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충성하지 않는 자는 고문당하고 처형되었으며, 그들의 땅은 국고로 흡수되었다.
도시는 반역자로 몰려 불태워졌고,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다.
노브고로드 학살은 그의 잔혹함을 대표한다.
반역을 의심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직자, 상인,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강은 시체로 뒤덮였고, 불길은 도시를 삼켰다.
차르는 말을 타고 거리 위를 지나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러시아 백성들은 자신들의 황제가 보호자가 아니라, 언제든 칼을 겨눌 수 있는 재앙임을 깨달았다.
그의 분노는 가족에게도 향했다.
황태자 이반은 아버지의 폭정에 반발했지만, 말다툼 끝에 차르는 철퇴 같은 지팡이로 아들의 머리를 쳤다.
피가 번졌고, 황태자는 아버지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러시아 후계는 사라졌고, 차르는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그러나 그 통곡조차 백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비극적 장면일 뿐이었다.
이반 뇌제는 신에 집착했다.
수도원을 세우고 기도했지만, 동시에 러시아 전역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그의 종교적 열정은 참회가 아닌 집착이었고, 그의 정치적 선택은 민족에게 공포였다.
1584년, 그는 체스를 두던 중 쓰러져 생을 마쳤다.
죽음은 조용했으나, 그의 생애는 피와 광기로 가득했다.
러시아 역사는 그를 개혁가로도, 학살자로도 기록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억 속 그는 보호자가 아니라 공포의 화신이었다.
러시아의 첫 차르, 이반 뇌제.
그의 이름은 왕관의 영광보다 피와 두려움으로 더 깊이 각인되었다.
그는 권력자였지만 동시에 재앙이었고, 러시아 역사상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jpg)
.jpg)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