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전쟁에서 불교로, 아소카 황제의 극적인 전환 (Ashoka)




 이 글은 『아소카 석주비문』 등 역사적 사료에 기록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소설적 각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서가 아니라, 드라마와 긴장감을 살린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전장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칼날은 무수히 부딪혔고, 화살은 하늘을 가르며 비처럼 쏟아졌다.

칼링가(동인도 해안 지역)의 대지는 불타고 있었고, 비명은 산맥을 넘을 만큼 크고 처절했다.


전장의 중심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아소카(마우리아 제국 황제).

그는 인도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피의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거대했고, 그의 야망은 그보다 더 컸다.




칼링가는 오랫동안 독립적인 자존심을 지닌 나라였다.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고, 아소카의 명령을 거부했다.

“칼링가는 무릎 꿇지 않는다.”

그들의 고집은 곧 아소카의 분노로 이어졌다.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들의 무릎을 꺾어주겠다.”

아소카는 거대한 군세를 모아 칼링가로 향했다.


전투는 무자비했다.

칼링가의 병사들은 용맹했지만, 마우리아 제국의 군세는 압도적이었다.

검은 연기가 도시를 뒤덮었고, 강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어머니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전장은 더 이상 병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칼링가의 백성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


아소카의 군대는 그날 수만 명을 학살했다.

칼링가의 저항은 꺾였지만,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10만 명 이상이 죽고, 수십만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전해진다.


승리의 순간.

아소카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그의 발밑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고, 하늘에는 까마귀 떼가 모여들었다.

병사들은 승리를 외쳤지만, 아소카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한 노파에게 향했다.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

그녀의 절규는 전장의 모든 소음을 덮어버릴 만큼 깊고 날카로웠다.


그 순간, 아소카의 심장이 흔들렸다.


“이것이 내가 원한 것인가?”

그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전쟁에서 수없이 승리해왔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그는 무릎 위에 피가 묻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 피가 적의 것이든 백성의 것이든 구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피였다.


전쟁이 끝난 뒤, 아소카는 홀로 성벽 위에 섰다.

그의 군대는 승리했지만, 그의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속삭였다.

“칼날은 땅을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은 잃게 된다.”


그날 이후 아소카는 변했다.

그의 마음은 피의 전쟁에서 불교의 길로 향했다.


그는 수행자들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왜 전쟁의 승리에서 기쁨이 사라진 것인가.”


수행자는 대답했다.

“왕이여, 그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은 생명을 해치면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것을 끊는 길은 자비와 법(다르마)뿐입니다.”


그 순간 아소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전쟁의 황제에서 법의 황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아소카는 불교에 귀의했다.

그는 더 이상 정복의 칼날을 들지 않았다.

대신 돌기둥에 자신의 통치 철학을 새겼다.

“나는 전쟁을 버리고 자비를 택한다.

나는 다르마로 제국을 다스린다.”


그의 명령으로 수많은 불탑이 세워졌고, 불교는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절단은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으로 향했고, 불교는 훗날 중국과 한국,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칼링가의 피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땅에는 여전히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참상이 있었기에, 아소카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제국의 황제였으나, 동시에 자신을 넘어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소카.

그는 피의 전쟁을 통해 자비를 깨달았고, 그 이름은 지금도 불교의 수호자로 불린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더 이상 검이 아니라, 법의 기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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